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편4] 끝없는 여행 002
네코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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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시간전
끝없는 여행 002 ---------------------------------------------------------
일을 하지 않으니까 너무 심심하고 그랬다.
나 혼자 다시 일을 시작할까 말까 하는 고민을 하고 있었다.
일단 아연이 졸업식이 끝나고 나면, 그때 좀 다시 생각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마회장은 날이 따뜻한 봄이 되어야 어떻게 할지 알려준다고 했으니까…
그 전에 마회장이 컴백을 할 일은 없을 것 같았다.
변호사님이 간간히 문자를 보내셨다.
일이 뚝 끊겼다고, 빨리 마회장 잡아오라고 아주 난리셨다.
나는 오전에 체육관에서 운동을 하고 점심을 뭘 먹을까 생각을 하다가
갑자기 오리탕이 생각이 났다.
"오랜만에 오리탕으로 몸보신좀 할까?"
영식이와 홍진이가 펄쩍펄쩍 뛰었다.
우리는 영식이 체육관 승합차에 셋이 같이 타고 시내 외곽의 산중턱에
있는 오리탕집으로 갔다.
갈때 대리운전을 부를 생각을 하고, 우리는 소주를 반주로 오리탕을 시켜서
식사를 했다.
대낮인데 오리탕집에는 오리탕을 먹고 화투를 치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산중턱에 아예 천막과 평상을 다 구비해놓고 놀기 딱 좋게
만들어 놓은 곳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도박을 하지는 않았다.
다들 그러고 보니 음담패설 말고는 운동밖에 모르는 인생들이었다.
그 흔한 고스톱도 잘 안치는 인생들이었다.
우리는 오리탕에 반주를 얼큰히 하고는 대낮의 대리운전을 불렀다.
낮에도 대리운전을 해주는데가 있었다.
대리기사를 불러서 승합차를 타고 교외에서 다시 편셔리로 돌아가고
있었다.
아까 올때도 보았었는데 시내 외곽의 넓은 부지에 엄청나게 큰 빌딩
공사를 하고 있었다.
우리는 외곽의 넓은 도로에 신호대기를 하면서 공사장을 보았다.
홍진이가 펜스에 붙은 공사현황을 보더니 말을 했다.
"우와 여기다가 호텔을 짓는구나……
엄청나네…호텔하고 비즈니스 빌딩을 같이 짓는거였구나…
어쩐지 도시에 노가다 일당 잡부들 씨가 말랐다 했어….여기 이런
대형 공사판이 있으니까….이리로 다 흡수가 되는구나…..
젠장…삼십층짜리 호텔이네….대단하다…."
홍진이가 공사현황을 보더니 말을 했다.
그때였다.
"어…형….저 새끼들……그 타조새끼들 아닌가….모델놈들…."
홍진이가 반주에 기분이 얼큰하게 좋은 목소리로 나를 보고 말을 했다.
나와 영식이가 일제히 홍진이가 가르킨 쪽을 보았다.
심지어 대리운전을 하던 기사까지 그 쪽을 보았다.
키가 크고 대가리가 작은 두 놈이 하얀색 하이바를 쓰고서
손에 둘둘말린 도면 같은것을 들고 공사 현장 앞에서 걸어가고 있었다.
분명했다.
게이 브라더스였다.
아니 저 놈들이 저기서 뭐 하는 것일까?
"자…잠깐, 시팔….저게 뭐야…..…"
홍진이가 공사현황을 써 놓은 현장 펜스를 보다가 갑자기
놀란 표정으로 웃기 시작했다.
"아…뭐야…진짜….어떤 또라이 새끼가….
형….저 공사장 펜스에 써 놓은것 봐봐…..
빌딩이름이 쟈지 타워야…..
아…시팔….어떤 새끼가 장난치는거야…..
차라리 좆대가리 타워라고 그러지….쟈지 타워가 뭐야….
이런 자지같은 경우가 있나....
시팔…..음란빌딩으로 신고해야 하는거 아니야….."
철골이 높이 올라가고 있는 공사 현장의 펜스에 정말 아주 크게
쟈지 타워라고 글씨가 써져 있었다.
영식이하고 홍진이가 배꼽을 잡고 웃었다.
나도 어떤 새끼가 이름을 가지고 장난을 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웬지 느낌이 이상했다…
게이 브라더스가 조금전에 보였다.
그리고 쟈 자로 시작되는 이름을 가진 쪼다같은 새끼가 생각이 났다.
에이….설마…시팔….
나는 기분좋게 오리탕에 반주를 해서, 정신이 오락가락 하나보다
하는 생각을 했다.
우리를 태운 승합차는 다시 편셔리를 향해서 달리기 시작했다.
며칠뒤에 편셔리 옥상에서 빈둥빈둥 대다가 생각을 했다.
아니 솔직히 그 전에도 계속 생각은 하고 있었다.
전화를 해 볼까?
재민이나 훈태나 거짓말 같은건 잘 안 하는 애들이다.
그동안 그 애들이 했던 말들은 거의 나중에 다 진실로 밝혀 졌다.
쟈니나 오연지가 거짓말을 했으면 거짓말을 했지, 재민이나 훈태가
거짓말을 한 것은 없었다.
재민이한테 전화를 할까? 아니면 훈태한테 전화를 할까 생각을 했다.
이도저도 아니면 그 녀석들 사무실로 전화를 할까?
그게 나을 것 같았다.
녀석들의 사무실로 전화를 했다
착신서비스라도 걸어 놓았으면 아무라도 받을 것 같았다.
하지만 착신서비스를 해 놓지 않았는지, 신호가 아무리 가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솔직히 뭐 할 일도 없고, 하루 종일 먹고 빈둥대는 것도 지겨웠다.
내가 홍진이처럼 건물 구석 구석 보수를 직접 하는 것도 아니고,
영식이 처럼 체육관에서 아이들을 직접 지도 하는 것도 아니었다.
가끔씩 특공무술이 아닌 복싱을 배우는 애들의 미트를 잡아주기는
했지만 솔직히 체육관 관원들의 구십프로 이상은 특공무술을 배우는
학생들과 살을 빼는 다이어트 복싱같은, 진짜 복싱이 아닌 운동을 하는
아줌마들과 젊은 아가씨들이었다.
정통 복식을 제대로 배우러 다니는 애들은 진짜 손에 꼽을 정도였다.
하지만 영식이는 그게 못내 섭섭한것 같으면서도 특공무술이나
다이어트 복싱을 가르치는데 전념을 했다.
이제 젊은 학생들을 더 이상 복싱을 배우려고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영식이의 체육관도 어쩔수 없이 정관정의 체육관 같은 스타일이
되어 가고 있었다.
홍진이도 바쁘고, 영식이도 바쁜 시간이었다.
나는 혼자서 빈둥대다가, 뭘 할까 생각을 헸다.
게이 브라더스와 만나서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강이를 일찍 집에 데리고 가서 놀까 하다가도, 강이가 어린이집에서
또래들과 있는 걸 더 좋아하는 것 같아서 시간이 되기 전에
일찍 데리러 가기도 그랬다.
나는 NSX를 몰고 그때 오리탕을 먹으러 다녀온 그 외곽 도로로
나갔다.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시 외곽이지만 길이 잘 뚫려 있어서 정말 금방 도착한 것 같았다.
건설 중장비들이 부지런히 공사를 하고 있었다.
나는 큰 대로변에 차를 잠깐 세워놓고서 공사 현장을 길가에서
둘러보고 있었다
거의 다 높은 펜스가 쳐져 있어서 안을 볼 수가 없었고 공사 현장 안으로는
경비원들이 출입을 못하도록 막고 있었다.
공사 현황판과 펜스에 쓰여진 글씨를 보니 정말 그때 잘 못 본 것이 아니었다.
분명히 쟈지 타워였다.
어떤 미친놈이 저렇게 이름을 지었을까?
공사현황판을 보니 시공사가 국내 굴지의 대기업 건설회사였다.
이런 대기업이 직접 건설을 하는 공사장인데….
왜 게이 브라더스가 그때 이 곳에 있었으며, 건물 이름이 왜 저따구니
인가 하는 생각만 자꾸 들었다.
나는 여기까지 온 이상 그냥 가기가 좀 그랬다.
전화를 걸었다.
재민이보다는 훈태에게 전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훈태가 그래도 조금 더 시원시원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훈태는 바로 전화를 받았다.
"어 훈태야, 난데, 바쁜데 미안해….."
"아니에요, 형님, 어쩐일이세요? 잘 지내시죠?
해가 바뀌었는데 안부 전화도 자주 못 드리고 죄송해요.
올해 자주 뵐 지도 모르는데 말이에요…."
어이쿠, 듣기만 해도 살 떨리는 소리를 훈태가 하고 있었다.
"훈태야, 혹시 너희 그 건설현장에 나와있니? 쟈지 타워 인가 거기
말이야…"
나는 돌려서 말을 할 필요가 없었다.
게이 브라더스와 뭘 숨기고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동안 나를 많이 도와주었던 애들이었다.
"………………….."
훈태는 내 단도직입적인 이야기를 듣더니 잠시 말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혀…형님….그건 어떻게 아셨어요?"
"응….훈태야, 놀라지 말구….나 그냥 지나가다가 너희를 우연히 보았어
며칠전에 오리탕 먹으러 거기 근처 야산에 갔다가 편셔리로 가는길에
너희를 우연히 보았거든….근데 엄청 큰 호텔하고 비즈니스 빌딩을
공사한다는 곳에, 너희가 있더라고, 너희가 그 옆을 하이바 뒤집어쓰고
지나가는 걸 보았어…
근데….건물 이름이…..거…참….쟈지 빌딩이라고 해서…..
좀….그러더라구….혹시 쟈니하고 관련된 건물인가 해서….
너희 어디야? 나 여기 공사장 입구 옆에 대로변이거든….
공사장 안으로는 외부인이 들어갈수가 없네…."
나는 정말 거짓말 하나 보태지 않고 솔직한 진실만을 훈태에게 이야기햇다.
내가 상대에게 진실을 듣고 싶으면, 나도 상대에게 무언가를 속이면
안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형님….저희가 지금 바로 그리 갈께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응….그래.."
전화를 끊었다.
다행히 녀석들은 이 공사장 안에 있는 모양이었다.
건설을 하는 애들이 아니었다.
디자인이나 조형예술을 하는 애들이지…
도대체 그런 놈들이 이런 초대형 공사판에서 뭘 한다는 것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한 오분정도 기다리니까 정말로 하얀색 하이바를 뒤집어쓴
기다란 놈 둘이서 공사장 입구로 나오고 있었다.
둘다 청바지를 입고 워커 비슷한 발목이 긴 안전화 같은것을 신고 있었다
"형님….죄송해요, 오래 기다리셨죠?"
재민이가 나를 보고 인사를 했다.
"미안해…바쁠텐데…..나 그냥….잠깐 혹시나 해서 온거야…
지나가다가 들렀다는 뻔한 거짓말은 하지 않을께….
많이들 바쁘지? 그렇게 보인다…."
훈태가 웃으면서 말을 했다.
"네…솔직히 바쁘기는 해요….건물이 올라감과 동시에 계속해서
외관 디자인쪽을 건설사 관계자분들과 협의 해야 하거든요…
기본 도면은 다 나왔지만, 디자인 해놓은 것과, 실제 시공되는건
현장 맞춤을 해야 할 것들이 많아서….실제 현장에서는
조금씩 달라질수가 있거든요…..
이 건물은 아예 설계 자체부터 홍콩에서, 디자인을 고려해서 설계가
들어간 것이라서요….그냥 건물만 올리는 건 아니에요….
완공되고 나면, 정말 근사한 랜드마크가 될 건물이에요….."
뭐….거의 구십구프로 답은 나온 것 같았다.
"이 건물 쟈니가 짓는거니?"
내가 훈태와 재민이를 보고 물었다.
"네…."
두 녀석이 거의 동시에 대답을 했다.
"그렇구나…."
설마 했었는데…..진짜였다.
하긴 쟈 자가 건물이름에 들어갈 일이 뭐가 있겠는가
건물 주인이 쟈 자가 이름에 들어가지 않는한 말이다.
"쟈니 언제 출소야? 정확히 정해진거 있어?"
내가 재민이를 보고 물었다.
"원래 올해 8월쯤 예상인데요…..비서님이 얼마전에…잘 하면 올해
6월 정도에 가능할지도 모르겠다고 말을 했어요….
백부님이 지역정부에 엄청난 마약퇴치기금을 또 기부하셨거든요…..
아직 확실한 건 몰라요….
저희도…..그냥…좋은 소식만 기다리고 있어요…."
그렇구나….
니미…아무리 늦어도 올해 8월…..
빠르면 6월이라는 소리인가?
지금이 1월 말이니까 빨리 나오면 반년도 안 있다가 나온다는 것이었다.
나는 혹시나 올해 3월이나 4월쯤 나오면 어떻게하나…전에 누가
그렇게 비슷하게 씨부린것 같아서….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그래도, 한 두달 뒤에 나오는 건 아닌것 같았다.
"내가 하나만 더 물어볼게…미안해…진짜 바쁜 사람들 불러놓고…
저 부르기도 챙피한 건물 이름 말이야…
설마 내가 상상하듯이 쟈니 더하기 연지의 쟈지 타워가 맞는거니?"
내가 말을 하자 재민이와 훈태가 서로 자기들끼리 마주 보았다.
그러더니 서로 말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재민이가 그렇게 한참을 있다가 입을 열었다.
"네….형님….솔직히 쟈니형이…좀 천진난만한테다 있잖아요…
그게 형 매력이기도 하구요….
하지만….어디까지나 가칭이에요…..저희는 글로벌 시대에
쟈지 타워는 말도 안된다도…적극 반대하는 중이에요…
쟈니형이 자기 이름의 쟈와 연지 누나 이름의 지를 따서 즉석에서
생각한 이름이래요….
그래서 저희가 그러면 차라리 JJ타워로 하라고 지금 쟈니형을 설득하는
중인데….
형이 말을 듣지 않아요….
쟈니형 은근히 엉뚱한데가 있잖아요…."
재민이가 헛 웃음을 지으면서 말을 했다.
나는 돌려 말을 할 필요는 없었다.
"오연지가 이 사실을 알고 있니?"
내 질문에 훈태가 입을 열었다.
"누나도 알기는 아실꺼에요….비서가 누나가 원하던, 원하지 않던
누나의 문자나 이메일로 계속해서 홍콩 법인의 상황과 여기 건축상황
그리고 쟈니형의 근황을 알리고 있을테니까요…
형님도 나중에 알게 되시겠지만….
지금 연지 누나는 쟈니형에게서 거리를 두려 하는 것 같구요….
쟈니형은….출소일이 더 가까워 지면 가까워 질수록 누나한테 집착하는
모양새에요….
비서입장에서는 연지누나가 홍콩 법인에 지분을 가지고 있는 이사신분이고
쟈니형의 지시가 있어서 그렇게 억지로 소식을 계속 보내고 있기는 하지만
누나는 일체의 대꾸가 없는걸로 알고 있어요….그래서 쟈니형이 비서를
통해서 누나한테 무슨일이 있는거냐고 물은 적도 있어요….
그래서, 저희가 쟈니형한테 이제 그만 포기하라고, 말도 하기는 했는데
저희가 그런 말을 꺼내면 쟈니형이 저희한테 화를 내서…..
뭐라고 말을 할 수가 없어요…"
"형님한테 그때도 이야기 했지만…예전에……연지누나와 쟈니형이
비밀 연애를 할때요….
저희가 말리면, 쟈니형은 저희에게 화를 냈었어요…
저희와 쟈니형이 알게 된 후로, 쟈니형이 저희에게 화를 내고 혼을 낸 것은
오로지 연지 누나 관련된 일들 뿐이지, 그 외에는 저희한테
인상 한 번 구긴적도 없어요….."
"그때도 말씀드렸지만….모두의 행복을 위해서는 쟈니형과 연지누나는
절대로 다시 이어지면 안돼요.
연지 누나도 그럴 생각이 없는 것 같아 보이구요…
지금 쟈니형 혼자 저 난리인데….
저희는 그 점에 있어서는 쟈니형 편이 아니라 형님 편이에요….
저희는 연지 누나는, 형님하고, 다시 잘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에요.
연지 누나가 뭔 짓을 못하게 꽉 붙잡고 있어줄 사람은 세상에
딱 한 사람, 형님밖에 없다는 생각이에요….
저희 진심이에요…"
훈태는 내 눈을 바라보면서 절실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훈태와 재민이가 내 편이라는 것은 정말 사실이었다.
녀석들은 아내에게 쟈니를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놈들이었다.
그리고 아내는 녀석들을 자신의 쾌락을 위한 도구로 이용을 했고 말이다.
하지만, 솔직히 저 녀석들이 뭘 도와주겠는가….
질질 짜기나 하는 녀석들이고, 쟈니가 눈 한 번 부릅뜨면 꼼짝도 못 할
녀석들인데 말이다.
예전에 저 녀석들을 처음 만난 계기도 저 녀석들을 게이라고 놀리던
사진동호회의 생양아치 때문이 아니던가….
결국, 쟈니가 오는 것은 나 혼자 다 받아들여야 할 운명 같았다.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는데, 그냥….하지 못했다.
이야기가 너무 길어질 것 같았고, 아내가 나에게 무슨 말을 하겠는가
게이 브라더스의 말처럼 아내는 거부하고 있는데 쟈니 혼자 저러는 것이면
그걸 아내에게 더 꼬치꼬치 물어보는 것도 웃기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일월이 다 지나가 버렸다.
이월초에 바로 아연이의 예고 졸업식이 있었다.
졸업식 전날 시골로 리무진을 보냈고, 아버지와 엄마는 그 리무진을
타고 집으로 올라오셨다.
아연이가 볼때 엄마는 일부러 아내에게 더욱 차갑게 대하시는 것 같았다.
하지만 연기가 자연스럽지 못했다.
저번에는 그나마 조금 리얼하게 혼을 내고 그러셨는데, 엄마는 계속
저러다가는 아연이한테 딱 걸릴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차라리 연기에 자신이 없으면 아버지처럼 입 꽉 다물고 있는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연이는 모두의 축복속에 드디어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아연이는 연단에 올라가서 교장선생님에게 상을 받았다.
일유대 기악과 수석합격으로 학교의 이름을 드높였다는 공로상이었다.
그리고 우등상과 3년 개근상까지…아연이는 여러 개의 상을 휩쓸었다.
상이라고는 용감한 시민상 하고 대학때 동아리 대항 복싱대회
상 받은게 전부인 나와는 정말 다른 것 같았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아연이가 상을 받는 것을 정말 뿌듯한 표정으로
바라보셨다.
외아들이 하지 못했던 것을 손녀가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 엄마가 정말 만약에라도, 아연이가 내 친딸이
아닌것을 알게 된다면….
어휴,….정말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아버지가 갈갈이 날뛰시는 것을 떠나서, 엄마가 화를 낼텐데…
엄마처럼 조용조용한 사람이 원래 진짜 화가나면 더 무서운 법이었다.
엄마가 오연지를 정말 가만 놓아두지 않을 것 같았다.
그 어떤 해명도 필요치 않을 것 같았다.
그런 일은 내 생애에 절대로 있어서는 안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 끔찍한 일은 진짜로 있어서는 안 되었다.
졸업식 구경을 하는데, 엄마가 내 옆에서 슬쩍 말씀을 하셨다.
"그때 아연에미한테 너무 좀 그런것 같아서 아직도 마음이 좀 그렇다.
아연애비야….이번에 내가 애들 며칠 봐 줄테니까, 아연에미 데리고
어디 가서 바람이라도 좀 쐬고 와라….."
엄마는 나에게 말을 하셨지만 내 옆에 바짝 붙어 있던 아내도
그 이야기를 들었다.
"아니에요, 어머님….저희 괜찮아요…."
아내가 엄마에게 말을 했다.
"아연애비는 내가 강이 안 봐주면, 어디 절대로 안 갈꺼 아니야…
내가 강이 봐줄테니까 어디 다녀와…단 둘이서….
새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어디가서 바람 좀 쐬고와….."
엄마가 나와 아내를 보고 말을 하셨다.
졸업식이 끝나고 다음날이 되었다.
아내가 나를 보고 말을 했다.
"난, 학원에 이삼일정도 빠질수는 있는데, 당신은 어때요?"
아내가 먼저 저렇게 나오니까 나도 뭐 뒤로 뺄 일은 없었다.
나는 아내에게 말을 했다.
"그럼 우리 진짜 어디 좀 다녀올까?
나도 요새 계속 집하고 편셔리만 왔다갔다 해서 답답하기도 하고…
그리고 우리 솔직히 해야할 이야기가 있잖아…
매듭을 짓지 못 한 이야기들 말이야….
그거 끝장 토론 좀 해야하지 않을까?"
내가 웃으면서 아내를 보고 말을 했다.
솔직히 다른 사람은 몰라도 엄마가 강이와 아연이를 돌봐준다고 하면
내가 보는 것 보다 더 안심이 되었다.
세상에 엄마 아버지 말고는 우리 애들을 마음놓고 맡길 사람이 없었다.
애들이 시골에 내려가지 않아도 집에서 엄마 아버지가 머무시면서
애들을 봐주면, 나와 아내에게는 더할나위 없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나와 아내는 그 다음날 바로 여행을 떠나기로 급살로 계획을 잡았다.
아내의 학원 강의도 2박3일간 쉬기로 하고, 우리는 여행을 가기로 했다.
장소는 내가 정했다.
언젠가는 꼭 가야지 했던 그 곳이었다.
제주도 말이다.
아직도 매월 관리인에게 문자를 받는 그곳…..
택봉이가 물려준 별장이었다.
아직도 아내의 명의로 되어 있지만, 내가 관리를 하는 그 곳 말이다.
도대체 얼마나 좋길래, 영식이와 홍진이가 올 여름 휴가도 무조건
그 곳으로 다시 간다고 입에 거품들을 무는지, 나도 솔직히 한 번
가보고 싶었다.
아내는 예전에 몇 번 가본적이 있다고 했다.
그곳에서 뭔 짓을 했는지는 안봐도 비디오였다.
보나마나 출장 간다고 나에게 뻥을 치고, 택봉이와 그곳에 가서 떡을 치고
홀랑 벗고 누드사진을 찍었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별로 물어보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건 더 이상 알고 싶지도 않았다.
우리는 비행기를 예약을 하고 바로 다음날 출발을 했다.
따로 준비할게 없었다.
숙소는 있고, 비행기는 하루에 제주도에 가는 편수가 왕창 있었다.
휴가철도 아니라서 표는 넉넉했다.
게다가 돈 말고는 따로 준비할 것도 없었다.
그렇게 아내와 같이 제주도 월정리 해변에 위치한 택봉이의 별장으로
이박 삼일간의 여행을 출발했다.
아내와 단 둘 만의 여행이 얼마만인지….
아연이가 자랄때는 항상 셋이 가는 여행이었지, 단 둘 만의 여행은
아니었다.
애들을 엄마, 아버지한테 맡겨 놓으니까 걱정되는게 없었다.
엄마,아버지가 우리가 다시 집에 돌아갈때까지, 집에 머무시면서 애들을
돌봐주신다는 생각을 하니까 정말 마음이 편했다.
마음 약한 엄마는 아마 아연이에게 다 털어놓으실것이다.
아내를 용서했다고 말이다.
아연이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또 걱정을 하고 있는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아빠 생각을 끔찍하게 해주는 정말 기특한 딸이었다.
아내가 렌트카 운전을 했다.
나는 제주도 지리를 전혀 몰랐다.
아내는 네비게이션도 안 키고 운전을 할 정도로 제주도 지리를 잘 아는것
같았다.
하긴 아내는 예전에 제주도로 세미나 같은 것도 많이 오고, 이래 저래
많이 와 본 것 같은 눈치였다.
아내와 같이 택봉이의 별장에 도착을 했다.
미리 연락을 받은 관리인 아저씨가 아내와 나에게 인사를 했다.
별장은 생각보다 너무 화려하고 좋았다.
일단 부지 면적이 너무 넓었다.
이 곳 땅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고 하는데,
택봉이가 죽은 뒤에도 거의 곱절 이상 땅값이 올랐다고 했다.
이곳만 특히 다른데보다 더 많이 올랐다고 했다.
그런데 직접 와서보니 그럴만도 한게 위치가 천하명당이었다.
거실의 통 유리로 그림같은 월정리 해변이 한 눈에 들어오는 전망이었고
주변에 뭐 걸리적 거리는게 없는 그런 환장의 입지였다.
땅이 워낙에 넓어서 다 밀어버리고 건물을 올려도 떼돈을 벌 것 같은
그런 환상의 위치였다.
택봉이도 아내의 스승인만큼 돈 냄새 맡는건 귀신이었던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어떻게 이런 땅을 살 생각을 했었을까…..
앉아서 돈을 번 셈이었다.
아내와 짐을 별장에 풀어놓고 바로 지척인 월정리 해변 바닷가로 나갔다.
아직은 쌀쌀한 바람이 부는 이월초의 바닷가를 아내와 단 둘이 거닐었다.
"신혼여행 온 것 같아요….."
아내가 가벼운 미소를 지으면서 나에게 팔짱을 끼었다.
"신혼여행은 무슨…..이렇게 아무도 없는데, 단 둘이만 있으니까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도 많다.
무엇부터 이야기 해야 할지…정말 헷갈리네….."
나는 팔짱을 낀채 내 어깨에 기대어 걷는 아내를 보고 말을 했다.
"그냥, 우리 복잡한 이야기 하지말고, 오랜만에 좀 푹 쉬고….
힐링 좀 하다가면 안 될까요?"
아내가 기어 들어가는 듯한 작은 목소리로 나에게 말을 했다.
"안되지…..
쉬는건 집에서 쉬어야지 뭘 여기까지 와서 쉬냐…..
난 그렇게 못 한다.
레즈비안하고 까지 떡을 친 내 심정을 니가 알기나 하겠냐….."
내가 한숨을 쉬면서 말을 했다.
"그건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
세상 그 어떤 남자라도, 똑같았을거에요…
당신이라서 더 특별히 잘못한 건 아니라고 봐요….."
"그래, 나도 솔직히 내 잘못이 아니라 니 잘못이란건 동의하는데,
도대체 왜 그랬냐가 중요하거든, 진짜 왜 나한테 그런거야?"
"그, 영상 도대체 어디다가 쓰려고?
니가 혼자 보고 즐기려고 그 난리를 쳐가면서 그걸 찍지는 않았을꺼
아니야….
아무리 니가 돈을 마음대로 주무르는 능력이 있다고 해도
돈이 적게 들었을 것 같지도 않은데 말이야…."
아내는 따지는 내 얼굴을 바라보다가 멀리 겨울 바다를 한 번 바라보았다.
백사장에는 우리 같은 남자 여자 커플들이 꽤 많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저 커플들도 오늘 밤에는 모두 떡을 치겠지…..하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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