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갈린 부부들 - 제 1화
처형Mandy봊이속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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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분전
약속한 주말이 되었다. 오후 5시 30분. 모임까지 1시간 남은 상황에서 나는 거울 앞에서 옷 맵시를 다시 한 번 둘러보며 고치고 있다.
“뭘 그렇게 꾸며?”
수잔나가 가방을 챙기면서 시큰둥한 표정으로 묻는다.
“새로운 사람들 만나는데 후줄근하게 나갈 수는 없잖아. 다 됐다. 가자.”
나는 그녀를 데리고 차에 올라탔다. 약속 장소를 네비게이션에 입력하고서 차를 출발한다. 한산한 도로 위를 달려, 모임 장소에 도착하니 벌써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유리창 너머로 새어 나왔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따뜻한 공기와 함께 여러 시선이 동시에 쏠렸다. 안을 둘러보는데, 저 멀리, 외국인들과 외국인들이 섞여 앉은 테이블이 눈에 들어온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거기에는 이미 12명 정도가 모여 있었다. 한국인 여덟, 외국인 넷. 모두 삼삼오오 앉아 가볍게 술잔을 기울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안녕하세요?”
“이경률씨죠? 반갑습니다.”
30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남자가 환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그룹 장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우리를 가운데로 이끌었다.
“여러분, 오늘 처음 참석하신 분들이에요. 이경률씨, 그리고 수잔나.”
사람들은 가볍게 손을 흔들어 인사했다. 몇몇은 큰 소리로 인사를 하며 반겨 주었지만 그 따뜻함은 피부 위를 맴돌기만 했다. 익숙하지 않은 공간과 말투들, 낯선 얼굴들 사이에서 어쩐지 몸이 굳으며 위축됐다.
우리는 가장 끝자리에 조심스레 앉고서는 맥주 두 잔을 주문했다. 이미 형성된 그룹 특유의 공기가 있었다. 서로를 잘 아는 사람들끼리만 통하는 농담과 리듬이 빠르게 오갔고, 우리는 그 흐름을 멀찍이서 바라보는 구경꾼처럼 보였다. 기본적인 자기소개 순서가 돌아왔지만, 수잔나는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이름만 말했고, 나는 목이 조금 잠긴 목소리로 몇 마디를 더듬었다. 사람들은 호응을 해주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어색함이 더 짙어졌다.
맥주잔을 손에 쥐고 있자 마실 타이밍도 놓쳤다. 옆자리 한국인 두 명이 외국인 한 명과 흥미로운 얘기를 나누고 있었지만, 끼어들 용기가 쉽게 나지 않았다. 수잔나 역시 두 손가락으로 맥주잔을 굴리며 주변을 힐끗거리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모임의 첫 20분이 흐르는 동안, 우리는 마치 얼음 속에 갇힌 사람들처럼 말 한마디 꺼내지 못한 채 조심스레 눈치만 보고 있었다.
여전히 어색한 분위기에 나는 술만 홀짝 홀짝 들이켰고, 수잔나는 테이블 아래에서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딱히 말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때였다. 대각선 건너편, 조명이 비스듬히 내려앉은 자리에서 한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금발 머리를 어깨까지 자연스럽게 늘어뜨렸고, 체구는 조금 통통했지만 편안하고 따뜻한 인상이 느껴졌다. 무엇보다 짙푸른 호수 같은 눈동자가 인상적이었다. 나도 모르게 그녀를 빤히 보고 있는데, 내 시선을 느낀 건지, 그녀도 마침 고개를 들었다. 눈이 마주치는 순간, 우리 둘은 가볍게 빙긋 웃었다.
나는 무심코 다시 한 번 그녀 쪽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그녀는 조금 더 확실한 미소로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건넸다. 순간 가슴이 살짝 두근거렸다.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냥, 오래된 방 안에서 바람 한 줄기가 스치고 지나간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그녀는 옆에 앉은 한국인 두 남자와 가볍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으이그, 속 보이는 새끼들. 말이 언어 교환이고 사교 모임이지, 어떻게든 외국인 여자 만나서 한 번 해 보려고 나온 게 뻔히 보였다. 그들의 웃음이 크게 튀어나오기도 했지만, 정작 그녀는 그저 매너 있게 반응하며 듣고 있을 뿐이었다. 대화의 중심이 아니라, 예의상 앉아 있는 느낌?
어떤 사람이길래 첫 인상에 나를 사로 잡았을까? 술도 한 잔 해서 용기도 생겼겠다, 나는 그녀와 대화를 좀 하고 싶었다. 문득, 옆을 보니 수잔나는 언제부터인가 옆 자리 외국인과 떠드느라 바쁘다. 나는 눈치를 보다가 살짝 몸을 일으켰다. 수잔나는 내게 눈길을 한 번 주고서는 옆 사람과 대화를 이어갔다. 그 틈을 타, 난는 조심스럽게 테이블 옆을 돌아 엘리나 쪽 빈자리 하나에 다가갔다.
“여기....... 앉아도 괜찮을까요?”
내가 말하자 엘리나는 놀란 듯 눈을 크게 뜨더니 이내 반가운 미소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자리를 잡았다. 옆에 있던 두 남자도 잠깐 경률을 보고는 자리 분위기에 맞춰 가볍게 인사를 건넸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호주 살면서 외국인들을 그렇게 많이 만나 봤건만, 막상 이 상황이 되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결국 먼저 입을 연 쪽은 그녀였다.
“오늘 처음 오셨죠?”
“아, 네.”
말이 부드럽게 이어지자 엘리나는 좀 더 편안한 표정을 지었다.
“반가워요. 엘리나라고 해요.”
“네, 헤헤.”
그녀는 미소를 띠며 손을 내밀었다. 나는 엉겁결에 손을 내밀어 악수를 했다.
“어디서 왔어요?”
외국인을 만나면 늘 레퍼토리처럼 묻는 질문이다.
“아, 저는 호주에서 왔어요.”
그녀의 말에 나의 눈이 번뜩 떠졌다.
“정말요? 저희도 호주에서 왔어요. 저기, 제 와이프도 호주 사람이에요!”
“어머, 정말요? 호주 어디요?”
“멜번이요.”
“저도 멜번에서 왔어요.”
엘리나의 눈이 더욱 커졌다. 이럴 수가, 한국에서 호주 사람을 만나기도 힘든 와중에 같은 지역에서 온 사람을 만나다니. 그 동안, 머릿속에 가득하던 어색함이 눈 녹듯 순식간에 사라졌다.
“저는 크랜번에서 살았어요.”
그 말이 나오자 엘리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저는 셰퍼튼에서 살았어요. 완전 반대네요!”
“에이, 호주가 땅이 얼마나 큰데, 그 정도면 이웃이죠.”
“그런가요? 하하.”
우리는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그 웃음 소리에 수잔나가 우리 둘을 바라 보았고, 나는 그녀에게 곁으로 오라는 손짓을 했다. 둘을 소개시켜 주고 나니 둘은 금방 대화의 물꼬를 텄고, 우리 셋을 둘러 싼 분위기는 순식간에 달아 올랐다. 엘리나의 옆에 있던 한국 남자 두 명은 대화에서 소외되더니 자기들끼리 담배를 피우러 밖으로 나가버린다. 나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한국에는 어떻게 오게 되었어요?”
“아, 저희 남편이 한국 사람이에요. 결혼하고 한국에 살게 되었어요.”
솔직히 말하면, 그때부터는 모든 게 조금 흐릿했다. 정확한 문장, 누가 먼저 웃었는지, 누가 먼저 질문을 던졌는지 그런 건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한 가지. 엘리나와의 대화가 자연스럽게 흘러갔다는 사실만은 또렷했다. 몇 년 만에 누군가와 이렇게 티키타카가 잘 되었던가. 말만 던지면 바로 받아주고, 내가 농담을 하면 눈이 먼저 웃고, 그 다음 입이 따라 웃는 사람.
그녀의 말투는 부드러웠고, 리액션은 과하지 않으면서도 따뜻했다. 나도 모르게 그녀를 바라보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는 걸 느꼈다. 단순히 외모 때문만은 아니었다. 금발에 푸른 눈이라는 전형적인 이미지 때문도 아니었다. 첫인상 때문이었다. 마치, 오랫동안 속에서나 만났으면 했을 법한 사람이 현실에 나타난 것 같은 기시감 같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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