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비밀-2
슈퍼마켓은 생각보다 잘 됐다. 사람들이 내 성격이 슈퍼에 맞다고 말했다. 몸은 고됐다. 요즘은 편의점들이 전산으로 다 되지만 그때만 해도 수기로 장부를 기록하고 매번 주판으로 계산을 하기도 했다. 일부 전산화가 되어 있긴 했지만 제일 중요한 결산을 위해서는 항상 주판으로 하고 수기로 맞춰보고 그래야 했다.
그중에서 제일 힘든 건 돈을 세는 일이었다. 장사가 잘되니까 좋은데 돈을 세는 건 귀찮았다. 처음에는 장사가 잘돼서 돈세는 재미에 새벽까지 세도 피곤한 줄 몰랐는데 이게 몇 달 반복되니까 돈세는 것 자체가 노동이었다.
혼자 세다가 꾸벅꾸벅 졸기도 했고 한번은 세다가 그냥 잠이 들었는데 아침에 손님이 들어와서는 놀라서 나를 깨운 적도 있었다. 셔터도 안내리고 돈세다 잠들었다는 소문이 동네에 났다. 그러니 오는 손님마다 내가 부자 되느라고 잠도 못자고 돈을 세고 산다며 농담을 하거나 돈을 좀 빌려달라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러나 슈퍼에서 받아서 모으는 돈은 수표가 거의 없다. 다 푼돈이다. 동전도 엄청 많고 당시만 해도 천원짜리가 많았던 시절이라서 괜히 빵빵하기만했지 손가락이 아플 지경이었다.
결국 장사하면서 터득한 건 돈이 들어올때마다 천원짜리를 백장씩 고무줄로 감아서 아래 금고에다가 넣어두는 방법이었다. 그랬더니 훨씬 편해졌다.
그러다가 큰 사고가 났다. 한번은 도둑이 들어서 금고 아래에 모아뒀던 돈 4백만원이 그냥 사라졌다. 그땐 큰돈이었다. 매일 입금할 수도 없고 문닫으면서 은행으로 갈 수도 없는 시절이었다. 그 사건 후 얼마 안돼서 24시간 무인기기가 생겨났다. 경찰에 신고했고 범인이 잡혔는데 알고보니 고등학생이었다. 동네에 사는 애였는데 엄마가 엄청 아파서 학교도 못가고 어디 가서 일도 제대로 못하는 처지로 지내다가 슈퍼가 부잣집이라는 소문이 돌자 들어와서 돈을 훔쳐간 것이다.
돈관리를 제대로 못한 내가 우선은 잘못이고 그 애 사정을 들어보니 딱했다. 애를 앉혀놓고 파출소에 앉아서 경찰관이 애를 윽박지르면서 말하는데 눈물만 뚝뚝 흘리면서 말도 제대로 못하고 있는데 좀있다가 할머니가 들어왔다. 구부정하고 얼굴은 사색이 다됐다. 눈엔 황달이 있었고 손발이 다 부어 있었다.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수 있을 정도였다.
할머니가 말을 못하고 이눔아 이눔아 그소리만 계속 했다. 경찰관은 처음에 애를 윽박지르다가 할머니를 보더니 말을 못하고 눈만 꿈벅거렸다. 내가 애 손을 잡고 말했다. 돈을 쓴 것도 아니고 집에 갖다놨다가 다시 돌려놓은 걸 보니까 니가 아주 나쁜놈은 아닌 거 같으니까 이 돈 돌려받고 이번에는 내가 용서할테니까 할머나 잘 모셔라. 그러면서 대뜸 10만원을 훔친돈 넣어놓은 허름한 자루에서 꺼내 애손에 쥐어줬다.
그걸 보더니 할머니가 엉엉 울었다. 또 이눔아 이눔아 그소리만 했다. 경찰관이 눈물 글썽이는 걸 그때 첨봤다. 애는 콧물을 줄줄 흘리면서 죄송해요 죄송해요 자꾸 그러지 할머니는 울고 있지 아주 난처했다. 찾은 돈을 갖고 가게로 와서 금고를 새걸로 바꿔야겠다 싶었고 이래서는 안되겠다 해서 사람을 하나 쓰기로 했다. 그때까지는 내가 혼자 운영했는데 도저히 이건 아닌 것 같아서 사람 구하기로 하고 오는 손님들 보라고 가게문 앞에다 크게 써붙였다.
-직원 구함-
이틀이 지나도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는데 삼일 째 되던 날 갑자기 저번에 내 돈을 훔쳐갔던 고등학생이 들어왔다. 꾸벅 인사를 하는데 멀쩡한 놈이었다. 교복을 입지 않아서 달라보였는데 세월 가는 줄도 모르고 지냈다가 그제서야 11월이 넘었다는 걸 알게 됐다. 애는 공고에 다니고 있었고 취업 때문에 여기저기 알아보면서 지나가다 직원 구한다는 걸 보고 무슨 용기를 냈는지 들어와서 나한테 일을 시켜달라고 했다.
지금 생각해도 그놈은 참 대범한 놈이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지?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놈이 보통놈은 아니구나 싶어서 일 배워보겠냐고 물었다. 네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할머니는 잘 지내시냐고 묻자 고개만 끄덕였다. 그리고는 엄마가 할머니 모시고 있다고 말했다. 엄마? 너 저번에 엄마 없이 혼자서 할머니 모신다고 하잖았냐고 묻자 그때는 엄마가 돈벌러 간다고 잠깐 지방에 간거고 다시 왔다고 했다. 그래 잘 됐다. 혼자 니가 무슨 수로 할머니를 모시겠냐 엄마가 훨씬 낫지 라고 했다.
녀석은 당장 내일부터 일할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좀 겁도 나고 해서 이것도 슈퍼라지만 엄연히 직장이니까 계약서 꼼꼼하게 써야 하고 신용보증도 해야 한다고 했다. 어떻게 하는거냐고 묻길래 좀 뻥을 쳐서 엄마 모시고 와야 한다고 했다. 엄마가 직접 보증서에 사인도 하고 그래야 한다고 말했다. 내일 엄마 모시고 다시 오겠다고 하고는 돌아갔는데 고민이 많았다. 괜한 짓을 하는 건가?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기는 건가?
그러나 이튿날 녀석은 진짜 칼같이 약속을 지켰다. 밖에서 두리번거리는 엄마를 슈퍼 안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나는 숨이 막혔다. 놈이 데려온 엄마라는 여자는 내가 여태까지 살면서 본 어떤 여자보다도 예뻤다. 진짜 무슨 연예인을 보는 것처럼 예뻤다. 물론 내가 눈이 돌아가서 그런 걸수도 있지만 내눈에는 천사 이상으로 예쁜 여자였다.
침을 꼴깍 삼키면서 아닌척하고 놈에게 계약서를 써야 하니 저쪽으로 가자고 했다. 놈 엄마가 앞장서고 내가 뒤를 따라가는데 와... 그 몸에서 나는 향기가... 지금도 그 향기를 떠올리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흥분이 된다. 뭐지? 이 여자. 사람인가? 요물인가?
그렇게 정신없이 계약서를 쓰고 엄마 사인까지 받고 사고치면 10배로 보상한다, 도난 사고시 무조건 배상하고 형사처벌도 감수하겠다는 말도 안되는 불공정 계약서를 서슴없이 쓰고 녀석은 기분이 좋은지 헬렐레 하고 웃는 것이었다. 애 엄마는 별로 표정변화가 없었는데 나를 한번 힐끗 보더니 애가 철이 없어서 지난번에 큰 죄를 졌는데 월급은 아주 꾀끔만 주셔도 되고 사람 만드신다 생각하시고 잘 좀 부탁한다고 했다.
애 엄마가 돌아가고 난 뒤에도 나는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손님들이 오늘 뭔 일 있냐며 부르고서야 겨우 대답을 할 정도였다. 그만큼 그녀에게서 나는 그 향기를 자꾸 되새기고 싶어졌다. 그리고 다음날부터 녀석이 출근했고 진짜 너무 놀랄 정도로 일을 잘 했다. 애가 얼마나 똑똑한지 슈퍼에 있는 물건 위치를 외우기 시작하는데 첫날 몇바퀴 휘 둘러보더니 대충 위치를 다 외우는지 손님이 물어보면 저쪽 어디에 있다고 알려주기까지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알고 보니 이놈이 전에 내 돈을 훔치려고 슈퍼 내부를 수도 없이 돌아다닌 것을 나중에 알게 됐다. 그래도 그많은 물건 위치를 아주 빠르게 외운 건 틀림없는 일이다. 물건이 새로 들어오면 위치도 잡고 자리도 옮기고 가격표도 새로 붙여야 하는데 나중에는 내가 물어봐야 할 정도로 빠삭하게 슈퍼를 꿰차버렸다.
그러니 내가 얼마나 편해졌겠는가? 게다가 간혹 애 엄마가 물건들을 사려고 들를 때마다 내 가슴은 콩볶듯이 뛰기 시작했다. 괜히 고개도 못들고 어정쩡하게 네네 대답만 하고 얼굴을 발그레해지니 애 엄마나 애가 눈치를 채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결국 어느날 놈이 나에게 물었다. 자기 엄마 엄청 예쁘지 않냐고. 하지만 기분이 좀 나빠져서 그딴 소리 하지 말라고 화를 냈는데 다음날 애 엄마가 와서는 평소하고는 다르게 나한테 말도 안하고 물건만 사고 얼른 가버리는 걸 보니 내 얘길 지네 엄마한테 한건가 싶어서 주눅이 들었다.
슈퍼는 놈때문에 점점 더 잘됐다. 애 엄마도 1주일에 한 번 올까말까 했는데 서너번 들렀다. 그리고는 그냥 자기 아들하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가만히 있기 뭐했는지 조금씩 일을 같이 하기 시작했다. 그걸 보는데 내 마음이 참 이상해졌다. 셋이 같은 공간에서 그리 멀지 않은 넓이의 슈퍼 일을 하고 있으니 자꾸 가족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결국 점심 때는 같이 밥을 먹게 되었다. 처음에는 애엄마가 안된다고 했지만 내가 붙잡았다. 그때는 이미 어느정도 말도 잘 하게 되고 내가 팔을 잡아 끌어도 될 정도로 분위기가 형성되었기 때문에 어색하지 않게 됐다. 그러다 보니 애는 우리 둘을 유심히 살피기 시작했다. 사실 나도 결혼을 아직 하지 않아서 그렇지 좀 일찍 했으면 고등학교 졸업생 나이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중3 아들 하나는 있을 나이라서 놈이 아들 비스무레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니 애 엄마가 내 마누라라도 되는 듯 좀 오바하는 행동도 했다.
어느 날이었다. 애가 급히 나가서 볼일을 보고 오겠다고 하고 나가는 바람에 애엄마랑 나랑 둘이 있게 됐다. 마침 점심 때 조금 덜 된 시간이라 손님이 별로 없었다. 우리는 말 없이 일을 하고 있었고 나는 카운터에서 오전에 들어온 돈을 묶는 일을 했고 애엄마는 나간 물건들 정리하고 부족한 것들 목록을 살피는 일을 했다. 자꾸 눈은 애엄마한테 가고 있었고 애엄마도 요즘 들어서는 자주 나와 눈이 마주치는 게 우리 둘 분위기가 참 묘했다.
결국 나는 참지 못하고 애엄마가 일하는 쪽으로 다가갔다. 중간 부분을 생략해서 그렇지 이렇게 행동하기까지는 무진 고민하고 겁먹고 그랬다. 저렇게 예쁜 여자가 나같은 놈한테 눈길이나 주려나? 그러나 그녀를 볼 때마다 내 욕구는 치솟았고 그동안 여자 구경은 해보지도 못하고 돈만 벌었던 나는 이미 과도하게 충전된 엄청난 양의 욕정이 가득찬 탱크였다. 내 눈빛을 보고 알아챘는지 그녀가 슬슬 반대편으로 이동했다. 나는 숨이 거칠어지면서 자꾸 그녀가 일하는 방향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그녀가 또 저쪽으로 이동했다.
마침 애는 나갔고 슈퍼에는 우리 둘만 있었고 나는 욕정에 사로잡혀서 어떻게든 가까이 가서 뭐든 해보려고 하고 있었고 그녀는 겁을 잔뜩 먹고 도망을 다니는 괴상한 상황이 됐다. 그러나 내가 용기를 더 냈다. 아니다. 욕정 때문에 미쳐버렸다. 확 달려가서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나 정희 씨 좋아해요 라고 말해버렸다. 그리고는 손을 놓고 뒷걸음질을 쳐서 카운터 쪽으로 달아났다. 그꼴을 본 정희씨는 갑자기 깔깔거리면서 웃었다. 왜 도망가냐고 했다.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정희씨가 너무 좋은데 어떻게 생각할지 알 수 없어서 그랬다고 했다.
지난 1년 전에 정 비서를 유린하던 용감한 나는 진짜 어딜 간건지 사라졌고 슈퍼 주인이라는 것 때문인지 정희 씨가 너무 예뻐서인지 암튼 나는 발정나고 부끄러운 숫컷이 되어 있었다. 카운터에 앉아 있는데 불끈 솟아오른 자지를 바지가 겨우 덮어주고 있었고 가슴은 뛰고 눈알은 충혈이 됐다. 그때 정희씨가 내쪽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내 얼굴을 한번 손으로 쓰윽 만지더니 내가 좋아요? 라고 물었다. 나같은 연상의 여자도 좋냐구요. 내가 대답했다. 네. 너무 예뻐요. 그리고 나이차도 별로 안나는데요? 왜 그렇게 말했나 모르겠지만 마지막 자존심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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