넣어 키운 걸그룹 20
멍멍이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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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23:30
복도로 나오자마자 여자화장실에서 세면대 수도 소리가 들렸다.
지금 2층에서 촬영 중인 곳은 우리 팀 밖에 없는데···.
여자화장실은 왼쪽으로 다섯 발자국 정도 떨어져 있었고, 스튜디오로 가기 위해서는 그 앞을 지나쳐야한다.
나는 마음속으로 ‘영상 소리가 여자화장실 안까지 들렸을까?’ 가늠을 해보며 스튜디오를 향해 발길을 옮겼다.
―저벅저벅
밖에서는 화장실 내부가 보이지 않는 구조였다.
내가 여자화장실 앞을 지날 때까지 손 씻는 소리는 계속됐고, 다행히 사람은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어? 대표님!”
움찔!
화장실에서 나온 여자가 나를 불러 세웠다.
엄승미 작가였다.
“어, 예. 작가님.”
포커페이스, 포커페이스, 라고 마인드컨트롤을 해보지만 귀가 화끈 달아오르는 게 스스로 느껴졌다.
은은한 향수 향을 풍기며 다가온 엄 작가가 안쓰러운 표정으로 말을 건넨다.
“에구, 많이 피곤하시죠?”
“아니에요. 식사는 하셨어요?”
“예, 저는 먹었어요. 근데 대표님은 다 안 드시고 나가셨다고 업키걸 멤버들이 걱정하던데요?”
“아, 그래요? 급한 전화가 와서요.”
“그러셨구나. 이제 한 씬 남았으니까 화이팅 하쎄요.”
“옙, 작가님도 화이팅.”
태연하게 대화를 하고는 있지만 오만잡생각이 다 든다.
만약에 신음소리가 들렸다면 나를 뭐라고 생각할까.
뭐라고 생각하긴, 화장실에서 야동이나 보는 놈으로 생각하겠지.
그것도 촬영 중간에 밥 먹다 말고 다급하게 나가서···.
엄 작가와 나는 서로의 걸음걸이에 보조를 맞추며 둘 다 어색한 발걸음을 하고 있었다.
그녀가 잠시 끊긴 대화를 잇는다.
“아, 맞다. 업키걸 멤버들이 금일봉이랑 점퍼 선물한 거요.”
“예.”
“그거 미담 식으로 보도 자료 만들어서 기사 내보내도 될까요? 시상식 홍보용으로요.”
“뭐 저희는 상관없죠.”
“오케이, 그럼 보도자료 만들겠습니다.”
그녀는 핸드폰을 두 손으로 소중하게 잡고 양손 타이핑으로 메모를 했다.
해달이 가슴 위에서 조개를 깨는 모습이 연상돼 속으로 피식 웃었다.
줄무늬 셔츠의 소매를 한 번 접어서 손목이 드러나 있었다. 얇은 팔찌가 채워진 손목이 참 가늘고 하얗다.
네일아트를 하지 않은 맨 손톱이었는데 손톱의 바디도 길고 예쁘······.
아··· 젠장.
나 진짜 미쳤나보다.
지난 2년 동안 아무 감정도 없던 엄 작가에게도 성적인 상상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건 아니다.
자책하며 짧게 고개를 흔드는데 핸드폰 메모를 마친 그녀가 내 얼굴을 보며 싱긋 웃는다. 스튜디오 앞에 거의 도착했을 때였다.
“대표님, 언제 술 한잔 해요.”
비약할 것 없다.
방송국 사람들을 만나다보면 으레 듣는 말이고 나 역시 자주 하는 말이다. 그리고 그녀와는 이미 프로그램 회식을 하면서 몇 번이나 술잔을 기울인 사이기도 했다.
“예, 좋죠. 좋은 콘텐츠 있으면 연락 주세요.”
“어? 저 지금 사심으로 말씀드린 건데.”
윽.
몸 쪽 꽉 찬 직구가 훅 들어오네.
내 몸에서 무슨 페로몬이라도 발산되는 건가?
내가 알고 있는 그녀의 성격상 이런 말을 농담으로 할 사람은 아닌데 말이다.
“아, 여자 친구 있으신지 물어보는 게 우선이구나. 대표님 여자 친구 있으세요?”
이봐. 역시 농담이 아니라니까.
나는 적당히 웃음 지으며 대꾸했다.
“아뇨, 여자 친구는··· 없는데··· 없어요.”
그녀도 귀엽게 코를 찡그리며 화답한다.
악의가 느껴지지 않은 장난 섞인 말투였다.
“하긴, 여자 친구 있으신 분이 화장실에서 야동을 보진 않겠죠. 많이 외로우셨나 봐요.”
공창남이 되어 버린 나
젠장, 들었구나.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생각해두었던 변명거리를 태연하게 읊었다.
“아아, 그거요? 친구들 단톡방에 올라온 건데 뭔가 하고 눌러봤다가 야한 거라서 바로 껐어요. 소리가 거기까지 들렸나 봐요.”
“어? 진짜 야한 거였어요?”
엄 작가는 도리어 당황한 기색으로 되물었다.
“저는 그냥 신음소리 비슷하길래 장난으로 넘겨짚은 말인데···.”
“아, 그러셨구나. 야동 맞아요, 하하하하.”
“저도 가끔 친구들 단톡방에 올라오는 야짤 때문에 식겁할 때 많아요. 저한테 연예인 유출된 거 없냐고 막 물어보고, 어후.”
“으응, 여자들도 그러는구나.”
“있는 것들이 더 한다고 시집간 애들이 더 밝히더라고요.”
“그렇군요.”
내가 왜 촬영 도중에 엄 작가랑 야짤 얘기를 하고 있는 걸까.
생각해보면 뭔가 쌩뚱 맞은 광경이었다. 그리고 이상했다.
마치 직장 동료와 담배를 피우면서 급속도로 친해지는 것처럼, 지난 2년 간 쌓은 관계보다 지금 몇 초간의 대화가 그녀와 나의 사이를 더 돈독하게 만들어 준 것 같은 느낌이다.
음담패설의 힘인가.
나는 능청스럽게 물었다.
“혹시 술 한잔 하자고 했던 것도 장난이에요?”
“아뇨, 그건 진심이죠.”
“왜죠?”
“푸흡, 왜긴 왜예요. 대표님이랑 저랑 그 정도 사이는 되지 않아요? 그래도 알고 지낸 게 몇 년인데.”
섹스.
섹스인가.
그녀도 생체 딜도를 원하는 건가.
내가 이성에게 인기가 없는 편은 아니었다.
서른 이후로는 결혼을 전제로 연애를 해야 할 나이라서 신중하게 접근을 할 뿐이었지, 내게 관심을 보이는 여자들은 늘 존재했고 내가 마음만 먹으면 이성을 만나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카페나 술집에서 여자에게 먼저 헌팅을 당한 적도 있고 어딜 가든 잘 생겼다는 칭찬을 듣곤 했다.
하지만 요즘에 받는 관심은 그것과는 뭔가 다른 느낌이다.
티나 때도 느꼈던 거지만, 여자들이 김윤호라는 존재 그 자체보다는 나의 성적인 면에 이끌려서 대시를 하는 기분이다.
마치 동물 세계에서 발정기에 접어든 암컷이 암내를 풍기며 수컷을 유혹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거 내가 너무 들이댔나. 갑자기 술 마시자는 건 좀 그렇죠···?”
내가 곧바로 대화를 이어가지 않자 엄승미는 조금 소심해진 모양이다.
팔을 귀엽게 휘저으며 코를 찡그린다.
“에이, 술 말고 밥으로 할 걸 그랬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술 좋아요.”
“저는 그냥 좀 더 친해지고 싶어서 편하게 말씀드린 건데 대표님 입장에서는 부담스럽게 느껴졌을 수도 있겠네요. 나이 많은 여자가 왜 이래? 이러면서, 큭큭.”
아무래도 내가 걸그룹 회사의 대표이다 보니 조금 움츠러든 것 같다.
하지만 엄승미가 사회적 스펙으로 보나 외모로 보나 내 앞에서 자조할 정도는 아니었다.
연예인을 상대하고 트랜드에 민감한 방송 작가답게 옷은 센스 있게 잘 입고 자기관리도 잘돼 있다.
무엇보다 서른 중반을 넘어가는 직장여성에게서 풍기는 예민함이나 사회에 찌든 모습이 없다는 게 좋았다.
나는 진지하게 미간을 찌푸리며 그녀를 달랬다.
“에이, 왜 그러세요. 술 언제 마실래요? 저 다음 주 주말에 시간 비는데.”
그때였다.
손에 쥔 핸드폰 진동이 울리면서 동시에 스튜디오의 두꺼운 문이 열렸다. 그 뒤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업키걸 아이들이었다.
가장 앞에 서 있던 홍이가 나와 엄 작가를 확인하고 뒷사람에게 전달한다.
“어? 대표님 여기 계시는데? 작가님이랑 같이 계셔.”
내게 전화를 건 사람은 서원이었다.
뾰로통한 표정으로 통화종료 패드를 터치하며 묻는다.
“여기서 뭐해요?”
“전화 받으러 나왔다가 화장실 갔다 왔어. 왜?”
“아니. 회사에 무슨 일 터졌나 했죠. 밥 먹다가 갑자기 사라졌길래.”
“어, 아냐. 들어가.”
“잠깐.”
나와 엄 작가를 번갈아 쳐다보던 리야가 스튜디오로 들어가려던 나를 막아 세웠다. 가늘게 뜬 눈으로 내게 묻는다.
“뮨댕쓰 엄마 작가님한테 혼났구나?”
“풉, 내가 작가님한테 왜 혼나?”
“연기 못 했다고. 쪼인트 까였을 거 같은 킹리적 갓심이 드는 것이야.”
엄 작가도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며 반박했다.
“야, 내가 대표님 쪼인트 깔 위치냐?”
“그럼 뭐지? 알리야의 느낌상 둘 사이에 뭔가가 있긴 있는 거예요. 썸인가?”
알가놈의 쓸데없는 한마디에 업키걸 아이들의 표정이 싹 가라앉는다.
님이 남이 되고 남이 년이 되는 건 한순간이다.
차가워진 시선이 일제히 엄 작가에게 쏠렸고 엄승미도 짐짓 놀라서 표정이 어색해졌다. 아무리 그녀라고 해도 내게 추파를 던졌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저주를 면치 못할 터.
나는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기로 했다.
화장실에서 무심결에 야짤을 클릭한 것이 엄 작가가 있던 여자화장실까지 들렸고, 그것 때문에 소소하게 오해가 생겼다는 말을 털어놓았다.
물론 아이들 입장에서는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큰일이었다. 각자 다른 확대해석을 내놓으며 호들갑을 떤다.
“아니, 다 큰 남자가 화장실에서 포르노 좀 볼 수도 있지, 왜 우리 뮨댕쓰 기를 죽이고 그래욧!”
리야가 가장 먼저 발끈하며 엄 작가에게 소리쳤고.
“오빠, 요즘 욕구불만이야···?”
씨바색기는 나를 불쌍하게 쳐다봤으며.
“며칠을 못 가는 구나. 에휴···.”
서원이는 자신이 나서야겠다는 투로 중얼거렸고.
“대, 대표님 도시락 식겠다. 랍스터는 굳으면 맛없는데···.”
아직 마구니가 묻지 않은 청정홍이는 얼굴을 붉히며 딴청을 피웠고.
“흐음···.”
요나는 한숨을 삼키며 입술을 삐죽거렸다. 마치 자기가 대기실에서 욕구를 미처 풀어주지 못한 탓에 이 사단이 난 것처럼 말이다.
“뭐야, 왜 그래.”
“왜 그래요?”
망할. 리야가 꽥 소리치는 바람에 스탭들이 두런두런 거리며 입구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나는 리야에게 복화술로 주의를 줬다.
“야, 아예 기사를 내지? 김윤호 대표가 방송국 화장실에서 야동 봤다고, 어?”
“뮨댕쓰, 알리야가 실드 쳐줄 테니까 걱정 마. 포르노가 무슨 범죄도 아니고 말이야.”
“닥쳐 쫌. 너만 조용하면 된다고, 너만.”
피아식별이 불가능한 업친놈들 때문에 부풀려질 뻔한 사건은 다행히 엄승미 작가의 조리 있는 해명 덕에 웃지 못 할 해프닝 정도로 일단락됐다.
“소품 팀! 도배풀 어디 있어요?”
“예, 지금 갑니다!”
야식 타임으로 한차례 가라앉았던 스튜디오는 마지막 촬영을 앞두고 다시 분주해졌다.
이번 씬의 주인공인 나와 서원이는 방송국 분장 팀이 준비해준 의상으로 갈아입고 헤어와 메이크업을 리터치 받았다.
대기시간이 가장 길었던 서원이는 메이크업을 받는 몇 분동안 꾸벅꾸벅 졸았다.
좀 더 자게 하면 좋으련만, 나는 메이크업을 끝낸 분장 팀이 물러간 뒤 곧장 서원이를 깨웠다. 잠도 못 잔데다가 야식을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오래 자면 얼굴이 붓고 화장이 떠서 화면에 안 예쁘게 잡히기 때문이다.
“서원아, 일어나.”
“응···.”
“에그, 피곤하지?”
“그래도 내일은 저녁 스케줄 밖에 없어서 다행이에요. 빨리 끝내고 숙소 들어가서 맥주 마시고 싶다.”
“너네 요즘에 자기 전에 계속 술 마신다며?”
“응.”
“안 돼. 그거 버릇되면 나중에 술 없으면 잠 안 온다?”
“뮤노 대표님, 서원 씨, 셋업 끝났습니다! 나오시면 돼요!”
“예, 갑니다!”
서원이와 나는 조연출의 알림을 듣고 의자에서 일어났다.
다른 업키걸 멤버들과 주변 스탭들은 다 촬영 세트와 카메라 앞에 모여 있었고 나와 서원이만 조금 떨어진 세트장 구석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곳으로 함께 걸어가는데 서원이가 나른하게 중얼거린다.
“맥주 한 캔 원샷한 다음에 대표님 꼬추 물고 자고 싶다···.”
“야···.”
“진짜 욕구불만이에요? 왜 화장실에서 야동을 봐.”
“아니, 잘못 누른 거라고···.”
“이따가 애들 잠들면 내가 입으로 빼줄게요. 그러니까 애들 술 많이 먹여야 돼요. 알았지?”
움찔.
나는 곁눈질로 주위를 살피며 속삭였다.
“야··· 사람들 듣는다. 촬영장에서는 쫌, 쫌···.”
“히히, 상상만 해도 좋지? 귀여운 윤호 꼬추를 쫍쫍, 쫍쫍.”
발기.
압도적 발기.
한가놈의 고작 그 몇 마디에 고추가 뎃차아! 소리를 내지르며 서 버렸다.
내 고추를 내내 입에 담던 녀석의 음담패설은 세트장 앞에 이르러서야 멈췄다.
스타일리스트가 서원이의 메이크업을 마지막으로 점검해주는 사이, 어느새 내 옆으로 온 은빛이가 도배풀이 담긴 세숫대야 소품을 가리켰다.
“오빠, 저거 감자 전분으로 만들었대.”
“다행이네. 하긴, 얼굴에 닿을 건데 진짜 도배풀은 아니겠지.”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은빛이가 귓가에 대고 속삭인다.
과하게 입김을 섞어서···.
“꼬혹 오빠 정액 같다하, 그치히?”
으잇, 소름!
“야이씨, 간지러···.”
“왜해? 흥분돼해? 내가 이따가 손으로 해줄까하? 저번처럼 겨드랑이에 하는 거야하. 어때해? 좋지히?”
이젠 씨바색기한테까지 능멸 당하다니.
매너남, 초식남의 상징이라 불리던 김윤호 처지가 왜 이렇게 됐냐고.
서원이로 인해 발기된 고추가 조금 가라앉나 싶던 찰나에 이번에는 씹덕대장 씹대장의 공격이었다.
녀석은 가슴으로 팔뚝을 꾸욱 누르면서 쩝쩝 소리를 이어나갔다.
“근데 오빠 있지···. 나 오늘은 그냥 해도 되는 날이다하···. 윤호 하고 싶은 거 해에···.”
“에잇, 저리 꺼져.”
“흐키키킷. 커여워.”
미치겠네.
씨바를 밀쳐내긴 했지만 내 기둥은 이미 주책 맞게 달아올라 버렸다.
공공재에서 공창남으로 진화한 나.
인간 딜도가 되어 버린 나.
여성전용 리얼돌이 되어 버린 나.
존재 자체만으로 여자들의 성욕을 자극하는 페로몬 인간이 되어 버린 나.
그들의 요구를 모두 들어주려면 몸이 10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다.
촬영이 끝나면 일단 연습생 숙소로 가서 란이를 잠재워야 한다. 그리고 업키걸 숙소로 넘어가서 요나와의 2차전을 준비해야 하고 서원이의 입에 고추를 물려줘야 하며 은빛이한테 하고 싶은 걸 다 해야 한다.
미쳤냐고···.
프로 남창도 이 정도 스케줄은 아닐 것이다.
“레디~ 액션!”
PD의 사인이 떨어지자 여주인공 역할을 맡은 서원이가 감정을 잡고 눈빛 연기를 시작했다.
다른 여자 집에서 도배를 해주고 있는 남편을 덮치는 장면이다. 호구처럼 살던 여주인공이 각성을 하는 중요한 장면이자 ‘내귀두남’의 순간 시청률 1위를 찍은 레전드 씬이기도 하다.
이미 싸대기 한 대 맞고 널브러진 바람녀 역할은 요나가 맡았다. 그냥 바닥에 누워있기만 하면 된다.
요나를 한심스럽게 쳐다보던 서원이가 내게 눈을 흘기며 대사를 친다.
롱테이크라서 중간에 끊지 않고 한 번에 쭉 간다.
“내가 어디까지 이해해 줘야 돼요? 당신 입으로 말해 봐요.”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솔직하게 말하지. 나는 이제 한 여자로 만족할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어. 그러니까 당신이 인정해줘.”
“···두 집 살림하는 걸 인정하란 말이에요?”
“어. 두 집이든 세 집이든, 당신은 그냥 나한테 맞추라고!”
“지금까지 당신한테 맞추면서 살았는데 여기서 더 맞추라고요?”
“맞추라면 맞추지 뭔 말이 그렇게 많아! 아니면 이혼을 하든가!”
“당신 정말 나쁜 사람이군요···.”
“저 여자 앞에서 더 이상 창피 줬다가는 알아서 해. 이제 그만 꺼져!”
나는 서원이를 밀치고 쓰러져 있던 요나를 일으켜 세운다.
그리고 그 순간, 풀이 잔뜩 묻은 도배솔이 내 뺨을 후려친다.
―쩍!
뺨을 맞고 고개를 돌리는 순간 구경하고 있는 은빛이의 얼굴이 보였다. 녀석이 귓바람을 불며 했던 말도 떠올랐다.
‘꼬혹 오빠 정액 같다하, 그치히?’
아, 진짜 씨바색기, 기분 더럽게···.
그 말을 듣고 나서 그런지 냄새도 진짜 뭣 같다.
그 상태로 두 번째 싸대기가 날아왔다.
―쩍!
아, 거지같다, 너무 거지같아···.
“오케이, 컷!”
“오케이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촬영은 환호 속에 끝이 났다.
새벽 5시······.
나의 스케줄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망란이 [대표님 꼬추보면서 딸딸이 쳤더니 더 달아올랐어요ㅠ 이태원이든 강남이든 뛰쳐나가고 싶으니까 빨리 와요]
음낭으로 생각하는 삶
“자, 늦은 시간까지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마지막까지 고생할 소품 팀한테 감사의 박수 한번 쳐주고 마무리 합시다. 박수!”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업키걸과 스탭들의 단체 기념촬영이 끝난 뒤, PD의 클로징 멘트를 마지막으로 공식적인 촬영 스케줄이 모두 끝이 났다.
스튜디오를 벗어나 복도로 나오는데 뒤에서 남자 스탭 한 명이 홍이를 부른다.
“저··· 홍이 님. 죄송한데 사진 한 장만 같이 찍을 수 있을까요?”
“아, 예. 그럼요.”
“피곤하실 텐데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오늘 촬영하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것을 시작으로 주위에서 눈치를 보고 있던 다른 스탭들도 각자 최애에게 슬금슬금 몰리기 시작했다. 촬영 중간에는 아이들 컨디션에 방해될까봐 참고 있다가 이제야 삼촌 팬으로서 용기를 내는 것이다.
흐―뭇.
삼십 줄이 넘은 시커먼 남자들이 걸그룹 앞에서 소년처럼 수줍게 구는 모습은 언제 봐도 귀엽다.
산적처럼 턱수염을 기른 덩치 좋은 조명 팀장이 요나 앞에서 얼굴을 붉히며 웅얼거린다.
“진짜 실물 여신이십니다. 더, 더 예뻐지셨어요. 아, 그렇다고 화면이 안 예쁘다는 건 아니고요, 화면도 예쁘신데 실물이 더 예쁘다는 말입니다. 예.”
“에고, 감사합니당.”
“저 예전에 아이컨택 데뷔 쇼케이스 때 스탭으로 참여했었어요.”
“아, 정말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쭉 요나 님 팬입니다. 요나 욘나 예뻐.”
요즘은 잘 쓰지 않는 ‘요나 욘나 예뻐’ 응원문구를 아는 걸 보니 진성 요빠구나.
다른 네 명의 아이들도 누구 하나 홀로 남겨진 사람 없이 각자의 팬들과 사진을 찍고 있었다.
팬덤이 한 멤버에게 집중되지 않고 전 멤버가 고루 인기가 있다는 것이 업키걸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싶다.
처음 홍보를 할 때는 요나를 센터포지션으로 잡았고 공식 입덕 멤버는 은빛이었지만, 1집 미니앨범 활동 이후로는 그런 구분이 거의 무의미해졌다.
멤버 전원이 센터이자 입덕 요정이다.
물론 멤버들의 각기 다른 개성만큼이나 팬들의 성향도 갈리기는 한다.
그 중에서도 걸그룹을 통틀어 가장 하드하고 매니악한 개인팬덤을 가진 멤버가 우리 팀에 있었으니, 바로 집착 천재, 미절 요정, 사생 가수 한서원 되시겠다.
그들은 스스로 노예 되기를 자처하며 퀸서원 앞에서 한없이 낮아지고 학대받기를 갈구한다.
“누나, 저 뺨 한 대만 때려주시면 안돼요?”
“응. 안돼요.”
“아, 왜요.”
“저 이제 때리는 건 안 하기로 했어요. 이거 때문에 타 팬한테 욕 엄청 먹었잖아요. 나한테 당해보지도 않았으면서.”
“살짝만 때려주세요. 제발···. 저 원래 첫 번째 세트 준비만 하고 퇴근하는 거였는데, 퀸서원님한테 뺨 맞으려고 지금까지 기다린 거란 말이에요.”
서원이에게 때려달라며 뺨을 내민 사람은 오늘 스탭들 중 가장 나이가 어려 보이던 진행보조 알바였다.
그래도 이 정도는 양반 축에 속한다.
골수 서빠들의 진면목은 팬 사인회 때 발휘가 되는데, 발을 빨게 해 달라, 하이힐을 신고 자기 명치를 밟고 지나가 달라, 서원이가 묶고 있는 머리 리본으로 목을 졸라 달라, 등등 별의별 미친 취향을 가진 군상들이 다 몰려든다.
군 입대를 앞둔 청년이 바리깡을 들고 와 서원이에게 삭발식을 요청하는 것은 귀여운 수준이고, 서원이의 생리혈이 묻은 생리대를 개당 1억에 산다며 난동을 부리다가 쫓겨난 아재 팬도 있었다.
나는 그들을 보면서 우리나라에 변태가 많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생리혈 같은 극단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서원이는 팬들의 요구를 대부분 들어줬다.
팬 사인회라는 게 오직 업키걸 팬들만을 위한 자리이기도 했고, 서원이 역시 그런 요구를 통해 팬들의 사랑을 확인하는 참된 변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몇 달 전, 타 아이돌 팬덤이 서원이의 팬 서비스가 너무 폭력적이라고 문제를 제기하면서부터 신체를 타격하거나 서브미션을 거는 등의 가학 서비스는 중단된 상태다.
서빠들은 자기들이 좋다는데 웬 오지랖이냐며 반발했지만 그 중에는 미성년 팬들도 많았기 때문에 회사 차원에서도 금지령을 내려야만 했다.
하지만 팬덤 사이에서만 이벤트 식으로 진행되던 서원이의 가학 서비스가 기사화되는 바람에 대중적 이슈를 불러일으켰고, 이제는 일반 팬들도 서원이를 만나면 장난 삼아 체벌을 요구하는 경우가 빈번해졌다.
지금도 정식 팬클럽이 아니라 일반 팬일 경우가 높았다. 일반 팬 중에서 조금 강경한 쪽이다.
“아무한테도 말 안 할게요, 예?”
서원이의 정중한 거절에도 뺨을 때려달라는 스탭 팬은 물러서지 않았다.
아이들이 팬과 얘기를 할 때는 웬만하면 끼어들지 말라고 했는데 이 정도면 커버를 쳐줘야 한다.
장우도 도를 넘었다고 생각했는지 나와 서원이가 있는 쪽으로 걸어왔다.
하지만 서원이가 먼저 결단을 내려버렸다.
“진짜 딴 데 가서 말하면 안 돼요. 커뮤니티에 후기 같은 것도 쓰지 말고요.”
“예! 예! 당연하죠.”
“강도는 어느 정도?”
“세게 해도 돼요!”
“대.”
“하앍!”
―짝!
찰지구나!
“감사합니다! 이왕 하신 거 왼쪽 뺨도···.”
“오케이.”
―짝!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몇 살이에요?”
“스물한 살이요.”
“내가 누나네. 말 놔도 되지?”
“예, 놓으세요, 누나.”
“너 어부바야?”
“아뇨, 팬클럽은 가입 못 했고 인터넷 카페만 가입했어요.”
“그럼 어부바 가입해.”
“예, 꼭 할 게요.”
서원이는 해맑게 협박했다.
“앞으로도 나만 좋아해야 돼. 하지 말라는 뺨까지 때려줬는데 탈덕하거나 최애 갈아타면 나 살고 너 죽는 거야. 내 성격 알지?”
알지, 알다마다.
팀 내 서열은 최하위지만 팬 앞에서는 누구보다 강한 업키걸 여포잖아.
“예, 예! 누나는 저의 처음이자 마지막 아이돌이에요!”
“사진 찍어줄까?”
“아뇨, 뺨에 남은 손자국이면 됐어요. 저 한 달 동안 세수 안 할 거예요.”
“더러워. 일주일로 끊어.”
“예, 그럼 일주일만 안 씻을게요. 아아, 너무 좋다.”
“그래, 굳이 말로 안 해도 얼굴만 봐도 좋아 보인다.”
남들이 뻔히 보고 있는 걸 알면서도 자기들만의 변태력을 발휘하는 두 미친놈을 보고 있자니 새삼 두려워진다.
표면으로 드러난 변태가 이 정도인데, 전국 방방곡곡에 숨어있는 은둔 변태들의 변태력은 얼마나 된다는 건지···.
“나 먼저 가요.”
가장 먼저 팬서비스를 끝낸 서원이는 오랜만에 본 손맛이 흡족한지 오른손을 경쾌하게 털며 대기실로 향했다.
뺨 맞은 젊은 스탭은 다른 사람들이 비웃든 말든 서원이의 등에 대고 연신 허리를 굽혔다.
“누나, 조심히 들어가세요!”
“누나가 아니라 여왕님.”
“예, 여왕님! 팬클럽 꼭 가입할게요!”
자발적 노예 한 명 추가요.
이러다가 나중에 왕국 세우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
“대표님, 죄송한데 저 목걸이 좀 채워주실래요?”
퇴근을 위해 대기실을 정리하던 중 요나가 내게 등을 보이며 부탁했다.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자 하얀 뒷덜미가 드러난다.
요염하다, 요염해.
―불끈불끈
나도 모르게 욕정이 들끓어서 목 뒤에 짧게 입을 맞췄다.
요나는 깜짝 놀란 거북이처럼 움츠러들었다.
“아잌힝! 간지러워요!”
“미안··· 목선이 너무 요염해서 참을 수가 없었어.”
뒤에서 끌어안고 말캉말캉한 가슴을 양손으로 어야둥둥 어루만지며 목에 입술을 묻었다.
요나도 내 손을 잡고 손등을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으음, 따뜻하고 기분 좋다···.”
“나도.”
“근데 우리 문 안 잠갔어요.”
“아···.”
인내심을 발휘해서 멈춘 게 다행이었다.
몇 초 지나지 않아 서원이가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아, 깜짝이야.”
“신발 끈 묶어줘요.”
욕하는 줄···.
신고 있는 컨버스 스니커즈의 끈이 양쪽 모두 풀려있었다.
서원이는 평소에도 신발 끈을 잘 못 묶어서 멤버들에게 부탁을 하고는 한다.
“넌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신발 끈을 못 묶냐. 은빛이한테 해달라고 하지.”
“화장실 갔어요.”
“일루와.”
녀석은 침대에 걸터앉았고 나는 그 앞에 무릎 꿇고 끈을 묶어줬다.
블랙 스키니진과 신발 사이로 가느다란 발목이 살짝 드러났다.
섹시하네···.
―불끈불끈
요나가 없었으면 서원이의 발목에도 입을 맞췄을 것이다.
스튜디오에서도 그렇고, 방금 전 요나한테도 그렇고. 왜 계속 고환 벅찬 생각만 나는 걸까.
그 정도가 좀 심한 것 같아서 생각해봤더니, 아차, 아까 요나와 대기실 스섹을 할 때 사용했던 강한 남자 패키지 중, 성욕을 최상으로 유지시켜주는 ‘디오니소스의 축복’ 아이템이 여전히 작동 중이었다.
그리고 잠을 자지 않은지 24시간이 다 돼 가지만 체력을 올려주는 ‘헤라클래스S’ 덕에 피곤하지도 않았다.
어쩐지 몸에 힘이 너무 넘치는 게 이상하다 했다.
지금 컨디션이라면 전 세계 여자들을 모두 만족시켜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거··· 좋은데?
뇌가 아닌 음낭으로 생각하며 사는 삶도 나쁘지만은 않구나.
마치 자위라는 신세계를 통해 사정 쾌락에 눈을 뜨던 10대 소년으로 돌아간 것처럼 활력이 넘치고 삶의 목적이 뚜렷해졌다.
성인이 된 이후로 17년 넘게 금욕하며 살았으니 이 정도는 즐겨도 되잖아, 라며 합리화를 해본다.
“다 묶었쓰.”
“은빛이랑 나는 정리 다 끝났어요.”
“어, 우리도 끝났으니까 짐 가지고 나와 있어. 장우가 로비 앞으로 차 빼서 기다리고 있을 거야.”
“그럼 복도에 있을 게요.”
“그래.”
서원이가 나간 뒤 요나와 나도 대기실 정리를 마치고 복도로 나갔다.
먼저 나와서 기다리고 있던 은빛이가 나를 보자마자 어리광을 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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