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편2] 눈꽃의 후회 009
네코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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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2 20:19
눈꽃의 후회 009 ----------------------------------------------
땀이 흠뻑 젖어 있던 상태였다.
봉옥봉이와 쟈니를 샌드백에 매달고 야무지게 패고 있었다.
한방에 아구리를 돌려버리면 기절을 해버리기 때문에 고통이 없었다.
놈들을 샌드백에 매달고 몸통 위주로 야무지게 패준다는 생각으로
두들기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큰 운동효과가 있었고,
그만큼 많은 땀을 흘리고 있었다.
샤워실로 뛰어 들어가서 보니 런닝이 흠뻑 젖은 상태였다.
거울에 보인 내 양 팔에 튀어나온 근육과 핏줄들이 오늘따라 더욱 성을 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지 말아야지….
쟈니는 이미 감방에 있는 놈이고….
솔직히 까놓고 이야기 해서 이 편셔리도 쟈니가 준 위자료로 산 것 아니던가.
가장 큰 복수는 쟈니라는 놈을 잊어주면 되는건데…
그냥 잊고 무관심으로 살아가면 되는건데,
저 잡아죽일 놈의 봉옥봉이때문에 쟈니까지 도매급으로 같이 샌드백에
매달려서 얻어맞고 있는 것이었다.
다시 정신을 차렸다.
젠장…여자들이 오다니, 돈 관련 된것들은 남자들에게 꼬치꼬치 따져가면서
계약을 해야 하는데….
보험의 중요성은 마회장때문에 수년간에 걸쳐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교육을 받고 학습을 했기 때문에 나도 무척이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었다.
글러브를 벗고 주먹의 밴디지를 푸르고 옷을 싹 벗고 냉수로 샤워를 했다.
한 겨울에 냉수 샤워는 미친짓이지만, 지금은 수왕보에서 온천을 한 것보다
몸이 더 뜨겁게 달아오른 상태였다.
복싱만큼 칼로리 소모가 많고 땀을 많이 흘리는 운동은 마라톤 빼고는
아마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단기간의 급격한 체력소진은 아마도 복싱이 마라톤 보다도 한 수 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고등학교때 체육관에서 호랑이 관장님이 자전거 타고 뒤에서 감시하실때
어떻게 10킬로미터씩 로드웍을 했는지 진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금같으면 1킬로만 뛰어도 자빠질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잽싸게 냉수로 몸을 씻고 수건으로 몸을 싹 닦은후에
머리까지 털고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사무실로 달려갔다.
"죄송합니다. 전 네시에 오실줄 알고……"
나를 기다리고 있던 여자들이 응접세트에서 일어났다.
나는 인사를 계속 하려다가, 잠깐 멋칫했다.
무슨 말을 해야할지 잠깐 머리속에서 지워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이게 무슨 냄새지….
향기 때문일까? 여자들의 스타일 때문일까?
향기 하면 오연지…오연지 하면….향기….아니 향수가 떠오른다.
오연지는 두가지 이상의 향수를 복합해서 뿌리는 조향이라는 것을 했다.
덕분에 나는 웬만한 고급 향수들의 냄새를 한 번 이상은 다 맡으면서
평생을 살았다.
하긴 이십년 가까이면 거의 성인이 된 이후의 평생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전혀 알지 못하는 향수냄새였다.
아니…이건 어쩌면 향수냄새가 아닐지도 모른다.
과일향이 나는 비누나 샴푸냄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지금 시간은 오후 네시가 아직 안 된 시간이다.
아침에 출근후에 이런 냄새는 날수가 있다.
바로 머리를 감은후에 출근을 하면 향수나 비누향이 오래 갈수가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오후이다.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 저녁시간인데…
이런 기분 좋은 상쾌한 향이 난다는 것이 조금 이상했다.
이런 스타일의 향수가 있나보다 하는 생각만 들었다.
기분이 좋아지는 과일냄새였다.
혹시 여기 오기 전에 여자들이 어디서 과일들을 처먹고 온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렇게 인사를 하다말고 멍하니 있는데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자신을 소개하는 말소리였다.
지점장이라는 여자를 보았다.
40대의 여성이었다.
내 또래나 되었을까?
내 전화를 받았던 여자가 이 여자인가?
목소리 만으로는 알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옆의 여자가 자신을 소개했다.
"안녕하세요, 오혜지 입니다.
새로 사장님 건물의 계약을 담당하게 될 담당자 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여자가 일어선채로 나에게 허리까지 깊숙히 숙여서 인사를 했다.
여자의 뒤로 하나로 묶은 머리가 내 앞으로 숙여졌다.
내가 맡은 이 냄새는 이 여자에게서 나는 것이었다.
이 여자의 외모보다, 이 여자의 목소리로 또박또박 발음된 이름을
듣고서 경악을 할 뻔 했다.
오혜지…..
쓰벌….
가운데 혜자만 연자로 바꾸면….오연지다.
재수 똥 붙었다.
왕소금을 뿌려서 쫒아내야 하는 건 아닌가?
지점장이라는 여자와, 새로운 담당이라는 여자가 자리에 앉았다.
둘다 무릎 위의 스커트를 입고 있었기에 소파에 앉으니 허벅지들이
자연스레 보였다.
내가 어디에 눈을 두어야 할 지 난감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자리는 그런걸 따질때가 아니었다.
내 목숨만큼이나 중요한 편셔리의 일이다.
아닌말로 편셔리가 불이 났는데, 내가 보험에 뭔가 착오를 일으켜서
문제가 생긴다면, 난 정말 미쳐버릴 것이다.
보험을 소흘히 할 수는 없었다.
나는 정신을 바짝 차리기로 했다.
그래서 내가 보험은 남자가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었다.
꼬치꼬치 세밀하게 따져야 하니까 말이다.
지금 여자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갑을 논쟁들 요새 많이 하는데 지금은 그런거 따질때가 아니었다.
확실하게 해야만 했다. 나와 내 가족의 미래가 달린 일이었다.
편셔리는 돈으로 가치를 따질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나는 일단 전년도 보험계약서를 가지고 지점장과 담당자와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때였다.
"사장님, 손님분들 취향을 몰라서 아메리카노로 준비했습니다."
나는 소리가 나는 곳을 쳐다보았다.
영식이가 건물 옆 커피전문점에서 커피를 사 온 모양이었다.
나와 보험회사 직원들 앞에 빨대가 꼽힌 커피를 내려놓았다.
이 놈들이 아주 돌아가면서 나를 사장님 사장님 해가면서 놀고들 있었다.
영식이는 나가면서 나에게 손으로 여자들의 콜라병 몸매를 뜻하는 손짓을
하면서 눈을 꿈뻑 하고 나갔다.
"감사합니다."
"잘 마시겠습니다."
여자들이 인사를 했다.
고급졌다.
오연지도 한때는 이렇게 고급진 오피스레이디처럼 보이던 시기가 있었지…
실상은 경악스러웠지만 말이다.
참 고급진 여자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연지같은 눈에 띄는 미모의 여자들은 아니었지만, 행동거지나 말투가
진짜 교양있고, 뭐랄까? 많이 세련된 여자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 보험에 대해서 하나하나 꼼꼼히 파고들었다.
너무 빈틈이 많았다.
지금 내 계약은 말이다.
마회장이 시켜서 보험을 작년에 들어놓기는 했지만, 작년에 내가
생각했던 것들은 이미 엄청나게 업그레이드가 되어 있었다.
나는 보다 확실하고 완벽한 보장을 원하고 있었다.
특히 이번 근처 건물 화재처럼 단 시간내에 빠르게 화재가 번지고
가스통까지 터진다면 진짜 겁나는 일이었다.
주변 건물의 그을음도 보상이 들어가고 뒷건물 박살난것도 보상을
해야 하는건데…..
보험의 역할이 참 크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작년에 편셔리에 들었던 보험계약서를 지점장과 담당자와 대화를
하면서 헛점들을 하나하나 종이에 적기 시작했다.
그리고 보험회사에서 가능한 특약이나 보장내역들에 대해서 한 시간 넘게
아주 자세히 설명을 들었다.
진짜 전문가들 같았다.
일반 주택보험이 아닌 상업용 빌딩 보험이기때문에 건물의 크기와
여러 제반사항을을 따지는것이 많고 또 그렇게 해서 보험료가 산출이
된다고 했다.
그리고 장기로 보험을 할 수도 있고, 단기로 할 수도 있는데…
내가 원하는 정도의 보장을 넣으려면 보험료가 상당히 많이 올라갈것
같았다.
지금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
편셔리는 내가 쓰러져갈때 나를 일으켜세워준 내 분신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일단 결정을 내리지는 않고 세부 견적서와 특약별 세부 견적을
다시 뽑아줄 것을 부탁을 했다.
그리고 일부러 뻥카를 날렸다.
마회장 흉내를 내서 말이다.
"일단 다른 보험사들 특약은 어떤지 제가 복수견적을 좀 받아보려고 합니다.
그런후에 결정을 내리도록 할께요…."
일단 자기들 회사에 맡겨만 주시면, 최산을 다하겠다는 담당자와 지점장의
결의에 찬 대사가 있었다
그렇게 거의 두시간 가까이 사무실에서 대화를 나누었다.
여자들을 체육관 입구까지 배웅을 했다.
계단을 내려가는 여자들의 뒷모습을 보았다.
40대로 보이는 지점장이라는 여자와 20대로 보이는 오혜지라는 이름이
재수 없는 담당자라는 여자의 몸매들이 정말로 훌륭했다.
정장을 입어야 하기 때문에 몸매관리들을 정말로 많이 한 것 같았다.
물론 오연지에 비하면 상대가 안되겠지만 말이다.
아버지의 말이 생각났다.
아연에미는 조선시대에 태어났으면 후궁감으로 대궐로 끌려갔을 미모라고….
내가 아연에미때문에 눈이 너무 높아졌다는….
그 이야기 말이다.
진짜 은연중에 만나는 모든 여자들의 외모를 일단 오연지와 비교하는
더러운 버릇이 생긴것 같았다.
젠장…..
하긴 예전에도 그러기는 그랬었지….
보험회사 담당자가 준 서류들을 잘 챙겼다.
공부하는 책보는건 진짜 싫어하지만 이건 공부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거였다.
안 읽었다가 나중에 큰일 나느니 꼼꼼히 잘 읽어보아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른데 비교견적 받아야 겠다는 뻥카를 날리기는 했지만 웬지 저 사람들이
믿음이 갔다.
대기업 보험사의 직영 직원들이고, 말 하는게 전문가 냄새가 진짜
풀풀 풍겼다.
나도 사람들 뒷조사 하는 일을 몇 년 하다보니까 사람들 딱 보면
진짜 와꾸가 대충은 나오는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옥상으로 올라가니 홍진이와 영식이가 말을 했다.
"니미 졸라 새끈해….견아 애인 만들어….
솔직히 니가 나서지 않아서 그렇지 돈자랑 조금만 하고 다니면
여자들이 줄을 설텐데…."
영식이의 말이 끝나자 홍진이가 말을 했다.
"여드레 삶은 호박에 이 안들어갈 소리 하는거지…
견이 형이 저런 여자들 눈에 들어 올것 같아?
형수가 견이 형 눈을 정수리까지 올려놔서 더 이상 올라갈때가 없는데…
아마 형수 다시 컴백할때까지 견이형 가만히 기다리다가 그 자리에
굳어서 망부석이 될꺼야….
원래 망부석은 정조를 지킨 여자가 되는건데….견이 형은 정조를 지킨
열녀보다 더 징한 남자잖아…
형이 망부석으로 변하면 내가 편셔리 앞에 무슨 동상 처럼 잘 모셔줄께…."
홍진이의 말에 내가 웃으면서 대답을 했다.
"좆까는 소리는 당나라에 가서 하시고 물이나 데워….시팔….온천이나
뜨끈하게 하게…"
그렇게 이틀이 지났다.
보험회사 담당자가 전화가 왔다.
내가 원하는 대로 여러 특약별로 견적을 뽑은걸 가지고 내일 찾아뵙는다고
했다.
내일 만나서 보장이 완벽하다는 판단이 들면 바로 계약을 해버려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후 일을 마치고 편셔리로 가는데 전화가 왔다.
모르는 번호였다.
"편견씨 되시죠? 페덱스 입니다.
일본에서 온 국제특송인데 집에 계시나요?"
나는 마침 회사에서 편셔리로 가는 차 안이라서 바로 차를 편셔리로
안가고 집으로 갔다.
페덱스 국제특송을 받았다.
뭔가 묵직했다.
상당히 꼼꼼하게 포장된 박스에 페덱스 포장과 테이프로 다시 한 번 꼼꼼히
포장이 된 박스였다.
뜯는데도 상당히 시간이 걸렸다.
박스를 열어보았다.
뭐야 이게…..
나는 박스 안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일단 모르는 놈에게 온 택배이다.
아니 솔직히 생판 모르는 놈은 아니다.
일단, 내 핸드폰 번호와, 우리 집 주소를 정확히 알고 있으니까
이런 물건을 보냈고, 또 나는 이걸 받지 않았는가…
그놈이 국제특송 보낸다고 한지 며칠이나 지났다고, 벌서 이렇게 정확하게
도착을 한 것인가?
누가 일본에서부터 들고 뛴 것인가??
상자안에 들어 있는 것을 다 꺼냈다.
하얀색 도자기였다.
제법 묵직했다.
싸구려 도자기 같지가 않았다.
대강 보기에도 뭔가 되게 고급져 보였다.
그리고 도자기의 뚜껑이 밀봉이 되어 있었는데 그냥 집에서 개인이
하는 밀봉이 아니었다.
뚜껑위에는 일본어로 된 상표같은것하고 일본말이 잔뜩 적혀진
로고가 박힌 그런 스티커 종이가 붙어 있었다.
마치 일본 수입과자 사먹으면 붙어 있는 라벨 같았다.
뚜겅이 상당히 꼼꼼히 밀봉이 되어 있었다.
이런 밀봉은 기계로 시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자기를 꺼내어 탁자위에 올렸다.
그리고 상자위에 있는 것들을 마져 꺼냈다.
누런색 봉투였다.
봉투가 제법 컸다.
젠장…..이게 다 였다.
하얀색 밀봉된 도자기 하나…
이게 제법 무거웠다.
내가 들기에도 묵직할 정도이니까…
그리고 나머지는 전부 도자기가 깨지지 않도록 뽁뽁이 비닐과 얇은 종이를
말아놓은것을 상자에 가득 채운것이었다.
상자의 골판지도 일반 상자들의 골판지 두께가 아니었다.
상당히 두꺼운 그런 골판지였다.
상자를 꺼꾸도 들어서 탈탈 털어보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봉투를 열어 보았다.
종이가 접혀진 것이 있었다.
열어보았다.
편지였다.
한글로 적혀진 편지가 있었다.
그리고 봉투안을 보니 작은 유에스비가 하나 있었다.
안봐도 비디오였다.
이런 것들을 하도 많이 받아봐서 이젠 척하면 삼천리였다.
편지는 또 봉옥봉이가 이메일에서 하던 말들을 씨부린 것일 것이고,
유에스비는 떡치는 동영상이겠지…
이건 너무도 쉽게 예상이 되었다.
내 생각이 맞을 가능성이 거의 구십구프로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도자기는 뭘까?
뭔가 꽉 찬 느낌이었다.
이 새끼 락교 장인이라더니 설마 나에게 지가 만든 락교를 맛보라고
보낸것은 아니겠지?
진짜 그건 말이 안되는 이야기였다.
내가 아무리 다 받아주는 바다같은 남자라고 해도, 내가 지금 지가 만든
락교 먹고 그 맛을 음미할 일이 있는가?
말도 안되는 이야기였다.
락교는 부페가서 초밥 먹을때 삼태기로 접시에 퍼먹으면 되는 것이다.
락교라는게 맛이 다 거기서 거기였다.
내가 담그어도 부페에서 먹거나 무한리필 참치회집에서 먹는 락교맛은
충분히 낼수 있었다.
락교는 돼지파만 구하면 개나 소나 다 담글수 있는 그런 요리였다.
레시피만 있으면 된다.
돼지파를 구하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재래시장 가면 다 구할 수 있는
재료들이다.
그딴 음식에 뭐가 장인이 필요한가….
나는 식탁으로 도자기를 가지고 갔다.
그리고 천천히 조심스럽게 도자기 뚜껑의 밀봉을 뜯기 시작했다.
개새끼 설마 폭탄을 설치한건 아니겠지?
나는 밀봉을 뜯은 도자기의 뚜껑을 조심스레 열어보았다.
밀봉이 뜯기자 솔솔 나기 시작했던 냄새가 도자기 뚜껑을 열자
한 순간에 내 후각을 마비시키는 것 같았다.
이게 도대체 무슨 냄새인가…..
락교였다.
도자기 안 한 가득 락교가 들어 있었다.
이런 시발놈.
누가 일본산 략교를 먹고 싶다고 했나….
그런데, 지금 내 후각은 이 오묘한 냄새에 완전히 점령당한것만 같았다.
락교에서 이 무슨 냄새란 말인가?
분명히 초절임 냄새이다.
식초냄새는 분명했는데, 시큼한 식초냄새가 분명하지만 보통의 식초냄새가
아니었다.
하지만 정신 똑바로 차려야 했다.
상대는 미친새끼였다.
음식에 뭘 탔을지도 모르는 것이었다.
나는 주방서랍에서 은수저 두벌을 꺼내왔다.
그리고 락교 도자기 안에 은수저를 담그었다.
색의 변화가 없었다.
최소한 독은 넣지 않은 것 같았다.
다른 은수저 한벌도 마저 넣어보았다.
뭐든지 재탕은 해봐야 하는 것이다.
역시나 괜찮았다.
이런 음식들이 국제택배로 막 왔다갔다 해도 되는것인가?
원래 김치나 깍두기 같은것들 택배 보냈다가 낭패보는 경우도 많다고
했는데…..
그때 내 눈에 기계로 한 듯한 밀봉포장 푸른것들이 들어왔다.
혹시 이게 허가를 받은 정식 포장제품인가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뚜껑의 라벨이 진짜 무슨 수입식품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긴 지금 내가 그걸 따질때는 아니었다.
국자를 가지고 와서 도자기에서 락교를 조금 덜어내었다.
락교를 담근 초절임물이 아주 맑게 보였다.
초절임물도 도자기에 가득 들어 있었다.
도자기에서 초절임물과 락교를 작은 그릇에 덜었다.
그리고 젓가락으로 락교를 하나 집어서 입에 넣어 보았다.
아주 아삭아삭한게 맛이 좋았다.
분명 이건 뭐 다른 재료가 들어가는게 없었다.
돼지파를 초절임한 것이었다.
아까 뚜껑을 열었을때부터 나는 이 오묘한 식초의 향기….
나는 그릇을 들어서 락교와 함께 덜어낸 초절임물을 조금 마셔보았다.
내가 어릴때 아버지가 통닭을 사오시면 내가 통닭보다 더 좋아하던게
무였다.
식초에 담근 무 말이다.
내가 어릴때는 지금처럼 용기에 포장이 된 그런 공장에서 만든 무가 아니었다.
작은 비닐봉지에 담겨있는 무였다.
나는 비닐봉지를 꼭 그릇에 조심스럽게 풀렀다.
왜냐하면 무를 담근 그 물을 먹기 위해서였다.
달고 신맛이었다.
아버지께서 빙초산으로 담그었을수도 있으니까 무만 먹고 그 물은 마시지
말라고 하셔도, 나는 기어코 통닭을 먹으면서 그 식초물까지
다 마셨던 기억이 있다.
갑자기 그 생각이 났다.
나는 락교를 담근 초절임물을 입에 넣고 맛을 음미했다.
"크아….."
내 입에서 저절로 탄성이 터졌다.
내가 어릴때 먹던 그 무의 식초물이 생각이 났다.
그만큼 기분이 상쾌해졌다.
아….씹새끼….
어떻게 이런맛을 내었을까?
초절임 음식을 할때의 기본중의 기본인 식초물을 끓이는 것부터 시작해서
끝공정까지 내가 모르는건 없었다.
나도 인터넷을 뒤질만큼 뒤져서 락교의 레시피를 알아낸것이니까 말이다.
도대체…..
도대체….어떻게 이런 맛이 난단 말인가?
부페나, 무한리필 참치집에서 먹는 락교의 맛이 아니었다.
이건 그런 락교가 아니라….
입안에 청량감을 불어 넣어주는 새로운 초절임 음식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릇에 있는 락교를 다 먹고 국자로 도자기에서 초절임물을 한국자 더
떠서 마셨다.
지나치게 달지도 않고, 지나치게 시지도 않은……
절제되었지만, 맛의 표현은 제대로 해내고 있는….
뭐라 쉽게 설명할수 없는 그런 오묘한 맛이었다.
그 냄새만큼이나 오묘한 맛이었다.
나는 도자기 뚜껑을 잘 닫아서 냉장고에 넣었다.
어찌되었든간에 락교값보다 배송비가 더 비쌀것 같기는 하지만
이런 맛은 두고두고 잘 먹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식탁위를 다시 잘 정리하고 거실로 갔다.
아이들이 없는 혼자만 있는 집이 너무나도 넓게 느껴졌다.
테이블위에 종이에 접힌 편지와, 유에스비가 보였다.
어떤것을 먼저 볼 것인가 고민을 했다.
유에스비는 분명히 떡치는 영상일테니까, 편지부터 보는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편지를 열어보았다.
이런걸 달필이라고 하나.
상당히 잘 쓴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택봉이도 글씨는 잘 썼던것 같은데….
아내도 글씨를 잘 쓰고 말이다.
나만 글씨를 개발새발 못쓴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민학교때 글씨 연습 좀 많이 할껄…..
나는 천천히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초청합니다.
봉옥봉과 오연지 부부가 편견씨를 일본으로 초청합니다.
오시던, 오시지 않던, 그건 전적으로 편견씨의 자유입니다.
하지만 오시지 않으실 것이면, 앞으로 제가 보내는 이메일이나
이런 우편을 계속 받으셔야 할 것입니다.
편견씨가 오실때까지 말입니다.
편견씨는 일단 보내면 다 보시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일면식도 없는 편견씨와 저의 사이이지만, 연지에게
편견씨에 대한 정말 많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밤에 같이 누워서 편견씨 이야기로 밤을 지새운 적도 있습니다.
일본으로 오십시요.
함께 이야기 나누고 정리할 것이 있습니다.
일본으로 오셔서 정리가 끝난다면, 그 다음부터는 편견씨가
원하지 않는 어떤 이메일이나 우편도 보내지 않겠습니다.
그럴 이유도 없어지구요.
막연하게 편견씨를 초대만 하고 용건을 이야기 하지 않으면
편견씨가 의문을 가지시겠죠.
용건은 조금 이상하게 들릴수도 있겠지만, 남편들간에 협의가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해서 입니다.
편견씨는 연지와 이혼을 했다고 생각을 하시겠지만, 그건 보통 인간들 사이에
종이쪼가리로 하는 요식행위일 뿐입니다.
남자와 여자의 진정한 결합과 헤어짐은 그런 요식행위로 갈음할수가
없는 것입니다.
연지의 첫번째 남편은 바로 저 입니다.
그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제가 그렇게 인정을 하고 있고, 비록 지난 세월 잊고 살기는 했지만,
내 마음속에서 자의로 지운적은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주위에서 그렇게 강요했을 뿐이지요.
제가 그렇게 인정을 하고 있고, 비로서야 연지도 이제 인정을 했습니다.
누구나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본능은 부정하지 못하는 법입니다.
첫번째 남편인 저와, 두번째 남편인 편견씨 사이에 협의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연지가 아직 편견씨를 마음에서 지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세번째 남편인 쟈니 버나드 리와는 보다 쉬운 대화가 될 것 같습니다.
쟈니라는 세번째 남편과도 일면식은 없습니다.
그저 제가 예전에 홍콩에서 먼 발치에서 한 번 바라보았을 뿐입니다.
연지는 세번째 남편도 아직 마음에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세번째 남편은 지금 자유로운 몸이 아니라고 하는군요.
그리고 세번째 남편은 저의 뜻대로 올 것이라고 연지가 말을 합니다.
저와 편견씨만 협의하면 될 것 같습니다.
우리 모두의 아내인 연지에 대해서 말입니다.
편견씨가 포기하셔도 이번 기회를 통해서 포기하시면 됩니다.
다만 연지가 편견씨를 쉽사리 포기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시간의 힘이라는 것이 그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그리고 편견씨와 연지 사이에서 낳은 아이들의 문제도 있고 말입니다.
포기를 하시던, 아니면 연지의 공유문제에 대해서 저와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시던, 그 선택의 자유는 편견씨에게 있습니다.
제가 무리하게 이런 협의를 추진하는 이유는 백프로 연지 때문입니다.
솔직히 편견씨 때문에 하는 일은 아닙니다.
남자 대 남자로써 이번 협의에 응해주실것을 감히 부탁드립니다.
찾아오실 주소는 아래에 자세히 명기했습니다.
저의 초청에 제발 응해주시길 바랍니다.
아 그리고, 제가 운영하는 식품공장에서 자랑하는 대표식품인
락교를 한 병 선물로 보냅니다.
편견씨도 요리에 일가견이 있다고 연지에게 들었습니다.
일본에 오셔서 락교 맛도 평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우리가 좋은 사이로 영원히 함께했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편견씨에게 제가 바라는 단 한가지 입니다.]
기가막혀서 콧물이 다 나왔다.
숨을 안쉬고 편지를 읽어서 그런가?
화도 나지 않았다.
편지 내용이 하도 기가 막혀서 정말 헛웃음까지 나올 지경이었다.
편지 아래에 훗카이도 노보리베츠시에 내가 찾아갈 주소를 한글로
아주 꼼꼼하게 적어놓았다.
그리고 찾아오는 방법도 세밀하게 풀어서 설명을 해 놓았다.
나는 혹시나 하고 봉투를 다시 뒤져보고 편지지 사이도 다시 보았다.
개새끼….. 초청을 한다면서 비행기표도 없었다.
헤엄쳐서 오라는 것인가
그리고 내가 웃기게 생각해서 그런거지만…
지가 초청을 하면 내가 덥썩 물고서 가는 분위기인가?
기가 막혔다.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 편지지가 더 있었다.
나는 다음 편지를 읽었다.
[오빠, 저에요.
화가 많이 나셨을 것 알아요.
황당해 하실것도 알고 있구요.
제가 이메일로 말했던 해결해야 할 것들이 바로 선생님과의
일이었어요.
하지만 이곳에 오고나서 많은게 변했어요.
돌아가야하는데, 돌아가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고 있는 제 자신에 대해서…
점점 변해가는 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선생님과, 그리고 오빠와 같이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 싶어요.
선생님이 오빠를 초대한다고 해도, 응하지 않을것을 잘 알고 있어요.
오빠가 애들을 두고 올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거든요.
그런데 작년 말에 아연이와 안부 문자를 하면서 할머니의 부름으로
방학동안 시골할머니집에서 아이들이 지낼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저는 바로 선생님에게 그걸 말씀드리고 상의를 했어요.
오빠, 잠깐 휴가 오신다고 생각하고 이곳을 방문해 주세요.
이곳은 오빠가 좋아하시는 온천물도 아주 좋고, 공기도 아주 맑아요.
그래서, 나와 선생님, 그리고 오빠와 쟈니의 앞날에 대해서
우리 정말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 할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부디 선생님의 초청에 응해주시길 간곡하게 부탁드려요.
일본에서 오빠를 꼭 보았으면 좋겠어요.
기다릴께요.]
편지지 한장으로 된 너무도 익숙한 그 글씨….
오연지가 손으로 쓴 그 글씨로 된 편지를 다 읽었다.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혔다.
편지지를 구겨서 거실 한 구석으로 힘차게 던져버렸다.
하지만 이내 오분도 못 되어서 다시 그걸 주워다가 폈다.
이게 무슨 미친짓인지….
미친놈나라에 정상인이 있으면 정상인이 미친놈이 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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