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갈린 부부들 - 제 17화
처형Mandy봊이속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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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5 08:42
꺄르르 웃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의 말소리가 문 너머 들린다.
“어머, 이거 왜 이래?”
“너 때문에.”
“아잇, 하지 마.”
“뭐, 어때. 우리 둘 뿐인데.”
아....... 이게 진짜였구나. 확신에 차면서도 한편으로는 그저 내 의심이 과하고, 질투 때문에 괜한 생각을 한 건 아닐까 했는데, 완전히 틀렸네?
지금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들리는 소리가 모든 답을 주고 있었다. 배신감이 먼저 밀려왔다. 그 뒤를 이어 분노가 들끓었고, 밑바닥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허탈함이 고여 들었다. 하지만 동시에, 엘리나와 있었던 일도 스쳐갔다. 떳떳하지 못한 짓을 먼저 시작한 건 나였으니까. 그건 팩트였다. 그 생각 때문에 주먹을 쥔 손이 조금 느슨해지기도 했다. 그렇다 해도....... 아무리 그렇다 해도, 지금 이 상황을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는 없었다.
‘그냥 돌아갈까?’
문 너머 들리는 두 사람의 소리를 들으며 몇 번이고 손잡이를 잡았다 떼기를 반복했다. 여기서 문을 열어버리면, 우리 넷의 관계가 되돌릴 수 없을 수도 있다. 어쩌면 수잔나는 단순히 분위기에 취해서 잠깐 이성을 잃은 것일 수도 있잖아. 이 문을 열지 않는다면 아직은 돌이킬 수 있다.
그렇게 스스로를 속여 보던 순간, 안쪽에서 들린 짧은 신음 소리, 흔들리는 목소리. 그걸 듣는 순간 머릿속이 완전히 새하얘졌다. 그 때, 이성이고 고민이고 다 날아갔다. 나는 문손잡이를 움켜쥐고 그걸 그대로 벌컥 밀어 올렸다.
“?”
“어? 엇...... 자, 자기야.”
수잔나는 팬티만 걸친 채, 반라가 되어 있었고, 주혁이 그 위에 엎어진 채 그녀의 젖가슴에 손을 올리고 있었다. 두 사람은 하던 동작 그대로 얼어붙었다.
“자는데 하도 이상한 소리가 들려서 올라와 봤더니....... 너네 뭐하냐?”
“혀, 형님. 그게.......”
“하....... 나 진짜, 씹할.”
내 입에서 욕이 튀어나왔다. 수잔나는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몸을 움츠렸다. 위에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 당황해서 옷을 주워 입을 생각도 못한 채, 팔로 자신을 젖무덤 두 개를 가렸다. 주혁은 더는 말을 잇지 못하고 내 앞으로 달려와서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수잔나는 눈물을 터뜨리며 ‘미안해, 미안해.’라는 말만 반복했다. 나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폈다 하며, 지금 이 자리에서 주혁의 죽통을 한 대 후려칠까 말까 갈등했다. 하지만 손이 쉽게 올라가지 않았다. 때린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일까, 아니면 내가 떳떳하지 못한 이유였을까?
“너는....... 새끼야....... 네 마누라가 딴 놈이랑 놀아나면 반 죽여 놓겠다던 새끼가. 진짜....... 어휴, 씹할 새끼.”
“죄송해요, 형님.”
주혁은 무릎을 꿇고, 땅에 머리를 박으면서 사죄했다. 어이구, 같잖아서 진짜...... 수잔나는 눈물을 그렁그렁하며 내게 다가와 두 손으로 빌기 시작했다.
“여보, 진짜 잘못했어. 다시는 안 그럴게.”
웃기지도 않는다. 그 순간 내 안에서 올라오는 감정은 하나로 정의하기 어려웠다. 분노, 모멸감, 질투, 허탈함. 그리고 그 밑바닥에 깔려 있는 건 결국 내가 먼저 선을 넘었다는 자각이었다. 때문에 두 사람을 향해 마음껏 화를 내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그럴 자격이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낸 관계, 어쩌면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필연이었을지도. 그런데도, 저 두 사람의 비굴한 모습 앞에서는 이상하게 우위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마치, 모든 키는 내가 쥔 것 같은 주도감이라고나 해야 할까?
그 때였다.
“뭐야?”
뒤를 돌아보니 엘리나가 멍한 표정으로 우리 셋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막, 잠에서 깬 얼굴이었지만, 상황을 이해하는 데엔 1초도 걸리지 않았을 터. 그녀의 시선이 반나체로 울먹이는 수잔나를 스치고, 무릎 꿇은 채 벌벌 떠는 주혁에게 멈췄다.
“다, 당신 설마?”
“여보........”
엘리나는 그대로 뒤돌아서 아래층으로 내려가 버렸다.
나는 한숨을 깊게 내쉬고 두 사람을 바라봤다. 수잔나는 얼굴이 새하얘져 있었고, 주혁은 여전히 무릎 꿇은 채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씹할, 좆 됐네?”
그 한마디를 던지고 나는 계단을 내려갔다. 엘리나가 허둥지둥 점퍼를 챙겨 입는 모습이 보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현관문이 벌컥 열리며 바깥의 찬 공기가 안으로 쓸려 들어왔다.
밖으로 나가니, 엘리나는 펜션 마당 한복판에서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가로등 불빛 아래 입술이 떨리고 있었고, 찬바람에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그녀는 어금니를 꽉 깨물고 있었지만, 눈가는 젖어 있었다.
“엘리나.”
내가 조심스레 부르자 그녀는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
“나도 할 말 없어. 우리 둘 다 할 말 없지.”
“그래. 그렇지....... 쟤들을 뭐라 할 입장은 아니야.”
내가 다가가자 그녀는 한 발 뒤로 물러섰다가 결국 멈췄다.
“그래도,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는데.”
엘리나는 결국 얼굴을 감싸며 울음을 삼켰고, 그 모습을 보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나는 천천히 손을 뻗어 그녀를 끌어안았다. 처음엔 굳어 있던 몸이 잠시 뒤 힘없이 기대왔다. 찬바람에 내 가슴팍에는 냉기가 감돌았지만 그녀는 거부하지 않고 안겼다.
“추워. 일단, 안으로 들어가자.”
“응.”
나는 그녀의 등을 가볍게 쓰다듬으며 천천히 현관 쪽으로 걸었다. 집안의 따뜻한 온기가 피부를 감쌌고, 소파에 앉아서는 위층에다 소리쳤다.
“둘 다 내려 와.”
잠시 후, 주혁과 수잔나가 고개를 푹 숙인 채 계단을 걸어 내려왔다. 나는 실내 흡연 금지라는 공지도 무시한 채, 연거푸 전자 담배를 빨았다. 위로 올라가던 연기가 천장에 부딪혀 옆으로 퍼지며 자욱해진다.
“앉아.”
“......”
“대가리 처 들고.”
나의 호통이 주혁은 움찔하며, 억지로 어깨를 펴고 고개를 들었다. 무거운 공기가 우리 네 사람 사이로 파고들었고, 시계 초침 돌아가는 소리만 적막을 깨고 들려올 뿐이었다. 한숨이 절로 나오는데, 도저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담배만 뻐끔뻐끔 피우고 있다. 주혁은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고, 수잔나와 엘리나는 내 눈치를 보기 바쁘다.
우리 넷은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었다. 어느덧 새벽 1시 반이 넘어가고 있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주혁이 먼저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형님.”
“미친 놈, 지랄하네.”
“.......”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데, 욕 말고는 도저히 떠오르지 않았다. 더 이상 이렇게 있다가는 진짜 내가 경찰에 붙잡혀 가는 한이 있더라도 주혁을 조질 것만 같았다. 그는 내 얼굴을 보고서는 조심스럽게 ‘형님’이라 하며 운을 뗐다.
“진짜, 뭐라고 말씀을 드려야 할 지......”
“아가리 닫아라.”
“......”
안 그래도 마음이 착잡한데, 주혁이 새끼 목소리까지 들으니 진짜 주먹이 나갈 것 같았다. 다시 정적이 내려앉았다. 나도 숨을 고르며 머릿속을 차분히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미 벌어진 일은 되돌릴 수 없다. 그러니 이제부터 어떻게 할지, 어떤 방향으로 이 상황을 끌고 갈지를 생각해야 했다. 분노가 아직 가슴 한켠에서 들끓고 있었지만, 막상 정리하려고 마음을 가라앉히자 아까 잠깐 스쳤던 우월감이 다시 떠올랐다. 그 감정이 심호흡처럼 내 안으로 스며들면서, 터질 듯했던 분노는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했다. 여전히 상황은 엉망이고 기분도 최악이었지만...... 이 순간부터 주도권은 내게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상기했다.
“늦었다. 자자.”
“네?”
“일단 자고, 나중에 이야기 하자.”
“......”
“가서 자.”
주혁은 우물쭈물하며 엘리나를 힐끔 바라봤다. 병신 하남자 같은 새끼. 이 와중에 지 마누라 눈치보고 있네.
“가라고.”
“네.”
주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그들이 보든 말든, 엘리나의 손을 잡고 말했다.
“오늘은 아무 생각 말고 그냥 자. 나중에 기분 좀 가라앉았을 때, 차분하게 이야기하자.”
“알았어.”
두 사람은 자신들의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마지막으로 남은 수잔나. 나는 일어나서 그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안 잘 거야?”
“응?”
“들어 와. 10시에 체크아웃 해야 돼.”
수잔나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따라 들어왔다. 잠자리에 누웠지만,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았다. 가슴 속은 여전히 들끓고 있었지만, 앞으로 우리 넷의 관계를 어떻게 이끌어 가야 할 지 생각하자 아까보다도 더 차분해졌다. 잠은 점점 멀어져 갔지만 시야는 오히려 또렷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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