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2
중대본부 인사가 끝나고 나하고 같이 온 관제특기 병사는 다행히 나와 다른 크루에 배속 받았다.
육군으로 말하면 사수에 해당하는 고참이 내 O.J.T를 맡았는데 기고(공군기술고등학교)출신 이었다(지금의 항공과학고등학교)
특목고라 그래도 학교에서 상위권에 드는 학생들이 기고에 입학했는데 기고에서도 영어성적 좋은 애들이 관제특기를 받기에 영어가 되는 고참 이었다.
나를 보고 첫마디가 너 영어잘해?
아닙니다.
그런데 왜 관제특기 받았어? 어디 아는빽 이라도 있나?
없습니다
그럼 너 아는 영어 단어 뭐가 있어?
LOVE. HOTEL. SEX 입니다.
개새끼 넌 뒤졌어 ....정말 생각나는 단어가 그것 뿐이었다.
I나 YOU 같은 쉬운 단어는 왜 생각이 안났을까...너무 긴장해서 일거다 ...장말 놀릴려고 그런거 아닌데....
키가 내 목까지 밖에 안오는 고참이 존나 화가나서 팔딱팔딱 뛰면서 열을 내더니 그날부터 얻어 터졌다.
하루에 영어단어 100개식 외워 개새끼야.....
아무리 외워도 70개 이상은 못외웠다.
그러니 매일 근무장에서 얻어터지는게 일상 이었다.
2달뒤에 후임이 왔는데 후임은 OJT 끝나고 업무에 들어갔는데도 나는 아직 업무매뉴얼은 커녕 영어 단어를 외우고 있었다...ㅠ
탈영 하고 싶었다.
탈영할려고 야밤에 BNQ 뒤에서 담배 하나를 물었다 .
이거만 피고 철조망 넘는거다...
평소 88라이트를 폈는데 그날따라 담배가 없었다. 할수없이 디럭스 라고 좀 긴 담배를 폈다.
담배가 거의다 타갈무렵 눈에 뵈지도 않는 고참이 슬그머니 와서 옆에 앉았다.
그리고 내맘을 어떻게 꽤 뚫어 본건지 나한테 딱 한마디만 하고 다시 들어가더라.
누구나 고달픈 신참 생활 없이 고참 된놈은 아무도 없다....신참 생활이 많이 고팔프면 그만큼 더 멋진 고참이 되거든......
씨발 수십년이 흘렀는데도 아직까지 기억나는 말이다.
지금 생각해도 존나 멋진말 아니냐.....
그날부터 정말 이를 악 물었다..
남들 축구할때 난 슬그머니 빠져서 농구대로 갔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캠프맥냅 이었을거다.
그들이 나누는 대화를 들을려고 찾았던곳인데 어느날 사람이 부족했던지 같이 할거냐고 물었다.
난 그날 미친듯 뛰어 다녔다. 그래서 그들 눈에 띌려고....
그렇게 그들과 농구를 하며 지내다 보니 주어. 동사. 목적어 몰라도 어느정도 눈치로 알아 듣게 되었다.
점점 쌓여가는 영어단어로 인하여 간단한 몇마디씩 주고 받기....
그렇게 2기수 후배와 나는 OJT를 같이 끝냈다.
그리고 미친듯 시간만 나면 비밀문서함에서 살았다.
제주도는 작전이 거의 없는데 특히나 야간에는 민항기도 거의 다니지 않아서 병사 한명만 레이다 보게하고 모두 잔다.
그 시간에도 나는 항공규정과 작전에 필요한 지식을 습득했다.
규정이 미국기준이라 공군 작전 사령부 글씨 빼고는 모두 영어라서 커다란 영어사전을 들고 들어가서 해석했다.
지금이야 한글판으로 많이 나와서 정말 쉽다.
관제도 슈퍼 컴퓨터로 된 모니터라서 엄청 편한데도 투덜 거리는 못된놈이 있지.
그렇게 영어가 귀에 들리기 시작하고 입에서도 혀굴러가는 원어민 발음이 나오기 시작할무렵 업무도 어느정도 익혔다.
아니다 팀스피리트 같은 연합훈련이 텔렉스에 탁탁탁 찍혀서 작전명이 나오면 모두들 규정 찾아 보느라 정신이 없는데
나는 바로 감독관님께 보고들 드릴 정도였다.
그렇게 여유가 생길무렵 부대에 위로방문이 있었다.
작년에는 업무에 미쳐있어서 참석을 못했는데 올해는 기필코 참석을 해야지.....
하지만 그 해도 참석 했다가 근무장에 일이 있어서 올라가야 했다.
영내하사 최고참이라 어쩔수 없었다.
관제부대에서 가장 SKILL 이 뛰어날때가 영내 최고참일때다.
영외 거주를 나가는 순간 정신상태가 헤이해져서 반 민간인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지.
작년에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해서 올해엔 부대장이 신신 당부를 했다.
절대 회식자리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지말라고....
하지만 사람은 술이 취하면 어긋난 행동이 나오기 마련.
내 밑의 기수 한명이 결국 여자를 데리고 몰래 나갔다.
위로방문 온 여자를 데리고 나갔지만 둘이 빠구리 칠곳이 마땅히 없었다.
작년에 내무반에서 그짓 하다가 영창간놈이 있었기 때문에 내무반으로 못데리고 가고
생각해낸게 의무실 이었다.
두명의 빈자리가 보여서 부대장이 노하기전에 몰래 찾으러 다녔는데 결국 의무실에서 찾은거다.
얼른 멈추라고 했지만 불붙은 둘을 말로 갈라놓기는 쉽지 않았다.
그둘이 끝날때까지 기다렸다가 데리고 나가며 말을 맞췃다
의무실에 잠깐 치료하러 갔었다고 ....씨발...치료는 개뿔...육봉주사 놔주러 갔으면서....
그런데 이자료를 인터넷에 찾아 보니 그런 기록은 없다.
분명히 있었는데.....
혹시 1988년 에서 1990년사이 제주도 공군부대 근무했던분 있으면 제발 맞다고 해주세요.
내가 치매 걸려서 기억이 왔다갔다 하는거 같아요.
또 한번은 레이다 정비 하사관 1기수 선배가 있었는데
이새끼가 내무반에만 가면 고참이라고 꼬장을 피웟다.
그러면 나는 내무반에서 당한 설움을 근무장에 가서 풀었다.
그당시 레이다 스코프는 진공관 부품들이라 충격을 주면 꺼진다.
화가 난 나는 내가 스코프 보는시간에 발로 한번 찬다.
그러고 1번 스코프 아웃.외치면 컨트롤텍이 정비실 호출 하여 고치게 하는데
1번 스코프 고장나면 고칠동안 쉬어야 하는데 친절하게 병사가 보고있는거 비키라고 하고 그것도 아웃시켰다.
그렇게 고도 레이가까지 모두 아웃을 시키면 스타터스 체인지를 요구 할수 있는데 그건 우리부대가 작전을 못하니 인접 부대에서 중첩 감시를 요청 하는거다.
스타더스 체인지를 요구하니 감독관이 정비실 감독관에게 스타더스 체인지 시간 30분 줄테니 빨리 튀어 올라 올라고 연락을 했다.
정비실은 야간 근무에서 중사나 상사 한명과 하사한명 사병 몇병이 근무를 하는데 퇴근해서 자고 있는 감독관을 호출하니 정비실은 비상이었다.
감독관이 올라오는데 나머지 간부들이 안올라 올수 없는일.
이하사는 미칠 노릇 이었다.
그래서 절대 열어서는 안되는 스코프 밑에 위치한 고전압 박스를 열었다.
3만7천볼트인가 흐르는 고전압인데...
그거 열더니 피곤한지 그냥 자고 있다.
미친놈 지들 감독관이 잔뜩 화나서 올라 오는데 처 자다니....
그런데 좀 있으니 앰블란스가 와서 들것에 실어서 갔다.
니미랄 전기 쇼크 먹고 기절한거였다.
몇달의 시간이 흘렀다.
치료를 마치고 복귀한 이하사는 미군 부대장이 타고 가는 차를 세워서 부대장을 끌어 내렸다.
그 일로 미군의 항의를 받았고 부대장은 정신 이상자로 다시 후송을 보냈고 약1개월후 다시 자대로 왔다.
의가사 전역이었다.
전역하러 와서 자신의 소지품을 챙기는 이하사 에게 잘 가시라고 경례를 했다.
병신같이 그기서 왜 나한테 고맙다는 말을 했는지 나는 알고 있었다.
축하드립니다. 대학교 합격 하셨다면서요....
어...어덯게 알았지? 깜짝 놀라는 이하사에게 귓속말로 했다.|
걱정 마세요 저만 알고 있을께요....
이하사 소지품을 챙겨주다가 알게된 사실 이었다.
그렇게 이하사는 손바닥이 뻥 뚫리고 의가사 전역을 했다.
찬란한 영내 생활을 끝내고 영외거주를 시작 하였다.
먼저 방을 잡아야 하는데 모슬포시내를 뒤지고 뒤져도 방이 없다.
해병대 부사관들이 얼마나 술 먹고 깽판치고 담배피며 노름을 해서 방이 노랗게 되니 군인들 한테 방을 내줄려고 안했다.
동기놈 한명이 있었는데 그놈은 돈이 많아서 비싼돈 주고 구했다.
이놈 때문에 고생한거 생각하면 이가 갈린다.
매번 새벽근무를 술먹고 자다가 늦게 들어온다.
그러면 나는 그놈이 올라 올때까지 못내려 가기 때문에 하번차량을 못타고 내려 가야 한다.
레이다싸이트가 위치한 산은 공동묘지다.
제주도 공동묘지의 비석은 죄다 빨간글씨로 적혀 있어서 더 섬득한데 그놈은 올라 오다가 그래도 하번 차량을 만날수나 있지
나는 그놈이 올라오고 나면 혼자 터덜터덜 걸어서 공동묘지길을 내려 가야한다.
비라도 오는날은 정말 머리끝이 바짝 선다.
차라리 퇴근 안하고 비상 대기실에서 자고 싶을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내가 그놈 때문에 그렇게 고생을 했는데 그놈은 그걸 잊었는지...
몇년전 그놈을 비롯한 동기 몇명이 모였을때 내가 문제인 욕을 했다.
없을땐 나랏님 욕도 한다고 하쟎아 ...나는 정치 그딴것 모른다.관심도 없고....
그냥 대출을 막아놔서 사업 하는데 힘들다고 했더니 발끈 화를 내면서 문제인 대통령이 닭근혜보다 낫다며 너 같이 인간 같지 않은 놈은 상종도 안한다며 삐져서 갔다.
내가 무슨 정치평을 한것도 아니고 박근혜가 위대한 인물이라고 한적도 없는데 병신같이 정치병에 빠져서 옛날 은인도 잊어 버린놈이 되었다.
각설하고
부동산에서 한집을 소개 해주는데 찾아가봤다.
군인 이라니까 단번에 거절 당했다.
그래서 왜 그러냐 빈방있으면 세 놓으면 좋을텐데....
그랬더니 역시 앞에 해병대 하사관에게 세를 놨더니 술먹고 깨판을 쳐서 내보내는데 애를 먹었다고 햇다.
내가 달래고 달랬다.
아주머니 저 술 안먹습니다.
담배도 방안에서 안피웁니다.
그리고 저 해병대 아니고 공군 입니다.
공군은 제주도에서 인기가 좋다.
예전 비행장을 주민들에게 농사짓게 하고 도지세를 조금만 거둬서 일부를 제주도민을 위해 쓰고 일부는 공군본부로 올려서 그런지
아니면 100명 남짓한 부대원중에서 영외 거주자는 몇십명 정도니까 희귀한 부대라서 그런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어렵게 방을 잡고 보니 그집 아이가 중학생인데 한글을 몰랐다.
아버지 없이 자라서 그냥 오냐오냐 키워서 일까...?
누나 두명은 모두 공부를 잘해서 한명은 시집갔고 한명은 제주시에 취직을 해서 간혹 찾아 온다.
그래서 그날부터 그녀석 공부를 가르치기로 했다.
일단 수학은 내가 고등학교 졸업하고 직업훈련원에 다닐때 맞아가면서 배웟던 수학이라 어느정도 자신이 있었고
영어는 어느정도 소통이 되지만 문법을 몰라서 아까 죽일놈 같은 동기놈이 도아주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그놈에게 큰사부님 이란 호칭을 얻었고 동기놈은 작은 사부님 이란 호칭을 얻었다.
집에서 걸어서 고등학교가 있는데 그곳을 성적이 안되서 한참을 차를 타고 성산 일출봉까지 가야 한다는놈을 잡고 공부를 시켰는데
내준 숙제를 안했거나 시험봐서 틀리면 벌칙으로 내 오토바이를 세차해야 했다.
내가 공부를 가르쳐주는 덕분에 주인 아주머니는 월세를 안받았고 해녀라서 해산물을 잡아다 주셧다.
나는 생선을 안먹는 채식주의라서 거부 할수도 없고 해서 강아지를 한마리 집뒤 밭에 키웟는데 너무많이 밥을 줘서 죽었다.ㅠㅠ
원래 부대에 소문은 미여군과 썸씽이 있다고 소문은 났지만 정말 그녀와는 아무일도 없었다
퇴근할때 그녀가 기다리고 있었고 난 태워주고 그녀는 차비로 포로노 잡지책을 탈때마다 가져다 줬는거 밖에 없다.
나는 다른 여자에게 이미 마음이 가 있는데 ...
내방은 사진에 보이는 아주머니가 앞에서 뭔가를 다듬고있는 그방이다.
오른쪽 12라 적힌 건물과 아주머니 사이에 내방으로 들어가는 문이 있다.
내방 입구 맞은 편에는 돌담이 내 키보다 조금 작게 쌓여있었고 건너편에 아가씨가 살고 있었다.
내가 저녁 근무를 하고 퇴근할때 동기놈이 늦게 올라온 날은 걸어서 BASE기지가지 내려오면 한참 늦은시간이다.
오토바이는 싸이트까지 못올라가게 한다.
혹시 사고라도 날까봐 그런듯...그래서 BASE기지 앞에 세워두고 가기 때문이지.
아무튼 늦게 퇴근을 하면 돌담 넘어에 수도가 있는데 아가씨가 내가 없을때면 샤워를 한다.
그래서 나도 그시간엔 오토바이를 멀리서 기동끄고 밀고 집으로 들어와 살금살금 방으로 들어온다.
그녀도 내가 퇴근한걸 안다.
갑자기 물소리가 뚝 끊기고 돌담 사이로 사람이 안보인다.
안들킬려고 담밑에 쪼그려 숨어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둘사이에 암묵적인 룰이 생겼나보다.
어떨땐 나도 담 밑에서 샤워를 한다.
그녀도 그걸 알고 조심히 들어간다.
나역시 샤워 하다가 그녀의 인기척에 담밑에 쪼그려 앉은적이 몇번 된다.
낮에 방에서 나오다가 얼굴이 마주칠때도 있다
그러면 서로 눈인사로 살짝 고개만 숙여서 예를 표한다.
그러다가 어느순간 몇마디 말을 나눴고 이젠 퇴근하면 가벼운 농담도 하게 되었다.
그녀의 직업은 룸싸롱 아가씨다.
난 한번도 가본적 없지만 2차 안나가기로 유명한 여자란다.
주인 아주머니가 반찬을 해주시고 밥도 해놧으니 눈치보지 말고 퍼 먹으라고 했는데 그녀가 반찬을 건네줫다.
김치 였다.
주인 아주머니의 연륜이 있어서 맛은 주인 아주머니것이 더 나을지 모르지만 나는 그녀가 건넨 김치가 더 맛있고 소중햇다.
육지 입맛에 길들여져서 제주도의 깊은 김치맛을 이해 못하는걸까.
그녀의 김치맛은 고향의 맛과는 다른 서울 김치 맛이었다 ㅋㅋ
김치를 시작으로 몇몇 반찬들을 담 넘어로 받았고 난 주인 아주머니가 가져다준 처치곤란한 해물과 해산물을 건네줬다
그러면 또 그것이 반찬으로 건너오고....
하지만 난 그녀와 잠자리를 하지 않았다.
그녀가 더러워서가 아니였다.
수많은 남자들을 상대하는 그녀에게 그건 또 아픔을 만들어내는 상처가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지.
어느날 그녀에게 언듯 돌려서 사랑을 전했다.
하지만 역시 괜히 말했다고 후회했다
자신보다 더 나은 여자를 만나라는 충고였다.
씨발 좋게 말해서 까인거지...
그다음부터는 얼굴 대하기가 서먹서먹했다. 나도 그녀도 서로 피하고 싶고 어쩌다 눈이 마주치기라도 하면 어색한 인사가 고작이었다.
그러다 그녀가 술집을 옮긴건지 그만둔건지 모르지만 인사도 없이 이사를 가버렸다.
처음 방을 얻고 주인집 아들 과외를 시작하고 나는 알바를 했다.
공무원이 알바하면 안되지...하지만 이미 30년이 넘어서 공소시효도 끝났으니 상관없다.
오토바이를 타니 고칠일이 있어서 오토바이 센타를 찾아갔는데 고치는 기술이 너무 매력적이었다.
그곳에 자주 가다보니 사장님 일을 조금식 돕게 되었고 시간 날때마다 오토바이센타로 출근을 했다.
그렇게 센타에서 알바를 하는데 무릉지서에서 경찰이 오토바이 고치러 왔다.
오토바이 고치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친해졌다,
서귀포 조폭출신 경찰이었다.
그 양반 하는말이 펜대만 굴리던 놈은 절대 강도 못잡는다면서 자랑질 이었다.
나중에 내가 공군 이라고 했더니 깜짝 놀라며 더 친해졌다.
그런데 군대는 어디가나 부조리가 있는법
공군은 준위가 감독관인데 한 CREW 를 맡고 있는 CREW에서 대빵이다.
그래서 매번 술을 사라는건데 돈도 없는 하사들이 매번 술을 빚내서 살수는 없쟎아
술을 먹어도 여자끼고 먹으면 나이평균을 해야 한다고 자신은 제일 늙었으니 제일 어린여자를 옆에 앉히고 하사는 이모랑 놀아야 하니 누가 신이 나겠나
하지만 관제에서 감독관에게 대드는 역사는 단 한명도 없었다.
성추행을 당해도 말못하는게 관제 인데....
하지만 나는 술먹자는 감독관의 말에 돈이 없다는 핑게를 댔다
그러자 돈을 빌려준다는거다.
돈을 빌려서 까지 술을 먹고 싶지 않다고 했더니 삐졌다.
관제특기는 당직사관을 안선다.
대신 돌아가면서 경비장교를 서야 하는데
경비장교는 말 그대로 야간에 당직대에서 헌병들 관리 하는직무였다.
제주도 공군부대는 미군지역까지 공군이 보초를 서야 하기 때문에 제법 넓다.
그 보초병들이 졸지 않는지도 확인 해야 하니까 어쩌면 병사들 내무반 관리하는 당직사관보다 더 힘들지도...
경비장교를 서는날은 기지중대 일이기 때문에 관제중대에 보고할 일 없이 바로 부대장님께만 보고하고 헌병대장에게 인수인계하고 퇴근 하면 되는데 삐진 감독관이 엿먹일려고 올라와서 보고하고 가라고 했다.
나는 경비장교는 관제중대에 보고 안하고 퇴근해도 되는데 왜 없는 규정을 만들어서 골탕을 먹일려고 하느냐며 대들었다.
그렇게 시작한 싸움은 명령 불복종으로 영창 운운까지 하게 되었다.
그래서 다음날 출근하였는데 바로 헌병 호출하여 영창에 보낸다는거였다.
그래서 딜을 제세했다.
나는 야간 근무때 한번도 잔적 없이 비밀규정을 공부했다.
하지만 야간근무 들어온 감독관은 매일같이 브리핑룸에서 영외자들 모아놓고 고스톱을 치거나 카드 놀이를 했다.
나는 할줄 모른다고 해서 사병들 관리와 전화를 받는일을 했고 내 후배들 마져 감독관에게 돈을 잃어주느라 정신이 없다.
감독관은 원하는돈을 못 따면 그날 분위기는 싸해 지기에 최대한 시간을 끌며 잃어준다.
나는 레이다 스코프 앞에 앉아서 누가 얼마 땄다고 하면 심심해서 노트에 김상사님 2000원 잃음 감독관님 3000원 땄음 등등을 심심해서 기록했고 누가 화장실 가면 가는시간 오는시간 다 적으며 존나 오래싸네 치질 걸렸나.....젊은 사람이 화장실 가서 오래 걸리면 한발 빼고 오나 라고 하면서 시간마져 다 적어둔게 무기가 되어 잇었다.
그걸 근무 들어오면서 경찰에게 맡겼고 나한테 2시간 마다 전화해서 내가 못받으면 이거 국방부로 보내 달라고 했다.
헌병을 부를려는데 내가 경고 했다.
2시간 마다 내가 전화를 못받으면 다같이 죽자는거로 알라고...
그렇게 정말 2시간 후 전화가 울렸다.
또 2시간을 딜레이 시켜놓으니 감독관부터 새파랗게 사색이 되었다.
퇴근무렵 감독관의 호출이 있어서 갔더니 브리핑룸으로 들어가자고 했고 그기서 고백을 한다.
내가 30년 넘게 군생활 하면서 누구에게도 사과 한적 없는데 내가 하사에게 사과할줄은 몰랐다
미안하다 라고...
그래서 그 악어의 눈물에 속아 화해를 했는데 그로부터 한달후 갑작스레 전속 명령이 떨어졌다.
최남단 제주도 에서 거의 최북단은 아니지만 북쪽에 위치한 황병산으로.....
황병산은 대관령 고개에서 삼양목장 옆에 위치해 있다
황병산 중턱은 해병대 공수부대 스키장이 있기도 하지.
제주도 근무할때 위문편지가 왔는데 중학생 여자 아이였다.
아마 일부러 북쪽의 위문편지는 남쪽으로 남쪽의 위문편지는 북쪽으로 보낸거 아닐까
아무튼 횡계라는 지역의 중학교에서 여자 아이가 보낸 위문 편지를 받고 답장을 해주기를 수십번 하다보니 어느정도 친근해 졌다.
하지만 너무 거리가 먼 관계로 찾아갈수도 없었는데 마침 내가 그동네로 전속을 가야 했다.
급하게 전속명령이 나온거라 침대밑에 던져둔 포로노 잡지를 처지 곤란하여 제자에게 부탁해서 불태우라고 했다.
그놈이 정말 바로 불태웟는지는 모른다 ...아마 남자라서 한번쯤은 보고 딸이라도 한번 잡았을지도....
아참 그놈은 다행히 멀리 고등학교 안가고 바로 옆의 고등학교에 입학했다는 소식을 먼훗날 들었다.
제주도는 태풍이 오면 출근할때 전투 화이바를 쓰고 출근을 한다.
주먹만한 짱돌이 날아 다녀서 머리 깨진 군인들이 속출하니까.
하지만 화이바는 부대에 보관을 해서 반납을 안해도 되는데 문제는 방독면 이었다.
방독면은 개인이 보관을 하는데 이걸 가지고 전속 가야 하는지 반납하고 가야 하는지 몰랐다.
개인에게 나눠준 방독면이니까 가지고 가는게 맞다고 판단하여 화물로 다 부치고 전속가니 무조건 받아야 된다며 그 부대에서도 방독면을 나눠줬다.
그런데 제주도 부대에서는 반납을 안했으면 반납하라고 연락이 와야 하는데 어떻게 매꿔 넣었는지 군대는 참 이해 불가다.
전역하면서 가지고온 방독면...이거 예비군 훈련때 까지 가지고 있어야 하나 생각도 했음
아무튼 대관령에 도착하여 위문편지 주고 받은 아이에게 전화를 했다,
대관령 까지 왓다고 했더니 당황해 하는 아이...나름 예쁘게 보일려고 다듬고 나온 흔적이 보인다.
그렇게 빵집에서 만나 이런 저런 이야기 하다가 이젠 헤어져야 할시간이 되었다.
잘가라는 말을 하고 계속 그아이 뒤를 따라갔다.
아휴~ 안바래다 주셔도 되요....
그 아이는 내가 아직도 제주도에 근무하는줄 안다.
아냐 나 내집에 가는중인데...
어이없는 표정을 하며 놀리지 말라고 했다.
그렇게 그 아이는 자기 집까지 와서 나를 보며 누가 보면 어떨려고 그래요... 얼른 가셔요
누가보면 뭘? 나는 내집에 가는건데....
그 아이 집 주소를 알기에 황병산에 있는 동기에게 미리 그 아이 집 주소 근방에 방을 구해 놓으라고 했던 거였다.
그아이 집 옆이 내집 이라고 말 해도 안 믿는 그 아이를 두고 난 내방으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놀라서 다물어지지 않는 입을 자그마한 두손으로 겨우 가리며 두눈을 동그랗게 뜨고 지켜보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그 뒤로 난 얻어놓은 방에 몇번 가보고 그냥 방치 했다.
내 짐 보관용 창고 였던거지...
제주도에서 화물로 옷을 다 부쳤는데 지금은 금방 오지만 그당시엔 1주일정도 걸렸다.
10월의 제주도는 반팔 차림이라 반팔을 입고 왔는데 공군 싸이트 출근차량은 버럭이라고 트럭을 버스로 개조한 차량이다.
지금이야 버스처럼 생긴 특수차량이 출근차량으로 나왔지만 그당시엔 버스로는 절대 산길을 못 올라가기에 트럭으로 버스를 개조하여 타고 다녔다.
그래서 버스+트럭 이라고 뻐럭이다.
공군 싸이트에만 존재 했을듯...
뻐럭을 타고 출근 하는데 문이 열리자 안에 탄 사람들이 제정신이 아닌듯 했다.
10월에 야상을 입고 있으니....
아마 그때 뻐럭속에 있던 사람들도 그런 생각을 했을거다
미친놈 황병산이 어떤 산인데 반팔을 입고 타냐....
히터가 켜진 뻐럭은 추운줄 모르고 올라갓는데 정상에 내리자 한기가 몰려왔다.
씨발 야상을 이래서 입었나보다.
황병산은 1년내내 모기가 없다.
그리고 계절이 봄,가을,겨울이다...여름이 없다.
황병산에는 똥탑도 유명하고 콜라로 양치질도 유명하다.
사람은 왔는데 아직 군복이며 다른 옷들이 들은 화물은 오지 않앗다.
그렇다고 사제옷 입고 신고 하러 다닐수는 없쟎아
할수없이 나를 인사 시키러 데리고 다니는 상사분의 전투복을 빌려 입었다.
얼굴도 처음 보는 놈인데 전투복에 상사 계급장이니 지나가는 사람들 필승 하고 인사를 한다.
매번 아니라고 변명하기도 힘들다.
이번엔 헌병대 헌병반장한테 인사를 간다.
중사였다.
또 필승하며 먼저 인사를 한다. 이번에도 제대로 인사 하기는 틀렸다....ㅠㅠ
사실은 상사 아니고 하사 입니다. 라고 하자 전투복에 명찰을 확인 하더니 쪽팔려 했다.
이부대는 눈과의 전쟁이다
대한민국에서 눈이 가장 많이 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느정도 눈이 오면 눈을 파서 길을 낸다
하지만 밤사이 폭설이 오면 그다음날부터 길을 내는게 아니라 눈굴을 판다.
그러면 봄이 올때까지 눈을 안쳐도 된다.
눈이 오면 숙소가 눈속에 파묻혀 있다.
침대에서 창문만 열면 천연 냉장고.
퇴근하고 눈속에 찔러 넣어둔 맥주한잔 쥑인다.
여름 아닌 여름이 오면 주변에 널린게 취나물이다.
산밑에 철책이 쳐있는데 아줌마들이 철책안이 취나물이 좋아서 철책안으로 취나물 캐러 들어오는 사람이 간혹 있다.
한발 들여 놔도 괜찮으니까 또 한발자국 들이고 그렇게 철책에 MINE 지뢰라고 적혀 있어도 겁없이 들어 오다가 사고를 당하는 사람들이 꽤나 된다.
한번은 출근 차량은 놓친 방위병이 혼나는게 겁나서 지름길로 올라 갈려고 지뢰밭을 지나다가 발목지뢰를 밟은 적이 있었다.
그 순간에도 군수품 잃어버리지 않을려고 발이 들어 있는 전투화를 찾아 들고 기어 올라와 살려 달라고 한적이 있었다.
물론 의가사 전역 했다.
지금은 MINE을 거의 다 수거 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철조망이 쳐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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