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갈린 부부들 - 제 12화
처형Mandy봊이속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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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시간전
한바탕 홍역을 치렀지만 수잔나와 섹스를 하고 나니 마음만큼은 모처럼 편했다. 둘 사이를 갈라놓던 거리감도 많이 줄었고. 그러나 그것이 내가 엘리나와 멀어졌다는 뜻은 아니었다.
토요일이 되자 우리 둘은 다시 언어 교환 모임으로 나갔다. 다른 사람들과는 형식적으로 인사만 주고받고, 자연스레 엘리나와 주혁 앞에 앉았다. 주혁은 친구들과 놀러 갔던 이야기를 늘어놓았는데, 별로 시덥지 않은 내용이라 나는 이따금씩 성의 없는 대답을 하며 술만 홀짝 홀짝 들이켰다. 그러다가 대화 주제는 자연스럽게 엘리나의 어학원 이야기로 넘어갔다.
“나 결국 그만두기로 했어.”
엘리나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나는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오, 정말? 그럼 언제까지 일해?”
“다음 달 중순까지. 에휴....... 더는 못해먹겠다고 하니까 원장도 좋았는지 아쉽다는 말 한 마디 안 하더라.”
나는 숨을 눌러 삼켰다. 이 타이밍에 그만둔다고? 머릿속이 복잡해졌지만, 겉으로는 태연한 척 반응했다.
“그럼 이제 뭐 할 건데? 생각은 해 봤어?”
“아직 모르겠어. 그냥 좀 쉬면서 고민하려고. 근데, 어학원은 안 들어가고 싶어.”
엘리나도 딱히 기술을 배운 것도 아니고, 한국에서 할 줄 아는 건 영어밖에 없는데. 어학원을 떠나면 뭐 해먹고 살 거라는 말인가? 주혁이 벌어들이는 돈만으로 생활이 되나?
남들이 들으면 ‘아, 그랬구나. 조금만 더 고생해라’, ‘마무리 잘 해라’ 이런 식으로 대답하고 말았을 것을. 한참을 고민하던 나는 나도 모르게 뜻밖의 말을 꺼냈다.
“가르치는 게 싫으면, 우리 회사 감수팀에서 일 해볼래? 번역물 체크하는 건데, 원어민도 몇 명 있기는 해.”
엘리나가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웃었다.
“어? 그런 것도 있어? 그거 진짜 재밌을 것 같은데?”
“응. 지금 사람 더 뽑을 지는 모르겠는데, 요즘 일감이 많아져서 한 번 얘기는 해 볼 수 있을 것 같아. 너 원하면 내가 팀장한테 이야기해볼게.”
말은 가볍게 했지만, 가슴 속은 뒤틀려 있었다. 이걸 내가 왜 이렇게 적극적으로 말하고 있는 거지? 하지만 이미 말이 나간 이상, 수습할 수도 없었다.
엘리나는 내 마음도 모른 채 잔뜩 기대에 부풀었다.
“그것도 나쁘지 않겠네. 그럼 부탁 좀 할게. 고마워, 경률아.”
수잔나는 옆에서 미소만 짓고 있었는데, 그 표정이 왠지 모르게 차분했다. 너무 차분해서 더 불안한 그런 느낌.
그때 주혁이 갑자기 손뼉을 치듯 말했다.
“형님, 그럼 엘리나 그만두면, 잠깐 쉬는 겸해서 우리 네 명이서 캠핑 갈래요? 제가 이번에 회사에서 펜션 숙박권을 받았거든요. 바비큐도 할 수 있대요.”
“오, 괜찮네!”
수잔나가 환하게 말했다. 우리 넷이서 함께 하는 여행이라.......
“좋지! 다 같이 가면 진짜 재밌겠네.”
하지만 속은 삐걱거렸다. 불륜녀의 남편, 내 아내, 그리고 우리 둘이 넷이 여행을 간다고? 그게 과연 재미있을까? 여행 내내 가시밭길이지 않겠어? 머릿속이 잠깐 멍해졌지만, 겉으로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보이려고 노력했다.
주혁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오케이! 그럼 긴 말할 거 없이 바로 날 잡죠. 엘리나 마지막 근무일이 금요일이니까, 그 다음날 가는 건 어때요?”
우리 셋은 주혁의 말에 모두 오케이라고 대답했다. 수잔나는 조용히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우리도 오랜만에 놀러간다. 좋다, 그치?”
나는 억지로 웃으며 답했다.
“어? 흐흐, 그러게.......”
고기도 굽고, 술도 마시고, 사진도 찍고....... 겉으로는 네 사람이 아무 일 없이 웃고 떠드는 그림이 그려진다. 그런데 그 속에 엘리나와 그의 남편이 함께 있을 거라는 사실에 가슴이 답답해졌다. 더 위험한 건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문득 스쳐 지나가는 또 다른 상상이었다. 주혁과 수잔나의 눈을 피해 엘리나와 진득하게 빠구리를 하는 장면. 말도 안 되는데, 그 어두운 유혹이 자꾸만 머릿속을 비집고 올라왔다.
* * *
“글쎄, 일이 많은 건 맞는데, 그렇다고 한 명 더 뽑을 정도인 지는 모르겠어.”
“아, 그렇군요.”
나와 감수팀장은 휴게실에서 커피 한 잔씩 하며 대화를 나눴다. 엘리나 이야기를 했는데, 결국은 자리가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그래도 원어민 감수자를 구하기 힘든 건 사실이니까. 일단은 운영부장님한테 한 번 이야기는 해 볼게.”
“감사합니다.”
휴게실을 나온 나는 내 책상으로 돌아와서 메시지를 보냈다. 별로 기대는 안 했는데, 그래도 마음이 무겁다.
[나 - 저기, 엘리나. 이야기를 좀 해 봤는데, 당장은 채용할 의사가 없는 것 같아. 윗선에다가 물어본다고는 했으니 그래도 기다려 봐]
지금은 그녀도 일하고 있을 시간이니 못 볼 거라 생각하고 폰을 책상 위에 내려뒀다. 업무를 이어 가려는데, 곧바로 알림이 울렸다.
[엘리나 - 고마워]
나는 빙긋 웃으며 답장을 이어갔다.
[나 - 아니야, 뭘 이런 거 가지고. 저기, 근데.......]
[엘리나 - 응?]
[나 - 오지랖일 수는 있는데, 조금 걱정 되어서 그래. 너 거기 그만두면 정말 다른 어학원으로 안 갈 거야?]
[엘리나 - 글쎄, 잘 모르겠어. 가르치는 게 내 적성에 안 맞는 것 같기도 하고]
[나 - 음....... 주혁이 수입으로 충분하면 크게 걱정될 건 없긴 한데]
읽음 표시가 사라지고, 한 동안 말이 없었다. 가만히 대화창을 바라보고 있는데, 말줄임표가 떴다 사라지길 반복하다가 메시지가 올라왔다.
[엘리나 - 오늘 저녁에 잠깐 볼 수 있어?]
갑자기? 난데없는 질문에 살짝 당황하면서도 설렜다. 나는 벽시계를 한 번 올려다보고 답장을 이어갔다.
[나 - 볼 수는 있어. 근데 7시는 되어야 끝날 거 같은데. 더 늦어질 수도 있고]
[엘리나 - 아,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이제 보니, 평소에 쾌활하던 말투가 전혀 아니었다. 이상함을 느낀 나는 다시 한 번 메시지를 보냈다.
[나 -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엘리나 - 보고 싶어]
얼마 전에 엘리나 집에 갔다가, 수잔나와 한바탕 다퉜던 날이 떠올랐다. 머릿속 이성은 가지 마라고 소리쳤지만, 분명 안 좋은 일이 생긴 것만 같은 엘리나를 외면할 수 없었다.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고, 그 다음은 수잔나에게 뭐라고 둘러댈 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나 - 내가 조금 일찍 끝내볼게. 그렇게 되면 6시까지 보자]
[엘리나 - 고마워]
[나 - 너 일하는 곳으로 데리러 갈게. 주소 보내 줘]
엘리나는 자신이 일하는 곳의 주소를 보내주었다. 안 좋은 일이 생긴 건 분명한데, 뭘까? 왠지 그녀가 일하는 어학원과 관련된 것 같았다. 그 뒤로도 휴대전화는 조용해졌고, 나는 다시 카톡을 켜서 메시지를 보냈다.
[나 - 여보, 타지 사는 친구 한 명이 나 보러 왔대. 일 끝나고 걔 만날 거라서 좀 늦을 거야. 먼저 저녁 먹어]
거짓말을 했다는 죄책감도 잠시. 더 이상 먹히기 힘든 회사 핑계를 대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가 되었다. 나는 퇴근 시간을 조금이라도 앞당기기 위해 집중해서 업무를 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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