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피기 좋은날 010 -----
네코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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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간전
바람피기 좋은 날 010 -----
내가 들어가자마자 깜짝 놀라는 정희씨의 모습..
하긴 비를 쫄딱 맞아서 지금 내 몰골이 말이 아닐 테니까..
“아니..왜...”
정희씨가 말을 잇지 못한다.
“나 괜찮아요. 그냥 비 좀 맞았는데 뭐..앉아요..이야기 좀 하고 싶어서..”
“어..네...”
정희씨는 괜찮다는 나의 손짓에 나에게 다가오려다 자리에 앉았고, 난 정희씨의 앞에 앉아 한참을 정희씨의 얼굴을 바라봤다.
어디서 어디까지..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털어놓아야 할지.. 어떤 말부터 꺼내야 할지.. 오는 동안 한참을 고민했지만 아직도 마땅히 괜찮은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아내분 만나셨어요...?”
여자의 직감인가.. 난 한 마디 말도 꺼내지 않았는데 정희씨는 차분한 어조로 말을 꺼내며 잠시 앉아서 기다리라며 차를 꺼내왔다.
“마셔요..지금도 몸이 조금 떨리는데 그렇게 추워서 무슨 말이라도 하겠어요..”
너무나 차분한 정희씨의 모습에 오히려 난 내가 너무 긴장한 거 같아 웃음이 나왔고, 정희씨가 건네준 따뜻한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온 몸으로 퍼지는 따뜻한 기운.. 비로소 떨리던 몸이 이제 떨리지 않고, 온 몸의 긴장이 풀어지는 것 같았다.
“이제 좀 살 거 같네요..”
“그럼 다행이구요..”
“하아..몸은 진정됐는데 머리는 엉망진창이네요.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야기를 꺼내야할지 모르겠어요”
“그냥 말하고 싶은 걸 마음껏 이야기해요. 숨기지도 말고, 더 보태지도 말고..”
“단순한건데 그게 어렵네요..마음껏 이야기 하는 게..”
“이제 선택을 해야 할 거 같아서 그런 거에요? 아내인지 나인지? 그런 거라면 주제넘지만 한 마디 말만 할게요. 어느 쪽을 선택하더라도 민수씨는 후회할 거에요. 내가 됐든지, 아내가 됐든지.. 아닌가요?”
“......”
정희씨의 말에 뭐라 반박할 말이 없다. 너무나 맞는 말을 하고 있었기에..
“날 선택하면 아내에게, 아내를 선택하면 나에게 미안하겠죠. 그래서 후회할까봐 자꾸 망설이는 거잖아요. 그렇다고 지금처럼 나와 아내를 모두 가지고 싶은 그런 마음으로 평생을 살아가지도 못할테고..그건 세 사람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 될 테니..”
“그렇겠죠..”
“그럼 선택은 나와 있는 거잖아요. 누구를 선택하든 누군가는 상처받을 거에요. 그걸 두려워 하지 말아요. 그걸 두려워하는 순간 아무런 선택도 할 수 없어. 자신을 믿어요. 자신의 선택을.. 아내가 됐든 내가 됐든 버림받는 사람은 분명히 민수씨를 많이 원망하고 미워하겠지만..결국 그게 자기에게도 옳은 선택이었단 걸 나중에 알게 될 거에요. 세 명이서 함께 하는 건 소설 속에서나 나오는 일이니까.. 질투가 많은 여자라는 동물이 그걸 허락할 리 없잖아요. 나도 민수씨가 아내와 만난다 생각하면 얼마나 질투가 나는데...아내도 나와 이런 관계를 계속 가져가는 걸 허락할 수 있을 리 없잖아요..”
현명한 사람..아니 현명한 사람들..
나를 빼고 아내와 정희씨는 모두 너무나 현명한 사람들이었다.
나 혼자 머저리에 멍청이라 그저 고민하고 또 고민할 뿐..
미련하게 모두 가질 수 없는 걸 자꾸 모두 가지려고 노력해서, 자꾸 모두를 힘들게 할 뿐..
“무슨 말인지 알 거 같아요. 내가 얼마나 바보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도 알 거 같고..”
“그럼 다행이구요...내 말이 조금이라도 선택을 할 수 있게 도와준 거라면 정말 다행이에요..”
“마지막으로 그럼 내 부탁 하나만 들어줄 수 있어요..”
“마지막이라..역시 아내에게 가는 건가요?”
정희씨의 입가에 쓰디쓴 웃음이 맴돈다.
“아니..아직은...잘 모르겠네요. 그래서 마지막 부탁을 하고 싶은 거에요”
정희씨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계속 말을 해보라며 고개를 끄덕인다.
“나와 함께 여행 가요... 같이 여행 가서 마지막으로 확인해보고 싶어. 내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아내인지..당신인지..”
정희씨는 내 말에 한참을 골똘히 생각하더니 아무런 말없이 희미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나 오늘은 집에 들어가서 자고 싶어.. 미안한데 오늘은 혼자 있어요..”
“민수씨...”
“네...?”
“그거 알아요. 정말 민수씨 이기적이고 나쁜 사람이란 거..오늘은 아내를 보고 와서 갑자기 아내가 너무 보고 싶고 그리워서 나와 함께 할 수 없는 거잖아요...그렇죠? 나쁜 사람...”
“그러네요....”
난 정희씨를 보며 희미하게 웃어주었고, 정희씨는 살짝 눈물이 고인 모습으로 어서 가라며 손을 휘저었다.
나쁜 사람... 비로소 알 거 같다. 내가 얼마나 나쁜 사람인지를..
이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정희씨의 입으로 그 말을 들으니 비로소 알 거 같았다.
아내가 나에게 너무나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했던 말이..
지금 정희씨가 나에게 나쁜 사람이라고 하는 말이..
난 정말 나쁜 사람인가보다. 모두를 힘들게 하는..
그걸 인정하고 나니 비로소 허탈한 웃음이 터져 나왔고, 도저히 웃을 상황이 아니었는데 정희씨 앞에서 웃으며 난 뒤돌아 나왔다. 울고 있는 정희씨를 두고..정말 나쁜 사람처럼..
한참을 달려서 도착한 아파트.. 차를 주차하고 올라가는 이 길이 너무나 낯설다.
거의 이주 만에 와서 그런 것일까..아니 이주도 더 넘은 거 같았다.
요 근래 들어선 정말 거의 정희씨의 집에서 살다시피 하고 있었으니까..
어딘가 낯선 풍경.. 하지만 습관이란 무서운 것일까.. 내 손은 익숙하게 도어락 비밀번호를 눌렀고, 도어락이 해제되는 소리와 함께 난 안으로 들어갔다.
불이 꺼진 깜깜한 집 안..
벌써 아내가 떠난 지 3개월이 넘어가고 있었는데 여전히 낯설다. 너무나..
늘 환하게 불이 켜져 있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면 아내가 안방에서 혹은 거실에 있다 환한 미소로 나를 반갑게 맞이해주곤 했는데 이제는 문을 열고 들어와도 깜깜하고 조용한 정적만이 집 안을 감싸고 있었다.
난 깊은 한숨과 함께 천천히 한 발 한 발 내딛어 안으로 들어가 잔뜩 젖어 너무나 무거운 옷을 모두 벗어 던지고, 욕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곤 샤워기를 틀어 따뜻한 물을 온 몸에 끼얹었다.
나른한 기분.. 언제나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는 건 너무나 기분이 좋다.
그리고 그 순간 습관적으로 나는 욕실 문을 바라봤다.
하지만 아무도 없다.
원래 지금쯤이면 아내가 귀엽게 고개를 내밀고 수건이랑 속옷은 문고리에 걸어놨어 하고 들어와야 하는데..
그런 아내는 당연히 지금 없는데.. 나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고개를 돌려 버리고 말았다.
“후우.....”
한 번씩 느껴지는 너무나 익숙하고 당연하다 생각했던 아내의 손길이 닿아있는 모든 부분들..
사실은 그런 게 아내가 떠나고 너무나 절실히 느껴져서 집에 들어올 수 없었다.
집 안의 모든 곳에.. 아내의 손길이 안 닿아 있는 곳이 없었기에..
항상 덤벙대던 나의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챙겨주던 아내였기에..
쏟아지는 물줄기를 맞으면서 떠오르는 추억들.. 그 시간들..
나도 모르게 웃음이 세어 나온다. 바보처럼..
“난 정말 바보 같은 놈인 거 같다. 정말 그렇게 느껴진단 말이지..”
난 혼자 미친 사람처럼 중얼 중얼거리면서 몸에 젖은 물기를 대충 닦아내고는 욕실 밖으로 나와 안방으로 들어가 대충 스킨로션을 바르고 벗은 몸 그대로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었다.
오랜만에 느껴지는 포근한 이불의 감촉..
예전이라면 옆에 아내도 같이 누워 있을텐데..
내가 조금 손을 뻗어 나에게 끌어당기면 아기처럼 나에게 다가와 내 품에 폭 안길 텐데..
하지만 아무리 팔을 뻗어 보아도 이제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아내의 살결..
쓴 웃음이 나온다.
그리고 이어지는 진동소리..아내의 문자였다.
요즘 휴대폰 상태가 안 좋아서 그런 것인지, 오늘 비까지 맞아서 더 그런 것인지 휴대폰은 지 멋대로 벨소리에서 진동모드로 되어 있었고 그래서 집에 오는 동안 주머니 안에 들어 있어 문자가 온 지도 몰랐던 것이다.
-잘 들어갔어?
-비 안 맞았지..샤워해? 답장이 없네..
-통화 가능해...?
마지막으로 온 문자..그 문자는 고작 3분도 지나지 않은 문자였다.
나는 황급히 휴대폰을 들어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들리고 전화가 걸리자마자 바로 받는 아내.. 아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도 없는 집 안에서 아내의 전화를 받다니..어딘가 기분이 묘하다.
“샤워 했어? 비는 안 맞았고..?”
“어..너가 우산 놔두고 갔잖아. 그래서 안 맞았지..”
“그래..잘 됐네..”
“무슨 일 있어..?”
“아니..일은 무슨..그냥 오늘 내가 너무 금방 가버렸나 싶어서 조금 미안하기도 하고...”
“미안하긴..내가 미안하지..붙잡았어야 했는데..”
“그게 맘처럼 되나.. 오빠 맘이 그게 아니였나 보지..”
“아니야 그런 건 다만.. 아직까지 결정을 못 한 건 사실이니까.. 널 너무나 좋아하지만..사랑하지만..그 사람도..”
“됐어..바보..멍청이...나랑 연애할 때도 바보 멍청이 같았는데 변한 게 하나도 없네. 사랑하는 여자 앞에서 다른 여자 이야기를 하는 바보가 어딨어..”
“그런가..그래..난 언제나 바보 같았지..”
“그래..난 그런 바보 같은 사람을 사랑했고..왜 오빠를 사랑했을까..그렇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힘들지 않았을텐데..”
“미안..정말..미안..이 말 밖에 할 말이 없어..”
“미안한 거 알면 정말 다행이구.. 실은 오빠가 정말 너무 많이 보고 싶었어. 어떻게 내가 그동안 참았나 모를 정도로..하루하루 오빠한테 달려가고 싶고..너무 보고 싶은데 꾹꾹 누르고 눌러서 또 참았어.. 오빠가 조금 더 편하게 결정할 수 있게..그래서 또 참고 참았는데 갑자기 너무 보고 싶어서 오빠를 찾아 갔어.. 서울에 일 있어서 갔다 그런 거 다 거짓말이야..바보..그걸 믿니.. 오빠가 너무 보고 싶어서 갔어..그래서 오빠 회사 앞에서 몇 시간을 기다리면서 망설였어..연락을 할까 말까.. 할까 말까..그러다 결국 못 참고 연락을 해버렸어. 아주 잠깐만 보고 가자 싶어서..”
“은주야....”
“잠깐 본 거지만 너무 좋았어. 오랜만에 봐서 막 설레기도 하고..오빠가 어떻게 변했나 궁금했기도 하고.. 좋아보여서 다행이긴 했는데 나 없어도 잘 사는 거 같아서 밉기도 했고...”
“.......”
“그런데 왜 바보같이 그런 말을 꺼내.. 말로라도 나 하나뿐이라고 그렇게 말해주지..가지 말라고 한 번만 잡지..왜..왜..”
아내의 목소리가 떨려온다. 또 다시 아내를 울렸다.
그리고 나 또한 눈물에 젖어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우리는 그렇게 한참을 휴대폰을 붙들고 서로 울먹였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때까지..울고 또 울었다.
“미안..괜히 전화해서 이상한 소리해서 힘들게 하고..”
“아냐 내가 미안하지...은주야..이런 말 믿을지 모르겠지만..조금만 더 기다려줘. 이제 결정을 내리려고. 그게 어떤 선택이 될지 모르겠지만..”
“그래..? 다행이네.. 오빠가 어떤 선택을 한다 하더라도 오빠 미워하거나 원망하지 않을게.. 빨리 선택하는 것이 오빠한테도 덜 힘들 테니까 잘 결정할 수 있길 바래..”
“그래..고마워...정말..정말 많이 고마워..”
“됐어..얼른 자.. 늦었다...”
“응..너두 잘 자구..”
아내 은주와의 전화, 정말 오랜만에 하루에 두 번이나 통화한 그 날 이후로 아내는 다시 문자나 전화를 하지 않았다. 마치 내 선택을 기다린다는 듯이..
다만 그 사이에 장인어른에게 정말 오랜만에 한 통의 전화가 왔다.
장인어른은 은주와 나에 대한 이야기는 일절 꺼내지 않고, 잘 지내고 있는지 회사는 어떤지 다른 잡다한 이야기들을 했다.
하지만 장인어른의 전체적인 목소리가 평소에 비해 가라앉았기에 난 마음이 좋지 않았고, 너무나 미안했다.
“뭐..별 다른 일이 없다니 다행이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은주는 잘 지내고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네..장인어른 걱정 끼쳐 드려서 정말 죄송합니다..”
“아니야. 걱정은 무슨.. 살다 보면 싸울 수도 있고 다 그런 거지.. 몸 건강 잘 챙기고..”
“네 장인어른, 장인어른도 건강 잘 챙기시구요”
“그래..들어가봐..”
오랜만에 장인어른과의 통화, 난 그 통화 후 못내 마음이 무거워 은주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미안하다고..장인어른 잘 보살펴 드리라고..
은주는 그 문자에 답장이 없었지만 복잡한 은주의 심정을 충분히 알고 있었기에 난 더 이상 은주의 답장을 기다리지 않았다.
그리고 정희씨에게 말했던 여행.. 난 그 여행을 차근차근히 준비하기 시작했다.
정희씨와의 어쩌면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를 이별여행 혹은 처음이자 새로운 시작이 될지 모를 여행을 위해 야근을 불사하며 회사에 남아 있는 업무들을 빠르게 처리했다.
겨울은 우리 업계에서 비수기라 다행히 내가 처리해놓고 가야 할 일들은 그리 많지 않았고, 일주일 조금 넘게 야근을 하니 내가 일주일 정도 자리를 비워도 충분할 정도로 일들은 모두 마무리가 되어 있었다.
최부장은 요즘 다시 사장의 엄청난 신임을 받고 있어서 그런지, 내가 별다른 사고를 치지 않고 일을 잘 하고 있어서 그런지 내가 신청한 일주일의 휴가를 흔쾌히 수락해 주었고 난 모두의 부러움을 사면서 일주일간의 휴가를 얻어 정희씨의 가게로 향했다.
가게 앞에 도착하니 벌써 가게 문이 닫혀있고, 어느새 준비를 모두 끝내고 나와 있는 정희씨..
“추운데 왜 밖에 나와 있어요”
“그냥요. 오늘 날씨도 화창하고.. 가끔은 차가운 공기를 쐬고 싶을 때가 있어요. 가게 안에만 있으니까..”
“그래요..얼른 타요”
“네..타야죠.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니까..”
“글쎄요..뭐..그럴 수도 있죠..”
“어디로 가요..?”
“그냥..달려요..목적 없이..”
“계획도 안 세웠구나..?”
“어..뭐..그렇게 되는 거에요?”
“그런거죠~ 원래 여행 계획은 남자가 세우니까..뭐..아무려면 어때요..출발해요~”
“네..”
계획도 목적지도 없는 여행..
정말 나에겐 아무런 계획도 목적지도 정해져 있지 않았고, 난 차를 출발시켜 무작정 수도권을 벗어나 서해안 도로를 타고 달렸다.
가다가 마음에 드는 곳이 있으면 잠시 서서 구경을 하고, 맛있는 것을 사 먹고..
다시 또 출발하고..정말 아무 것도 정해져 있지 않은 프리한 여행..
다행히 정희씨도 싫은 눈치는 아닌지 내 옆에서 연신 미소를 짓고 있었고..
우리의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여름의 타는 듯한 뜨거운 바닷가도 매력적이지만, 한겨울의 조용한 바닷가도 상당히 매력적이다.
사람이 별로 다니지 않는 조용한 바닷가에 찬바람이 불며 눈이라도 내리면 그런 낭만적인 분위기가 더욱 더 살게 되고, 누구와 오더라도 혹은 혼자 오더라도 뭔가 로맨스가 생길 것 같은 그런 느낌이다.
하물며 좋아하는 사람과 같이 하는 겨울 바닷가는 더 말해서 무엇하리..
차를 타고 가다 인적이 거의 없는 듯한 바닷가가 나올 때마다 우리는 차를 세우고 한참을 바닷가를 걸었다. 낮이든 밤이든 상관없이..
낮은 낮대로..밤은 밤대로 매력이 있는 게 바다이니까..
“좋네요..참 좋아..”
“나도..나도 좋아요...”
그러다 눈이 내린다. 바닷가의 날씨는 언제나 종잡을 수 없으니까..
“와 눈 온다..”
“그러게요..일기 예보에는 눈 온다는 말 없었는데..”
“예쁘다..저기 봐요..바다에 닿으니까 바로 녹아서 사라져요..”
“그러네요..정말 예쁘네요..”
바다의 수면에 닿자마자 사르르 녹아내리는 눈.. 그리고 우리 주위로 하얗게 백사장을 물들이는 눈.. 마치 로맨스 영화의 주인공이 된 것만 같다.
“벌써 이렇게 같이 여행한지 삼일이나 지났어요..알아요?”
“그런가요? 시간 참 빠르네요..”
“민수씨..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주고 싶어서 물어보진 못했지만 솔직히 궁금하네요...결국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나도..궁금해요..내가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내가 미리 대답해줘요...?”
“.......”
“아마 나는 저기 바다에 닿는 눈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아내는 민수씨에게 우리 주변에 지금 쌓이고 있는 눈 같은 사람이 아닐까 싶어요. 수많은 추억이 겹겹이 쌓인 사람.. 사람은 추억을 가지고 살아간다고 하잖아요. 그런 많은 추억을 가진 사람을 놓기란 쉽지 않잖아요..”
정희씨가 저만큼 먼저 걸어간다. 가는 걸음걸음마다 하얗게 변하는 백사장 위로 정희씨의 발자국이 찍힌다.
나는 정희씨의 이야기를 듣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그 말에 어느 정도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여행을 같이 하고 있는 건 정희씨였지만, 사실 이 곳은 아내와의 연애시절에도 그리고 결혼하고 나서도 많이 왔던 바닷가였다.
아내는 경북의 깊은 산골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20살이 되기 전까지 바닷가를 딱 두 번 밖에 가보지 못했는데 그 바닷가가 너무나 인상적이고 좋았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와 연애를 하며, 또 결혼을 하고 나서도 우리의 여행은..휴가는 항상 바닷가였다.
바다를 너무나 좋아하는 사람..
난 정희씨와 여행을 왔지만 이번 여행을 하면서 오히려 아내를 그리고 아내와의 추억을 수도 없이 떠올리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도..
아내와의 추억이 이렇게 많았나 싶을 정도로..그 어딜 가도 아내와 함께 했던 많은 것들이 가득 가득 쌓여 있었다.
“안 올 거에요..? 나 먼저 가요”
“기다려요. 같이 가요..”
걸음이 얼마나 빠른지 벌써 저만치 멀어져간 정희씨가 해맑게 웃으며 나를 부른다.
사랑스러운 사람...사랑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사람..
아내와의 수많은 추억이 쌓이고 또 쌓여있고..아직도 아내를 많이 사랑하지만 내가 사랑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너무나 예쁘고 예쁜 사람..
어쩌면 저 사람을 결국 울리게 만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 사실이 나를 너무나 힘들게 했다.
이미 정희씨의 말대로 결국은 내가 아내에게 돌아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이 하루가 지날수록 더욱 더 확고해지고 있었기에 마음이 아파왔다.
정말 이번 여행이 처음이자 마지막 여행이 될 지도 모를 것만 같아서..
“이거 봐요 예쁘죠”
“그러네요..”
언제 바닷가에서 찾은 건지 정희씨는 정희씨의 눈만큼 맑고 예쁜 조약돌을 집어 들어 나의 손에 올려놓았다.
“선물이에요~ 내가 선물했으니까 오늘 저녁은 민수씨가 쏘는 걸로..!”
“그러죠~ 좋은 선물 받았으니까 저녁은 제가..”
정희씨가 다시 환하게 웃는다. 정말 그늘이라곤 이 사람에게 존재할까 싶을 정도로..
늘 나에게 밝고 환한 모습만을 보여주는 그녀..
“나 배고파요. 벌써 6시네~ 얼른 저녁 먹으러 가요”
“그래요. 뭐 먹고 싶어요? 회? 아님 매운탕? 아님 이 근처 근사한 밥집 있으려나”
“어디라도 좋아요..”
“에이~ 정희씨 먹고 싶은 거 먹어야죠”
“난 정말 상관없어요. 그냥 가다가 마음에 드는 곳 있으면 들어가요”
“그래요 그럼..”
정희씨와 난 한참을 걸었다. 둘 다 우유부단한 성격이라서 그럴까..
늘 이렇게 저녁 메뉴 하나 고르는 것도 서로 미루다 힘들어서 끝은 가다가 마음에 드는 곳이 있으면 들어가자로 결론이 나곤 했고, 고집은 또 쎈 게 비슷해서 마음에 안 드는 곳은 곧 죽어도 가기 싫어해서 이렇게 정말 먹을 곳이 많이 없는 곳에서는 한참을 걷곤 했다.
“어..저기 왠지 괜찮아 보이는데요..”
“어디요..? 아 저기 불빛 비치는 저 식당이요?”
“네..”
커다란 바위 위에 지어진 3층의 어딘가 분위기 있어 보이는 식당..
솔직히 말하면 벌써 30분 넘게 걸어서 조금 힘들기도 했고, 멀리서 봤을 때 뭔가 분위기 있어 보여서 괜찮을 거 같은 느낌이었는데 가까이서 봐도 나쁘지 않아 정희씨에게 가보자고 했는데 다행히 정희씨도 싫은 것 같지는 않은 눈치였다.
블루메딕 후기작성시 10,000포인트 증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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