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서와 있었던 일
bfgu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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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시간전
그녀는 사장 비서였고 나는 기획팀에 있었다.
같은 회사에 다닌 지는 몇 년 됐지만 처음에는 서로 이름을 부를 일도 없었다. 그녀는 사장실이 있는 칠 층에서 근무했고 나는 한 층 아래에 있었다. 한 층 차이였지만 업무가 겹치지 않을 때는 같은 건물에 있는 사람도 오래 모르고 지낼 수 있었다.
나는 다른 직원들처럼 그녀를 비서님이라고 불렀다.
그녀에게 남편과 딸이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연말 행사에서 직원들의 가족사진이 화면에 나온 적이 있었다. 그녀는 남편과 딸 사이에 서 있었다. 남편은 안경을 쓰고 있었고, 딸은 웃을 때 눈이 그녀를 닮았다.
그 이상은 알지 못했다.
알 필요도 없었다.
그해 내가 사장 보고자료를 맡으면서 그녀를 자주 만나게 됐다.
사장 보고는 예정된 시간에 시작되는 경우가 드물었다. 오후 두 시에 오라고 해서 올라가면 앞 회의가 조금 길어지고 있다고 했다. 두 시 반이 되면 정말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고 했다.
회사에서 ‘조금’이라는 말은 시간과 별로 관계가 없었다.
기다리는 사람이 더 묻지 않게 만드는 말이었다.
나는 사장실 앞의 갈색 소파에 앉아 보고서를 다시 읽었다. 읽을 내용이 남아서가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지 않아서였다. 이미 확인한 숫자를 계산기로 다시 눌러보고, 표의 선을 맞추고, 외운 문장을 처음 보는 것처럼 넘겼다.
그녀가 커피를 가져왔다.
“안 주셔도 됩니다.”
내가 말했다.
“이미 탔어요.”
그녀는 종이컵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설탕은 들어 있지 않았다.
다음 보고 때도 그랬고 그다음에도 그랬다. 어느 날 어떻게 알았느냐고 묻자 그녀는 내가 설탕이 든 커피를 늘 남겼다고 했다.
별일은 아니었다.
비서는 원래 그런 것을 기억하는 사람이었다. 사장이 어떤 차를 마시는지, 누구의 전화를 바로 연결해야 하는지, 어떤 손님을 회의실 안쪽에 앉혀야 하는지를 알아야 했다.
나는 그녀가 기억해야 할 많은 것 가운데 하나였을 것이다.
그래도 누군가가 나를 보고 있었다는 사실이 조금 좋았다.
보고가 끝나고 나오면 그녀는 결과를 물었다.
“오늘은 어땠어요?”
“다시 하랍니다.”
“전부요?”
“전체적인 방향만요.”
그녀가 웃었다.
“그게 전부 아닌가요?”
그녀는 사장의 말을 잘 번역했다.
조금 더 고민해보자는 말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뜻이었고, 나쁘지 않다는 말은 좋지는 않다는 뜻이었다. 다음에 다시 보자는 말은 적어도 오늘은 더 보고 싶지 않다는 뜻이었다.
나는 사장이 한 말을 문서로 바꾸었고, 그녀는 사장이 하지 않은 말까지 사람들에게 설명했다.
우리는 그 일이 조금 우습다는 데서 친해졌다.
처음에는 사장 이야기만 했다. 그러다 회사 이야기로 넘어갔고, 어느 순간 퇴근한 뒤에도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오늘도 수정하세요?
네. 전체적인 방향을 찾는 중입니다.
찾으면 저한테도 알려주세요.
그녀의 메시지를 읽고 혼자 웃는 날이 생겼다.
직장에서는 그 정도의 일로도 하루가 달라졌다. 아침에 누가 먼저 인사했는지, 회의에서 내 말을 누가 다시 받아줬는지, 퇴근 직전에 받은 짧은 메시지가 무엇이었는지 같은 일이 생각보다 오래 남았다.
어느 날 밤 사장실 층에 올라갔을 때 사장실 불은 꺼져 있었고 비서실만 켜져 있었다.
그녀는 혼자 다음 날 일정을 정리하고 있었다.
“아직 안 가세요?”
“가려고요.”
가방도 챙기지 않은 사람이 말했다.
책상 한쪽에는 뜯지 않은 샌드위치가 있었다.
“저녁은요?”
“먹었어요.”
내가 샌드위치를 보자 그녀가 웃었다.
“먹으려고 샀으면 먹은 거나 비슷하죠.”
“그럼 퇴근하려고 생각했으니까 퇴근한 거네요.”
그날 우리는 탕비실에서 컵라면을 먹었다.
작은 테이블과 의자 두 개가 있었다. 복도의 센서등은 우리가 움직이지 않으면 자꾸 꺼졌다. 불이 꺼질 때마다 그녀가 팔을 한 번 흔들었다.
“여기는 가만히 있으면 사람 없는 줄 알아요.”
그녀가 말했다.
회사에서는 실제로 그런 경우가 많았다.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으면 괜찮은 사람으로 여겼고, 일을 거절하지 않으면 그 일을 잘하고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잘해서 맡은 일은 어느 순간부터 원래 그 사람의 일이 됐다.
그녀는 비서 일을 그만하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왜 계속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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