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소나타 13~14
wuji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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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22 18:10
현식이는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도 머리 속에는 온통 혜진이의 생각뿐이다.
아침에 같이 식사를 하고, 여덟시쯤 아파트에서 나왔다. 혜진이는 집에 전화를 하고 바로 학교에 갔고, 자신은 회사로 왔다.
어제 하룻밤사이에 얼마나 엄청난 일이 일어 났는가?
상상치도 못한 일들을…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자신이 이번 일의 처음과 끝을 책임져야 할 것 같다. 이제 와서 그만두자고 하기에는 혜진이가 입을 상처가 너무 크고, 자신 역시 혜진이를 너무 그리워할 것이다.
단 하룻밤… 두 번을 안았지만, 자신이 지금까지 마흔 일곱해를 살아 오면서 그만큼 좋았고 황홀했던 적은 없었다.
꼭 딸이라 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혜진이 살결의 감촉, 그리고 뿌듯했던 그 부분의 느낌.. 지금까지 어떤 여자가 혜진이만큼 나를 사랑했던가? 자신의 처녀를 거리낌없이 바칠 정도로.. 원래 그런 애가 아니란 걸 알기에 더욱 그렇다.
성격이나 취향이 내가 낳은 딸이라서 그런지 나와는 너무 잘 맞다. 아마.. 죽어도 잊지 못할 것이다. 처음 마누라를 안았을 때도 이런 느낌은 아니었다.
이제 평범한 아빠와 딸 사이로 남기는 어려울 것 같다.
딸만 아니라면 언제까지나 곁에 두고 살고 싶지만, 때가 되면 혜진이도 짝을 찾아 결혼을 해야 할 것이다.
자신도 계속 이렇게 혼자서 살고 싶은 마음은 없다. 적당한 사람이 나타나면 남은 인생을 친구처럼 같이 지내고 싶다. 이번에 혼자서 살다 보니, 혼자서 산다는 게 너무 허전하고 외롭다.
혜진이는 강의실에 앉아서 강의를 듣고 있지만 귀에는 하나도 들어 오지 않는다.
다만, 어젯밤에 자신을 안아 주었던 아빠의 느낌만 계속 생각하고 있다. 이제 자신은 처녀가 아니다. 하지만, 하나도 아깝지 않다. 내가 너무 사랑하는 아빠에게 주었기에…
하루의 강의를 듣는 둥 마는 둥 하다 보니, 어느 새 집에 가야 할 시간이다.
오늘 동아리 모임이 있지만, 참석하지 않고 그냥 집으로 가려고 학교를 나선다.
“혜진아!”
뒤에서 누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인혁이가 숨을 헐떡거리며 뛰어 오고 있다. 자신의 옆까지 뛰어 오더니 가쁜 호흡을 몰아 쉬면서 말을 한다.
“혜진이 너.. 그냥… 가려고? 동아리 모임은?”
“오늘은 그냥 집에 가려고요.”
“그럼.. 나랑 어디 가서 차 한잔 하자.”
“무슨 일인데 그래요?”
“그냥.. 할 이야기도 있고..”
한동안 자신을 못 본 듯이 피하더니 웬일일까?
궁금하기도 하고 차 한잔 마시는 거야 어떨까 싶어서 승낙을 한다.
“그래요. 선배.. 근데 동아리 모임에 참석 안 해요?”
“나도 오늘은 좀 빠질려고..”
같이 걸어 내려오다가 길옆 건물의 이층에 있는 커피숍으로 올라간다. 창가에 있는 자리를 잡고 앉으니 여자 종업원이 와서 주문을 받는다.
“혜진이 너.. 뭐 마실래?”
“오렌지 주스로 할께요.”
“그럼.. 여기 오렌지 주스 두잔 갖다 주세요.”
“선배. 할 이야기가 뭔데요?”
“차 오거든 마시면서 이야기하자.”
인혁이가 담배를 한대 꺼내 문다.
혜진이 앞에서 아무렇지 앉은 듯 혜진이를 쳐다보고 있지만, 속마음은 미안하기 짝이 없고 혜진이 보기가 민망하다. 말도 안 되는 오해를 했으니.. 주문했던 오렌지 주스가 두 사람 앞에 놓여진다.
“혜진아. 주스 들어..”
같이 잔을 들고 오렌지 주스를 마신다.
“혜진아..”
“왜요? 선배..”
“정말 미안하다.”
“뭐가요?”
“지난번에 너랑 같이 술 마셨을 때, 사실은 너 뒤를 따라갔었거든.. 술 취한 네가 집에 무사히 잘 들어가는지 걱정이 돼서..”
갑자기 혜진이가 고개를 들고 인혁이를 뚫어질 듯이 바라본다.
'그랬단 말이지.. 그럼 내가 아빠 아파트에 들어간 것을 보았단 말인가?'
혜진이의 목소리가 떨려서 나온다.
“그럼.. 내가 다른 곳에 간 것도 알겠네요?”
“알지.. 어떤 아파트에 들어간 것도.. 그리고, 중년남자가 너를 안고 들어간 것도.. 그래서, 한동안 너를 많이 오해했었다.”
그랬구나! 그래서 날 못 볼 것을 본 듯이 피했구나..
“…그래서요? 오해라고 말하는 것을 보니 이해를 한다는 말인가요?”
“그 이후 한동안 널 많이 오해하고 내 마음이 많이 괴로웠었다.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네가 들어간 그 아파트에 찾아 갔었다. 그리고, 그 중년남자를 만났었지.. 네 아빠더구나.”
어쩜! 나도 모른 사이에 그런 일이.. 아빠는 나한테 일언반구도 그 이야길 하지 않았는데..
“선배가 나한테 관심을 보여 주는 건 좋은데, 더 이상 나에게 그런 관심을 안 가졌으면 좋겠어요..”
“혜진아! 널 진심으로 좋아한다. 아니.. 좋아한다기 보다 널 사랑한다는 게 맞을 거야. 한번 나에게 네 마음을 열어줄 수 없겠니?”
혜진이 가슴이 두근거린다.
지금 나에게 프로포즈하는 건가? 하지만, 이제 자신에게는 세상에서 둘도 없이 사랑하는 남자가 있다.
“선배 마음은 고마워요. 하지만, 나에겐 사랑하는 남자가 있어요.”
인혁이는 가슴이 덜컹 내려 앉는다. 혜진이에게 사랑하는 남자가 있다니..
“정말이야? 넌.. 내가 알기로 따로 사귀는 남자가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
“선배가 날 속속들이 어떻게 알겠어요? 선배가 나에게 다정하게 대해주고 관심을 가지는 걸 알지만 더 이상 나에게 미련을 가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럼.. 저 이만 갈게요.”
혜진이가 자리에서 일어선다.
인혁이는 혜진이를 잡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망연히 자리에 앉아 있는다. 혜진이에게 사랑하는 남자가 있다니… 전혀 생각도 하지 못했는데..
그 동안 나에게 거리를 둔 게 집안 일 때문만은 아니란 말인가? 아니면, 혜진이가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거짓말을 하는 건가? 이번 일만 아니라면 그 동안 혜진이도 나를 별로 싫어하진 않았는데..
혜진이에게 접근하는 자신에게 마음의 문을 열어주지 않아서 그렇지.. 그냥 혜진이 말만 믿을 게 아니라 정확하게 알아봐야 되겠다. 정말 혜진이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지..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다.
혜진이는 집에 가려고 버스를 탄다.
인혁이가 자신에게 프로포즈를 하다니…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는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고백을 할 줄은 몰랐다.
한동안 자신을 못본 척 하길래 자신을 포기한 줄 알았는데.. 자신 역시 인혁이가 싫진 않다.
키도 훤칠한데다 인물도 괜찮고 마음씀씀이 역시 남자답고, 성실하다. 만일 아빠만 아니라면 인혁이의 프로포즈를 받아 들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자신의 마음은 송두리째 아빠에게 가있다. 더군다나 이십 일년간 간직해온 순결을 아낌없이 아빠에게 바쳤지 않은가? 지금 자신의 마음 속엔 더 이상 아무것도 들어올 공간도 없이 충만해 있다.
혜진이가 집으로 돌아오니, 엄마가 어디 외출이라도 하려는 듯이 화장대 앞에 앉아서 화장을 하고 있다가 자기를 보고 한마디한다.
“다 큰 계집애가 툭하면 아빠한테 가니? 그리고, 아빠한테 들렸으면 시간이 되거든 집에 와야지.. 자고 오기는 왜 자고 와?”
“엄마는.. 맨날 엄마랑 같이 자다가 한번쯤은 아빠한테 가서 자고 올 수도 있지.. 그걸 가지고 왜 그래?”
“네가 한 두 살 먹은 어린애니? 내일 모레면 시집갈 아이가 아빠가 혼자 사는 집에서 잘 생각을 다하고..”
“그나저나 엄만 어디 가우? 곱게 화장까지 해가면서..”
“왜? 난 바람쐬고 오면 안되니?”
“내 밥은 안 차려주고?”
“다 큰 계집애가.. 넌 손이 없니? 발이 없니? 네가 차려 먹어!”
최근 들어 엄마의 외출이 잦다. 누굴 만나는지..
하기야 혼자 사신지 세 달이 넘어가는데 많이 외로울 수도 있겠지.. 특히, 엄마는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고는 살수 없는 분이니 더욱 그럴 것이다. 누굴 만나든지 자신은 상관하지 않으려 하지만, 기왕이면 엄마를 휘어잡을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아빠는 다 좋은데 엄마한테 너무 오냐오냐 해줘서 버릇이 나빠진 게 아닐까? 물론 남자가 여자한테 잘해준다 해서 다 버릇이 나빠지는 건 아니겠지만.. 자기라면 얼마든지 아빠의 뜻에 어긋나지 않게 잘할 자신이 있다. 남자가 자신을 휘어잡는다 해서 못할 것을 잘한다는 것은 자신의 자존심에 용납이 되지 않는다.
진정한 사랑이란 받는 게 아니라 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서로 믿고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을 아낌없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해주는 것이 사랑이라 생각한다.
미선이는 설레이는 마음으로 집을 나선다.
요즈음 자신이 열중하고 있는 그 사람과의 만날 약속이 있기 때문이다. 현식이와 헤어진 뒤 한동안은 세상 사는 것도 싫고 후회도 많이 되었다. 자신이 현식이한테 못한 일들을 왜 자신이라고 모르겠는가?
처음 현식이와 결혼할 때부터 현식이는 그렇게 내켜하지 않았지만, 자신이 매달려서 한 결혼이다.
원래 자신이 게으른 편이지만, 현식이의 유순한 성격을 믿고 더욱 그랬을 수도 있다.. 자신이 매달려서 한 결혼인 만큼 그것을 보상 받고자 하는 마음에 어리광을 부리듯 공주처럼 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다 보니, 집안일에도 소홀하고 대우를 받으려는 심리가 은연중에 있지 않았을까? 현식이의 일거수 일투족을 다 알고자 한 것도 현식에 대해서 자신이 없었기 때문일수도
있고…
물론 자신이 현식이에게 제대로 내조하지는 못했지만, 그렇게 된 이유가 모두 자신에게만 있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애초에 시작이 잘못되었을 수도 있고, 결혼 후에도 현식이가 자신에게 마음을 다 주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차라리 그런 나를 꼼짝 못하게 휘어 잡아서 확실하게 나의 버릇을 고치던지 자신에게 맞도록 만들려고 했으면 이렇게까지 안 되었을지도 모른다.
처음 자신이 현식이하고 결혼하려고 한 가장 큰 이유가 현식이의 순하고 착한 마음 때문이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그것이 남자답지 못하고 우유부단한 성격으로 비치기까지 한다.
만나기로 한 일식집으로 들어서니 종업원이 한 방으로 안내한다.
미리 이야기를 해 두었는지.. 방으로 들어서니 재식이가 자신을 반갑게 맞이한다.
“누님! 어서 와요!”
“벌써 와 있었네?”
“금방 왔어요.”
미선이가 외투를 벗고 재식이 맞은편 자리에 앉는다.
“누님은 볼 때마다 젊어지는 것 같아요.”
“입에 침이나 바르고 이야기 해! 음식은 시켰어?”
“아직.. 아가씨 여기 주문 받아요.”
회하고 청주를 시킨다.
재식이는 자신보다 다섯 살 아래인 마흔 둘이고 이혼한지 이년이 된 홀아비이다. 자신은 전남편인 현식이와는 동갑인 마흔 일곱이고.. 미선이는 현식이와 이혼하고 난 뒤 한동안은 두문불출했었다.
하루종일 집에서 자리에 누워 자다가 배가 고프면 일어나서 혜진이가 해 놓은 밥을 한 숟갈 뜨다가 다시 자리에 누워 뒤척이곤 했다. 말 그대로 사람이 사는 것이 아닐 정도로 자포자기하고 살았다.
한번은 친한 친구인 명주가 찾아왔다가 그런 자신을 보고 억지로 밖으로 끌고 나가 식사를 하고 횟집에 가서 술을 한잔하고 명주가 이끄는 대로 나이트 클럽에 가게 되었다.
매일 집구석에 박혀 자신의 처지만 비관하며 지내다가 오랜만에 밖으로 나와서 술도 한잔하고 나이트클럽에 와서 신나는 음악을 들으며 홀에 나가 춤도 추고 하니까 스트레스도 풀리는 것 같고 가슴속이 다 후련해지는 것 같았다.
횟집에서 마신 술과 나이트 클럽에서 마신 맥주로 인해 술이 꽤 취한데다 어슴푸레한 불빛아래 반짝이는 사이키 조명에 맞춰 몸을 흔들며 춤을 추고 있노라니, 이곳이 천국인지 낙원인지.. 마약을 먹은 듯 정신이 혼미해지는 듯 하다. 평소에 이런 곳에는 오지 않았었고, 이런 곳에 오는 여자들을 은근히 경멸하기까지 했었는데 괴로운 심신을 풀기에는 이 곳만큼 더 좋은 곳이 없을 듯 싶다.
명주와 둘이서 홀에 나가 신나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는데 남자 둘이 접근을 한다. 우리 나이 정도로 보이는 중년남자들이다.
춤을 추고 있는 둘 사이에 끼어 들어 같이 몸을 흔든다. 미선이는 처음 당하는 일이라 어쩔 줄 모르고 그냥 명주만 바라보며 춤을 추고 있는데 명주는 두 남자 중 한 남자가 마음에 드는 지 그 남자랑 마주보며 같이 몸을 흔든다.
나머지 한 남자가 자신에게 바짝 붙어 춤을 춘다. 어색하고 불편한 마음이 든다. 그냥 자리로 돌아와 버리자니 한 남자와 같이 춤을 추고 있는 명주 입장이 난처할 것 같고
그냥 모른 체 하고 적당히 춤을 춘다.
어느 새 디스코 타임이 끝나고 음악이 부루스로 바뀐다. 자기 앞에서 춤을 추던 남자가 자신의 손을 잡는다.
“전.. 부루스를 출 줄 몰라요.”
“그냥 음악에 따라 왔다 갔다 하면 돼요.”
명주를 바라보니 둘은 같이 껴안고 부루스를 춘다.
“저.. 죄송해요.”
미선이는 그냥 자리에 돌아온다. 그리고, 비어 있는 자신의 잔에 맥주를 따라 한잔 마신다.
홀을 바라보니 명주와 그 남자가 같이 바짝 붙어 부루스를 추고 있고, 자신에게 춤을 청하던 남자는 보이지 않는다.
맥주를 두 잔 비울 즈음에 부루스 타임이 끝나고 명주가 자리로 들어온다.
“미선아! 그 남자랑 같이 부루스를 추고 놀지. 왜 그냥 들어왔어?”
“얘는.. 알지도 못하는 남자랑 어떻게..”
“이런 쑥맥.. 그냥 적당히 즐기고 가면 돼지.
요즘 세상에 너 같은 애가 어딨니? 다들 여기 오면 그렇게 하고 놀아!”
원래 명주야 성격이 활달하고 끼가 다분하지만, 자신은 지금까지 현식이 하나만 바라보고 살았지.. 다른 남자랑 껴안고 춤을 춘다는 것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런 자신이 싫다고 이혼하고 가버린 현식이에게 갑자기 화가 난다. 미선이가 다시 자신의 잔에 맥주를 따르려니 맥주병이 비어있다.
“명주야! 조금 더 마시자.”
“너 오늘 너무 많이 마시는 것 아냐?”
“오늘은 좀 취하고 싶어..”
명주가 맥주를 더 시킬려고 웨이터를 부르려는데, 아까 명주랑 같이 춤을 추었던 그 남자가 다가오더니 명주 옆에 앉으며 말을 붙인다.
“저기.. 좀 앉아도 될까요?”
“벌써 앉았잖아요?”
“하하! 그런가요.. 괜찮으시면 저희 자리로 가서 한잔하시면 어떻겠습니까?”
명주가 샐쭉한 표정으로 대답한다.
“글쎄요.. 영계들이 천지로 있는데 저희 같은 퇴계들이 뭐가 좋다고..”
“풋내기들이 뭐가 좋다고요? 아주머니들처럼 원숙미가 있는 분들이 훨씬 좋지요. 저희들은 룸에서 마시고 있는데 둘이서만 마시려니 영 기분도 나지 않고 기왕이면 합석해서 같이 기분도 풀고 노시면 어떻겠어요?”
명주 표정은 별로 싫은 표정이 아니다.
명주가 미선이를 바라보며 동의를 구한다.
“미선아! 넌 어떠니?”
“글쎄.. 그래도 되는지..”
미선이가 망설이자 남자가 입에 침이 마른다.
“같이 온 친구가 아주머니한테 반했는지 꼭 모시고 오라고 난리예요.”
옆에서 명주가 맞장구를 친다.
“얘! 잘됐다. 안 그래도 너 요새 울적할 텐데 같이 가서 신나게 놀자.”
이런 분위기에 적응이 안돼서 그렇지.. 오늘은 모처럼 바깥바람을 쐰데다 술도 취하고 춤을 추고 하다 보니 기분도 오르고 아무 생각없이 같이 어울려 놀고 싶은 생각도 든다.
명주가 이끄는 대로 못 이기는 척하고 둘을 따라간다.
룸으로 들어서니 아까 자신에게 부루스를 청하던 그 남자가 혼자 앉아서 술을 마시다가 일어서며 반색을 한다.
“아이구! 오셨군요! 이리로 앉으세요.”
명주와 미선이를 데리고 왔던 남자가 핀잔을 준다.
“저 친구 입 벌어지는 것 좀 봐! 그렇게 좋아? 자.. 앉읍시다!”
명주와 미선이가 맞은 편 자리에 앉는다.
자신들을 데리고 온 남자가 명주와 미선이에게 술을 따르고, 명주가 두 남자의 잔에 술을 따라준다. 양주를 마시고 있었던 모양이다.
“자! 한잔씩 듭시다.”
남자들이 건배를 청하고 같이 잔을 들고 마신다.
미선이는 양주를 처음 먹어본다. 잔을 입에 대고 조금 마시니, 톡 쏘는 맛에다 입에 불이 난 것처럼 화끈거린다. 조금 마시다 말고 얼굴을 찌푸리며 술잔을 내려 놓는다.
아까 자신에게 춤을 청하던 남자가 그런 미선이를 보고 웃으며 재미있다는 듯이 한마디한다.
“양주를 처음 마셔봐요? 그냥 스트레이트로 마시지 말고 음료에 타서 얼음조각을 넣고 마셔봐요. 훨씬 마시기 편할거예요. 그리고, 먼저 통성명이나 하지요. 저는 박 재식이라고 하고 조그만 가게를 하고 있습니다. 이 친구는 강 민수라고 하고 중견기업체 이사로 있습니다. 오늘 잘 부탁합니다.”
명주가 소개를 한다.
“저는 이 명주라고 하고, 이 친구는 윤 미선이라 해요. 저희들이야 백조들이고..”
강 민수가 나선다.
“아까부터 파트너는 정해진 거나 마찬가지고, 일단 파트너끼리 앉지요? 명주씨! 이리로 와요. 재식이는 미선씨 옆에 가고..”
명주가 일어서서 민수 옆으로 가고, 재식이가 일어나서 미선이 옆으로 와서 앉는다.
각각 파트너를 정해 술을 마신다.
미선이는 재식이 말대로 유리잔에 음료와 얼음조각을 넣고 양주를 섞어서 마시니 한결 마시기가 수월하다. 그래도 아까 횟집에서 마신 소주와 여기 와서 마신 맥주에다가 다시 양주를 마시니 술이 상당히 취하는 것 같다. 그리고, 마음이 풀어지며 희한하게 근심이 하나도 없어지고 그냥 기분이 좋다.
재식이가 자신의 어깨에 팔을 올린다.
보통 때 같았으면 낮선 남자가 자신의 어깨에 팔을 올리면 기겁을 했겠지만 별로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그리고, 두 남자가 생각보다 점잖은 사람들 같다. 나이도 비슷한 또래 같고.. 여자들에게 함부로 대하지도 않고 예의를 지킬 줄 안다.
같이 양주를 두어잔 더 마시고 나서 명주 옆에 앉은 민수가 한마디한다.
“이렇게 앉아서 술만 마실게 아니라 나가서 노래도 부르고 같이 놀지요?”
명주가 맞장구 친다.
“그래요! 민수씨.. 우리 나가서 노래 불러요.”
민수가 명주의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서서 나간다.
“미선씨. 우리도 나갈까요?”
“그래요..”
미선이와 재식이도 자리에서 일어서서 나간다.
민수가 먼저 노래를 부른다. 노래 곡목이 ‘행복한 사람’으로 부루스 곡이다.
재식이가 자신에게 손을 내민다. 여기까지 와서 거절할 수는 없다. 아니, 거절하지 않는 게 아니라 자신이 오히려 남자의 품에 안기고 싶다.
“울고 있나요. 당신은…
……………………………
외로운가요. 당신은….
……………………………. “
미선이는 재식이의 품에 안겨 춤을 춘다.
술기운에다가 오랜만에 맡아보는 남자의 체취에 정신이 몽롱해지는 것 같다. 자신은 부루스를 출 줄 모르지만 재식이가 능숙하게 리드를 한다. 이렇게 남자의 품에 안긴 지가 네 달인가? 다섯 달인가? 현식이와 이혼한지는 세 달이 조금 넘었지만 그 이전에 냉전중일 때까지 생각하면 다섯 달은 되었나 보다.
재식이가 부루스를 추다가 턴을 하면서 허벅지로 자신의 가운데를 스친다.
갑자기 온몸이 짜릿해지면서 온몸의 성감이 일어나는 것 같다. 그리고, 자신의 유방에 밀착시키는 재식이의 가슴에 유두가 빳빳이 일어나는 것 같고 주저앉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흥분이 된다.
재식이도 자신의 품에 안겨 춤을 추는 미선이를 바라보며 오랜만에 짜릿하게 흥분이 되는 걸 느낀다. 자신이 이혼한 지 이년이 되었지만 아직 마땅히 만나는 여자가 없다. 같이 살던 마누라가 춤바람이 나서 도망을 가다 보니, 여자를 보는 눈이 좀 왜곡되었다 싶을 정도로 좋게 보지는 않는다.
그냥 한번씩 여자 생각이 나면 오늘처럼 나이트에 와서 적당한 상대를 물색해서 엔조이를 하고는 그걸로 끝내버린다. 오늘도 그럴려고 친구와 나이트에 왔다가 미선이를 보게 되었는데, 이런 곳이 처음인지 어색해 하고 얼굴은 그렇게 잘 생긴 편은 아니지만 중년여자치고는 몸매도 그런데로 괜찮은 데다 밖에 별로 나돌아 다니는 여자 같지는 않아 보여 내심 마음에 두고 있었다.
아까 스테이지에서 보고 친구와 같이 접근을 해서 디스코를 같이 추다가 부루스 타임이 되어 춤을 청했을 때 마다하는 것을 보고, 오늘 기필코 이 여자와 인연을 맺어야 되겠다 싶어 친구에게 부킹을 해보라고 했는데 운좋게도 여기까지 와서 같이 놀게 되었다.
보통 때 같았으면 오늘 하루 놀고는 끝내겠지만, 미선이는 앞으로 좀 더 만나고 싶은 마음이 든다. 마누라가 도망을 가고 난 뒤, 이런 곳에서 만나는 여자들과는 질적으로 틀린 것 같다.
재식이가 부루스를 추면서 미선이에게 몇 번 자극을 가하자 민감하게 반응을 하고 어쩔 줄 몰라 하는 것을 보니 원래 민감한 여자인지.. 아니면, 혼자 사는 여자로 오랫동안 남자를 접하지 않은 것도 같고,
서로 몇 차례씩 노래를 부르고 같이 껴안고 춤을 추다 보니 분위기도 무르익고, 서로가 스스럼없어진다. 한동안 실컷 노래하고 춤을 추다가 자리로 돌아와서 다시 술잔을 기울인다.
앞에 앉은 명주를 바라보니 명주 역시 한잔이 되었는지 민수 품에 안기다시피 해서 술을 마신다. 민수의 팔은 명주 겨드랑이에 끼워 손을 앞으로 해서 명주의 가슴을 덮고 있다. 서로 술이 취해서 그런지 상대방을 의식 못하는 모양이다. 미선이도 그런 명주를 담담하게 바라볼 뿐이고..
재식이도 민수처럼 옆에 앉은 미선이를 주물럭거리고 싶지만, 오늘 한번 보고 말 여자라면 그렇게 할지 모르겠지만 최대한 자제하고 있다. 그냥 어깨정도만 껴안을 정도의 가벼운 스킨쉽만 한다. 오히려 미선이가 자신을 점잖게 대하는 재식이가 야속할 정도이다. 아까 재식이와 부루스를 출 때 받은 자극으로 인해서 온몸이 달아 올라 있는데 지금 자신에게 재식이가 조금만 자극을 더 가한다면 그냥 넘어 가버릴 것 같다.
양주도 바닥이 나고 모두가 많이 취해있다.
재식이가 입을 연다.
“시간도 많이 됐는데 그만 나가시죠?”
재식이의 말에 미선이가 시계를 보니 열 한시가 넘어가고 있다.
"어느 새 시간이 이렇게 됐나?"
“그래요.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늦었네요.”
그제서야 명주가 자세를 바로하고 옷을 수습한다.
룸을 나와서 남자들이 카운터에 가서 계산을 하고 밖으로 나온다. 택시를 기다리면서 명주와 민수가 서로 이야기하는 틈을 타서 재식이가 미선이에게 와서 명함을 내민다.
“제 명함입니다. 시간 나시면 전화 한번 주세요.”
미선이가 잠시 재식이를 바라보고 있다가 명함을 받아서 핸드백에 넣는다.
택시가 와서 미선이와 명주가 먼저 택시를 올라탄다. 명주 집 가는 중에 미선이 동네를 지나니까 가다가 내리면 된다.
명주가 기분이 좋은 얼굴로 미선이를 보고 묻는다.
“네 파트너였던 남자 어땠어? 재식씨 말이야.”
“어때기는 뭐가 어때? 생각보다 사람이 많이 점잖데..”
“그 사람.. 거기에 놀러 왔으면 확실하게 놀지. 그게 뭐야? 점잖만 빼고 앉아 있고..”
“점잖게 대해줘서 다행이지.. 안 그랬으면 내가 먼저 나와 버렸을 거야.”
“계집애하고는.. 하기야 둘이 똑 같더라.”
명주가 아까 자기 파트너랑 같이 앉아서 서로 껴안고 있을 때 재식이 눈치를 보다 보니 제대로 즐기지 못했는지 아쉬운 표정이다.
택시가 미선이 집이 있는 곳에 다다르고 미선이가 택시에서 내린다.
“미선아! 잘 가! 다음에 연락할게.”
“알았어. 잘 가!”
집으로 들어오니, 혜진이가 아직 자지 않았는지 술이 취해 들어오는 엄마를 보고 한마디한다.
“엄마! 세월 좋수..안방 마님이 다 늦은 시각에 어디 마실 다녀오시우?”
“시끄러.. 니가 내 입장이 되어봐라! 그런 소리가 나오나..”
대충 씻고 잠자리에 든다.
술에 취하고 피곤하건만 잠이 오지 않는다. 아까 재식이의 허벅지가 자신의 중심부에 닿았을 때를 생각하니 아직도 아랫도리가 짜릿해져 오는 게 물이 흘러 나오는 것 같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손이 팬티 속으로 들어간다. 그곳이 오줌을 싼 것처럼 흥근하다.
손가락으로 자신의 보지 밑부분에서부터 위로 마찰시키며 올렸다가 다신 밑으로 내린다. 흘러나온 물이 마찰되는 소리가 질꺽거리며 들린다.
“아…흐…”
몸이 절로 꿈틀거린다.
아직까지 한번도 자위를 해본 적이 없다. 현식이와 살면서 그것만큼은 현식이가 확실하게 해주다 보니, 자위를 할 이유도 없었고..
가운데 손가락을 한마디정도 안으로 집어넣는다. 그리고, 외음순을 마찰시키며 빙빙 돌린다.
“아~하!”
뜨거운 숨을 뱉어낸다.
검지와 중지 두개를 자신의 보지 속으로 집어 넣었다가 뺏다가 한다. 점점 속도를 올린다. 다른 손으로 자신의 젖꼭지를 잡아 비틀고..
“하~악!”
어느 순간 보지 속에서 봇물 터지듯 물이 흘러나오고 자지러진다. 온 몸에 힘이 하나도 없이 나른해진다.
혼자서 즐긴 거지만, 다섯달만에 처음으로 이걸 해보는 모양이다. 아까 나이트 클럽에서 재식이를 만나기 전까지는 아예 잊어버리고 살고 있었는데 재식이가 도화선이 되어 잊어버렸던 그것을 생각나게 한 모양이다.
그 이후 죽은 듯이 살고 있던 자신의 생활이 사람이 사는 듯한 생활로 바뀐다. 닷새 후인가 오후에 집안 청소를 하고 나서 소파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다가 불현듯 재식이 생각이 나서 핸드백에서 재식이 명함을 꺼내서 전화기를 든다. 잠시 망서려 졌지만 용기를 내어 다이얼을 돌린다.
신호가 두어번 울리고 남자가 전화를 받는다. 그리고, 수화기 속에서 굵은 바리톤 목소리가 들린다.
-여보세요.
“저…”
일단 전화를 하긴 했는데 뭐라고 해야 할지 갑자기 말문이 막힌다.
-아.. 미선씨지요? 전화를 많이 기다렸는데.. 반갑습니다.
“아..예! 잘 지내셨어요?”
-저야 항상 잘 지내고 있습니다. 전화 잘 하셨어요. 안 그래도 기분도 울적해 있던 참인데..
“왜요?”
이젠 조금 마음의 여유가 생기는 듯 한다.
-그건 만나서 이야기하면 좋겠는데.. 저녁에 별일 없으면 같이 식사나 하시죠?
“글쎄요..”
재식이를 만나고 싶지만 선뜻 그러겠다고 말하지 못한다.
-그럼.. OO동 사거리에 있는 OO백화점 옆에 ‘미가 일식집’이라고 있어요. 위치는 아시겠어요?
“한번 본 것 같기도 하고..”
사실은 알고 있다. 그 백화점에 한번씩 가니까..
-그럼 저녁 여섯시에 거기서 만나죠. 나중에 봐요.
그리고는 전화를 끊어 버린다.
이 남자가? 내 대답도 듣지않고..
하기야 쉽게 그러겠다고 대답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아직까지는 외간남자를 만나는 게 마음에 거리끼니까.. 나가야 되나.. 말아야 되나.. 저녁 다섯시가 될 동안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망서리고 있다가 그 유혹을 떨쳐 버리지 못해 화장을 한다.
화장을 하고 옷을 차려 입고 집을 나서니 다섯시 사십분이 다 되어간다. 지금 택시를 타고 가더라도 한 십분 정도는 늦을 것이다. 약속한 일식집으로 들어서니 약속시간에서 이십분이나 지나 있었다. 재식이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다가 반색을 한다.
“아이구.. 안 오시면 어쩌나 하고 한참 걱정했습니다.”
“그렇게 일방적으로 약속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하하! 그게 아니라 거절하실까 싶어서 그랬던 겁니다. 이해하세요. 자.. 이리로 앉으세요.”
같이 반주를 곁들여 식사를 한다. 그리고, 서로 신상에 관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한다.
두 번째 만나지만 사람이 참 편하게 느껴진다.
그러다 보니, 남에게 쉽게 하지 못하는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 놓는다. 자신이 세 달 전에 이혼한 이야기.. 등등..
재식이도 이년 전에 마누라가 춤바람이 나서 집을 나간 이야기며 자신이 하고 있는 가게와 가족이야기를 한다. 아들만 둘이고 지금 자신의 나이가 마흔 둘이라고 하자 미선이가 깜짝 놀란다. 최소한 자신과 나이가 같거나 한 두살 정도 많을 줄 알았는데..
미선이가 마흔 일곱이라고 하자 이번에는 재식이가 놀란다.
그렇게 나이가 들었느냐고..
“제가 나이가 많아서 실망했어요?”
“그럴 리가 있나요. 오히려 누나같이 느껴져서 포근하고 좋은데요.”
“그럼 내가 누나할까요?”
“나이는 단지 숫자일 뿐이라는 말도 못 들어 봤어요?”
“그런가요?”
그날은 그렇게 일식집에서 식사만 하고 헤어진다.
헤어지면서 미선이가 자신의 휴대폰 번호를 재식이에게 알려준다.
그 이후 두 번을 더 만나고, 오늘이 다섯번째 만나는 날이다.
재식이를 만날수록 자신이 재식이에게 빠져 들어가는 것을 느낀다. 현식이와는 달리 박력이 있고 몸도 우람하다.
세번째 만날 때 미선이가 장난삼아 동생이니까 말을 놓겠다고 한 게 지금은 미선이가 재식이에게 반말을 하고 재식이는 마선이에게 말을 높인다. 재식이가 자신에게 편하게 해 주니까 그렇게 말을 놓은 지도 모른다.
재식이가 미선이에게 청주를 따르면서 장난스럽게 말을 한다.
“오늘 누님.. 각오하셔야 할 거예요.”
“왜?”
미선이 역시 장난스럽게 말을 받는다.
“아무래도 누님을 아껴 놓아서는 안 되겠어요.. 나보다 먼저 다른 사람이 채 가면 어떻게 해요?”
“내가 누가 채 간다고 넘어갈 사람이야?”
장남삼아 재식이의 말을 받지만, 그게 무슨 말인지 모르지는 않는다. 그 동안 재식이를 만나면서 그냥 자신을 보내주는 재식이가 야속하다는 생각도 했으니까.. 미선이의 가슴이 두근거리고 아랫도리가 짜릿한 게 뭔가 흘러 나오는 것 같다.
괜히 애꿋은 술만 입에 털어 넣는다. 그리고, 자신의 잔을 재식이에게 주고 술을 따라준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고 술이나 받아..”
주문했던 음식이 바닥이 나고 술도 기분 좋을 만큼 마신다.
“누님.. 이제 그만 나가지요?”
“그럴까?”
자리에서 일어선다.
재식이가 카운터에서 계산을 하고 같이 밖으로 나온다.
“누님! 이차로 한잔 더 하지요?”
“웬일이야? 보통 때는 식사만 하고 잘 가라고 그러더니..”
“오늘 각오하라고 그랬잖아요?’
“겁나는데?”
재식이가 지나가는 택시를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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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A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