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괴 - 2

희숙은 민경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사사건건 간섭하는 엄마였다. 나는 그 사실을 모르는 바 아니었다. 부부 침실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희숙의 낮은 목소리가 민경의 방을 향해 훈계처럼 뻗어 나가는 것을 들을 때가 있었다. 혹은 주말 아침, 민경이 아직 잠들어 있는 사이, 희숙이 민경의 책상 위 물건들을 정리하는 척하며 무심하게 스마트폰을 집어 드는 뒷모습을 본 적도 있었다. 그녀의 눈빛에는 날카로운 탐색이 담겨 있었다.
나는 민경을 걱정하는 아내의 마음이 이해는 가지만, 한편으로는 좀 과하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엄마로서 딸을 걱정하는 마음이야 당연한 것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희숙의 그 엄격함은 때로는 선을 넘는 듯했다. 딸의 작은 실수에도 희숙은 좀처럼 너그러움을 보이지 않았고, 민경의 모든 선택에 날카로운 질문과 함께 자신의 의견을 강요하곤 했다. 희숙의 현명함과 깊은 통찰력은 분명 우리 가정을 지탱하는 기둥이었지만, 딸에게 향하는 그 엄격함은 가끔 지나쳐 보였다.
나는 애써 그 미세한 균열들을 외면하려 노력했다. 완벽한 내 세상에 흠집을 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까.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희숙이 민경을 향해 쏟아내는 잔소리, 때로는 통제에 가까운 간섭에도 불구하고, 민경은 다행히 엇나가지 않고 늘 웃음이 많았다. 그녀의 웃음소리는 언제나 집안을 밝히는 햇살 같았고, 나는 그 웃음소리에서 우리 가정의 흔들림 없는 평화를 확인하곤 했다. 물론, 때때로 엄마의 간섭에 지쳐하는 모습이 언뜻 보일 때도 있었지만, 민경이는 이내 다시 애써 밝은 모습을 유지하곤 했다. 마치 찰나의 그림자가 스쳐 지나간 뒤, 다시 해사한 미소를 간직한 아이였다. 나는 어쩌면 그 그림자를 제대로 직시하지 않으려 했는지도 모른다. 아니, 그럴 필요가 없다고 믿었다. 내 딸은 강하고 밝은 아이니까.
오늘도 늦은 저녁, 통금 시간인 밤 10시가 되기 전, 현관문이 조용히 열렸다. 삐걱거리는 소리 없이 부드럽게 닫히는 문소리는 민경이 돌아왔음을 알렸다.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지친 몸을 이끌고 들어오는 딸아이의 뒷모습에는 어딘가 모를 피곤함이 묻어 있었다. 그녀의 발걸음은 평소보다 조금 더 무거워 보였고, 어깨에 걸쳐진 가방은 그 무게를 더하는 듯했다. 나는 거실 소파에 앉아 신문을 보다가 딸의 인기척에 고개를 들었다. 민경이는 조용히 신발을 벗고 거실로 들어섰다. 그녀의 표정은 살짝 그늘져 보였지만, 나를 보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 환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 순간, 나는 무언가 마음 깊은 곳에서 조용히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평소라면 '잘 왔다'는 짧은 말로 대신했을 테지만, 오늘따라 딸의 지쳐 보이는 모습이 눈에 밟혔다.
나는 자연스럽게 몸을 일으켜 딸에게 다가갔다. 어깨에 놓인 가방이 유난히 무거워 보여, 말없이 조심스럽게 그녀의 어깨를 주물러주었다. 따뜻한 온기가 딸의 어깨를 타고 전해졌다. 근육이 미세하게 뭉쳐있는 것이 손끝으로 느껴졌다. 이 작은 접촉을 통해 나는 딸의 하루가 얼마나 고단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차갑게 식은 손이 딸의 피로를 녹여주기를 바라며, 나는 가만히 어깨를 주물렀다.
"힘들지? 딸…"
나의 손길과 낮은 목소리에 민경이의 굳어있던 어깨가 스르륵 풀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는 순간 움찔했지만, 이내 나의 손길에 몸을 맡겼다. 작은 한숨이 그녀의 입술 사이로 새어 나왔다. 어깨의 긴장이 조금씩 풀리는 것을 느끼자,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민경이는 고개를 살짝 뒤로 젖히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피로가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이내 감사함과 편안함이 어린 미소가 번졌다.
"아빠가 어깨 주물러주니까 너무 좋다... 히히"
민경이의 말에 내 입가에 절로 미소가 번졌다. 그녀의 작은 웃음소리는 언제 들어도 집안에 활기를 불어넣는 마법 같았다. 나는 딸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다시 한번 다정한 말을 건넸다.
"힘든 일 있으면 언제든지 아빠한테 말하고..."
나의 말에 민경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표정은 한결 편안해 보였다. 나는 딸의 밝은 미소를 보며 가슴 한편이 뭉클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 순간, 나는 다시 한번 내가 최고의 아빠라고 자부했다. 세상의 모든 역경을 견뎌내고, 가족들에게 안녕과 평화를 가져다주는 단단한 울타리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나의 역할에 깊은 뿌듯함을 느꼈다. 딸의 작은 미소와 편안해진 어깨에서, 나는 내가 이룬 삶의 모든 성공과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확인받는 듯했다. 나는 완벽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그리고 사랑하는 자식들의 든든한 아버지로서, 오늘도 나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었다.
민경이는 나의 손길이 닿는 어깨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피곤함을 털어내는 듯했다. 나는 그녀의 작은 몸짓 하나하나에서 무언가 말하지 못하는 감정들을 읽으려 노력했다. 아내의 간섭이 과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이상으로 나서지 못했던 나 자신에 대한 미묘한 책임감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민경이는 그런 복잡한 감정들을 털어내려는 듯, 다시 한번 활짝 웃으며 나에게 기댔다.
"아빠, 최고!! 아빠 덕분에 피로가 싹 풀렸어!!"
나는 딸의 순수한 말에 가슴이 더욱 따뜻해졌다. 그래, 나의 존재는 바로 이런 것이다. 가족들의 힘들고 지친 순간에 기꺼이 기둥이 되어주고, 따뜻한 위로와 지지를 보내주는 존재. 나는 내 삶이 가진 단단한 기반 위에서, 이렇듯 평화로운 순간들을 영원히 지속시키고 싶었다. 민경이의 웃음소리가 이 밤의 정적을 아름답게 수놓았고, 나는 그 소리 속에서 내가 그려온 이상적인 가정의 모습이 완벽하게 구현되고 있음을 확신했다. 이 견고한 삶의 성채는 앞으로도 영원히 흔들림 없이 빛날 것이라고, 나는 굳게 믿어 의심치 않았다. 내가 만들어낸 이 완벽한 세계 속에서, 나는 가장으로서, 그리고 아버지로서 나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었다.
낚시를 다닌 지는 꽤 오래되었다. 아내와 결혼하고 가정을 꾸린 그 순간부터, 팍팍한 회사 생활 속 유일한 탈출구이자, 나 자신을 돌아보고 재충전하는 시간이 바로 낚시였다. 매주 주말, 동이 트기도 전 고요한 새벽 공기를 가르며 길을 나설 때면, 찌든 일상으로부터 해방되는 듯한 알 수 없는 희열이 가슴 가득 차올랐다. 그렇게 오랜 세월, 강물 위에 드리운 낚싯대처럼 흔들림 없이 나만의 시간을 즐겨왔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이 고즈넉한 여유에 녀석이 동참하기 시작했다. 바로 명문대에 다니는 모범적인 아들, 정훈이다. 녀석은 어릴 적부터 늘 내 기대를 저버린 적이 없던, 그야말로 자랑스러운 아들이었다. 학창 시절 내내 상위권 성적을 놓치지 않았고, 남들이 모두 선망하는 명문대에 당당히 합격했을 때, 나는 가슴 벅찬 자부심을 느꼈다. 녀석의 책상에 쌓인 두꺼운 전공 서적과 늦은 밤까지 새어 나오던 방의 불빛은 녀석이 얼마나 성실하고 우직한지를 말해주었고, 나는 그런 정훈이를 보며 내가 이루지 못한 더 큰 꿈을 향해 나아갈 것이 분명하다고 믿었다.
그렇게 반듯하고 말수 적은 줄만 알았던 녀석이 어느 날 문득, 내 낚시 가방을 뒤적이며 "아빠, 저도 낚시 한번 가보고 싶어요" 하고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처음에는 녀석이 이런 조용한 취미에 흥미를 가질 줄은 상상도 못 했기에, 적잖이 놀랐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이내 녀석이 나에게 더 가까이 다가오려는 시도임을 깨닫고, 나는 기꺼이 그 손을 잡았다. 그 후로 요새 일요일만 되면, 우리는 함께 낚시를 간다. 녀석이 먼저 나서서 낚싯대를 챙기고 미끼를 고르는 모습을 보면, 대견함과 동시에 묘한 뿌듯함이 밀려왔다. 내 아들이 내 취미를 공유하고, 나에게서 무언가를 배우려 한다는 것 자체가, 내가 이룬 삶의 완벽한 조화와 성공을 다시금 확인시켜주는 듯했다.
우리가 자주 가는 낚시터는 경기도 가평에 있다. 북한강을 끼고 있는, 나만 아는 일종의 아지트 같은 곳이다. 굽이진 산길을 한참 들어가야 겨우 모습을 드러내는 그곳은, 세상의 소음과는 완벽하게 단절된 별천지였다. 강물은 짙푸른 에메랄드빛으로 반짝였고, 물안개 자욱한 새벽에는 신비로운 정령이라도 튀어나올 듯한 고요함이 감돌았다. 나는 이곳을 **'프라이빗한 공간'**이라고 불렀다. 이곳에서만큼은 대기업 임원으로서의 무게도, 가정의 가장으로서의 책임감도 잠시 내려놓고, 그저 자연의 일부가 되어 온전히 숨 쉴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 그 공간을 아들 정훈과 공유한다는 사실이, 내 삶의 또 다른 완벽한 한 조각을 채우는 듯했다. 녀석은 나의 혈육이자 나의 분신이었고, 내가 쌓아 올린 모든 것의 정점과도 같았으니.
우리는 나란히 앉아 낚싯대를 드리웠다. 찌가 강물 위에서 미세하게 흔들리는 것을 지켜보며, 우리는 때로는 아무 말 없이 침묵을 즐겼고, 때로는 강물 소리를 배경 삼아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이곳에서 정훈의 고민도 들어주고, 어른으로서, 아버지로서 인생의 조언도 해주곤 한다.
"아빠, 제가 요즘 새로 만나는 여자애가 있는데… 어떻게 하면 그 친구한테 잘해줄 수 있을까요?"
녀석의 입에서 나온 고민은 예상외로 순수하고 풋풋했다. 명문대생의 깊은 학문적 고민이나 거창한 미래 설계가 아닌, 20대 초반 청년의 지극히 보편적인 연애 상담이라니. 나는 피식 웃음이 나왔지만, 이내 진지한 표정으로 녀석을 바라보았다. 정훈이는 과묵한 편이지만, 그 속에는 뜨거운 학구열과 미래에 대한 확고한 비전이 자리하고 있는 아들이다. 이런 녀석이 나에게 이런 개인적인 고민을 털어놓는다는 것 자체가, 나를 존경받는 아버지로 여기고 있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정훈아" 나는 잔잔한 강물을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낚시와 비슷하단다. 무턱대고 달려든다고 잡히는 게 아니거든.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야 해. 그리고 물고기가 뭘 좋아하는지 알아야 미끼를 잘 고르듯, 그 친구가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 잘 살펴보는 게 중요하지."
나는 살아가면서 얻은 지혜들을 차분히 녀석에게 들려주었다. 내 삶의 지혜로운 동반자이자 가장 든든한 조언자였던 아내 이희숙에게서 얻은 통찰을 떠올리며, 녀석에게는 현명함이란 결국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노력에서 시작됨을 강조했다. 녀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내 이야기를 경청했다. 그 진지한 눈빛에서 나는 녀석이 앞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바르게 자라날 것이라는 확신을 얻었다. 나는 내 아이들이 세상의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바르게 자라도록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정신적인 지주로서 그들의 곁을 든든히 지켰다. 이런 순간이 바로 그 노력의 결실이었다.
낚시가 끝나고 나면, 돌아오는 길은 언제나 정훈이가 운전을 해주곤 한다. 처음에는 녀석이 운전석에 앉는 것조차 어색해하며 잔뜩 긴장하곤 했다. 녀석은 명문대에 합격한 수재이지만, 운전은 또 다른 영역이었다.
"아직 장롱면허라 그런지, 왠지 모르게 불안해요, 아빠."
녀석의 우려 섞인 목소리에 나는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 운전도 낚시랑 똑같아.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어. 일단 해봐야 늘지. 아빠가 옆에서 봐줄 테니까 부담 갖지 말고 운전경험 해본다 생각하고 한번 해봐."
나는 녀석에게 핸들을 잡아보라고 권했다. 처음 녀석의 운전은 서툴렀다. 악셀과 브레이크를 번갈아 밟는 발은 어딘가 경직되어 있었고, 핸들을 쥔 손은 땀으로 축축했다. 하지만 나는 녀석을 다그치지 않았다. 옆에서 묵묵히 길을 알려주고, 조언이 필요할 때만 조용히 말을 건넸다. 아이들 스스로가 자신의 길을 찾아가도록 묵묵히 지지해주었던 아내 희숙의 태도가 떠올랐다. 나 역시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신기하게도 그 이후로 정훈이는 운전을 곧잘 한다. 이제는 좁은 산길도 능숙하게 빠져나가고, 고속도로 위에서도 안정적인 속도를 유지한다. 처음의 어색함은 온데간데없고, 마치 베테랑 운전사처럼 여유로운 모습으로 운전대를 잡고 있는 녀석을 보면, 다시 한번 가슴 가득 자부심이 차오른다. 녀석은 내 젊은 시절의 열정과 노력을 그대로 물려받은 듯했으며, 내가 이루지 못한 더 큰 꿈을 향해 나아갈 것이 분명했다.
조수석에 앉아 창밖으로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본다. 어릴 적 내 손을 잡고 세상이 마냥 신기하다는 듯 두리번거리던 작은 아이가, 이제는 내 삶의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 이렇게 운전대를 잡고 있다니. 나는 정훈과 민경, 이 두 아이가 그 어떤 재산보다도 값진 큰 재산이자 축복이라고 여겼다. 내 인생은 완벽에 가까웠다. 단란한 가정, 총명한 자식들, 성공적인 커리어. 이 모든 것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 같은 삶을 완성하고 있었다. 내가 구축한 이 견고한 삶의 성채는, 앞으로도 영원히 흔들림 없이 빛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나는 내가 만들어낸 이 완벽한 세계 속에서, 최고의 가장이자, 최고의 아빠로 군림하고 있었다. 정훈과 함께하는 낚시는, 그 완벽한 세계의 또 다른 찬란한 증거였다.
내 연봉은 거의 1억 중반을 육박한다. 이건 국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굴지의 기업의 임원으로서 응당한 대가이다. 샐러리맨으로서 나를 뛰어넘는 사람은 국내에 몇 프로, 아니 몇 명 안 될 거라고 자부한다. 이 숫자는 단순한 급여를 넘어선다. 그것은 내가 지난 세월 동안 흘린 땀방울과 인내, 그리고 끊임없는 자기 계발의 정당한 보상이었고, 동시에 내가 구축한 삶의 견고함을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증거였다. 나의 사회적 위치는 그 자체로 나의 존재감을 입증했고, 나는 그 자리에 걸맞은 완벽한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나는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며, 주름진 얼굴 속에서도 빛나는 성취감을 느꼈다. 나 스스로에게 떳떳했고, 세상 어떤 사람에게도 고개 숙일 필요가 없었다.
희숙은 일상에서 늘 동일한 텐션을 유지한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그 텐션은 때로는 자식에게 향할 때도 있지만 간혹 가다 나에게 향할 때도 있었다. 희숙은 민경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사사건건 간섭하는 엄마였다. 주말 아침, 민경이 아직 잠들어 있는 사이, 희숙이 민경의 책상 위 물건들을 정리하는 척하며 무심하게 스마트폰을 집어 드는 뒷모습을 본 적도 있었다. 그녀의 눈빛에는 날카로운 탐색이 담겨 있었다. 나는 민경을 걱정하는 아내의 마음이 이해는 가지만, 한편으로는 좀 과하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하지만 희숙의 그 엄격함은 때로는 선을 넘는 듯했다. 딸의 작은 실수에도 희숙은 좀처럼 너그러움을 보이지 않았고, 민경의 모든 선택에 날카로운 질문과 함께 자신의 의견을 강요하곤 했다. 희숙의 현명함과 깊은 통찰력은 분명 우리 가정을 지탱하는 기둥이었지만, 딸에게 향하는 그 엄격함은 가끔 지나쳐 보였다.
나는 그녀의 그러한 '텐션'이 우리 가정을 완벽하게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라고 생각했다. 나의 사회적 위치를 굳건히 하는 데에는 아내의 내조가 아주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그녀의 빈틈없는 살림과 흔들림 없는 원칙은 내가 바깥일에만 전념할 수 있는 굳건한 토대가 되어주었다. 나는 그녀의 엄격함이 아이들을 바르게 이끌고 있다고 믿었고, 그 결과 우리 아이들은 사회의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바르게 자라날 것이 분명했다. 민경이 용돈벌이겸 친구따라 학교 근처 멀티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했을 때, 희숙은 어머니로서 단호하고 논리적인 어조로 그녀를 뜯어말렸다. 민경의 용돈이 적은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형편은 넉넉했지만 아이들이 엇나갈까봐 용돈을 제한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그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공부에만 매진했으면 했다. 아버지로서 자식이 학업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에 대해 찬성하는 편은 아니다. 부모 구실을 못 하는 것들이 자식들을 일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나는 늘 생각하곤 했다. '구질구질한 것들이나 그런 고민을 하는 것이지!'
나는 그들에게 경제적인 풍요는 물론이거니와, 정신적인 지주로서 그들의 곁을 든든히 지켰다. 녀석들은 내가 이 세상에 남길 가장 위대한 유산이며, 내가 살아온 삶의 가장 빛나는 증거였다. 나의 연봉이 증명하듯, 나는 충분히 그럴 능력이 있었다. 자식들이 학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최고의 환경을 제공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내가 완벽한 가장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역할이었다. 결혼 생활 내내 단 한 번의 외도도 없었다. 외도를 느낄 만한 상대방도 내 인생엔 존재하지 않았다. 이는 내가 철저하게 자기 관리를 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내 삶이 이미 너무나 완벽하고 충만했기 때문이었다. 단란한 가정, 총명한 자식들, 성공적인 커리어. 이 모든 것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 같은 삶을 완성시키는게 내 목표이다.
나는 완벽했다. 아니, 적어도 그렇게 굳게 믿어 의심치 않았다. 나의 삶은 견고한 성채와도 같았다. 사회적으로는 대기업 임원으로서 남들이 감히 넘볼 수 없는 위치에 올랐고, 집안에서는 현명한 아내와 모범적인 아들, 그리고 해맑은 딸을 둔 최고의 가장이자, 존경받는 아빠로 군림하고 있었다. 퇴근 후 현관문을 열고 들어설 때마다 나를 감싸 안던 따뜻한 온기와 은은한 생활의 향기, 그리고 가족들의 잔잔한 숨소리까지, 이 모든 것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내 보금자리는, 고단했던 하루의 피로를 씻어내고 내일을 살아갈 힘을 충전해주는 유일한 안식처였다. 나는 이 모든 것이 완벽하게 통제되고, 내 의지대로 흘러갈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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