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괴 - 1

나는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있었다. 이 문장은 내 삶의 가장 견고한 진실이자, 내가 세상이라는 거친 바다에서 흔들리지 않고 항해할 수 있게 해주는 돛대와도 같았다. 퇴근 후 현관문을 열고 들어설 때마다, 언제나 따뜻한 온기와 은은한 생활의 향기가 나를 감싸 안았다. 어수선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정돈된 거실,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노을빛이 포근하게 내려앉은 식탁, 그리고 그 모든 공간을 채우는 가족들의 잔잔한 숨소리까지. 이 모든 것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는 내 보금자리는, 고단했던 하루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내고 다시 내일을 살아갈 힘을 충전해주는 유일한 안식처였다.
내 곁에는 현명하고 똑똑한 아내, 희숙이 있었다. 그녀는 단순히 가정을 돌보는 것을 넘어, 내 삶의 지혜로운 동반자이자 가장 든든한 조언자였다. 내가 회사에서 복잡한 문제로 골머리를 앓을 때면, 그녀는 침묵 속에서 나를 지켜보다가도, 때로는 놀랍도록 명쾌하고 본질을 꿰뚫는 한두 마디로 실마리를 제공해주곤 했다. 그녀의 현명함은 번뜩이는 재치라기보다는, 오랜 세월 삶의 풍파를 함께 겪으며 단단해진 내공에서 우러나오는 깊은 통찰에 가까웠다. 살림은 또 어찌나 야무지게 꾸려가는지, 아무리 쓰고 또 써도 돈이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가계는 늘 여유로웠다.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 또한 남달랐다. 엄격함 속에서도 따뜻함을 잃지 않았고, 아이들 스스로가 자신의 길을 찾아가도록 묵묵히 지지해주었다. 그녀의 존재 자체가 우리 집의 중심이자, 흔들림 없는 평화의 상징이었다. 그녀의 조용하지만 강인한 존재감 덕분에, 나는 바깥 세상의 모든 역경을 견뎌낼 수 있었다.
그리고 나에게는 명문대에 다니고 있는 모범적인 아들, 정훈이 있었다. 정훈이는 일찍이 내 기대를 저버린 적이 없는 자랑스러운 아들이었다. 학창 시절부터 늘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며 단 한 번도 나를 걱정시킨 적이 없었고,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모두가 선망하는 명문대에 당당히 합격했다. 녀석의 책상에는 늘 두꺼운 전공 서적과 빼곡히 필기된 노트가 쌓여 있었고, 늦은 밤까지 방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은 녀석이 얼마나 성실하고 우직하게 자신의 길을 닦아나가고 있는지를 말해주는 듯했다. 녀석은 말수가 적고 과묵한 편이었지만, 그 속에는 뜨거운 학구열과 미래에 대한 확고한 비전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런 정훈이를 볼 때마다 나는 가슴 벅찬 자부심을 느꼈다. 녀석은 내 젊은 시절의 열정과 노력을 그대로 물려받은 듯했으며, 내가 이루지 못한 더 큰 꿈을 향해 나아갈 것이 분명했다. 정훈이의 반듯한 성품과 뛰어난 지성은, 내가 쌓아 올린 모든 것의 정점인 동시에, 우리 가문의 밝은 미래를 약속하는 등불과 같았다.
또한, 반듯하게 잘 자라준 딸아이, 민경까지 있었다. 민경이는 우리 집의 해사한 미소이자, 모든 이의 시선을 사로잡는 싱그러운 꽃과 같았다. 고등학생임에도 불구하고, 어릴 적 그 순수하고 천진난만한 표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조그마한 일에도 깔깔 웃으며 집안에 활기를 불어넣었고, 애교 섞인 말투와 다정한 눈빛은 언제나 나를 무장해제시켰다. 여느 또래 아이들과는 달리, 튀는 옷차림이나 무분별한 행동과는 거리가 멀었고, 언제나 예의 바르고 단정한 모습으로 내 마음을 흡족하게 했다. 딸에게서 나는 언제나 순수함과 밝은 에너지를 느꼈고, 그런 민경이를 보고 있노라면 세상의 모든 근심이 사라지는 듯했다. 그녀의 티 없는 웃음소리는 우리 집안에 울려 퍼지는 가장 아름다운 멜로디였고, 그녀의 존재 자체로 나는 완벽한 가정을 이루었다는 확신을 가졌다. 민경이는 내 삶에 찾아온 가장 아름다운 축복이었고, 그녀가 있기에 내 삶은 더욱 다채롭고 풍요로워질 수 있었다.
아들 정훈과 딸 민경은 나에게 그 어떤 재산보다도 값진 큰 재산이자 축복이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들이란 바로 이런 존재들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나는 그들을 바라보며 나의 인생이 얼마나 성공적이었는지, 얼마나 충만했는지를 깨달았다. 녀석들은 내가 이 세상에 남길 가장 위대한 유산이며, 내가 살아온 삶의 가장 빛나는 증거였다. 내가 이룬 사회적 성공과 명예는 결국 이 아이들을 위함이었고,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밝은 미래는 내가 쉬지 않고 달려온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 거실에 나란히 앉아 웃음꽃을 피우는 두 아이를 볼 때면, 나는 세상의 모든 것을 얻은 듯한 충족감에 젖어들었다. 그들은 나의 혈육이자 나의 분신이었고, 그들의 존재 자체가 내 삶의 가장 큰 자랑이었다.
나는 살아남기 힘들다는 대기업에서 몇 번의 구조조정에도 굴하지 않고 버티고 버텨 임원 자리에까지 올랐다. 그것은 단순히 운이나 요행으로 얻어진 자리가 아니었다. 내가 걸어온 길은 언제나 험난한 가시밭길의 연속이었다. 수많은 동료들이 파도에 휩쓸려 사라지는 것을 목도하면서도, 나는 바위처럼 버텼다. 칼날 같은 구조조정의 바람이 몇 번이고 회사를 휩쓸고 지나갈 때마다, 나는 더욱 단단히 뿌리를 내렸다. 밤샘 연구와 주말 반납을 통해 쌓아 올린 실력, 냉철한 판단력,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신념이 나를 지탱했다. 경쟁은 치열했고, 배신과 시기 질투는 그림자처럼 따라붙었지만, 나는 오직 나의 목표만을 바라보며 묵묵히 나아갔다. 수없이 많은 밤을 새워 기획안을 다듬었고, 숱한 위기 속에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는 끈기를 보여주었다. 그 오랜 시간의 노고와 희생이 마침내 '임원'이라는 자랑스러운 두 글자로 보상받았을 때, 나는 비로소 내 삶의 정점에 도달했음을 직감했다. 내 이름 석 자가 새겨진 임원실 문패를 볼 때마다, 나는 지난 세월의 모든 고통과 노력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단순한 직책이 아니라, 내가 나의 인생을 스스로 개척하고 쟁취해낸 승리의 증표였다.
나를 늘 응원해주는 아내와 자식들에게 체면이 서는 것은 당연했다. 가장으로서, 한 집안의 기둥으로서, 나는 언제나 완벽한 모습만을 보여주고 싶었다. 매일 아침 출근길에 나서는 나에게 아내는 따뜻한 차 한 잔을 건네며 "힘내세요, 여보"라고 속삭였고, 아이들은 "아빠, 다녀오세요!"하며 밝게 배웅했다. 그들의 응원은 내 어깨에 지워진 책임감의 무게를 더욱 묵직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그 무게를 기꺼이 짊어지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실망을 안겨주고 싶지 않았다. 어떤 난관에 부딪히더라도, 결코 흔들리지 않고 당당히 맞서는 아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내가 가진 성공과 지위는 결국 가족들의 자부심이자, 그들에게 더 나은 삶을 제공하기 위한 나의 헌신이었다. 그들의 눈에 비치는 나의 모습이 자랑스러움으로 가득 차기를 바랐고, 나는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매 순간 최선을 다했다. 나의 존재가 그들에게 안녕과 평화를 가져다주는 단단한 울타리가 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나는 최고의 아빠라고 자부했으며, 가장으로서 최고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내 인생은 완벽에 가까웠다. 단란한 가정, 총명한 자식들, 성공적인 커리어. 이 모든 것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 같은 삶을 완성하고 있었다. 나는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며, 주름진 얼굴 속에서도 빛나는 성취감을 느꼈다. 나 스스로에게 떳떳했고, 세상 어떤 사람에게도 고개 숙일 필요가 없었다. 나는 내 아이들이 세상의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바르게 자라도록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경제적인 풍요는 물론이거니와, 정신적인 지주로서 그들의 곁을 든든히 지켰다. 아내에게는 자상하고 믿음직한 남편이었고, 아이들에게는 존경받는 아버지였다. 내가 구축한 이 견고한 삶의 성채는, 앞으로도 영원히 흔들림 없이 빛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 모든 것이 완벽하게 통제되고, 내 의지대로 흘러갈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나는 그렇게, 내가 만들어낸 이상적인 세계 속에서 최고의 가장이자, 최고의 아빠로 군림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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