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새 외할머니1
적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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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시간전
저는 어렸을 때 외할머니 밑에서 자랐고 할머니는 저에게 무한한 사랑을 준 분입니다.
저는 경북 문경 어느 작은 시골에서 태어났고 제가 태어나자 아버지는 엄마를 멀리 하면서 밖으로만 돌아 다니는
한량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옆 동네 시내에 있던 캬바레에서 어떤 여자와 춤바람이 나서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난 뒤 3년이 지난 다음 객사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그 때까지는 엄마와 단 둘이 살다가 엄마는 돈을 벌기 위해 도시로 나가야 했습니다.
그 때가 제 나이가 네 살때였는데 엄마는 도시로 나가면서 저를 외할머니에게 맡겼다고 했고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할머니는 엄마의 새엄마였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외할아버지가 엄마를 데리고 혼자 살다가 재혼을 했는데 그때 재혼 상대가 지금의 할머니였고 할머니는 꽃다운 나이에
가정 형편이 어려워 하루하루 끼니를 걱정할 만큼 살았다고 했습니다.
돈 많은 홀아비였던 저희 외할아버지가 할머니의 집에다 땅을 좀 주고 할머니와 결혼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할머니와 저희 엄마의 나이 차이가 16살 밖에 차이가 나지 않고 할머니와 저도 나이 차이가 36살 차이
밖에 나지 않습니다.
어린 시절 할머니와 시장에 가면 사람들은 저를 할머니의 늦둥이 정도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는게 할머니가 나이가
젊기도 했지만 워낙 타고난 동안이었습니다. 할머니는 제가 어렸을 때부터 같은 방에서 저를 안아서 재워 줬습니다.
할머니 집에는 저보다 10살 많은 외삼촌도 같이 살고 있었습니다.
외삼촌은 할머니가 낳은 아들이었지만 할머니는 의붓 딸의 자식인 저를 더 아끼고 사랑해 주었습니다.
동네 어른들도 우리 집의 사정을 모두 알고 있었지만 할머니가 저를 끔찍하게 더 많이 사랑해 주는 걸 신기하게 생각
했습니다. 자기가 낳은 자식보다 의붓 딸이 낳은 손자를 더 예뻐하는게 이상하게 보이기도 했겠죠.
동네 아저씨 중 한 분은 이런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아무래도 키우다 보면 정이 더 가는 자식이나 손자가 있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왜 그런지 모르겠더라”
“그러니까 너도 아무 조건없이 너한테 더 잘하는 할머니한테 잘해라”
“예 아저씨”
그리고 외삼촌도 저에게 엄청 잘해주었는데 같은 남자라서 그런지 나이 차이가 많은 형제처럼 지냈습니다.
저는 국민학교를 다닐 때부터 나중에 커서 할머니와 외삼촌에게 꼭 신세를 갚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국민학교 2학년 때 엄마는 재혼을 했다며 할머니에게 통보를 했고 할머니는 니 자식은 같이 안키우냐면서 엄마를 엄청
설득했습니다.
하지만 저랑 떨어져 있던 세월도 있고 같은 공장에 몇 년을 다니다 보니 괜찮은 남자가 있어서, 그 사람이 아니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어 그 남자와 결혼을 했다고 하였습니다.
그 남자도 역시 자식 둘을 키우는 홀아비였다고 했고 같이 있다보니 더 자식같이 생각이 들어서 더 그랬다고 했습니다.
그때는 어린 마음에 별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지만 중학생이 되고 나니까 내 엄마라는 사람에게 엄청난 분노가 느껴졌
습니다.
'지 새끼는 다른 사람에게 맡기 놓고, 지 행복만 생각한다는기... 다른 놈의 새끼는 우째 키운대?'
이런 생각하다보니 엄마라는 사람이 너무 미웠습니다.
아무리 어릴 때부터 떨어져 있다고 해도 그래도 본인이 낳았으면 거기에 대한 책임은 져야 되는게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지 않습니까? 엄마를 미워하다 보니 방황을 할 때가 있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할머니와 외삼촌을 생각해서 방황을 접게 되었습니다.
마음이 복잡하고 방황하는 저를 외삼촌이 데리고 다니면서 저의 허전한 마음을 많이 달래 주었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중학교 2학년이 되었을 때 외삼촌이 단아한 외숙모를 데리고 와서 할머니께 소개했습니다.
그리고 2달 뒤에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집에 3명 뿐이던 곳에 외숙모가 한 분 더 들어왔을 뿐인데 집공기 자체가 달라졌습니다.
1년 동안 우리와 함께 살며 결혼생활을 하던 외삼촌은 분가를 해서 도시로 나가 살게 되었습니다.
진짜 사람이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는 말을 그때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늦은 밤, 사이 좋은 외삼촌 부부의 섹스하는 소리를 못 듣는 것도 너무 아쉬웠습니다.
할머니와 저는 4명이 같이 살다가 우리 두사람만 살게 되니까 너무 외로웠습니다.
물론 할머니가 저를 끔찍하게 사랑하기는 하지만 대화가 그리 잘 통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무래도 살던 시대가 다르기 때문에 그랬던거겠지요.
할머니는 평소에도 일을 손에서 놓지 않는 분이어서 집에서 농사를 지어 농기구 역시 놓지 않았습니다.
저도 국민학교 때부터 고3 때까지 수업이 끝나고 집에 오면 할머니 옆에서 농사일을 같이 도왔습니다.
저는 이렇게 하는 게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동네 사람들 눈에는 제가 착실한 아이로 보였나 봅니다.
그래서 저는 할머니의 일손을 돕는 것 때문에 동네 어른들의 칭찬을 많이 받았고 할머니 또한 늘 저를 자랑스럽게 생각
했습니다. 어느덧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된 저는 마을에서 가까운 도시에 일자리를 얻어 일을 시작했습니다.
3교대 공장 생활이 그리 힘들지는 않았고 제가 번 돈이 할머니에게 보탬이 된다는 사실이 너무 뿌듯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기숙사 생활을 하는 것이 할머니는 늘 걱정이라고 했습니다.
밥은 제대로 먹고 일을 하는 건지 할머니는 늘 궁금해 해서 항상 출근 하기전 마치고 난 후 하루에 2번씩 꼭 전화를
했습니다. 그리고 항상 금요일 저녁 할머니 집으로 가면 할머니는 항상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많이 차려 줬습니다.
할머니가 차려준 정성을 봐서 배가 터지도록 먹어야 해서 그거 때문에 좀 고생스러웠지만 그렇게 많이 먹지 않으면
할머니가 속상해하실 것 같아서 저는 할머니가 차려준 음식을 먹고 또 먹었습니다.
그러다가 한번씩은 소화 불량에 걸려서 할머니 모르게 약도 먹고 그랬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는 집에 와서 할머니에게 일을 그만두시는게 어떻냐고 말을 했습니다.
“할머니, 있다 아이가... 그.. 이제 할머니도 일 그만 하면 안되나?”
“왜? 손발이 멀쩡한대.. 놀면 뭐하겠노?”
“아니 외삼촌이 보내 주는 돈도 있고 나도 일하고 있잖아”
“그러니까 할머니도 굳이 힘들게 일을 안해도 괜찮잖아?”
할머니는 웃으면서 본인은 일하는게 좋다고 했습니다.
그때는 제가 느꼈던게 할머니라고 불러서 그런지 연세가 많은 것 같이 느꼈던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할머니는 나이가 56살 밖에 안 된 그래도 젊은 축에 가까운 나이였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생각하면서 생활을 하던 중에 외할머니 생신이 다가와 외삼촌 가족이 집에 와서 오랜만에 집이
시끌벅쩍 했습니다. 우리는 외삼촌이 5년전 쌍둥이를 낳아서 엄청 기뻐했습니다.
그때 저랑 할머니는 쌍둥이를 보러갔는데 너무나 예쁘고 귀여웠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데리고 왔으면 하는 마음을 가질 정도로 좋았습니다.
할머니와 제가 조용히 얘기를 나누는 소리가 우리 집에서 나는 소리의 전부였는데 외삼촌 가족이 오니까 집이 시끌
시끌해서 너무 좋았습니다.
그때는 사촌동생들은 한참 시끄러울 나이였고 너무도 귀여운 아이들이라서 더 좋았던 것 같습니다.
저는 사촌 동생들이 울면 달래주고 해달라는 것이 있으면 전부 다 해줬습니다.
마치 외삼촌이 저에게 그렇게 해주었던 것처럼 저 역시 외삼촌의 자식들에게 그렇게 해 준 거였습니다.
외숙모 말로는 사촌 동생들이 매일 매일 삼촌 보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다고 했습니다.
저도 이 쌍둥이를 너무 좋아하다보니 공장에서 일을 할 때도 동생들이 눈앞에 아른거리곤 했습니다.
외할머니 생신날 외삼촌 가족은 우리 집에서 하룻밤을 자고 가게 되어서 제가 쓰던 방을 외삼촌 가족이 자고 저는
할머니와 같이 잤습니다. 전에도 얘기 했지만 외삼촌과 외숙모는 금실이 참 좋았습니다.
우리 집에 와서 자는 날도 외삼촌 부부는 늘 부부관계를 하고 잤는데 섹스하는 소리가 오랜만에 이 집에서 들렸습니다.
시골이 적막함 속에서 미세하게 들리는 그 신음소리는 제 온몸을 뜨겁게 만들었습니다.
그날따라 뒤척이며 잠을 못 자고 있는 저에게 할머니가 말을 걸었습니다.
“와아, 잠이 안오나?”
“어, 할머니. 아까 저녁을 쪼매 많이 묵었는갑다.”
“맞나, 우야노 개안나? 아니면 약주까?”
“그 정도는 아이다. 좀 있으면 괜찮아 질끼다.”
“우리 새끼 우야노. 할매가 배 좀 만져 주까?”
“개안타 할머니, 내 신경 쓰지 말고 자라”
“아이다 보자, 내 손이 약손인기라~”
하시면 할머니는 내 배를 까고 손으로 문질러 줬습니다.
할머니의 거친 손이 내 배를 문지르는데 외숙모의 신음소리도 들리고 하니 밑에서 살짝 반응이 왔습니다.
할머니는 계속 내 배를 크게 쓸어가며 내손은 약손이다 하면서 계속 문질러 줬습니다.
그러면서 할머니는
“니도 얼른 장가를 가야 할 낀대... 혹시 만나는 사람 없나?”
“어, 내가 여자 만날 시간이 어딨노?”
“그라면 주말에 내한테 오지말고 만나봐라”
“할머니, 있다 아이가... 내는 장가 안 갈끼다.”
“와? 니처럼 참한 남자가 어딨다고?”
“요새 내같은 남자는 인기 없다, 그리고 만약 한다고 해도 내는 할머니랑 같이 살끼다”
“아이다 니는 장가가면 니 색시랑 살아야지, 와 내랑 같이 살라고 그라노?”
“내한테는 할머니가 엄마다, 그러니까 그런말 하지마라 내 속상하다.”
이렇게 말하니 할머니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저도 얼른 장가를 가고 싶었습니다만 가진 돈도 없고 그렇다고 집이 잘 사는것도 아니고,
거기에 똑바른 부모도 없는게 그게 가당키나 한 일이겠습니까?
할머니는 잠시 생각하는 듯 하다가 저에게 화를 내었습니다.
“할미는 할미고... 니는 때가 됐으니 장가를 가야지 뭔 소리고”
“몰라, 내는 안간다. 평생 할머니 데꼬 살끼다”
저는 할머니의 말에 살짝 언성을 높여서 말했습니다.
할머니의 제 배를 만지던 손을 치우고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제가 한 말에 감동을 받은 것인지 가난이 안타까웠던 것인지 모르겠지만 할머니는 울고 있었습니다.
“할머니, 미안타. 근데 내는 진짜로 진심이다. 할머니가 내 엄마고... 내는 그런 할머니 두고는 못간다”
"흑흑흑"
“그니까 그 문제는 시간이 다 해결해 줄끼다. 할머니 울지마라.”
“그, 그래 내 새끼. 알았다. 내 니마음은 잘알았다.”
라고 말하면서 다시 제 배를 문질러 주었습니다.
할머니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저기 밖에서 외숙모가 방문을 열고 나오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섹스를 치루고 씻으러 나온 것이었습니다.
외숙모가 거기를 씻는 찰박찰박한 물소리가 잠시 들리고는 소변 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쒸이이이익~~~~
그 소리가 어찌나 크게 들리는지 저와 할머니는 많이 민망해졌고 동시에 자지가 점점 발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외숙모가 눈치채지 못하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더니 외숙모의 소변 보는 소리가 더 크게 들렸습니다.
제 자지는 완전 풀발기해 버렸고 잠시 후 외숙모가 방으로 들어가고 잠시 후 할머니가 저에게 뜬금없이
“니 여자 조심해야 한대이”
“푸훗~ ㅋㅋ 갑자기? 와 할머니?”
“여자는 전부다 여시다”
“할머니, 지금 어떤 여자가 내를 좋다고 하겠노”
이 말에 할머니는 정색을 하고 말씀하였습니다.
“니가 어디가 어때서?”
“할머니 아까도 말했지만 요새 여자들은 내 같은 놈 쳐다도 안본다, 그리고 내도 여자들한테 밸 생각 없다”
“와?, 그럼 장가 가고 싶은 마음도 없나?”
“솔직히 가고는 싶지... 특히 오늘 같은 날은... 외삼촌이 마이 부럽다”
저도 모르게 이 말이 입에서 튀어나와 버렸고 저는 속으로 걱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할머니가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는 말이었으니까요. 할머니는 잠시 있더니
“힘들어도 참아야 된다. 여자도 그렇지만 남자도 몸 함부로 굴리다가 패가 망신 하는기다”
“아, 알았다 할머니, 내가 한 얘기는 이자무라. 잘못 나온 말이다 어?”
“아이구 내 새끼.. 알았다, 인자 배는 개안나?”
“어, 역시 할머니 손이 약손이다. 다 내리갔다”
“그려.. 내 새끼”
할머니는 손을 내리다가 제 발기된 자지를 살짝 스치고 갔습니다. 순간 할머니의 몸이 꿈틀하는게 살짝 놀란 것 같았습니다.
“...... 니... 마이 힘드나?”
“...... 뭐가?”
“...... 그, 그거 있다 아이가”
이러면서 외할머니는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아~ 이거? 개, 개안타... 내한테는 독수리 오형제가 있다”
“잉? 독수리 뭐시기?”
“하하, 그런게 있다 할머니”
“그, 그래 그런디 많이 힘들나? 괜찮은거 맞나? 혹시 안괜찮은데 괜찮다고 하는거 아이가?”
할머니는 계속 힘드냐고 자꾸 물어봤고 계속 물어보니까 저는 좀 신경질이 나서
“아, 할머니 그만 좀 물어봐라, 내가 기다 하면 할머니가 해결해 줄끼가?”
이러면서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할머니는 아무 말도 안 하시고 조용히 있었습니다.
저도 아무 말도 하면 안 될 거 같아서 가만히 있었습니다.
“할머니 화내서 미안타, 화풀어라 응?”
“됐어, 그만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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