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러브호텔 2
하지만 성숙한 여인의 반나신을 바로 코앞에 두고 태연하게 앉아 있자니 속에서 한 움큼씩 불길이 솟구치는 느낌이었다. 의외로 여인의 사유는 간단했다. 애인의 바람에 맞바람으로 복수를 하고 싶은 심리.
여인은 오직 그 생각으로 머릿속이 꽉 차 있을 것이다. 여인에겐 지금 남자가 욕망의 대상이 아니었다. 오직 복수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자신의 육체를 쉽게 내 던질 정도로 여자가 한을 품으면 이토록 무섭단 말인가. 하지만 이런 식의 복수라니 참으로 이상한 복수가 아닌가.' 진수는 일도 잊어버리고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그런데 총각은 몇 살이나 먹었지요? 얼굴도 꽤 미남이군요. 몸도 튼튼해 보이고...
" 그러고 보니 마른침을 삼키는 건 진수만이 아닌 듯 했다. 여인의 눈길이 묘하게 진수의 아래위를 흩고 지나갔다. "예. 전 스물 여섯입니다. 몸이야 군에서 3년동안 체력 단련만 했으니 이리 될 수밖에 없죠. 전엔 약골이었걸랑요." "그럼 여자 경험은 있겠군요. 얼굴이 이렇게 미남이니 당연히 여자친구도 있겠고..." "그 그야...
" 진수의 얼굴이 벌개짐을 여인은 놓치지 않았다. 여인이 지금 무엇에 목적을 두고 있는지를 직감한 진수의 호흡은 갈수록 빨라져 갔다. 여인은 진수의 젊고 건장한 육체를 보자 복수심 위에 또 하나를 얹어 색기마저 발동했는지도 몰랐다. 단숨에 앞에 놓인 술잔을 비운 여인이 갑자기 입고 있던 얇은 슬립을 벗어 던졌다. 그리고 몸을 일으키던 그녀가 술기운이었는지 몸의 균형을 잃고 비틀거렸다.
"괘... 괜찮으세요?" 여인의 의도 따위를 생각하지 않았다. 순간적으로 달려든 진수가 여인의 몸을 부축했다. "아, 어지러워요. 저 좀 침대로 부축해 주시겠어요. 쉬고 싶군요." 여인의 봉긋 솟아오른 젖가슴이 진수의 얼굴을 짓누르며 뒤이어 풋풋한 살내음이 코를 자극시켰다. 그녀의 몸은 익을 대로 익어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따 주기를 기다렸던 농익은 과일처럼. 이미 이성을 잃은 진수는 용기를 내어 그녀의 몸을 침대에 눕힌 후 젖가슴으로 손을 옮겼다. "아.." 짧게 신음 소리만을 토할 뿐 그녀는 반항하지 않았다. 마치 모든 것을 기다렸다는 것처럼 오히려 등뒤로 그런 진수를 힘껏 끌어 앉는 것이 아닌가? 그런 모든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러브호텔 불야성의 밤은 더욱 깊어 가고 있었다. 러브호텔 2 넷째 이야기: 립스틱으로 쓴 유서 사람들이 자살을 할 때 그 죽음의 순간을 택하는 장소도 참으로 다양하다.
멀리 여행을 떠나서 낯선 여행지의 강변이나 호텔 방, 혹은 유람선의 달리는 뱃전 위에서 그 생에 마감의 순간을 가질 수도 있고, 더러는 집에서나 아니면 자신이 처한 가장 어려운 환경의 한 가운데가 될 수도 있다. 그 여러 유형의 죽음 가운데 낯설은 여관방에서 생의 죽음을 택한 한 여인의 소설처럼 슬픈 이야기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잠실 종합운동장을 지나 한 정거장을 더 내려가면 신천 전철역이 나오고 그 뒤로는 최근 요 몇년 사이 젊은이들의 거리가 되어 버린 화려한 유흥가 골목이 펼쳐 있다.
이 곳은 또한 인근의 야구장과 한강 시민공원 롯데월드 등이 인접해 있고 편리한 교통 여건 때문에 많은 젊은이들이 모여들어 일명 뚜벅이거리라고 불리우는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렇게 유흥 시설들이 즐비하다 보면 시내 어디를 가도 공통적인 것이기는 하겠지만 한 블록쯤 떨어진 거리에는 반드시 화려한 네온 등들을 앞세운 러브호텔의 불빛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기 마련이다.
이 곳도 마찬가지여서 각종 술집과 포장마차 노래방 단란주점등이 늘어선 거리를 걸어 올라가다 보면 그 길이 끝나는 지점을 기점으로하여 여관들이 늘어서 있다. 마치 '취하고 지친 그대들을 기다렸노라' 하고 말하듯 사랑하는 연인들이 기분 좋게 한 잔씩을 걸치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골목길을 나서면 자연스레 여관이 그 앞을 가로막는다.
그 어느 늦은 가을, 가을비가 을씨년스럽게 흩뿌리던 날이었다. 자정이 가까워지자 영업 시간이 끝난 술집의 손님들이 하나 둘씩 가게문을 나와 삼삼오오 집으로 혹은 포장마차로 흩어질 무렵 술에 잔뜩 취한 연인 한 쌍이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흐느적거리며 골목길을 거슬러 올라가고 있었다. 날씨는 제법 쌀쌀했다. 여인은 검정색 투피스 차림에 이십대 초반의 청순하게 생긴 얼굴이었고
그녀의 팔을 부축한 남자는 큰 키에 귀공자 풍의 얼굴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 잔씩 걸친 술로 인하여 취해 있었기는 마찬가지 였고 어느 누구도 두 젊은이를 주목하는 사람은 없었다. 여인은 술에 취해 몸을 못 가누기는 했지만 제법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남자에게 애원하고 있었다. "영준씨! 제발... 절... 절 떠나지 마세요? 네, 부탁이에요.... 흐흑..." "미혜... 어쩔 수 없잖아... 부모님의 뜻인걸...
그리고 날 이젠 잊어 줘... 넌 더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거야..." "흥, 영준씨가 떠나면 전 차라리 죽어 버릴 거예요.... 영준씨는 부모님의 뜻이라 하지만 사실은... 저를... 사랑하지 않고 있어요. 그렇죠?" "아니야, 그렇지 않아... 난 누구보다도 미혤 사랑했다구.. 다만 지금은 부모님의 뜻을 거절할 수 없기 때문이지.... 난 그분들의 희망이야." 쓰러질 듯 비틀거리며 걷던 두 남녀는 잠시 후, '파라다이스'라고 써진 모텔의 현관문을 밀치고 안으로 들어갔다. "비가 많이 오나 보군요?"
두 남녀를 아래위로 흩어 보던 종업원 미스터 박은 형식적인 말을 건네며 엘리베이터에 그들을 태웠다. "아저씨! 몇 층입니까?" "예, 6층 607호실입니다. 잠시만 기다리시지요?" 꼭 부둥켜안은 남녀는 꽤 피곤한 얼굴이었다. 잠시 후 방으로 그들을 안내한 미스터 박은 별 생각없이 요금을 받은 후 방문을 닫아 주고 프런트로 내려왔다. 그리고 긴 밤이 흘렀다. 다음 날 오전 12시, 통상 이때쯤이면 숙박 업소의 대부분은 그때까지도 방을 비우지 않은 손님들에 한하여 일일이 전화로 체크아웃을 시킨다. 청소를 시작하고 새로이 들어 올 손님들을 맞이하기 위함에서였다.
일일이 체크판을 들고 나가지 않은 손님들을 체크하던 미스터 박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상하네. 607호 말이야. 안에 손님이 분명히 있는데 전화를 안 받는단 말씀이야." "잠에 취해서 그렇겠지. 다시 한 번 전화를 해 보세요." 걸레질을 하던 프런트 케쉬어 미스 리가 거들었다. "글세.. 어제 저녁에 술에 취해서 들어오기는 했지만 지금쯤이면 술이 깨고도 남았을 시간인데 이상하네." "문을 마스터키로 따 보면 되잖아요?" "에이, 누가 그걸 모르나. 손님 방 함부로 열었다가는 큰일 나니까 하는 소리지. 가뜩이나 술 취해서 믈건 잃어버리면 종업원 소행이라고 우기고 신고하는 판인데... "
"훗훗, 하긴 그렇기도 하겠군요." "에잇! 더러워서. 빨리 돈 벌어서 뭐라고 차리던가 해야지. 그나저나 607호실은 문제군. 문을 열어 보는 수밖에 없겠는데. 요즘 젊은것들은 문제야. 대낮인데 출근도 안 하나." 미스터 박은 투덜거리며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잠시후 607호실 앞에 이른 그는 다시 한 번 소리내어 문을 두드렸으나 안에서는 아무런 인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젠장, 전쟁이 일어나도 모를 판이군." 조심스레 마스터키로 객실 문을 연 미스터 박은 손님이 깰 까봐 조심하면서 마치 영화 속의 미 정보국 CIA요원이 된 기분으로 안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커튼이 드리워진 방 안은 텅 비어 있었다. 다만 문 입구에 여자 구두 한 켤레가 아무렇게나 놓여져 있었으나 손님은 없는 듯 했다. "젠장, 여기가 무슨 쓰레기장인줄 아나. 줄줄이 버리고 가게스리. 그나저나 괜히 놀랬네." 완전히 손님이 없음을 확인한 그는 투덜거리며 커튼을 열어 젖혔다.
여관에 와서 새로 산 신발이나 옷가지들을 갈아입고 헌 것들은 버리고 가는 경우는 그전에도 종종 있던 터였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이상한 냄새가 조금씩 풍겨 나오기 시작했다. "앗, 그런데 이게 무슨 냄새지?" 갑자기 풍기는 역한 비릿내에 깜짝 놀란 미스터 박은 조심스레 욕실문을 열었다. "아악" 다음 순간, 그는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닫혀진 욕실 안에는 참으로 처참한 풍경이 벌어져 있었다. 긴 머리를 어깨에까지 늘어트린 여인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신으로 동맥을 절단한 채 욕조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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