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가족사 그리고 친구의 가정사 그리고 그 후.
아롱다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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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간전
나의 S 이야기의 최종 이야기가 될 것 같다..나의 화려했던..그녀와의 관계들..왜 그렇게 되어야 했는지...적는 것으로 나의 S 이야기는 끝을 내려 한다.
원래 이글이 나의 S 이야기의 대미를 장식하는 글로 할려고 했는데.. 순간 댓글에 욱 해서 쓰지 않으려고 했던 그녀의 마지막을 먼저 적어 버렸다...
이 글은 그 녀와의 관계가 왜 생겼는지에 대한 답이 되길 바랄뿐이다...
누군가는 그렇게 말한다...비현실적이라고...그리고 상상이라고...그녀와 난 우연과우연이 만나 인연이 되었고 인연과인연이 만나 운명이 되었고...
그 운명에 운명을 더할때 쯤 그녀와 강제 헤어짐을 겪었다. 그 이유 없는 헤어짐이 나에겐 분노가 되었고..저주를 하며..
난 전국을 돌아 다니며 여자들과 관계를 했다...
그렇게 12년을 그녀에게 분노 하고 저주하며..무작위로 여자들과의 섹스를 하며 그 분노의 정당성을 입혀 갔었다.
그렇게 지내던 때 13년 되는 해...그녀를 다시 보게 되었고...약해진 그녀모습에 엄청 많이 미안하고 죄송해서 숨어서 많이 울었었다.
그렇게 그녀는 5개월 동안 나와 같이 지내며 나의 품에서 마지막 추억을 안고 하늘로 떠나갔다..
내가 이글을 적는 이유는 썰이 가짜고 진짜고 다른이가 판단 하기 어렵다는 것이다..당사자가 아니면 모르는 진짜의 비현실적인 현실을....
1. 나의 가족사
나의 부모님은 어려서 영화배우가 되는게 꿈이셧다..아버지는 17살에 서울로 상경하시고 충무로에 가서 배우의 꿈의 기회를 구하려 하셨고.
어머니는 18살 때 서울로 상경하셔서 충무로에 가셨다고 했다. 그리고 두 분은 한 영화 엑스트라로 가셨다가 만나셨다고 했다...
동향이라 금방 친해 지셨고...두 어번 더 같은 영화에 보조로 출연하면서 급 친해 지셨고..그리고 아버지가..돈도 아낄겸 달동네 방에..같이 동거를 하셨다..
그렇게 지내시다가 어머니가 임신을 하셨고...그게 나의 형이였다..아버지는 초보였던지라...외할머니가 결혼증명서 출생에 필요한 서류를 만들어 주셨다고 했다.
그렇게 아버지는 보조 출연 배루로 일하시면서 영화일이 없으면 노가다를 뛰었다고 했다..
그렇게 형이 태어나고...얼마 지나지 않아...또 어머니는 또 임신을 하셨다.
아버지는 더 열심히 일을 하셨지만 많이 부족하셨고....형이 고열로 아파하실 때 돈이 없어..돈을 구하러 다니셨고...병원에 데려 갔는데..돈이 없음 치료가 안된다고
병원에서 내 쫏기셨다고 했다...우는 어린 아들을 안고...달동네 방에 와서 죽어 가는 아들을 한 없이 바라 보셧다고 했다..
그 형은 새벽에 울음이 멈추면서 생을 끝냈고...그 소식을 들은 외할머니가 서울로 오셔서 장례를 치렀다고 했다.
그런일이 있고 아버진 더 열심히 일을 하였지만 항상 부족하였다...영화배우에 아버지의 키가 문제셧다...그 때 영화여배우 키가 160이 안될 때인데..
아버진 185라서...항상 주연이나 조연에서 밀려 나셨다...
그렇게 어머니가 나를 가지셨을 때 아버지는 고향으로 돌아 가기로 결정을 하셨다...친가쪽에선 아버지를 할아버지가 밖에서 낳아온 자식이라고..천대를 했고.
무시를 하기 일쑤였다..그래서 돌아 온 아버지를 반기는 이 하나도 없었다...
아버진 외할머가 준 돈으로 방을 구하고..우리는 단칸방에서 세들어 살았었다..
그 후 아버지는 중동에 일하러 가시고....1년에 한 번 들어 오셨고.. 동생을 임신했을 땐 3~4년씩 귀국하시는 텀이 멀어지셨다...
그렇게 아버지는 중동에서 일하셧고
(아버지가 중동에서 근무하실 때 모습 이것도 사진 삭제시 같아 삭제 함)
어머니는 아버지가 없어서 외로우셨는지 모르지만 그 때 춤바람이 굉장히 많을 때였는데...바로 춤바람이 나셨다.
여동생을 낳고... 도...카바레 같은델 다니셨고...누나와 나 동생을 돌보지 않았었다.
그래서 나와 누나는 더 관계가 가까웠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아버지는 외국에서 기국을 하셨고..
오시자 마자... 집을 하나 지어셧고...그리고 건설업을 하시기 시작해셧다...그 건설업은 잘 되엇고...어느 정도 살만 하게 되었다..
새로 지은집이 다 되었을 때 나는 나도 방이 생긴다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고...
1층은 부모님과 여동생이...2층은 누나와 내가 사용했다...그러나 어머니는 한 번 바람이 나니..집을 자주 비웟었고..
아버지는 그런 어머니를 자주 잡으러 댕기시고 하시다 어느 순간 포기르 하셨다...
그렇게 난 어머니의 사랑을 잘 받지 못하게 자랐고...17살 되는 해...난 그녀를 만나게 되었다...
2.친구의 가정사 (주혁이 입장에서 풀어요)
아버지는 젊엇을 때 건달을 하셨고..어머니는 어렸을 때 가난한 집을 위해 도시로 오셔서 작은 사무실에서 일하셨다고 했다.
어머니가 일했던 회사 사장이 사체를 썻다가 돈을 못 갚아...돈을 받으로 온 사람이 아버지셨고 그 때 어머니를 보고 한 눈에 반해 계속 찾아 왓다고 했다.
부모님은 12살 나이차가 나신다...그렇게 집요하게 찾아 온 아버지를 뿌리치지못해...같이 술한 잔 한게 화근이였다고 했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강제로 관계를 했고...덜컥 아이가 생겼다고 했고..그래서 부모님은 결혼을 했고..아버지는 건달생활을 그만두고 작은 용역 사무소를 차렸다고 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임신한 어머니를 멀리하기 시작했고..집에 들어 오는 날이 적어지셨다고 했다..
어머니는 홀로 아이를 낳고....병원에서 돌아 와서는 혼자서 많이 울어셧다고 ...했다..
그렇게 내가 태어나고...4살 때까지 아버진 집에 오는 날이 계속 적어지셨고...어머니에게 주는 돈도 적어지셨다고 했다..
그렇게 시간을 지내다 어머니는 자신이 돈을 직접 벌기로 했다고 했다.. 4살 된 아들은 시골에 계신 친정 어머니께 맡기고..
일용직 부터 여러 일을 하셨다고 했다...그러다 돈이 너무 적어서..다른 일을 알아 보다...술집일을 하셨다고 했다..
싸롱에서 일을 하셨는데...페이도 괜찮고...오는 사람들도 괜찮았다고 하셨다...
그렇게 1년 지나면서...그기 마담이..여기 일배워보라고 하고...배우면 여기 너에게 넘기겠다고 그렇게 어머니는 더 열심히 일했고..
2차를 안나가셨지만...2차도 뛰셨다고 했다....그렇게 그 일을 한지...4년쯤 되어서..어느정도 돈이 모였고...
내가 학교에 들어가야 해서..나를 데리러 오셨다....난 학교에 들어갔고...어머니는 밤에 일을 나가셨다..
아버지는 그런 어머니에게 아무말도 안하셨고...그냥 무시를 하는듯 보였다...
그렇게 난 국민학교 끝날 때 쯤..어머니는 그 사이...전화가에 빠를 하나 오픈 하셨고...인맥으로 장사가 잘되엇었다...
그리고 중학교 때...어머니 친구 분이랑 룸싸롱을 오픈 하셨다...
어머니가 오래 그쪽에 일하셨어...아시는 분이 많아서 그런지 금토일 3일 만 영업을 했는데..언제나 예약이 만원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내가 고등학교에 갔을 때 그 때 친구를 만났다...우리 어머니가 좋아 했던...친구를...
어머니와 아버지는 고 1 때 이혼을 하셨다...어머니가 이혼해달라고 했는데 아버지는 묵묵부답이셨고...그래서 어머니가 이혼소송을 하셨고..이혼을 하셨다..
여기까지가 나의 가족사 이고 그 친구의 가정사 이다.....나는 어머니의 사랑에 목말라 있었고...친구의 엄마는 남자의 사랑에 목말라 있었다...
당연히 친구의 엄마는 나를 만나기 전에...여러명의 남자들과 만났다고 했고...그러나 우연인디 운명인지 나를 만나게 되엇고.
그게 자신의 아들의 친구였었던거다.. 나는 진짜로 그녀를 사랑했고..그녀와 결혼도 생각하고 잇었다...
그녀도 가끔 결혼 이야기도 하면서 이루어지지않을 꿈이라고 하면서..
그렇게 나 와 그녀는 자주 여행을 갔고...가는 곳 마다..."아들과 엄마가 참 잘 지내네." 이런 소리를 참 많이 들었다..
그럴때면 아닌데 라고 말하려는걸 그녀가 막아섰고...잔디밭에 앉아..자기 무릎에 내 머리를 대면 항상 노래를 불러 주었다..
"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 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노래를 부르며 눈을 맞추기도 입맞춤을 하기도 하면서..
아주 좋아라하는 얼굴로 바라 봐 주었다..그리고 이 구절을 부르며 항상 이 부분이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자기가 생각 나...라며 나의 눈을 보며 불러주었다.
그리곤 항상..."화내지 말고..싸우지 말고..그 성질 좀 죽이고 살아가는 거 뭐있어..즐겁게 살자 우리" 이렇게 나를 다독이곤햇다...
나와 그녀는 아주 많은 곳을 함께햇고...즐거웠고..행복했다...언제나 내 편이엿고...어려우면 항상 먼저 와...안아주는 여자엿다...
고3대는 공부 시킨다고...집에 데려와 주혁이랑 붙여 놓곤...." 성적 안오름..얼굴 보는 거 금지..뽀뽀 금지" 이렇게 해서..고 3땐 진자 열심히 공부를했고..
그 덕에...성적도 오르고...경기도 쪽에 대학도 가게 되었고...기숙사가 없어서 자취를 해야 할 때 그녀가 와서 방에 잡아 주었다...
당연히 우리 집은 아들이 대학을 가는지..뭘 하는지 관심도 없었고....대학등록금도..아버지가 등록금만 대 주시고 나머지는 알아서 해라고 했고...
그렇게 그녀와 더 깊어지고...대학을 졸업하면...그녀와 결혼을 할 생각이엿고..주혁이에게도 말을 했는데..
그저 묵묵히...고개만 끄덕엿다...아무말 없이...그리고 대학 졸업하고..군무원 공부로 고시원가서 공부하고...
가끔 그녀가 찾아보면 짧게 만나서 이야기하고 공부 방해 된다고 얼굴만 보고 돌아갈 때가 많았다.
난 군무원 시험에 합격하면 당당하세 그 녀에세 프로포즈 할 생각으로..진짜 열심히 했고...
군무원에 합격했을 때 젤 먼저 연락했는데..그 이후로 연락이 끊어져 버렸다.
한 동안 멍하니 지냇고..군무원 임용되고..군수사에 출근해서도...현실이 믿기지 않아...부정하고 ...부정했다...
그리고..그 부정이 배신이라는 이름이 되고 그 배신이..저주라는 모습으로 나오면서...난 막나가기로 했었다...
군수사 3년 내내...창녀촌 술집호스트.나이트가서 여자 만나고...그녀에게 복수를 하듯이 섹스를 즐겼다...
그리고 군무원 품위유지 위반으로 경고도 받고 해서..자유롭고 싶어 군무원 그만두고 라인설비팀에 들어갔고,,,
전국을 그리고 해외를 다니며...무작위로..섹스를 즐겼다...복수라는 이름으로..
그렇게 시간을 낭비를 하면서 살고 있었을 때 친구가 찾아 왔고...그녀가 아프다는 소리를 들었고..그녀가 입원한 병실로 찾아 갔었다..
홀쪽해진 얼굴에...마른 몸 그것을 본 순간 모든것이 무너져 내렸고..얼마 안남았다는 말에..의사의 허락받고..그녀와 제주도로 떠났다..
그 간의 일을 친구에게 듣고...그 동안 내가 저주하며 살아 온게 너무 후회가 되엇다...그리고 너무 미안했다...
그렇게 그녀와 제주도에서 생활은 5개월 채 못하고 그녀는 나의 품에서 영원히 떠났다...
난 그녀의 영정을 지켰고..그녀의 동생들은 날 엄청 욕하고..난리를 쳤고...난 그녀의 동생남편들에 의해 밖으로 쫏겨났고...
주혁인 그런 이모들을 말렸다..
그리고 그녀가 나가는날 난 멀리서 그녀를 지켜만 봐야했고...운구차가 멀어지면서 한동안 서있었다...
그렇게 그녀를 떠나보내고 난 집에서 꼼짝도 안하고..울고 또 울었다...그녀와 찍은 사진을 보고...편지를 읽으며 한 없이 울었다..
그렇게 4개월이 지났을 때 아버지가...제주도에 갔다 오라고 했다 그래서 제주도에 그녀와 함게 있던 집에 가서 몇 일 시간을 보내고 마음을 추려서 왔는데.
그 사이 아버지는 그녀의 모든것을 다 없애 버리셨다...사진도..편지도..그리고 그녀가 나에게 주엇던 모든 것을....
난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아버지와 싸웠고...2개월후...그 집에서 나왔다.....그리고 옮긴 집은 작은 시골에 잇는 페가 엿고..
그 집을 조금 고쳐서 살앗다....그리고 짐 정리 를 마치고...그녀가 좋아 햇던 시집을 들고 펼쳣을 때 그녀의 모습이 담긴 사진 3장을 발견햤다..
너무 기쁘고 좋았다....그 때 발견한 사진 중에 그녀와찍은 한장이다.. 두장은 같이 찍은 사진 한장은 그녀의 독사진이엿다..
( 사진은 12시에 삭제 하겠습니다.) 얼굴 평은 하지 말아 주세요.
난 그기서 새로운 직장을 소개 받아 일하게 되었고...일 한지 2년쯤 지나...춘천쪽에 문제가 생겼가는 연락을 받고 밤운전을 해서...
춘천쪽으로 가는 길에..
큰 사고가 났다...뒤에서 차가 박아서 절벽 아래로 차가 떨어져서..난 병원에 1년 6개월간 입원했고...큰수술도 몇차례 받았다..
사고를 낸 사람은 못잡았고....병원비는 주혁이가 다 내어 주었고....
미안하다고 말하는 나에게 주혁인 " 엄마도 이렇게 햇을 꺼야." 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왈칵 눈물을 쏱았다..
그리고 주혁인..내 손에...통장과 편지를 하나 쥐어 주고 갔다...엄마가 지훈이가 어려울 때 주라고 했다고...하면서...
난 그 사고 당시 생각이 어렴풋이 난다...절벽아래로 떨어질 때 난 여기서 죽어도 좋겠다...그녀를 만나러 가도 좋겟다 생각했고...
불행인지..다행인지 난 의식을 회복했고...다리와 엉치 와 척추..등 많은 곳에...그 때의 상처가 남아 있지만...그녀의 도음으로 살아있지 생각을 한다..
난 가끔 생각한다..그녀를 만난건 신이 내리신 축복 이였고....그녀와 헤여졌던 시간은 신이 내리는 형벌이엿다는 거,....그리고 지금 현재는 신이 내리는 배려 였다는 것을....
사람들은 자기가겪지 않을 일엔 부정을 한다...그리고 댓글의 화살을 심장에 쏜다....나도 그랬다..댓글일 뿐인데...가슴이 너무 아팟고...
그녀가 부정 당하는게 너무 싫었다..
내가 여기다가 이 이야기를 적는 이유는 누군가가 나와 그녀의 이야기를 좀 들어줫음..해서였다....
처음엔 어릴 때 일을 자랑하고 싶은 면도 없지는 않았지만...
그리고 오늘 이 글을 마지막으로 그녀와 추억은 나의 가슴에 고이 간직하려 한다,...이제 누구가 알아 줫으면 하는 생각은 버리기로 했다....
이 아야기는 나와 그녀의 이야기 이니까...그리고 즐겁게 살려고 한다..그녀의 말 처럼......
난 그녀를 만나지 않았다면 잘못된 선택을 했을지 모른다..그래서 항상 그녀에게 감사하다.. 그리고..너무 그립다.....
여기까지 읽어 주신 분들 너무 감사드립니다...언제나 행복하시고 좋은 일만 가득하시길.....
블루메딕 후기작성시 10,000포인트 증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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