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갈린 부부들 - 제 13화
처형Mandy봊이속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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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시간전
아무리 빨리 해도 도저히 일찍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5시가 조금 넘은 시각. 나는 작업하던 걸 저장하고, 사정이 생겨서 가 봐야 할 것 같다고 팀장에게 말했다. 꼭 지금 가야 하냐며 핀잔을 줬고, 나는 급한 집안일이라는 핑계를 둘러댔다. 그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렇게 하라고 말했고, 곧장 회사를 나섰다.
네비게이션은 55분에 도착이라고 했지만 차가 많이 막히는 바람에 6시가 넘어서 도착했다. 엘리나가 일하는 어학원 앞으로 가니, 그녀가 입구 앞에서 휴대폰을 보며 기다리고 있다. 도로가에 정차를 하고 경적을 울렸다. 엘리나가 깜짝 놀라서 고개를 들었고, 웃으며 차에 올라탔다.
“늦어서 미안해. 차가 막혀서.”
“괜찮아. 나도 막 나왔어.”
“춥지? 얼른 가자.”
“경률.......”
“응?”
“고마워.”
나는 빙긋 웃으며 차를 출발시켰다. 등갈비가 먹고 싶다던 말에, 강변 유원지에 있는 유명한 등갈비 식당으로 그녀를 데리고 갔다. 맥주를 한 잔 하면서 간단히 목을 축이고, 2차로는 바에 가서 다시 한 잔을 했다. 평일이라 사람이 거의 없었고,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차분히 이야기를 나눴다.
“말해 봐. 무슨 일 있었는 지.”
엘리나 앞에는 조니워커 블랙 위스키 한 잔이 놓여 있다. 독한 술을 음료도 타지 않고 온 더 락으로 벌써 세 잔째 들이키자 나도 걱정이 슬슬 앞섰다.
엘리나는 잠시 입술을 깨물더니 말했다.
“나, 오늘 원장이랑 또 한 판 했어. 아니, 그냥...... 일방적인 통보라고 하는 게 맞겠네.”
“통보?”
“퇴사하겠다고 하니까 계약서에 적힌 대로 30일 채우고 나가라더니, 오늘 갑자기 말 바꾸더라고. 다음 주 금요일까지만 일하래. 대체 강사 이미 구했으니까 더 필요 없다고.”
그녀는 헛웃음을 흘리며 말을 이어갔다.
“더 웃긴 건 뭔 줄 알아? 내가 나간다니까 갑자기 다들 태도가 싸늘해졌어. 한국인 동료들까지. 나름 친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앞에 놓인 위스키 잔을 들어 한 모금 들이켰다.
“많이 속상하지?”
나의 물음에 엘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속상하고, 허탈하고 그래. 요즘은 말이야, 다시 호주로 돌아가야 하나 싶어. 여기서 이러고 있을 이유도 모르겠고.”
그 말에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번쩍 들었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야, 그건 아니지.”
나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소리가 컸던 지 엘리나가 움찔했다.
“그 어학원이 병신 같았던 거지, 너는 아무 문제없어. 너 잘못 하나도 없다고.”
“그런가......?”
“그래. 그리고 제대로 된 직장 들어가면 다를 거야. 너 경력도 있고, 사람들하고도 잘 지내잖아. 거기 원장이랑 그 동료들이 그냥 쓰레기였던 거야.”
엘리나는 미소를 띠며 나를 바라봤다. 그 시선에 마음 한쪽이 저릿했다.
“그리고....... 내가 옆에 있잖아.”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미약하지만, 표정이 조금은 풀렸다.
“너라도 곁에 있어서 다행이다, 진짜.”
나는 엘리나의 손을 잡고 어루만졌지만 속에서는 한바탕 전쟁이 일어났다. 이제 막 시작한 관계인데 벌써 끝난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녀가 없는 삶은 생각도 하기 싫었다. 그래서 그렇게 말한 것이었다. 안심시키고 싶었고, 놓치고 싶지 않았기에.
“저기요, 한 잔만 더 주세요.”
엘리나는 조금 서툰 한국어로 한 잔을 더 주문했다. 그 때 내 잔이 빈 걸 보고 한 잔 더 주문했고, 내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자 내 어깨를 툭 쳤다.
“걱정 마. 이거만 먹고 갈 거야.”
그녀는 웃으며 내게 기대왔다. 나는 팔을 뻗어 그녀를 안아서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절대 내 여자일 수가 없는 사람. 그녀도 내가 절대 그녀의 것일 수 없었다. 주혁이 그 놈이 얼마나 소홀하게 대했으면 엘리나가 나한테 이렇게 기댈까 싶었다. 뭐, 나야 고맙지만.
막잔을 빠르게 비우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차장에 있는 차로 오는 내내 우리는 팔짱을 끼고 서로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냈다. 대리 기사를 부른 뒤, 차 안에서 히터를 틀고 조용히 서로를 끌어안았다. 오늘은....... 섹스를 하기 보다는 이렇게 온전하게 엘리나를 내 여자처럼 안고서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내 여자가 아닌 사람. 욕심내고 싶다가도 그럴 수 없다는 현실에 항상 가로막혀 좌절하는 나날들. 설렘, 욕망, 아쉬움, 허전함이 공존하는 우리 관계.
그래도, 이렇게라도 내 삶 한 켠에 그녀가 머물러 있다는 게, 참으로 고마웠다. 손끝만 닿아도 심장이 뛰게 만드는 사람을 곁에 둘 수 있다는 것. 그걸로도 나는 이미 충분히 많은 걸 받고 있었다. 내 삶에 언제 또 이런 날이 오겠나?
내일이 되면 또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고 잠깐은 떨어져 있어야겠지만, 지금 이 짧은 순간만큼은 그녀를 지켜줄 수 있다는 착각이라도 하고 싶었다.
함께 체온을 나누던 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대리기사가 도착해서 엘리나를 집에 내려다주고, 우리 집으로 돌아온다. 대리비 3만 원을 건넨 나는 엘리나와 함께 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기분좋게 현관문을 연다.
“?”
집 안은 어둠 속에 파묻혀 있다. 뭐지? 수잔나가 아직 안 왔나?
거실 불을 켜고, 방 안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빈 침대만이 눈에 들어올 뿐이다.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휴대폰을 열었다. 아까 회사에서 보낸 메시지도 아직 읽지 않았다.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가해서 전화를 걸어본다.
‘연결이 되지 않아 음성사서함으로........’
‘뚝-’
“이 시간까지 뭐하는 거야. 메시지도 안 보고.”
연락이 안 되니 별 수 없었다. 씻고 누우니 하루 종일 쌓았던 피로가 몸을 덮쳤고, 눈이 스르르 감겼다. 술기운까지 올라오며 거의 잠에 들락 말락 할 때쯤이었다.
철컥-.
현관문 열렸다 닫히는 소리에 나는 퍼뜩 눈을 떴다.
“여보?”
대답 대신 익숙한 힐 소리가 삐걱거리며 거실을 지나왔다. 곧 방문이 열렸고, 수잔나가 얼굴을 발갛게 물들이고 나를 보며 실실 웃었다.
“나 왔어, 히히히.”
술 냄새가 은은하게 풍겼다. 평소 절대 취할 만큼 마시지도, 이렇게 헤벌쭉 웃지도 않는 사람인데, 무슨 일이지?
“술 마셨어?”
내가 몸을 일으키자 그녀가 두 팔을 쭉 벌리고 다가왔다.
“응. 기분 좋아서 한 잔 했지.”
“......”
그녀는 침대 가장자리에 털썩 앉더니, 내 허벅지를 손끝으로 톡톡 치며 말했다.
“가까이 와봐.”
평소엔 절대 하지 않을 애교였다. 마치 연애 초로 돌아간 느낌이랄까. 나는 잠시 멍해졌다. 엘리나와 함께 있다 온 뒤라 더 복잡한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그런데도 수잔나의 들뜬 목소리와 붉어진 볼을 보니 마음이 흔들렸다.
“아, 좋다. 역시 집이 최고야.”
그녀가 내 옆으로 쓰러지듯 누우며, 중얼거렸다.
“뭐하는 거야. 신발 벗고 누워.”
“아? 헤헤, 맞다. 여기 호주 아니지 참.”
수잔나는 거실로 나가서 신발을 벗고 다시 들어왔다. 그 순간, 갑작스러운 이 애정이 반가우면서도 두려웠다. 마치 어디선가 균열이 난 줄 알았던 관계가, 예고 없이 다시 내 쪽으로 달려와 안기는 느낌.
나는 조심스레 그녀의 등을 쓸어내렸다. 수잔나는 기분 좋다는 듯 웃으며 더 깊숙이 안겨왔다.
알 수 없는 밤이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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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
가을향기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