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이야기] 살아오면서 겪은 일들- 첫사랑 그녀, 그리고 (야한거 없음주의)
Tozz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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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전
여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공간이니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부터 하는게 맞지 않았나 싶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첫사랑의 기억을 해보자.
1.
내 첫사랑은... 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어린아이가 또래의 다른 아이를 좋아한 수준이다.
유치원에서 만났다.
왜 그애가 좋았는지는 모르겠다.
7살(지금이야 법적으로 만나이를 기준으로 하니 6살)때 뭘 알았겠는가 .
그 아이는 나이에 맞지 않게 조금은 우울한 분위기, 좋게 말하면 성숙한 분위기가 아니었나 싶다.
초등학교(당시엔 국민학교)도 같은 학교에 진학해 3학년까지 같이 다녔다.
1학년, 2학년때는 짝을 한적도 있었고 3학년때는 옆반이었다.
아들만 버글거리던 우리집에서는 늘 엄마곁에 있기는 어려웠는데 특히나 나이터울이 크지 않았던 탓에
늘 막내에게 밀릴 수 밖에 없었던 나는 지금 생각해보면 애정결핍이 아니었나 싶다.
그래서 였을까 모르겠는데 난 어렸을 때 머리를 만지는 습관과 아랫입술을 빠는 습관, 이렇게 두가지의 악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나중에 대학에 가서 배워 알게 된 것이지만 아랫입술을 빠는 것은 모유 수유를 일찍 끊었을 때 나타나는 무의식적인 행동이라고 한다.
그래서 였는지 모르겠지만 짝이 되어 같이 앉아있던 여자애의 머리카락을 습관적으로 입에 물고 있다가 선생님한테 무쟈게 혼났던 기억이 난다.
나는 내가 왜 혼나야하는지도 잘 모르고 눈물만 흘렸는데...
그러다가 사립학교를 다녔던 나는 아들셋을 모두 사립학교에서 공부시키기 어려웠던 부모님의 결정으로 4학년이 되면서 근처 공립학교로
전학을 가면서 그녀와의 인연이 끊어지는 듯 했다.
하지만 아침에 등교하는 길에 가끔 그 여자아이와 교차해서 지나가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에 완전히 인연의 끈이 끊어진 것은 아녔다.
그러다가 아파트 붐이 나면서 우리집은 영등포쪽으로 이사를 하게 되면서 완전히 멀어지게 되었다. 그게 5학년 1학기를 마치고 일어난 일.
(당시에 반포아파트로 갔더라면...ㅠㅠ)
멀어졌지만, 이제는 마주치는 일조차 없게 되어버렸지만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는 그 여자아이가 크게 자리잡고 있었다.
2.
초등학교 때는 조숙하게도 전학을 많이 다닌 탓에 일종의 요령이 생겼다.
처음 전학을 가게 되면 난 굴러온 돌.
수많은 박힌 돌을 비집고 내 자리를 찾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거다.
공부를 잘했던 나는 사립학교에서 공립학교로 전학하고 첫시험에서 1등을 했다.
그리고 경험했다. 왕따였다.
당연한 결과라고 지금은 생각한다.
그래서 다음시험에서는 일부러 몇문제를 틀린 답을 적어내고 셀프 성적조작을 했다.
결과는 7등? 정도였던 걸로...
그러고 나서야 친구가 생겼다.
이 방법은 의외로 효과가 있다는 걸 알게 되어 나중에 두번 더 전학을 갔을 때 유용한 스킬로 써먹었다.
그러다가 중학교에 진학했다.
여기서는 모두가 처음이니 박터지게 공부해야 한다.
그리고 서로의 레벨이 어느정도인지 모르니 당연히 최선을 다했다.
중학교 첫시험에서 완패. 반에서 13등했다. ㅠㅠ
당시 중학교 한반의 인원은 70명. 베이비 부머 세대들에게는 출석번호 70번쯤이야 다들 익숙할 거다.
지금은 꿈도 못꾸는 인원이지만...
3.
당시 중고등학교는 남녀공학이 드물었는데 내가 다녔던 중학교는 남녀공학이었다.
물론 남,녀 반은 구분되어 있었지만 말이다.
중학교 2학년 어느날 복도에서 낯익은 여학생을 한명 보게 되었다.
명찰을 보니 맞았다.
바로 첫사랑의 한살터울 동생이었다.
떨리는 마음에 인근 초등학교를 졸업한 친구에게 물었다.
나, "야, 너 혹시 이연희라고 알아?"
친구, "새끼야, 걔 몰라? 빙신~ 인기투표하면 걔 3등안에 들어가는 애야..."
어라, 나만 모르고 있었던 거다. ㅠㅠ
근데 문제는 허들이 너무 높다.
걔는 누구나 다 아는 미모의 여학생, 나는 반에서 가까스로 10등내외에서 빌빌대는 평범한 학생...
그리고 나서야 가끔 운동장에서 복도에서 그녀를 볼수 있었다.
정말 눈부신 미모였다. 하지만 그녀는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느낌... 아니 못알아봤다..
하긴 머리 박박 밀고 다녔고 비리비리 삐적말라서 병아리가 비옷입은 듯 긴소매 검은 교복을 질질 끌고 다니는 찌질이를 알아봤다고 해도 아는척이나 했겠나 싶다.
섭섭하긴 해도 어쩔수는 없는 일.
나만 마음에 담아두었을 뿐인걸 어쩌겠나.
4.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고등학교는 남자고등학교. 이제는 잊고 살겠지 했지만 사춘기 시절 짝사랑이 쉽게 잊혀지겠는가.
마음속에서는 그녀의 자리가 점점 커져갔다.
고등학교에서는 중학교때와는 다르게 많은 친구들과 어울리고 인생 최고의 3년을 보내게 된다.
2학년 겨울, 가까운 친구들에게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내기로 하고 한장 한장 열심히 그렸다.
당시에도 바른손카드, 일부 백화점에서는 미국 홀마크 카드를 판매하기도 했지만 학생이 무슨 돈이 있었겠나...ㅎㅎ
그러다가 무슨 똥배짱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첫사랑 그녀에게도 한장 보내기로 했다.
주소와 연락처는 중학교 졸업앨범위에 있었으니까.
그렇게 카드는 보냈지만 그녀에게서는 아무런 답장도 없었다.
허무했다.
5.
대학입시를 치렀다.
집에서 부모님과 약속을 하나 했었다.
명문대 공대까지는 인정, 하지만 명문대 공대를 못가면 지방 의치대를 가라는 게 부모님의 주장.
난 수학을 못했지만 공대를 가겠다는 신념.
결국 엄청나게 어려웠던 그해 수학문제로 인해 내 꿈은 산산히 부서졌다.
결국 지방살이를 하게 되었다.
적어도 명문대에 들어갔다면 그녀에게 전화해서 한번 만나자고 해볼수 있을거라는 기대감은 산산히 부서진거다.
들리는 소문에 그녀는 명문대에 진학했단다.
이구 내팔자야....
6.
난 비위도 좋다.
명문대에 진학한 친구 만나겠다고 거길 또 쫒아갔다.
비오는 식목일 다음날이었으니 4월6일이다.
명문대 답게 엄청난 넓이의 학교다.
학교 정문에서 학생회관까지 걸어가는데 숨이 턱에 찰 정도...
친구 만나서 수다 떨다가 녀석은 수업들어갔다 온다 해서 학생회관에 있는 음악감상실에 앉아 책보며 기다리기로 했다.
복도측에 앉아 음악들으면서 책보는데 누가 쓱 지나간다.
여학생이다. 무심결에 올려다 봤는데 한눈에 알아봤다. 내 첫사랑 그녀였다.
중학교때는 아무런 용기도 내지 못했던 내가 무의식적으로 일어나 그녀를 따라갔다.
그리고 비오는 학생회관 입구에서 우산을 펼치려는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나, "혹시 연희 아니니?"
여학생, "어? 선일아..."
그녀는 한눈에 날 알아봤다.
미국 영화 같았으면 그자리에서 뽀뽀라도 했겠지만...
나, "기억하는구나..."
연희, "당연하지... 너 아직도 콜라 못마셔?"
나, "아니, 지금은 잘 마셔..."
연희, "너 전학가고 길에서 몇번 봤는데 모른척하더라?"
나, "너 봤었어?"
연희, "그럼 보이는데 안보냐?"
몇마디 나누다가 같이 학교를 나와 커피숍에 가서 이야기했다.
읽고 있는 책이야기, 음악이야기 같은것도 하고 어렸을 때 이야기도 하고
어떻게 같은 동네로 비슷한 시기에 이사했는지도 이야기하고
가족들 안부도 물어보고...
나는 꿈을 꾸는 듯 했다.
7.
하지만 허들은 여전히 존재했다.
명문대와 지방대.
쉽게 넘을 수 있는 허들은 아니었다.
다만 가느다란 인연의 끈은 놓고 싶지 않았다.
당시에는 리포트용지에 편지를 써서 그걸 접어 대학학보의 묶음용 띠지로 쓰면 반값 우편요금으로 편지를 보낼수 있었는데
아마 우체국에서도 그걸 알면서도 묵인해줬던 것 같다.
뭐 그렇게 꾸준히 매주 학보를 주고 받으면서 소식을 주고 받는게 고작이었다.
다만 차이점은 나는 일주일에 4통정도의 편지를 그녀에게 쓰고 있었다.
그리고 한통도 빼지 않고 모두 보냈다.
낯간지러운 내용들이었지만 그것도 내 진심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다가 첫 여름방학.
하지만 그녀에게 전화를 할 용기도 없었고 그녀 또한 내게 전화한통 하지 않았다.
바쁠거야... 그래... 바쁠거야...
그러다가 개강을 하고 가을이 시작되었다.
다시 보내기 시작한 편지와 학보....
그녀가 보낸 학보에 짤막한 글이 적혀있었다.
'언제까지 학보만 보낼거야? 올라오면 전화할 것.'
그 한줄로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가을, 가장 잔혹했던 가을이 시작된다.
8.
서울에 올라와 전화를 한것은 9월30일.
국군의 날, 개천절이 끼어있는 연휴.
개천절에 만나기로 한 우리는 명동극장에서 재개봉했던 프랑스 영화 '남과여'를 같이 보고
명동에 있던 커피전문점 파라솔에 가서 블루마운틴도 마셨다.
영화이야기, 음악이야기...
그리고 그날 나는 고백했다.
유치원 7살 짜리가 또래 아이에게 반했고 그 마음은 13년이 지난 지금도 변함이 없다고...
그녀는 말없이 커피잔만 만졌다.
어떤 의미였을까...
다만 거절당한 건 아니었다.
이후 그녀는 내가 다니던 학교를 보고 싶다고 내려와주기도 했으니까.
그게 10월말 쯤이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던 듯...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배웅해준 그녀의 뒷모습을 보면서 왠지 더는 어렵겠다는 직감을 했었다.
그리고 2년뒤 그녀의 가족들은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된다.
그 2년동안 또 다른 일이 생긴다.
9.
그해 겨울은 생각하고 싶지 않다.
인생 최악의 시기.
그리고 이듬해 운전면허학원에 다닐 즈음이었는데,
사실 운전면허는 이미 땄지만 당시에는 자동차를 운전해볼 기회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학원에서 일하던 형님께 술사주고
아침에 새벽에 나가 교습소 차량들 시동걸어놓고 학원선생들 출근하기 전에 트랙을 몇바퀴 운전하는 재미로 면허학원에
출근하다시피 하고 있었다.
학원에서 놀다가 집에 왔더니 어머니가 난리를 치신다.
기집애한테서 전화왔었다고, 누구냐고... 학교 후배라던데...
난 고개를 갸웃거릴수 밖에... 누구지?
난 사귀는 사람도 없었고 당시 상황이 누굴 만나고 자시고 할 일이 없었다.
다시 전화한다고 했으니까 알아서해, 너 연애질 하고 다니면 줄을줄 알아...
울엄마 무섭다...
10.
정확히, 전화한다던 저녁 6시에 전화가 왔다.
나, "여보세요.."
여자, "선일오빠 댁이죠..."
나, "제가 선일인데요..."
여자, "저 혹시 기억하세요? 저 지희예요..."
알지, 당연히 알지... 첫사랑 그녀의 한살터울 동생...
나, "아, 지희 너구나, 정말 오랫만이다. 잘 지내?"
지희, "네, 잘 지내요. 오빠 그런데 저 오빠 좀 만나고 싶은데 시간 괜찮아요?"
나, "응, 괜찮아, 내일 볼까?'
그리하여 다음날 보기로 하고 종로에서 그녀를 만나게 된다.
11.
종로에서 만났다.
그녀는 발랄하고 쾌활한 성격. 언니와는 상반된 성격이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으면서 지희는 연희의 비리를 낱낱이 나에게 고해바쳤다.
오빠는 언니의 수많은 남자들 중 한명이다. (요즘 전문용어로 어장관리되는 고기한마리...ㅠㅠ)
언니의 진면목을 오빠는 모른다...
그리고 자기는 내가 언니한테 보낸 편지들을 훔쳐보면서 고3시절을 보낼수 있었다.
오빠같은 사람을 그렇게 대하는 언니가 자기는 이해되지 않는다..
대충 이런 이야기였다.
연희가 약간 살집이 있는 기품있는 스타일이라면 지희는 날씬하고 탄력있는 몸매, 약간 색기가 있는 얼굴이다.
호불호는 있겠지만...
그날 연희에 대한 뒷담화, 그리고 지희가 집에서 받고 있는 부당한 처우들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는 걸 들었다.
형제가 많은 집에서 흔히 생기는 그런 것들이라 이런저런 이야기해주고 위로해주는 수밖에...
그리고 시간이 늦어 집에 데려다주었는데 지희는 집에 들어가기 싫다고 잠깐만 놀이터에 같이 있어달라고 했다.
그네에 앉아 있던 나에게 지희는 안겨왔고 그녀는 내 입술에 키스했다.
내 첫키스...
너무도 당돌하지만 달콤했고 잊을수 없는 키스였다.
지희, "오빠, 나 오빠하고 자고 싶어..."
허걱... 충격이었다. 당시에 여자가 먼저 남자에게 같이 자자고 ??
정말 나는 열심히 설득했다. 너 착한 아이야. 좋은 딸이 될수 있어... 누구든 힘든 시기가 있어...그러니 오늘은 부모님 걱정하니까 집에 들어가라고...
잘 설득해서 들여보내긴 했지만 집에 오는 동안 계속 지희와의 키스 감촉은 각인이라도 된 듯 했다.
12.
글이 너무 길어지는 듯 해서 요약하면...
이후 지희와 몇번인가 만나면서 그녀의 몸 전체를 알게 된다.
종로 레스토랑 룸에서 몇시간이고 그녀를 애무하고 키스하고 시간을 보냈다.
어려운 철학이야기, 문학이야기 ..
그딴건 개나줘버렷.
그냥 서로 탐닉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몇년 뒤에나 깨닫게 되는데 그녀의 가슴과 피부, 몸매, 그리고 성기의 모양은 내가 보았던 어떤 여자보다 아름답고 섹시하고 완벽했다.
다만, 그녀는 고등학교 때부터 걸레로 유명했고, 눈치는 채고 있었지만 정말 그랬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지금 나에게 연희와 지희 둘중 누가 더 그립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지희가 더 궁금하고 보고싶다.
한 1년쯤 학보도 주고 받고 편지도 보내주고 하면서 관계는 지속되었지만,
첫사랑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 동생과 섹스를 한다는 건 당시 생각으로는 절대불가라고 생각했었다.
뭐 지금이라면 거절할 이유도 없다.
그러고 보니 처제 따먹었다는 글을 보면 왠지 동질감을 느끼는 것도 이런 경험때문이 아닐까 싶긴하다.
13.
대학동기 중에 재벌집 아들이 한명 있었다.
사실 당시에는 재벌집 아들인건 몰랐다고 이야기하는게 맞겠다.
다들 허름한 시골방에 하숙할 때 그 친구는 신축한 단독주택을 통째로 전세내서 쓰고 있었으니 말이다.
녀석은 독일어를 배운 적이 없어서 내가 독일어를 가르쳐주게 된게 계기가 되서 친해졌는데...
대학 신입생 시절 누구나 술마시면서 서로의 첫사랑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있을거다.
우리도 그랬다.
나는 연희에 대해 이야기했고 그녀의 지적인 아름다움과 순수함을 찬양했다.
하지만 녀석은 그딴거 다 필요없다, 자기 여친은 학력고사 끝나고 나이트 클럽가서 놀고 데리고 잤다는거다.
와... 차원이 다르다.. 잘사는 애들은 이렇게 노는구나..싶었지.
그러면서도 우린 서로의 첫사랑(녀석에게는 첫사랑이 아니었겠지만)에 대해 존중해주면서 늦은 시간까지 술퍼마셨다.
14.
3년뒤 학생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었는데 누가 내 뒷통수를 후려친다.
잘사는 친구, "야, 선일아, 너 연희 알아?"
나, "밥먹는데 갑자기 때리고 지랄이냐? 당연히 알지... 너한테도 이야기했잖아.. 내 첫사랑..."
잘사는 친구,"와...씨발, 너 오늘 나랑 술 좀 먹자."
그길로 오후 수업 째고 술집에 가서 이야기했다.
결국 우리가 첫사랑을 이야기했던 날 우리는 한여자를 놓고 이야기했던 거였다.
그 친구는 연희에 대해 특별한 감정이 없었기에 데리고 놀다가 시큰둥해지면서 멀어졌다고 한다.
그러다가 일본 잡지를 보다가 연희가 거기에 모델로 나왔길래 읽어보니 맞더라는 거다.
그래서 문득 명문대 다녔던 내 첫사랑 이야기가 생각나 혹시나 하고 물어봤다는 거다.
기막힌 우연이다.
여자는 양면성을 가진다. 엄마와 창녀, 천사와 악마 같은 극단적 양면성.
아니다, 우리 인간들은 누구가 양면성, 혹은 그 이상의 다면성을 가지고 산다고 생각한다.
상대에 따라 보여주고 싶은 면을, 까고 싶은 카드만 까보인다는 거다.
일본 만화에서 처럼 전생하게 된다면 슬라임이 아닌 이상 이런 경험은 모두 가져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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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못된 년이 누구게요?
바로 나빼고 다 준 년입니다.
블루메딕 후기작성시 10,000포인트 증정

비아그라 직구
디딤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