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리 선생님 4

우리 학교는 지난 주말인 7.22일에 방학식을 하고 35여일 간의 여름방학에 들어갔다. 대부분의 학교가 같이 방학을 시작했다. 방학이라고 해도 학생들처럼 35일 동안 노는 것이 아니라 출근을 해야 한다. 출근을 하지 않으려면 연수라도 가야하기 때문에 학교 계획 또는 개인 사비를 들여 부족한 부분을 배우게 된다.
김주리 선생은 이미 해외연수가 있어 준비 시간을 포함해 많은 시간을 받아 출근에 대한 부담은 덜 수 있었다. 프랑수 연수에 대비하여 사전 지식을 습득해야한다. 미리 준비를 하지 않으면 한국에 귀국해서 보고서를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시립도서관을 다니며 프랑스 관련 서적과 예술 서적을 다시 본다. 대학교 때 배운 거지만 잃어버린 것이 많다.
다른 선생님들은 영어나 일어 연수를 떠나고 중국과의 관계 때문에 중국어를 선택하는 선생님도 있었다. 김주리 선생은 컴퓨터를 배우고 싶었지만 이번 방학에는 시간이 촉박했다.
7월 25일 뜨거운 아침... 여름이라 그런지 아침부터 덥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지만 너무 더워 서있는 것도 힘들다. 혹시 안개가 끼거나 해서 비행기 이륙에 지장이 있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눈부시게 환한 날이었다.
며칠 전부터 몇 번이고 다시 싼 짐을 어제 다시 확인하고 시원하고 가벼운 촉감을 주는 란제리와 스타킹도 몇개 더 넣었다. 프랑스에서 필요한 것은 구입하면 된다고는 하지만 처음 나가는 해외라 겁이 난다.
정수를 비롯한 친구들에게 시달리지 않아도 되어 해방감이 있고 기분이 좋아야 하는데 왠지 아쉬움이 있다. 스스로 길들여지고 있는 것을 모르고 있거나 그들이 주는 쾌감에 도취되고 있는 것이다.
공항으로 향하면서 다시 이 길을 돌아올 때는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하였을 거라는 뿌듯한 생각도 든다. 서둘러서 그런지 공항에는 사람들이 보이 않더니 몇 명씩 모여든다. 이른 새벽인데도 공항에는 많은 사람들이 바쁜 듯이 움직였다.
흰색 셔츠에 베이지색 바지를 입은 정숙한 모습은 단연 주위를 빛나게 하였다. 조금만 가꾸어도 바탕이 아름다운 지라 귀엽고 이쁜 모습이다. 옷을 좀 여유 있게 입어서 그런지 볼륨 있는 가슴은 밖으로 표시가 나지 않는다.
"빨이 오셨네요."
"저도 방금 도착했어요. 안녕하세요?"
"네. 다른 사람은요?"
"모르겠어요."
이미 한번 본적이 있어 낫이 익었다. 올해 초 000 작품전시회에서 본적이 있다. 00중학교에 다니는 유재덕 선생이다. 남자다운 기질이 보이기는 하지만 김주리 선생을 바라보는 눈이 평범하지 않는다. 그는 출발 날에 처음 만난 사람이 김주리 선생이라는 것이 무척 기뻤다.
그는 이것을 인연이라 생각하며 김주리 선생와 친하게 지내고자 노력한다.
"부족한거 있으면 매점에서 구입하세요.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다 준비했어요."
"카메라는 갖고 오셨어요? 또 언제 갈지 모르는데 작품 사진 찍어야죠."
유재덕 선생님은 망원랜즈가 달린 카메라를 보여주며 자랑한다. 겉 보기에도 꽤 비싸보인다.
"네. 갖고 왔어요. 전 그냥 자동카메라를 갖고 왔어요."
"네. 제가 작품 사진 찍어 드릴게요."
"네 고맙습니다."
약하지만 볼륨 있는 가슴과 잘록한 허리 타이트하게 입어 작은 히프 안에 감추어진 비경이 유재덕 선생의 눈에 떠오른다. 상대방의 마음을 맑게 하는 환한 미소는 눈부시기까지 하다. 정말 이쁜 여자이다. 그는 자신이 결혼하지 않았으면 정말 찐하게 사귀어 보고 싶었다.
뒤돌아 주위를 돌아보는 김주리 선생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가늘고 작은 몸에서 나오는 향기를 맡아 본다. 아담한 가슴은 귀엽다. 따귀한대 맞고 저곳을 한번 만져 볼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선생님들이 하나 둘씩 모이고 우리를 안내할 문체부 관계자도 도착했다.
"저는 이번 안내를 받은 문체부에 근무하는 000과장입니다. 함께 연수를 떠나시는 분들은 학교 선생님도 계시고 사회 각지에서 예술 업에 종사하시는 분들입니다. 소개는 나중에 시간 돼서 차차 하시고요. 출발하기 전에 조를 짜겠습니다. 한 번에 많이 움직이면 불편 한 것도 있고 숙소 문제로 2개조로 나누었어요. 각 조장은 연장자 두 분이 맡으시겠습니다. 그리고 조별 총무를 정해서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소속은 생략하고요 성함을 부르겠습니다.”
"A조는 이성해님이 조장이시고 조원은 이영숙, 김학원.... 10명입니다. 이쪽으로 모이세요."
"예."
"B조는 정국진님이 조장이시고 김인철, 박영식, 이필수, 강인수, 최강석, 김국정, 김주리, 유재덕, 오재미 이상 10명입니다. B조는 이쪽으로 모이세요."
"네."
"같은 조끼리 인사 나누시고요. 얼굴을 익히도록 하세요. 같이 다니는 경우도 있겠지만 자율성을 부여하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다르게 움직이는 경우가 많을 겁니다. 연수 기간중에 많은 것을 배우시기 바랍니다. 물론 연수가 끝나는 날에는 관람평과 소감문을 작성하여 제출하셔야 합니다."
"그거 꼭 써야 합니까?"
"네. 어쩔 수 없습니다. 모두 공적으로 연수를 가시는 것이기 때문에 의무적으로 제출해야합니다. 제출하지 않으시면 학교 평가에서 감점 처리됩니다."
"하하..."
"세계에서 부패가 없고 청렴하기로 유명한 싱가포르에 들려 그곳 학교 교육과 교육자료 관람 후 프랑스로 갈 예정입니다."
오전 9시 우리는 드디어 비행기에 탑승했다. 싱가폴 항공이라서 승무원들도 모두 외국인이었다. 좀 걱정했지만 영어는 어느 정도 언어는 구사할 수 있어 식사를 시키고 먹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6시간 정도 비행하고, 우리가 내린 곳을 싱가폴이었다. 공공장소에서의 준법정신을 교육 받아야 할 만큼 질서와 벌금이 무서운 나라이다. 싱가폴의 건물들은 하나같이 신식 건물이었다. 그런데 신기한 점은 고층건물의 모양이 모두 달라서 같은 모양의 건물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중심가의 한 학교에서 싱가폴을 교육제도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그곳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한국인 2세도 있었다. 학교는 현대식 건물로 깨끗하게 지어졌고 다양한 시설을 갖춘 훌륭한 학교였다. 주리는 이쁘게 보일려고 원피스 형태의 옷을 입고 있어 주위의 시선을 끌고 있었다. 여행할때 원피스를 입으면 땀이 나도 잘 마르고 좋다고 해서 입은 것이다.
"싱가폴의 교육제도의 특징은 조기에 적성과 능력을 파악해 능력별 교육을 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어린이는 적어도 10년의 의무교육을 받아야 하며 유치원 과정에서부터 공용어로 쓰이는 영어 이외에 1개의 모국어(Mother Tongue Language)를 중국어, 말레이어, 타밀어 중에서 택일하여 배워야 합니다...."
"자 이쪽으로 오시죠."
"네."
선생님들이 이동을 하면서 몸이 부딧혔다. 앞에 서 있던 한 선생님이 몸을 뒤로 돌면서 팔이 김주리 선생의 왼쪽 옆 가슴을 친다.
"앗!"
"미안합니다."
"괜찮습니다."
김주리 선생은 가슴에 느끼는 통증을 참으며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했다. 아프다고 떠들어봐야 창피하기만 하지 도움이 되는 것이 없었다. 어쩌면 가슴에 닿은 것도 모르는데 화를 내는 것은 보기 좋지 않았다. 거기다 상대방이 사과를 하지 않은가. 그러나 남자가 사과 후 자리를 옮기면서 웃는 모습에서 어짢은 기분을 느낀다. 팔에 남은 뭉클한 감촉이 아직도 남아 즐기는 듯하다.
우연이었지만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여학생들 중에 성숙해서 어른 티가 나는 아이가 있으면 만져보고 싶은 충동 때문에 참지 못하고 장난삼아 만져본 것이 습관이 되어 이제는 손이 가는 것을 억제하기 힘들었다.
여학생들 사이에서 기피 인물로 낙인이 찍힌지 오래이다. 한번은 성적이 좋지 않아 손바닥으로 엉덩이를 때렸는데 누가 고자질을 했는지 혼이 난적이 있다.
"괜찮아요?"
"네. 괜찮아요."
그는 같은 B조의 박영식 선생님이 었다. 30대 중반정도 되었는데 결혼을 하지 않은 노총각이다. 몇 번 여자와 선도 보았지만 만남은 오래가지 않았다. 변태적인 것도 그렇지만 믿음이 가지 않아 싫어한다. 괜찮다는 말을 하고 돌아서는 김주리 선생의 모습을 탐스럽게 쳐다본다. 스커트 아래 뽀얀 다리가 이쁘다. 유재덕 선생은 옆에서 구경하다 우연히 현장을 목격한다.
"자 이쪽으로 오세요."
옆방으로 이동하자 전면에 스크린이 내려오고 있었다. 선생님들이 다 들어오자 문이 닫히고 조명이 어두워졌다. 전자동 홍보시스템이다. 잠시 스크린을 향해 불빛이 솥아지고 홍보영화가 돌아가고 있었다.
안내하는 사람이 스크린에 있는 장면을 설명하면서 새로운 선진 지식을 심어주고 있다.
"이곳은 싱가폴에서 제일..."
김주리 선생은 박선생이 자신의 뒤에 바짝 붙어 있는 것이 부담스러워 몸을 앞으로 붙었지만 박영식선생님은 따라 붙어 앞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뒤로 움직이도 못하는 처지가 되자 머리속으로 지하철에서의 일이 생각났다.
언제 왔는지 유재덕 선생이 김주리 선생의 옆에서 관람을 하였고 자신의 쪽으로 밀려오는 김주리 선생을 기분 좋게 받아내고 있었다. 박선생은 자꾸 아까의 뭉클한 감촉에 대한 미련이 충동질 했고 앞에 서 있는 여선생의 몸에서 나는 향기에 자제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학창시절 버스에서 가끔 장난 삼아 해본 기억이 떠오르고 조금씩 손이 김주리 선생 쪽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학교에서 여학생들의 어깨나 허리를 만질 때 깜짝 놀라며 피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그는 학교에서 혼자있는 여학생이 보이면 칭찬하는 척하면서 허벅지나 가슴을 만지고 그래도 가만히 있으면 바지 지퍼를 몰래 내리고는 여학생에게 지퍼를 올려달라고까지 했었다.
'조금만 만져보자. 잠깐 만지면 모를 거야. 거기다 어두워서 다른 사람도 모른다.'
박선생은 자신의 몸이 닿을 정도의 느낌을 주기위해 손으로 김주리 선생의 엉덩이를 스치듯이 만졌다. 그렇지만 그것은 만족보다는 젊은 시절 혈기를 깨우고 있었고 점점 욕망만 더해갔다.
'그만하자 나는 교사야. 김선생도 교사고...'
'아니야. 아까 그렇게 세게 첬는 데도 아프지 않다고 하는 것을 보면 실수 인척하며 만지만 넘어 갈거야.'
박선생은 한인 2세의 교육관련 설명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로지 만져보고 싶다는 충동과 참아야 한다는 자제력과의 싸움에 갈등하고 있다. 팔에 남아있는 감촉이 욕구를 부추긴다. 다시 이런 기회는 오지 않을 것이라는 절박감이 들며 손은 다시 엉덩이 쪽으로 갔다.
김주리 선생은 전과는 다르게 무엇인가 엉덩이에 자꾸 닿은 물체가 손같다는 생각에 놀랐다. 설마 박선생님이 지하철 치한과 같은 행동을 한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모두 조용히 안내자의 설명을 경청하고 있어 심하게 움직일 수도 없고 소리를 지르기도 어렵다.
박선생은 조금씩 자극을 더해가면서 만지는 범위도 넓어졌다. 그의 손이 허벅지와 엉덩이를 자극하여 김주리 선생은 본능적으로 놀라 움직였다. 긴장감으로 몸에서 땀이 난다. 그렇지만 참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다. 어떻게 이런 선생이 있을까 믿을 수 없었지만 현실이었다.
박선생은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교육을 받는 것 같았지만 손은 따로 놀고 있었다. 이미 엉덩이에서 허벅지로 내려간 손은 허벅지 안쪽 깊은 골까지 들어가고 있었다. 스커트가 안쪽으로 밀리면서 음부쪽에 가까와 지고 있었다.
김주리 선생은 놀라며 허벅지를 조였다가 풀었다. 그의 손이 엉덩이 사이에 끼는 느낌이 들자 더 놀랐던 것이다. 자극에 어쩔수 없이 질에서는 액이 흘러 팬티를 적시고 있다. 마음은 싫어하고 있지만 몸은 자극에 녹아나고 있다. 그렇지만 빨리 교육이 끝나야 한다는 것은 변함이 없다.
어떻게 박선생을 피해 다닐지 걱정이다. 이미 자신을 만져보았기 때문에 연수기간에 치근덕 거리거나 귀찮게 할지 겁이 난다. 주리는 전에 비해 많이 변해있었다. 정수를 만나고 그들과 어울리면서 성에 대해 개방적으로 변한 것이다.
지하철에서 추행을 당하고도 말하지 않은 것이 꼭 정수가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정수가 있어도 손을 잡거나 눈빛으로도 거부할 수 있는데 그러지 않았다. 이것은 주리가 성 접촉을 즐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급적 성적인 문제가 학교에 전해지는 것이 두려웠다. 학교에 전해지면 정수도 알게 되고 그러면 어떤 말을 들을지 두렵다.
왠만하며 참고 넘길 계획이다. 피할 수 있으면 피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도 참을 수 있다.
한편 박선생은 주리의 엉덩이와 힙 부분을 만지다 나중에 떠들거나 신고를 하면 어떻게 변명 할지 궁리한다. 다른 관람실로 갈 때는 거리감을 두려고 했고 박선생을 피하자 눈치를 챘는지 따라오지는 않았다.
"자 이쪽을 오세요. 이것이 싱가폴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입니다."
책상위에 펼쳐진 책들을 설명을 들으면서도 박선생의 위치를 확인하며 도망을 갔다.
싱가폴 정부는 모든 국민이 적어도 2개 이상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정책을 펴고 있다. 버스를 타고 시내를 여행하면서 정말 깨끗한 나라라는 인상을 받았다.
"김주리 선생님 저기 보세요. 건물이 근사하죠?"
"네. 마치 예술품 같아요."
"현대식이면서도 건물마다 분위기가 틀려요."
유재덕 선생님이 김주리 선생의 곁에 붙어 다니며 말을 걸었고 다른 총각 선생님들도 김주리 선생에게 많은 관심을보이고 있었다. 이미 서로 대화를 하면서 기본적인 것은 서로 알게 되었다. 특히 같은 B조 선생님들과는 같이 생활을 해야하기 때문에 친해질 필요가 있어 부담 없이 대했다.
박선생 말고는 모두 예의를 지켰고 그것이 김주리 선생은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그들의 속 마음속에도 검은 그림자가 있었고 언젠가는 자신들에게 짜릿한 기회가 올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었다.
"그럼 여기서 저녁을 먹고 밤 10:20에 프랑스행 비행기를 탈겁니다."
오후 어두워지는 노을을 보며 싱가폴의 여행은 끝이 났다. 모두는 아쉽다는 표정을 하며 한국인이 경영하는 음식점에 들어갔다. 외국에 나왔다고는 하나 식당 내에서는 한국의 향기가 뭍어나고 있었다.
남자 선생님들은 언니와 김주리 선생님의 곁에 서로 앉기 위해 눈치를 보았고 좀더 잘빠지고 미인인 김주리 선생에 대한 경쟁은 치열했다.
비행기 탑승 관계로 음주는 하지 못하고 간단하게 식사만 했다. 식당 주인이 직접나와 인사를 하고 한국을 떠나 싱가폴에 정착한 자신의 무용담을 이야기 한다.
"그러니까 제가 한국을 떠난 것이 엇그제 같은데 벌써 20년이 넘었습니다."
"뭐. 엇그제 같은데 20년이 넘었다고... ㅋㅋㅋ"
젊은 남자 선생님들이 조롱하듯이 웃고 조장과 안내하는 문체부 직원이 지적을 한다. 박영식 선생은 김선생과 친해 보려고 접근을 하였지만 미리 피하는 바람에 쫓고 도망가는 일이생기기 시작했다. 박선생은 천천히 기회를 만들려고 했지만 마음이 급하여 참지 못했고 김선생은 박선생이 가까이오면 더 거리감을 두었다.
일행은 파리로 향하는 비행기에 탑승했다. 그리고 12시간의 비행 끝에 다음날 정오 12시에 우리는 파리의 공기를 마실 수 있었다. 파리에 도착했을 때만해도 설마 패션쇼에 모델로 참석을 하고 수치스런 일을 당할거라는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
파리에 도착하여 오베르 성을 관람하고 인상파의 거장 클로드 모네의 생가가 있는 지베르니라는 작은 마을로 갔다. 지베르니는 파리에서 서쪽으로 70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마을로 5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다녀가고 있으며 지금도 많은 예술가들이 정착하고 싶어하는, 여유롭고 정감어린 곳이다.
"김선생님 저거 멋있죠? 하나 사드릴까요?"
".."
김주리 선생은 박선생의 말을 못 들은척하며 대꾸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다른 선생님들과 가깝게 지내고 이야기를 하려고 애를 썼다. 박선생이 귀찮게 접근하는 것을 막을 방도는 그것 밖에는 없었다.
박선생은 김선생의 무관심에 속으로는 욕도 나오고 화가 났지만 개념치 않고 주위에 머물며 대화할 기회를 찾았다. 선생님들은 몇몇이 모여 사진을 찍고 관람을 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려고 노력하였다. 모두에게 이런 기회는 다시 올 수 없는 연수였다.
모네는 1883년부터 1926년까지 43년간 이곳에서 작품 활동을 하면서 그의 마지막 생애를 마쳤다. 김주리 선생도 평소 가보고 싶었던 곳이라 감회가 새로웠다. 박선생 같은 사람만 없다면 정말 재미있고 부담 없는 연수가 될 텐데 하며 아쉬움이 남았다.
다른 선생님들도 메모지에 많은 것을 기록하며 하나라도 더 배우려고 노력한다. 어두워질 무렵에 숙소에 도착해 짐을 풀었다. 언니와 같은 방을 사용하게 되어 외롭지는 않을 것 같다.
"언니 오늘 저녁에 교민회에서 우리한테 파티를 열어 준다면서요?"
"네. 파리의 음식은 어떤지 빨리 맛보고 싶어요."
"저도요. 호호..."
김주리 선생은 그날 저녁 교민 환영 파티에서 패션가에 이름이 있는 디자이너 빠데르 송을 만난다. 빠데르 송은 국내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파리에 유학을 했다가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귀국하지 않고 시민권을 획득한 예술가로 매년 2회의 패션쇼를 개최하고 있다.
"한국인 예술가를 한명 소개하겠습니다. 이름은 빠데르 송이고 본명은 송찬영입니다."
"파리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아무쪼록 많은 것을 배워서 한국의 미술 문화 발전에 보템이 되어 주시기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인사말에 참석자들은 큰 박수를 보내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사람들의 환호를 보면 실력은 있는 듯하다. 교민들과 선생님들은 고국의 이야기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빠데르 송은 그중에서 돋보이는 김주리 선생이 눈에 들어왔고 대화를 하면서 지적인 여성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서울에서 대학을 나오셨나요? 아니면 다른 나라에서..."
"아닙니다. 저는 서울에서 대학을 나왔습니다."
"아. 그렇군요. 다른 사람에 비해 좀 세련되 보이 길래..."
"예. 호호... 예쁘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아닙니다. 정말 미인이시고, 어떤 옷을 입어도 어울리는 타입입니다."
"호호호... 너무 비행기 태우지 마세요."
김주리 선생은 스스로도 이쁘고 잘 빠진 몸매에 자부심이 있었지만 유명한 사람이 자신을 칭찬하고 대화를 해주는게 고마워 학교 생활에서 부터 미술 분야까지 이야기를 하였다.
"한국에는 가끔 가세요?"
"네. 일년에 한두 번은 들어갑니다. 일이 있을 때는 자주 가고요."
"네. 좋으시겠어요. 이런 곳에서 사시니까."
"네. 정말 예술하는 사람에게 어울리는 도시입니다. 내일 시간이 되면 저녁이라도 같이 하시죠. 마침 내일 문체부에서 오신 분들과도 미팅이 있거든요."
"제가 거기에 어떻게..."
"괜찮습니다. 한국에도 이런 멋진 여성분이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군요. 그분들에게 선생님을 칭찬해 주고 싶습니다. 또 별도로 드릴 말씀도 있고요."
"저에게요?"
"예. 불편하시면 별도 자리를 만들고요."
"아뇨 그럴 필요는 없어요."
"좋습니다. 김과장님!"
빠데르 송은 인솔책임자인 문체부 직원에게 설명을 했고 혼쾌이 승낙을 하였다. 교민들의 따뜻한 환영에 모두 들뜬 분위기였다. 특히 김선생은 패션 전문가의 각별한 칭찬을 들었고 특별히 초청까지 받았다는게 너무 즐거웠다. 이영숙 언니를 자신만 초청을 해서 좀 미안스럽다.
"저 오늘 만났던 디자이너님이 초청하셨어요. 같이 가실래요?"
"호호... 괜찮아요. 갔다 오세요. 내가 어디 김선생님 발끝이라도 쫓아가나요. 정말 같은 여자지만 부러워요. 어떻게 그렇게 몸도 관리하고 얼굴도 이쁜지..."
"죄송해요."
"아뇨. 정말 진심 이예요."
파리에서의 첫날밤은 잠이 오지 않아 언니와 이야기를 하다 늦게 잠이 들었다.
다음날 모두 3층으로 구성된 오르세이 미술관을 관람하였다. 회화 작품의 걸작들을 골라 전시한 미술관에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초에 걸친 미술품들로 사실주의, 인상주의, 후기 인상파, 아르누보중 대표적인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원래 오르세이 미술관은 기차역으로 쓰이던 아르누보 양식의 구 오르세이 역을 1977년부터 개조공사를 시작하여 1986년 개관하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오 르세이 미술관입구를 통과하여 들어가면 타원 모양의 높은 유리 천정이 인상적이며 개조전 선로와 플랫포옴이었을 법한 1층에는 지금 수많은 조각 작품들과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다.
회화뿐만 아니라 조각, 테마 예술품, 가구 재료, 건축 구조물, 포토 그래피, 유명 작가들의 스케치북과 노트 등도 함께 전시되어 있어 그들의 기법 등을 엿볼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로 말로만 듣더 작품들을 실제로 볼 수 있어 영광스럽기 까지 했다.
미술관 옆에서 그림을 엽서로 팔고 있어 몇장을 샀다. 그렇게 비싸지 않아 기념으로 좋아 보였고 친구들에게 보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날 저녁 몇명이 모인 식사 자리는 김주리 선생에게 어색한 자리였다. 빠데르 송은 식사를 하면서 김주리 선생을 챙겨주었지만 대화의 소재나 분위기가 자신을 낄 자리가 아니었다. 그들은 패션쇼에 선보일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하였고 김주리 선생에게는 생소한 분야였다.
"김과장님 어제 여기 계시는 여선생님을 보고 무척 놀랐습니다."
"김주리 선생님요?"
"예."
"하하.. 무엇이 놀랄만합니까?"
"김선생님의 미모도 그렇지만 유수 패션모델에 버금가는 몸매입니다. 두상이 작고 팔다리가 긴 서구적인 몸매를 갖고 있거든요. 한국적인 여성에게서는 찾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선생님이라는 직업도 좋지만 아까운 일입니다."
"하하.. 그렇군요. 얼굴만 미인인줄 알았는데 듣고 보니 그렇군요. 역시 전문가라 그런지 사람 보는 눈이 있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쏠리자 김주리 선생은 부끄러움을 느끼고 고개를 숙인다.
"그래서 말씀인데요. 몇 칠 남지는 않았지만 괜찮으시다면 저를 도와 주셨으면 하는데요."
"우리 김선생님이 도와드릴 일이 있습니까?"
"네."
"김선생님은 미술을 했지만 패션은 잘 모르세요. 그렇쵸?"
"네. 저는 패션은 아는게 별로 없어요."
문체부 김과장은 김주리 선생에게 질문을 했고 솔직히 대답했다. 정말 패션은 문외한이다.
"몰라도 괜찮아요. 이번 패션쇼에서 제가 만든 의상을 잠시 입어 주셨으면 하는 겁니다."
"그럼. 선생님 모델로 쓰시겠다는 말인가요?"
"네. 잠시 모델이 되 주시면 하거든요."
"하하.. 벌써 찍었군요."
장내에는 웃음이 퍼지고 모두 패션모델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데 공감을 한다. 더군다나여기는 외국이고 수준 높은 모델만 무대에 등장할 수 있는데 한 번도 경험이 없는 초보라 불가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어렵지는 않습니다. 워킹하는 것만 좀 배우면 되거든요. 1:1 강의를 하면 가능해요. 또 좀 서툴어도 이곳에서는 초보자로 보지를 않아요. 실수해도 하는 데로 넘어가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워낙 독특한 패션쇼를 많이 하니까요. 가끔 초보 모델을 뽑아 등장을 시키는 일은 가끔 있습니다. 아무래도 신선미는 있거든요."
"하하... 그럼 김선생님에게 직접 물어 보세요."
"김선생님 도와주세요. 김선생님 같은 순수한 이미지가 꼭 필요했는데 그에 맞는 모델이 없었어요. 도와주시면 보수는 섭섭하지 않게 드릴게요."
삐에로가 거듭 요청하자 김주리 선생은 난감했다. 거기다 문체부 김과장까지 거들고 나선다.
"하하... 김선생님이 하시겠다면 연수의 일부분에 포함하고 시간도 드리겠어요. 또 성과에 따라 점수도 드리고요. 꼭 예술품 관람을 하는 것만이 중요한것은 아니지요. 패션을 본고장인 파리에서 패션쇼에 참가를 하다는 것도 어떻게 보면 의미가 있어요. 여기 송찬영씨는 내가 아는 이름있는 디자이너입니다. 한국에서도 알 사람은 알아요."
"네. 부탁을 드리겠습니다."
".."
"제가 몇년을 연수 인솔자로 나왔지만 오늘 같이 선생님을 모델로 쓰겠다고 하신적은 처음이라 저도 어리둥절 합니다. 아시겠지만 매번 오면서 신세만 졌는데 이번에 김선생님이 연수생을 대표해서 도와주시지요? 이렇게 청하는 것은 처음봅니다. 프랑스에도 한국에 선생님 같은 미모 갖춘 모델이 있다는 것을 자랑하고 싶기도 하고요."
김주리 선생은 무척 부담이 되었다. 모델은 너무 생소했다.
"저도 도와 드리고는 싶지만 아무것도 몰라요. 패션쇼를 직접 관람해본 기억도 없고요."
"일단 해보세요. 그래도 어려우면 그때 그만 두셔도 됩니다."
"저. 그렇지만..."
"하하... 김선생님 지금 행복한 고민하고 있다는 거 아세요? 많은 사람들이 모델이 되고 싶어 합니다. 또 프랑스에서 패션쇼에 모델로 참여한다는 것은 영광이죠. 그동안 신세만 졌는데 서로 돕고 사는 게 맞는 것 같아요."
"맞습니다. 저는 올 때마다 연회를 베풀어주셔서 연락하기가 미안합니다."
"하하. 무슨 말씀을요. 진짜 한국을 빛내는 사람은 본토에 있는 사람입니다. 사실 본토에서 잘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효과가 별로 없어요. 가끔 어처구니없는 사건 때문에 한국이 욕을 먹는 경우가 있는데 국제적으로 망신 시키는 일은 없어야 해요."
참석한 사람들이 모두 동조를 하며 송찬영씨를 칭찬하고 송찬영씨는 당연한 일이라고 하면서도 김선생에게 계속 잠깐 동안이라도 패션모델이 되어 줄것을 부탁하자 김주리 선생은 난처한 입장에 빠진다. 미술을 하면서 패션 모델에 대한 동경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막상 기회가 오자 망설여지는 것이다. 박영식 선생을 피할 수 있는 좋은 기회지만 자신이 망치는 것은 아닌지 불안하다.
"저는 아무래도 안될 것 같아요. 자신이 없어요. 괜히 선생님 패션쇼를 망가트리지도 모르고요."
"하하.. 그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일단 좀 배운다는 생각으로 하셨다가 정 어렵고 안될 것 같으면 안하셔도 됩니다. 모처럼 배울 기회도 될 것 같은데요."
"그래도..."
"이번에 전통 한복을 만들었는데 어울리는 모델이 없어 고민을 했습니다."
"한복요? 이번 패션쇼가 한복인가요?"
"뭐. 한복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제일 먼저 한국을 알리는 한복이 등장하고 다음으로 프랑스의 전통의상이 등장하죠."
"그렇게 하세요. 이것도 연수에 포함이 됩니다. 패션도 예술이니까요."
"도와 드리세요. 패션쇼에 참석하면 일부 옷을 그냥 드린다는 말도 있어요."
"좋은 기회입니다."
주변 사람들이 김주리 선생을 난처하게 만들고 있었다. 신세만 졌는데 보답할 수 있는 기회라며 여기저기서 할 수 있는데 왜 안 하냐며 뭐라는 것 같다. 해보지도 않고 어찌 아냐는 사람도 있다. 대부분이 어쩌면 이번 기회가 이 사람들에게 보답할 수 있는 기회라고 보고 있다. 거기다 입었던 옷을 무료로 주기도 한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유명 디자이너가 만든 단 하나의 작품을 가지는 것이다. 내키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에게 떠밀려 모델로 참여를 하게 된다.
"저 그럼 부족하지만 한번 해보겠어요."
"고맙습니다."
참석자들은 박수로 환영하고 김주리 선생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패션쇼에 나가는 모델이 되어 본다는 생각에 설레이지만 또 다른 약점이 되어 동료들에게 몸을 주게 된다는 것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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