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갈린 부부들 - 제 25화
처형Mandy봊이속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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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0 08:48
엘리나는 면접을 잘 봤다면서 내게 메시지를 보내왔다. 감수팀이 그녀에게 다음 주 월요일부터 출근할 수 있겠냐고 물었을 때, 흔쾌히 알겠다고 대답했다네.
월요일 아침, 회사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복도를 지나가는데 가슴이 두근거렸다. 엘리나와 한 회사에서 함께 일한다니 설레기도 하고 앞으로 있을 일에 조금은 긴장도 된다.
전체 주간 회의가 열리는 대회의실에 들어가자 이미 번역 1·2·3팀, 감수팀, 운영지원팀 사람들이 빼곡히 앉아 있었다. 나는 조용히 뒤쪽 자리에 앉았고, 회의가 시작되었다. 운영팀장이 마이크를 넘기고, 감수팀장이 그걸 받아서 공지를 시작했다.
“자, 오늘은 회의 시작하기 전에 좋은 소식 하나 전하겠습니다. 감수팀에 새로운 멤버가 합류했어요.”
감수팀장이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엘리나씨입니다. 번역 2팀의 이경률씨 친구이기도 하고요. 이번에 팀 인력 공백이 갑자기 생겼는데 경률씨가 큰 도움을 줬습니다.”
그 말에 회의실 뒤쪽에서 여러 시선이 내 쪽으로 몰렸다. 나는 순간 당황해서 고개만 아래로 푹 숙였다.
“경률씨, 정말 수고 많았어요.”
“좋은 일 하셨네요.”
“잘 모시겠습니다, 엘리나씨.”
사람들이 박수를 치기 시작했고, 엘리나는 일어나서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나는 괜히 볼이 뜨거워져서 자리만 만지작거렸다. 마치 내가 일으킨 파동이 눈앞에서 현실이 된 것처럼, 어색한 동시에 묘한 책임감 같은 게 밀려왔다.
그 날 저녁, 끝나고 나가려는데 엘리나에게 메시지가 왔다.
[엘리나 - 잠깐, 시간 돼? 나 진짜 고마워서 그래. 밥이나 술 한 잔 사도될까?]
안 된다고 할 이유가 없었다. 아니, 거절할 게 아니었다. 우리는 회사 근처에 있는 이자카야에 자리를 잡았다. 닭꼬치와 맥주 한 병씩을 시키면서 엘리나의 첫 출근을 축하했다. 초반엔 가벼운 회사 이야기, 첫 출근 소감 같은 걸 나눴다. 그러다가 그녀는 잔을 천천히 내려놓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요 근래에 너무 힘들었어. 어학원 그만두고 수입이 확 줄었고, 생활하기도 빠듯했거든. 그래서 주혁이랑도 자주 다퉜고.”
그녀는 잠시 말을 고르고 나서, 유리잔 테두리를 손끝으로 빙글 돌렸다.
“근데, 너 때문에 살았어.”
그 말이 심장을 탁 치고 들어왔다. 그녀는 말을 이었다.
“정말, 고마워.”
“헤헤, 뭘 이 정도 갖고.”
그 후, 아무 말도 않은 채, 그녀가 계속 말을 잇도록 기다렸다.
“그거 알아?”
“뭐?”
“사실....... 나 한국에 오고 나서 여러 번 위기가 왔었거든. 근데 있잖아...... 너가 나를 몇 번이나 구해줬었어.”
나는 웃으면서 뒤통수를 긁적였다.
“내가 뭘 했다고 그래, 하하.”
“진짜야.”
엘리나는 굳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눈빛은 단단히 서 있었다.
“그런 생각까지 들더라고...... 이렇게 내가 타지 생활에서 어려움을 겪고 흔들릴 때, 나를 잡아준 건 너였는데.......너 같은 사람이 내 남편이었으면 어땠을까. 지금보다는 좀 더 나은 삶을 살지 않았을까........ 하루 종일 그 생각만 했어.”
나는 도저히 표정 관리를 할 수 없었다. 천천히 술을 마시면서 그녀를 외면했다.
그 말에 기뻐해야 할 지, 불편해야 할 지, 위험하니까 선을 그어야 할 지....... 온갖 감정이 한꺼번에 뒤섞였다.
‘성욕만 풀고, 마음은 주지 말자.’
수잔나와 한 약속이 문장 그대로 뇌리에 박혔다. 그런데 이미 나는 그 선을 지킬 자신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엘리나의 눈빛이 나를 향하고 있었고, 그 안에는 감정이 너무나도 많았다. 그리고 그걸 보면서도, 나 역시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술잔을 내려놓으며 나는 애써 웃었다.
“일단, 오늘은 축하하는 날이니까 기분 좋게 마시고, 복잡한 얘기는 나중에 하자.”
말은 그렇게 했지만 마음 한구석에서 이미 울렸던 경고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커지고 있었다.
오늘 왠지 엘리나랑 술 한 잔 할 것 같아서 차를 안 끌고 왔는데, 그렇기 하길 참으로 잘했다. 우리 둘은 다정하게 손을 마주 잡고서 지하철역을 향해 걷고 있었다. 그 때 엘리나가 그런 말을 했다.
“경률아.”
“응?”
“만약에 말이야.......”
그 말을 끝으로 그녀는 길바닥을 보며 한참 뜸을 들였다.
“뭔데 그래. 얼른 말해 봐.”
“후.......”
“?”
“만약에 말이야, 내가 주혁이랑 이혼하면....... 너는 기분이 어떨 것 같아?”
“뭐?”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이 너무나도 뜬금없어서, 나는 순간 걸음을 멈췄다.
“이혼?”
내가 되묻자, 엘리나는 애써 웃어보였지만 그 표정은 금방 무너졌다.
“그냥, 요즘 너무 답답해서. 너한테는 말해도 될 것 같았어.”
엘리나는 할 말이 참으로 많아 보였다. 나는 휴대폰 시계를 한 번 보고는 역사로 내려가지 않고, 입구 앞에 있는 벤치 앞에 그녀와 함께 앉았다. 그녀는 내 손을 맞잡고 한참 동안 말을 고르더니 마침내 입을 열었다.
“주혁이랑 예전 같지 않아. 정선 여행 다녀온 이후로는 더 그래. 그냥 남처럼 지내.”
“왜? 무슨 일 있었어?”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모르는 척 물었다.
“그날 이후로 잠자리도 한 번도 안 했거든. 내가 먼저 손을 잡아도 피하고, 옆에 누워도 몸을 틀고. 정 떨어진 사람처럼 굴더라고.”
엘리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이어 말했다.
“내가 뭐 잘못한 건가 싶어서 몇 번이나 물어봤는데, 그냥 피곤하다, 일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다, 그런 말만 해.”
나는 숨을 깊게 들이켰다.
사실 알고 있었다. 그 날도 그랬고, 며칠 전에 쓰리섬 할 때 주혁은 수잔나와 관계를 가졌다. 마음만은 주지 말자고 다짐했던 우리와는 다르게 그들은 마음을 흘러가는 일에 그대로 맡겨 버리고 말았던 것일까? 그게 사실이라면....... 주혁이 그 놈에게 큰 심경의 변화가 생긴 것이겠지. 수잔나와 달리, 주혁은 완전히 뒤틀려 버린 것이다. 자기가 건드린 여자와 자기 아내를 자연스럽게 비교했을 테고, 그건 주혁이 감당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을 테니.
“경률아.”
엘리나가 내 얼굴을 들여다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요즘 진짜 미치겠어. 주혁이가 나를 더 이상 여자로 보지 않는다면..... 난 어떻게 해야 할까?”
눈가가 붉어져 있었고, 나는 그녀를 내 품으로 끌어안았다.
“울지 마. 너 잘못한 거 하나도 없어.”
그 말이 너무 뻔하다는 걸 알았지만, 지금 그녀가 가장 듣고 싶은 말이기도 했을 것이다. 엘리나는 내 품을 기다렸다는 듯, 아무런 거리낌없이 파고 들어왔다. 복잡한 감정이 이내 가슴에 물든다. 그녀를 지켜주고 싶은 마음, 주혁이란 놈에 대한 비웃음, 그리고....... 수잔나와 했던 약속까지.
욕정만 공유하고 마음은 주지 않기로 했던 그 약속. 그러나 나는 이미 그 선을 넘어 와 있었다.
엘리나는 잠시 내 어깨에 기대더니, 낮게 말했다.
“어떡해? 너랑 있으면, 정말 마음이 편해져.”
나는 그 말이 너무 위험하다는 걸 알면서도, 떼어낼 수 없었다. 그리고 스스로도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녀에게 기댄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시간은 흘러갔고, 우리는 몇 번의 전철을 그렇게 흘려보냈다. 막차 시간이 다 되어갈 때, 정신이 번쩍 들었고,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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