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괴 - 3

하지만 그날, 사무실 휴게실에서 스쳐 지나가듯 본 찰나의 영상은 나의 견고한 세계에 돌이킬 수 없는 균열을 만들기 시작했다. 마치 정교하게 짜인 유리 공예품에 보이지 않는 금이 가기 시작한 것처럼, 미세하지만 치명적인 파동이 나의 완벽한 삶의 표면을 흔들었다. 오후의 나른한 햇살이 창을 통해 쏟아져 들어왔고, 부하직원들은 삼삼오오 모여 스마트폰 화면을 들여다보며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고 있었다. 그들의 해맑은 웃음소리는 나의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나는 그저 피곤해서려니, 혹은 지루한 일상에 잠시 일탈을 꿈꾸는 젊은이들의 가벼운 유희쯤으로 치부하려 했다. 그러나 스쳐 지나가던 시선이 불현듯, 자석에 이끌린 쇠붙이처럼 화면에 꽂혔다.
처음엔 그저 평범한 걸그룹 영상이라 생각했다. 요즘 유행하는 아이돌들의 춤 영상이겠거니 했다. 하지만 이내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화면 속에서 춤추는 여인의 얼굴은 익숙한 듯 낯설었고, 그 아래의 육체는 끔찍하리만치 선정적이었다. 선명하게 합성된 얼굴. 그것은 한없이 순수하고 티 없는 걸그룹 멤버의 얼굴이었다. 새하얀 피부와 맑고 커다란 눈, 순진무구한 표정. 허나 그 얼굴 아래 붙어 있는 몸뚱이는, 음습한 욕망의 심연에서 갓 건져 올린 듯, 나체로 얽히고설키며 저속한 움직임을 반복하고 있었다. 땀으로 번들거리는 살결, 질척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한 허리놀림, 쾌락에 일그러진 표정은 천사와 악마를 한 몸에 담은 듯한 기괴한 형상으로 내 시신경을 강타했다. 역겹다고 생각하면서도, 눈은 화면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혐오감과 함께, 알 수 없는 섬뜩한 매혹이 나의 의식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역겨운 부조화 속에서, 나의 심장은 둔탁하게 울렸다. 쿵, 쿵, 쿵. 심장이 귀청을 때리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그 얼굴, 그 해맑은 웃음이 언뜻 내 딸 민경이를 닮아 있었다. 아니, ‘언뜻’이라는 말로는 부족했다. 민경이의 순수하고 천진난만한 표정을 그대로 간직한 채, 조그마한 일에도 깔깔 웃으며 집안에 활기를 불어넣던 그 모습이, 섬뜩하리만치 선명하게 오버랩되었다. 처음엔 착각이라, 나의 눈이 고단함에 지쳐 잘못 본 것이라 애써 부정했다. 그럴 리가 없다고, 나의 순수하고 밝은 딸이 저런 추악한 이미지와 겹쳐 보일 리 없다고 스스로를 미친 듯이 다그쳤다. 나는 그 누구에게도 실망을 안겨주고 싶지 않았고, 특히 내 아이들은 세상의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바르게 자라도록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최고의 아버지였기에, 이런 금지된 상상 자체가 용납될 수 없었다.
그러나 한번 인식된 유사성은 끈질긴 악몽처럼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자꾸만 시선이 멈칫했고, 찰나의 순간에도 화면 속 걸그룹 멤버의 얼굴은 민경이의 천진난만한 표정과 잔상처럼 겹쳐졌다. 그녀의 티 없는 웃음소리가 음란한 몸짓과 기괴하게 포개어지는 순간, 나는 심장이 얼어붙는 듯한 공포를 느꼈다. 이성은 필사적으로 거부했지만, 나의 원초적인 감각은 이미 그 금지된 유사성을 맹렬히 흡수하고 있었다. 나의 ‘완벽함’이라는 가면이 미세하게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그 영상은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 잉크 자국처럼 남았다. 하루 종일, 회의 중에도, 서류를 검토하는 중에도, 심지어 커피를 마시는 짧은 순간에도, 그 기괴한 이미지는 내 정신을 잠식했다. 머릿속은 온통 그 영상으로 뒤덮였고, 그 안에서 민경이의 얼굴과 포르노 배우의 몸이 춤을 추는 환영이 끊임없이 반복되었다. 그리고 그 반복 속에서, 오랜만에, 실로 오랜만에 나의 ‘아랫도리’가 불쾌하리만치 생경한 감각으로 반응하기 시작했다. 묵직한 이질감이 허리 아래에서부터 서서히 차오르기 시작했고, 이내 팽팽한 긴장감으로 나의 육체를 지배했다. 나는 완벽한 가정을 이루었기에, 아내 희숙 외에는 그 어떤 외도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녀는 나의 삶의 지혜로운 동반자이자 가장 든든한 조언자였고, 나는 그녀의 존재 자체가 우리 집의 중심이자 흔들림 없는 평화의 상징이라고 믿었다. 나의 결혼 생활은 흠결 없는 완벽한 것이었으며, 금욕에 가까운 삶이었다. 감히 외부의 유혹 따위는 내 견고한 삶의 성채에 흠집조차 낼 수 없으리라 믿었다. 나의 철저한 자기 관리는 나의 모든 것을 지탱하는 기둥이었다.
하지만 이제, 내면 깊숙이 잠자고 있던 어떤 본능이, 길고 깊은 겨울잠에서 깨어난 굶주린 짐승처럼 서서히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것은 추악하고, 끈적이며, 나의 ‘완벽함’이라는 가면을 찢어발기는 듯한 섬뜩한 생명력이었다. 나는 평생을 엄격한 도덕과 이성으로 무장해 왔는데, 한낱 영상 조각에 이토록 속수무책으로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에 스스로 경악했다. 불쾌함이 온몸을 휘감았지만, 동시에 저항할 수 없는 묘한 전율이 등골을 타고 흘렀다.
퇴근 시간이 되자, 사무실은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 모두가 떠난 텅 빈 공간에 홀로 남겨진 나는, 끓어오르는 열기에 몸을 가누기 어려웠다.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는 기분이었다. 손은 무의식적으로 ‘아랫도리’를 향했다. 젠장, 이건 무슨 감각인가. 혼란과 죄책감이 뒤섞인 채 내 안을 휘저었다. 나는 이성적으로 상황을 분석하려 애썼다. 과연 이 역겨운 충동은, 포르노 배우의 저속한 몸뚱이 때문인가? 아니면, 그 위에 덧씌워진, 너무나도 익숙하고 사랑스러운 딸 민경이의 얼굴 때문인가?
그 질문은 가시 박힌 족쇄처럼 나의 의식을 옭아맸다. 딸의 얼굴을 상상하며 욕정하는 아버지라니. 명문대에 다니는 모범적인 아들 정훈과, 반듯하게 잘 자라준 딸 민경은 나에게 그 어떤 재산보다도 값진 큰 재산이자 축복이었다. 나는 그들을 보며 나의 인생이 얼마나 성공적이었는지, 얼마나 충만했는지를 깨달았는데, 이제 와서 내가 이토록 추악한 욕망에 사로잡히다니. 스스로에게 끔찍한 모욕감을 느꼈지만, 동시에 그 금지된 상상이 주는 묘한 쾌감에 전율했다. 심장의 고동은 더욱 거세졌고, 혈액은 뜨겁게 달아올라 전신을 휘저었다. 이 깊고 어두운 심연은 대체 무엇인가. 나의 견고한 신념과 쌓아 올린 모든 도덕적 가치들이 순식간에 모래성처럼 허물어지는 것 같았다. 완벽한 삶이라는 환상이 산산조각 나는 소리가 내면에서 들려오는 듯했다.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억누르려 하면 할수록, 내 안의 짐승은 더욱 포악하게 날뛰었다. 갈증은 목을 태우고, 열기는 온몸을 뒤덮었다. 나는 이성이 끊어진 짐승처럼 비틀거리며 화장실로 향했다. 차가운 타일 바닥, 희미하고 어두운 조명. 그곳은 나의 추악한 본성이 해방될 은밀한 감옥 같았다. 아무도 모르게,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게. 나의 자부심과 명예는 이미 바닥에 처박혔다. 거울 속 나의 눈은 충혈되어 있었고, 이글거리는 욕망이 마치 붉은 불꽃처럼 광기에 타올랐다. 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이젠 도망칠 수 없음을 깨달았다. 금기를 넘어서는 문이 활짝 열렸고, 나는 그 문턱을 넘어서고 있었다.
손길은 주저함 없이 ‘그곳’을 움켜쥐었다. 쾌락과 죄책감이 뒤섞인 파도가 온몸을 덮쳤다. 이 빌어먹을 욕망이 나를 집어삼키는 듯했다. 나의 ‘완벽한 삶’이 거짓이었음을 증명하는, 고통스럽지만 동시에 해방적인 순간이었다. 수년간 억눌렸던 욕망이 터져 나오듯, 쾌락의 아우성이 내 몸을 뒤흔들었다. 내가 그렇게 자랑스러워하던 이성적 판단력과 굳건한 신념은 연기처럼 사라졌다. 오직 원초적인 감각만이 나의 모든 것을 지배했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민경이의 해맑은 얼굴이, 그 음란한 몸짓과 함께 다시금 선명하게 떠올랐다. 거부할 수 없는 연결 고리가 형성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억눌렸던 폭풍이 터져 나왔다. 강렬한 쾌락의 정점에서, 나의 육체는 스스로를 비워냈다. 변기 속으로 쏟아져 내린 ‘굉장한 양의 정액’은, 끈적하고 누런 빛을 띠고 있었다. 그 양은 실로 엄청났다. 마치 오랜 가뭄 끝에 터져 나온 샘물처럼, 나의 몸 안에 응축되어 있던 모든 탁한 욕망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 듯했다. 실로 오랜만의 사정이었다. 나의 ‘완벽한 자기 관리’ 아래 묻어두었던, 아니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었던 원초적 욕망의 응축된 결정체 같았다. 녀석들은 내가 이 세상에 남길 가장 위대한 유산이며, 내가 살아온 삶의 가장 빛나는 증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나의 자부심은 산산조각 났다.
욕실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 나는 나의 가장 추악한 민낯과 마주했다. 후회와 혐오감이 쓰나미처럼 밀려왔지만, 동시에 텅 비워진 듯한 묘한 허탈감과 함께 해소의 흔적이 남았다. 누런색의 정액은 변기 물과 섞여 소용돌이치며, 내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맴돌았다. 그날 이후, 결국 그 금지된 상상 속에서 나는 오랜만에, 실로 오랜만에 ‘아랫도리’가 불쾌하리만치 생경한 감각으로 반응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나의 견고한 신념과 쌓아 올린 모든 도덕적 가치들이 순식간에 모래성처럼 허물어지는 것을 경험했다. 그날의 격렬하고 추악한 해방 이후, 딸 민경이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에는 미묘한 죄책감이 그림자처럼 드리워졌다.
나의 삶은 언제나 철저한 자기 관리와 견고한 도덕적 원칙 위에서 구축되어 있었다. 결혼 이후, 회사 접대로 룸살롱에서 직업여성과 관계를 맺은 것이 유일한 일탈이었다고 나는 자부했다. 그 이후로 나의 성욕은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겨졌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자연스레 성욕 감퇴가 찾아왔다고, 그것이 50대 남성으로서 자연스러운 수순이라고 스스로를 납득시켰다. 나는 완벽한 가정을 이루었기에, 아내 희숙 외에는 그 어떤 외도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굳게 믿었다. 그녀는 내 삶의 지혜로운 동반자이자 가장 든든한 조언자였고, 나의 결혼 생활은 흠결 없는 완벽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와 깨달으니, 그것은 단지 기회가 없었을 뿐이었다. 그날의 충격적인 경험이 내 안 깊숙이 잠자고 있던 본능을 깨웠고, 나는 여전히 발기가 잘되는 몸이었다는 냉혹한 사실과 마주했다. 아내와의 잠자리는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오래 전의 일이었고, 50대 아저씨가 젊은 여자를 유혹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도덕과 윤리에 어긋나는 행위였다. "사람은 도덕과 윤리를 기반으로 살아야 하는 법이다". 이 말은 내가 평생을 지켜온 신념이었고, 나의 완벽한 가장으로서의 자부심을 지탱하는 기둥이었다. 나는 내 아이들이 세상의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바르게 자라도록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최고의 아버지였다. 그런 내가 딸의 얼굴을 상상하며 욕정하다니, 스스로에게 끔찍한 모욕감을 느꼈다.
블루메딕 후기작성시 10,000포인트 증정
- 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