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크 - 1

십 년도 더 된 이야기다. 풋내가 채 가시지 않은 스무 살 중반, 군 제대 후 학교에 복학하여 지방으로 통학하기가 너무 부담스러워서 부모님을 끈질기게 졸라 자취방을 구하고 있었다. 그때의 나는, 지금 돌이켜보면 여전히 한심한 백수에 아무것도 보잘것없는 존재지만, 오직 '그것'만 컸던, 그야말로 존나게 큰 병신이었다. 내 청춘의 서막을 열었던 그날은, 단지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나선 평범한 하루가 될 줄 알았다.
부동산 중개인을 통해서 방을 소개받고, 낡았지만 혼자 지내기엔 충분한 공간을 마음에 들어 하며 계약을 위해 부동산 사무실로 향했다. 그곳은 늘 그렇듯 건조하고 딱딱한 분위기였다. 익숙한 서류 냄새와 잉크 냄새가 뒤섞인 공기 속에서, 나는 그저 성실한 대학생의 모습으로 앉아 계약서에 서명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때까지는 모든 것이 평범했다.
그러나 그 평범함은 한 여인의 등장과 함께 산산조각 났다. 문이 열리고, 한 줄기 섬광처럼 그녀가 들어섰다. 박은경. 내 자취방의 집주인이자, 앞으로 내 상사병의 근원이 될 사람. 40대 중반이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그녀의 등장은 마치 한낮의 태양처럼 강렬했고, 모든 공기를 그녀의 색채로 물들였다. 몸매가 훤히 드러나는 원피스를 입고, 살랑살랑 거리며 걸어오는 그녀의 자태는 한 폭의 그림 같았다. 그 옷은 천 한 조각에 불과했지만, 오히려 그녀의 육감적인 곡선을 더욱 도발적으로 부각시키는 마법 같은 의상이었다. 걸음걸이마다 살랑거리는 천 자락 아래로 드러나는 허벅지 라인은 숨이 멎을 듯했다. 그녀의 얼굴은 그야말로 치명적이었다. 외꺼풀이지만 크고 깊은 눈은 고혹적인 매력을 뿜어냈고, 그녀가 눈웃음을 칠 때면 세상이 환해지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두툼하면서도 탄력 있어 보이는 입술은 묘한 성적 긴장감을 자아냈고, 그 사이로 언뜻 비치는 가지런한 치아는 깨끗하면서도 도발적이었다. 세월의 흔적이라기에는 미미한, 아주 미세한 주름이 눈가에 살짝 보였지만, 오히려 그녀는 그것을 감추려는 듯 진하게 한 화장으로 더욱 매력적인 깊이를 더했다. 그 얼굴은 단순히 아름답다는 말을 넘어, 어떤 남자라도 그녀에게 끌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온몸으로 깨달았다.
그녀를 처음 본 순간, 내 심장은 격렬하게 요동쳤고, 오직 '그것'만이 지배하던 뇌는 더 이상 사고를 멈췄다. 허벅지 사이에서 잠자고 있던 내 물건이 순식간에, 마치 누군가 스위치를 켠 것처럼, 끝을 모르고 발기되기 시작했다. 나는 당황스러움에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억제할 수 없었다.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그녀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듯한 색기있는 외모와 페로몬은 내 이성을 마비시키고, 본능의 밑바닥을 긁어내렸다. 그 눈빛, 그 걸음걸이, 그녀에게서 풍겨져 나오는 농염한 분위기는 나를 한순간에 원시적인 수컷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녀를 본 순간, 내 안의 어떤 금기가 맹렬히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따먹고 싶다, 당장 강간하고 싶다'**는 추악하고도 원초적인 욕망이 섬광처럼 머리를 스쳤다. 이성을 가진 인간이라면 상상조차 하지 말아야 할 파렴치한 생각들이었지만, 그 순간의 나는 통제 불능의 욕구 덩어리였다. 짐승처럼 그녀에게 달려들어 그녀의 살결을 탐하고 싶다는 충동이 온몸을 지배했다. 눈앞의 그녀는 현실의 인물이 아니라, 내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 숨어 있던 음란한 환상의 구현체 같았다. 그렇게 연령불문 어떤 남자라도 그녀에게 끌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온몸으로 깨달았다. 상사병처럼 시작된 이 알 수 없는 열병은 내 모든 감각을 그녀에게로 향하게 했다.
나는 애써 고개를 숙여 계약서에 시선을 고정하려 했지만, 눈꺼풀 틈새로 비치는 그녀의 실루엣 하나하나가 마치 끈적한 거미줄처럼 내 시야를 가두었다. 펜을 쥔 손은 미세하게 떨렸고, 목구멍은 바짝 타들어 갔다. 내 이름과 서명을 쓰는 둥 마는 둥, 오직 박은경이라는 이름 석 자와 그녀의 체취만이 내 의식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 아줌마...라는 호칭이 이렇게나 음란하게 느껴질 줄은 몰랐다. 그녀가 발산하는 색기와 페로몬은 내 정신을 못 차리게 만들었고, 온 신경이 그녀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쏠려 있었다.
겨우 계약을 마치고 얻어낸 자취방. 짐을 풀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나는 멍하니 침대에 누웠다. 그날 밤, 잠자리에 들었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눈을 감으면 그녀의 모습이 더욱 선명하게 재생되었다. 뇌리에 박힌 그녀의 표정, 살랑거리는 걸음걸이, 그리고 그 농염한 체취. 모든 감각이 그녀에게로 집중되었다. 충혈된 눈으로 천장을 응시하다가, 결국 이불을 뒤집어썼다. 그 아줌마를 생각하며 두번이나 자위를 하고 잠이 들었다. 축축하고 끈적한 허무함이 온몸을 휘감았지만, 그녀의 잔상은 지워지지 않았다. 쾌락과 죄책감, 그리고 걷잡을 수 없는 갈망이 뒤섞인 채, 나는 결국 지쳐 잠이 들었다.
낡은 자취방의 공기는 늘 축축하고 무거웠다. 습기가 가득 배어들어 벽지마저 축 늘어진 듯한 갑갑함 속에서, 어딘가 불쾌하고 퀴퀴한 냄새가 맴돌았다. 처음엔 그저 오래된 건물 특유의 곰삭은 기운이려니, 혹은 오랜 시간 비워져 있던 공간의 숙명처럼 애써 외면하려 했다. 웬만하면 참고 지내려 애썼다. 그러나 태양의 온기가 사라지고 어둠이 내려앉는 밤이 찾아들거나, 장마철이 아니더라도 빗방울 몇 점이라도 땅에 떨어지는 날이면 그 냄새는 마치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기승을 부렸다. 벽지 속에서 끓어오르고, 장판 아래에서 기어 나와, 심지어는 눅눅한 이불 속까지 스며드는 듯한 곰팡이 특유의 비릿하고도 곰삭은 악취는 내 모든 감각을 짓눌렀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폐 깊숙이 스며드는 듯한 불쾌감은 단순히 기분을 해치는 것을 넘어, 나의 호흡기를 긁어내는 듯한 실제적인 통증을 유발했다. 콧속이 칼칼했고, 목구멍은 늘 따끔거렸다. 가끔씩 찾아오는 잦은 기침과 함께 불안감은 현실적인 공포로 변모했다.
이대로 방치할 수는 없었다. 곰팡이는 단순한 불쾌감이 아니었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살인자와 같았다. 시나브로 내 몸을 파고드는 이 독기는 호흡기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치고, 최악의 경우 심각한 질병이나 치명적인 증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나의 생존과 건강이 걸린 문제였다. 당장이라도 끓어오르는 가려움증과 답답함을 해소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감이 나를 재촉했다.
그리고 나는 엄연히 말해 이 집의 세입자가 아닌가? 나는 정당한 보증금과 월세를 지불하고 이 공간을 빌린 존재였다. 집주인은 세입자에게 안전하고 쾌적한 주거 환경을 제공할 의무가 있었다. 이런 중대한 문제를 초창기에 분명히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망설임은 곧 나약함으로 비칠 것이고, 나는 절대 그렇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나는 그저 만만한 대학생 세입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그녀에게 각인시켜줄 필요가 있었다. 나는 까다로운 세입자였다. 비록 상대가 내 심장을 걷잡을 수 없이 흔들어 놓은 그 '아줌마'라 할지라도 말이다. 오히려 그랬기에 더욱 단호하게 나서야 했다. 그녀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은, 한편으로는 그녀의 시선을 붙잡고 싶은 모순된 욕망이 내 안에서 뒤섞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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