"도를 아십니까" 여자 따라간 썰

대학생 때, 여자친구를 바래다 주고 돌아오는 길이었음.
밤 10시 정도였는데, 시내도 아니었고 단독주택이 몰려있는 주택가 도로였응.
나보다 1~2살은 많아 보이는 젊은 여자가 맞은편에서 걸어오다가 뜬금 말을 걸어옴.
"인상이 너무 좋아서 자기도 모르게 말을 걸게 됐다"는,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는 상황이었지만 ㅎㅎㅎ
그 때까지 "도를 아십니까"의 존재를 전혀 접해본 적이 없던 나는, 그녀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였고, 내심 기분이 매우 좋았음 😂
빼어난 미모는 아니었지만, 단정한 외모에 키도 꽤 큰 편이었고, 뭔가 누나에게서 느껴지는 성숙미와 웃는 얼굴이 꽤 호감형이라 더더욱 그랬음.
그렇지만 어쨌거나, 오밤중에 인적도 많지 않은길에서 여자가 남자한테 먼저 말을 거는 상황이 상식적인 일은 아닌지라, 살짝 당황한 티를 냈더니
자기 이상한 사람 아니라면서, 정말 딱 보는 순간 너무 호감형이어서 자기도 모르게 말을 걸게 되었다며, 대학교 학생증까지 꺼내 보여주는거임.
학생증을 들여다 보니, 역시 나보다 두 살이 많은 학년이었음.
학생증까지 확인하고 나니까, 그나마 남아있던 의심 같은 건 완전히 사라졌고, 열린 마음으로 대화가 이어졌음 ㅎㅎㅎ
길에 서서 몇 분 정도 대화가 이어졌을 때쯤... 뜬금 그녀가 "자취방이 가까운데 있으니, 같이 가서 술 한잔 하지 않겠냐"고 함.
오잉... 😛
이게 뭔가 싶었음. 아니 무슨 유흥가 골목도 아니고, 클럽 근처도 아니고... 주택가를 걷다가 이런 횡재가 생긴다고??!!
'오래 살지는 않았지만, 살다보니 이렇게 거저 먹는 일도 생기는구나' 하는 마음에 갑자기 기분 업~ 텐션 업~~ 🤪😜😛
반쯤 앞장선 그녀를 따라가면서, '콘돔을 안챙겨도 되나?', '원나잇은 좋은데, 사귀자고 하면 어떡하지... 양다리는 피곤한데' , '이렇게 또 계획에도 없던 연상녀와 뜨밤을 보내게 되는구나' 같은 생각들을 할 때쯤, 2층 빨간벽돌 주택 앞에 다다랐응.
익숙한듯 대문을 열고 들어가는 그녀를 따라 들어가는데... 어느 순간부터 집안에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고, 현관문에 다다랐을 땐 확실히 안에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음.
???
난 당황했지만, 뭘 구체적으로 생각하기도 전에 그녀는 내 손목을 잡고 끌어당기며 현관문을 열고 있었음.
당황할 겨를도 없이 얼떨결에 현관 안으로 들어선 내 눈에 비친 장면은
열댓명 정도 되는 한무리의 젊은 남녀가 거실 바닥에 빼곡히 앉아 있었고, 그 앞에선 30대 정도로 보이는 남자가 칠판을 등지고 서서 뭔가를 열심히 가르치고 있었음.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를 판단하려고 하던 그 순간, 그녀는 빨리 들어오라며 두 손을 잡고 끌었고, 동시에 방문이 열리며 젊은 남자가 나오더니
"환영합니다. 어세오세요" 라며 그녀를 도와 내 팔을 같이 끌어당겼음.
얼떨결에 신발을 벗고, 어...어... 하며 방으로 끌려들어간 눈 앞에는, 40대 정도로 보이는 남자가 작은 상을 앞에 두고 나를 올려다 보고 앉아 있었는데, 흡사 사주팔자 보러 갔을 때의 딱 그런 모습이었음. 직감적으로 사이비 종교 같은 곳에 발을 들였다는 것을 깨달았음. 😨
탈출각인 건 확실한데... 분위기가 너무 진지하고, 얼추 둘러봐도 남자들 숫자가 10명은 되보이는데다가, 종교집단인 걸 생각하니까... 무작정 나가려 들면 뭔가 불미스러운 일이 생길 것 같았음. 일단 하라는대로 하면서 상황을 더 판단하면서 탈출기회를 보기로 결심함.
"어허~~ 어깨에 귀신을 달고 왔네" 상을 펴고 앉아있던 그 남자가 나를 보고 던진 첫마디였음. 😅
"네...?" 라고 대답하자
"평소에 어깨가 무겁고, 목이 뻐근하고 그랬을텐데" 라고 함. (여기서 이것들이 제대로 사이비들이라는 확신을 함 😂)
속으로 '살면서 어깨, 목 한번씩 안뻐근한 사람이 어딨냐' 라고 생각하며
"네...뭐 좀 그랬던 것도 같..."
"잡생각이 많고, 뭔가 머릿속에 답답한 적이 많고 그랬을거야"
"음... 잡생각은 좀 많은 편입니다" (이건 솔직한 생각이었고)
"어느 학교 다녀?"
"아, 저 ㅇㅇ대 다닙니다"
"두뇌가 비상한 사람이야. 하늘이 준 머리를 타고 났어. 마음 먹고 공부하면 서울대도 그냥 들어갔을 머린데, 안타깝네"
"제가요...?"
"귀신이 어깨며, 머리며 올라앉아 있으니 타고난 재능이 눌린거야. 아깝네 아까워"
(나는 무신론자임. 하나님, 부처님 같은 신도 안믿는 사람인데, 뭐 귀신?)
"귀...무슨 귀신인데요?"
"할머니 귀신, 할아버지 귀신" (진짜 코미디 하고 앉았다고 생각함)
"할머니, 할아버지 귀신요? 그 귀신들이 왜 제 어깨에..."
"조상님들을 제대로 못 모셔서지" (조상? 이건 생소한 전개인데...)
그러더니 갑자기 노트 위에 나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함.
"자, 봐봐. 너는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존재가 아니잖아. 이 뿌리가 너의 조상님들이고...어쩌고 저쩌고"
장황한 설명을 한참을 한다. 결론은, 나와 나의 부모님이 조상을 제대로 못모셔서 노여움을 샀고, 그것 때운에 앞으로의 인생도 화가 많이 미칠 것이다.
그럼 뭘 어떻게 해야 노여움이 풀리냐고 물으니, 제사를 지내야 한다고 함 (아... 역시... 🤣)
"제사요? 제가요?"
"아니아니, 노여움을 가진 귀신을 달래는 제사는 그냥 보통 제사로는 안되지"
"그럼 뭘 어떻게..."
"제사는 우리가 지내줘"
"진짜요? 공짜로요?"
"제사를 크게 지내야 하는데, 진심과 성의가 있어야지. 앞으로의 삶이 어떻게 되느냐가 걸린 일인데... 우리가 제사를 지극정성으로 지내줄건데, 너도 쏟을 수 있는 모든 정성을 다해야지"
"아...그럼 비용이..."
"얼마 가지고 있는데?"
"오...천원 정도" (이 때 주머니에 몇 만원 있었는데, 거짓말 하지 말라며 주머니 뒤질까봐 살짝 긴장함 ㅎㅎㅎ)
" 🤨 집에서 가져오면 되잖아, 어디 살아?"
"본가는 멀리 있고, 저는 혼자 자취하고 있어서..."
" 그럼 생활비도 받고 그럴거 아냐"
" 아니 뭐 정확히 얼마 정도가 있어야... 제가 학생이라 돈이 없거든요"
" 학생이라도 돈 백만원 정도는 있지 않아?" (쳐돌았나...ㅋㅋ)
"그럼 제가 지금 자취방 가서 저금통도 뜯고, 알바비 받은거랑 서랍도 찾아보고 해서 있는대로 긁어가지고 오겠습니다" (나가게만 해다오 😬)
"어딘데 자취방이?"
"걸어서 5분?"
"음... 얼마 가져올 수 있는데?"
"글쎄... 얼추 백만원 가까이 될거 같은데..."
"이런 제사는 기본 200만원은 정성을 보여야 꼬인 걸 풀수 있는건데..."
처음 길에서부터 여기까지 날 유인했던 여자에게, "니가 같이 따라갔다 와
"네? 😅 아니 저 혼자 후다닥 뛰어갔다 오는게 빠를거 같은데요"
"여기 다시 찾아올 수 있어? 그냥 같이 갔다와" (여우 같은 놈...)
"네... 그럼 뭐...같이 다녀오겠습니다"
<갑자기 급피곤해져서...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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