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창녀의 이야기
킹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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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간전
**제목: 새벽 세 시의 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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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흔 중반의 여자다.
전라도 목포, 앞바다가 보이는 골목에서 태어났다.
고등학생 때 동네 오빠한테 몸 처음 줬다.
그 오빠 자지가 내 어린 보지에 들어갈 때, 나는 진짜 사랑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 새끼는 대학 가면서 그냥 나 버리고 갔다.
그때 처음 배웠다. 남자는 다 떠난다는 걸.
우리 가족이 미국에 온 건 아빠 탓이다.
한국에서 농사짓다 빚을 내서 비닐하우스를 지었다가 완전히 망한 그 무능한 놈이,
“미국 가면 된다”는 소리에 홀딱 넘어가서 가족 전부를 관광비자로 태워 뉴욕에 눌러앉혀 버렸다.
그 한 번의 병신 같은 선택으로 우리 전부 불법체류자가 됐다.
스무 살이 넘어서 뉴욕에 온 나는 그렇게 불체자가 됐다.
아빠는 영어도 기술도 없이 동포한테 사기나 당하면서 TV 앞에서 병든 몸으로 늙어갔고,
엄마는 글도 모르고 영어도 모르는 채로 식당에서 김치 썰고 나물 무치고 멸치 볶으면서 집세와 아빠 약값을 감당했다.
여동생 셋은 사이비 교회에 빠져서 헌금 바치고 합숙하면서 집에 안 들어왔다.
나는 그 망한 집안의 장녀로 어깨가 무거운 채로 살았다.
뉴욕에 와서 심심했던 나는 남자들을 만났다.
결혼 같은 건 생각도 안 했다. 그냥 심심해서.
남자가 원하면 그냥 보지를 벌려주고, 입을 벌려주고, 항문을 내주는 여자였다.
집 근처 남친이랑은 거의 반동거하다 헤어졌고,
나보다 어린 동생들 무리에서 만난 한 놈이랑 진심으로 사귀었다가
그 새끼가 유부남에 애까지 있다는 걸 알고 바로 잘랐다.
유부남만은 안 된다는 게 내 유일한 선이었다.
그 뒤로 진심으로 사랑한 남자가 있었다.
그런데 나는 불체자였다. 아빠의 병신 같은 선택 때문에 신분을 날아간 여자였다.
그 남자는 결국 한국으로 돌아갔고, 나는 공항에서 울면서 배웅했다.
그때 진짜로 알았다.
신분이 없으면 사랑도 지킬 수 없다는 걸.
그래서 다짐했다.
이제부터는 사랑이 아니라 신분으로, 아빠가 날려버린 걸 되찾겠다고.
한 번은 모임에서 만난 남자랑 술김에 원나잇을 했다가 임신이 됐다.
네일샵 손님으로 알던 언니가 도와줘서 병원을 잡고 돈을 보태서 지웠다.
그때 진 빚이 나중에 내 인생을 바꾸는 고리가 됐다.
퀸즈 한인 네일샵에서 하루 종일 쪼그려 앉아 손님 발톱을 깎으면서
한 달에 2천 불도 안 되는 돈을 받았다.
불체자라 최저임금도 못 받는 처지에 방세를 내면 남는 게 없었다.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는 장녀의 어깨는 점점 더 무거워졌다.
아빠는 평생 잘못된 선택만 했으니, 나는 돈이 되는 선택을 해야만 했다.
그 언니가 밥을 사주면서 “좋은 일 있다”며 술자리 한 번만 나가보라고 꼬셨다.
따라간 곳이 맨해튼의 룸살롱이었다.
그날 밤 2차를 가서, 아침에 침대 옆에 놓인 500불을 보는 순간
일주일치 월급을 하룻밤에 벌었다는 사실에 이 일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그 뒤 10년 넘게
업소에서 한인, 백인, 흑인, 히스패닉을 가리지 않고
돈만 주면 다 받았다.
보지든 항문이든 입이든 가리지 않았고,
손님이 원하는 건 다 해주는 프로가 됐다.
대책 없이 가족을 데려온 아빠 대신 내가 가족을 먹여 살렸다.
반찬 만드는 엄마의 월급으로는 감당 안 되는 집세와 아빠의 약값을
내 구멍으로, 내 몸으로 메웠다.
아빠가 망친 걸 딸의 몸으로 갚아 나갔다.
남편은 업소의 손님으로 만났다.
몇 번 오더니 시민권자라 신분을 해결해주겠다며 청혼했다.
나는 그걸 아빠가 날려버린 신분을 되찾는 현실적인 선택으로 받아들이되
일은 계속하겠다는 조건을 걸었다.
남편은 사랑한다면서 그 조건을 받아들였다.
그 사람은 네토도 변태도 아닌,
그냥 내가 밤에 나가는 걸 알면서도 말 못하는 무기력한 남자다.
울면서 말린 적도 있었지만,
나는 “이게 내 일이고, 다른 거 할 줄 모른다”고 말했을 뿐이다.
애는 둘이다.
딸은 열셋, 아들은 여섯.
딸은 눈치가 빨라서 엄마가 밤에 나가는 걸 알면서도 그냥 자는 척하고,
아들은 엄마가 밤에 일하러 간다고만 알고 자란다.
나는 매일 밤 출근해서
몇 명인지, 무슨 인종인지 세지도 않고 그냥 일했다.
어떤 밤은 백인 손님한테 보지를 박히고,
어떤 밤은 흑인 손님한테 항문이 찢어질 듯이 박히고,
어떤 밤은 한인 손님 입에 싸서 삼키게 하고,
어떤 밤은 두 놈이 동시에 와서 앞뒤로 박히면서
구멍을 다 쓰게 했다.
어떤 밤은 단골이 하룻밤을 통째로 예약해서
호텔에서 네 번을 받고, 보지와 항문과 입을 번갈아가며 정액으로 채웠다.
아픈 티를 안 내고 신음도 연기했지만,
가끔은 몸이 속이지 못하고 진짜로 느끼는 밤도 있었다.
새벽 두 시, 세 시가 되면 집에 들어간다.
남편은 아이들을 재우고 거실에서 기다리고 있다.
나는 옷을 벗는다.
남편의 눈이 오늘 밤 손님들이 쓰고 간 내 몸을 훑는다.
보지에서는 아직 정액이 흘러내리고,
항문도 벌어져 있고,
입술도 부어 있다.
남편은 나를 침대에 눕히고 다리를 벌린다.
그리고 보지를 핥는다.
손님들의 정액을 혀로 긁어모으고,
깊이 혀를 넣어서 안쪽까지 핥아먹는다.
내가 몸을 뒤집으면 항문을 핥는다.
혀를 구멍에 넣고, 손님들이 박아 넣은 정액을 하나씩 빼내듯이 빨아먹는다.
그다음 내 입에 키스해서 그 정액 맛을 삼키게 한다.
그리고 손님들이 쓰고 간 구멍에 자기 자지를 박는다.
보지에, 항문에.
천천히, 다정하게.
손님들과는 다르게.
그리고 내 안에서 싸서
손님들의 것과 섞이게 한다.
나는 그냥 받는다.
솔직히 이 시간이 싫지 않았다.
손님들은 내 몸을 쓰고 가지만,
남편은 내 몸을 핥아주면서 쓴다.
10년 동안 이 일을 하면서
내 몸을 이렇게 핥아주는 남자는 남편뿐이었다.
목포의 동네 오빠도, 반동거 남친도, 유부남도,
한국으로 돌아간 그 남자도
그 누구도 이렇게 핥아준 적이 없었다.
10년 만에 연락이 온 그 남자는
출장으로 뉴욕에 온다며 맨해튼 카페에서 만났다.
호텔에 갔다.
프로는 공짜로 안 하는데, 그 남자는 예외였다.
10년 전의 마음으로 받아줬다.
자지를 깊이 물고, 보지를 벌려주고, 항문까지 내줬다.
그 사람의 정액을 세 구멍에 다 받았다.
집에 와서 옷을 벗으니까
남편이 또 나를 눕히고 핥기 시작했다.
그 남자의 정액을 혀로 긁어모으고,
두 남자의 정액이 섞이는 걸 느끼면서 나는 울었다.
남편은 묻지 않았다.
그냥 핥고, 박고, 안아줬다.
3년 만난 백인 50대 단골은
어느 날 밤 호텔에서 일을 마치고 누워 내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일 그만둬. 내가 책임질게. 집 얻어주고 생활비 줄게. 내 정부로 있어.”
나는 거절했다.
목포의 동네 오빠는 떠났고,
유부남은 속였고,
진심으로 좋아했던 남자는 한국으로 갔고,
아빠는 평생 잘못된 선택만 했다.
남자는 믿을 게 못 된다.
내 돈으로 사는 가족이 있다.
정부가 되면 그 돈이 끊긴다.
매일 새벽에 기다리는 무기력한 남편이 있어야
돌아올 곳이 있다.
그래서 몸을 돌리고 잤다.
아침이 되자 손님은 평소보다 많이 내고 갔다.
아침 8시에 집에 와서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 남편과 말없이 딸을 보내고,
품에 안기는 아들을 안은 다음
남편과 단둘이 남아 옷을 벗었다.
남편은 나를 침대에 눕히고
단골의 정액을 핥아먹고 박았다.
아침 햇살이 들어오는 침대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그 제안을 거절한 게 잘한 건지 생각했다.
남자의 변덕에 인생을 맡기는 건
아빠의 갑작스러운 선택만큼 위험하다.
내 몸으로, 내 손으로 버는 게 안전하다.
이 남자는 무기력하지만 나를 가둬두지 않고,
단골은 나를 가두려 했다.
남편의 무기력함이야말로 나한테 자유라는
아이러니를 깨달았다.
스무 살은 어려 보이는 앳된 얼굴의 백인 청년이 나를 지명한 어느 밤.
긴장한 손님을 리드하면서 옷을 벗기고
무릎을 꿇고 뜨거운 젊은 자지를 깊이 물고 목구멍까지 받아냈다.
서툰 놈이 나를 침대에 눕혀서 서툰 손으로 더듬는 걸
손을 잡고 가르쳐주면서 “여기 만져”라고 했다.
손님이 젊은 힘으로 거칠게 보지에 박아오자
연기가 아닌 비명을 지르면서 등을 할퀴고
안에 싸는 뜨거움을 받아냈다.
다시 일어난 손님에게 엎드려 항문을 내줬다.
젤 없이 박히는 아픔을 받아내고
항문 안에 싸는 것까지 받았다.
팁을 많이 받고 누워서
젊은 남자 두 번을 받은 뜨거운 몸으로 집에 돌아갔다.
새벽 세 시에 기다리는 남편에게 옷을 벗어 보이자
남편이 나를 눕히고 젊은 정액을 핥아먹고
천천히 다정하게 박으면서
10년 경력의 혀로 헤집어진 구멍들을 정성껏 핥아줬다.
내 안에서 싸서 젊은 정액과 섞이는 걸 느끼면서
스무 살 어린 놈을 받아도
결국 돌아오는 곳은 이 무기력한 남자의 품이라는 걸 알고 잠들었다.
한 달에 한 번 생리가 터지면 며칠 휴가를 얻어서 밤에 나가지 않는다.
10년 동안 밤에 나가다가 밤에 집에 있으니까
남편도 아이들도 어색해했다.
밤 10시, 평소 출근 시간이 되자 몸이 근질거렸다.
나갈 수 없어서 TV를 보는 내 옆에 앉은 남편이
오랜만에 내 손을 잡았다.
아이들을 재우고 생리 중이라 할 수 없어서
그냥 안은 채로 10년 만에 처음으로 섹스 없이 안아보는 따뜻함에
이 남자와 원래 이런 사이였나 생각했다.
나흘째 되는 날 생리가 끝나서 출근했다.
기다리고 있던 히스패닉 40대 손님과 방에 들어가 옷을 벗자
나흘 쉰 몸이 예민해져서 만지자마자 떨렸다.
입으로 나흘 만에 빠는 자지를 깊이 물고 안에 싸는 걸 삼키고
침대에 눕혀서 벌린 다리 사이로 박혀오는 것에
나흘 쉬어서 더 크게 느껴지는 비명을 지르면서
보지 안에 싸는 뜨거움에 떨고
엎드려 항문에 박히는 아픔을 받아내면서
이 몸은 이제 이 일 없이는 못 살고
나흘 쉬었는데도 몸이 일을 그리워했다는 걸 깨달았다.
새벽 두 시에 돌아와 기다리는 남편에게 옷을 벗어 보이자
남편이 나를 눕히고 나흘 만의 정액을 깊이 핥아먹고 박아오는 걸 받아주면서
나흘 동안 섹스 없이 안았던 남자의 자지의
손님들과는 다른 따뜻함을 느끼고
안에 싸서 섞이는 걸 안은 채로
이 집이 내 집이고, 이 남자가 내 남편이고
밤에 나가는 여자지만 새벽에 돌아오는 곳은 여기라는 걸 알고 잠들었다.
흑인 남자 셋이 단체로 온 어느 밤.
다 키가 크고 몸이 좋은 놈들이었는데
특히 큰 한 놈이 바지 위로도 티가 났다.
방에 들어가자마자 둘러싸는 그 놈들 앞에서 주저 없이 옷을 벗었다.
첫 번째 놈에게 무릎을 꿇고
입이 찢어질 것 같은 크기를 목구멍까지 깊이 물고
머리를 잡고 박아오는 걸 받아내서 안에 싸는 걸 삼켰다.
두 번째 놈에게 침대에 눕혀져서 다리를 벌리고
깊이 박혀오는 가득 참에 비명을 지르면서 등을 할퀴고
보지 안에 싸는 뜨거움을 받아냈다.
세 번째 놈에게 엎드려 엉덩이를 들고
제일 큰 자지를 항문에 받아서
비명을 지르면서 베개를 붙잡고 박히는 걸 받아내
항문 안에 싸게 했다.
그런데 끝이 아니었다.
셋이 돌아가면서
한 놈이 입을 박는 동안 다른 놈이 보지를 박고,
가슴을 주무르면서 젖꼭지를 빠는 걸 번갈아가며 받고,
자리를 바꿔서 한 놈이 항문을 박고 다른 놈이 보지를 박아서
두 개의 큰 자지가 동시에 들어오는
미칠 것 같은 아픔과 쾌감에
10년 일하면서 처음 느껴보는 진짜 비명을 지르면서
번갈아가며 입과 보지와 항문과 얼굴과 가슴에
다 싸서 정액투성이로 하얗게 더러워진 채로 한 시간을 보냈다.
팁을 많이 받고 일어날 힘도 없이 누워서
구멍마다 세 놈의 정액을 다 담은 채로
겨우 일어나 샤워도 안 하고 새벽 네 시에 집에 왔다.
거실에서 기다리던 남편에게 옷을 벗어
세 흑인에게 철저히 쓰인 정액 냄새 나는 몸을 보이자
남편이 조심스럽게 침대에 눕히고
상한 몸인 걸 알기에
얼굴의 정액을 핥아먹고,
가슴을 핥고,
입에 키스해서 세 놈의 맛을 삼키고,
흘러나오는 보지를 깊이 핥고,
뒤집은 몸의 항문에 혀를 넣어서
세 놈의 흔적을 하나하나 지워가면서
조심스럽게, 천천히, 상한 몸을 배려하면서
보지에 박아 받아주는 내 안에서 싸서
세 놈의 정액과 섞이는 걸 느끼면서
세 구멍 다, 얼굴까지, 가슴까지 철저히 쓰인 오늘 밤을
아픈 몸을 달래주듯이 핥아주는 남편을 안았다.
남편이 무기력해서 고맙고,
말리지 않아서 고맙다.
이 일로 집 대출금을 갚고, 차를 사고,
무식한 엄마에게도 돈을 보내면
엄마는 어디서 번 돈인지 묻지 않고 그냥 받는다.
대책 없이 가족을 데려온 아빠는 TV를 보면서 약을 먹고,
사이비 여동생들은 기도를 한다.
나는 창녀로, 엄마로, 아내로,
그리고 이 망한 집안의 기둥으로 살아간다.
가끔 아빠가 그때 갑작스러운 선택을 하지 않고
대책을 세워서 우리가 불체자가 되지 않았더라면
내가 이 일을 했을까,
사랑했던 남자와 헤어지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지만
답은 없다.
아빠의 한 번의 충동이 온 가족의 인생을 바꿨고
나는 그 대가를 몸으로 치렀지만
후회는 없다.
이 선택은 옳았고, 돈이 됐고, 가족이 살았고,
아빠가 망친 걸 딸이 메웠다고 믿는다.
딸이 언제 엄마가 창녀인 걸 알게 될까.
아들은 언제 알게 될까.
두렵지만
내일 밤도 출근할 것이다.
이 일밖에 할 줄 모르는,
아빠의 잘못된 선택 때문에 불체자가 된 딸이
할 수 있는 일은 이것뿐이니까.
오늘 밤도 화장을 고치고 출근하면
남편은 아이들을 재우고 새벽에 기다릴 것이고,
내가 돌아오면 또 쓰고 온 구멍들을 핥고 빨고 박을 거라는 걸 알면서
나가는 무기력한 남편이 기다리는 집으로
매일 새벽에 돌아가는 것이 내 인생이다,
아빠의 선택으로 시작된 이 인생은
그냥 쭉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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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내가 사는 방식이다.
돈이 되고, 가족이 살고,
새벽에 돌아오면 누군가가 내 더러워진 몸을 핥아주는 집.
그뿐인 인생이다,
그뿐인 소설이다.
블루메딕 후기작성시 10,000포인트 증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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