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미경 시리즈 외전 - 늪 1
김끝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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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4 22:26
며칠 뒤 진태를 불러 술을 한잔했다.
“야.”
“왜.”
“그날 어땠냐?”
진태가 잔을 들다 말고 나를 봤다.
“뭐가.”
“뭘 뭐가야.”
나는 피식 웃었다.
“다 알고 물어보는 건데 끝까지 모르는 척할래?”
진태가 잠깐 입을 다물었다.
그러더니 잔을 내려놓으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아…… 그래. 했다, 했어.”
막상 그 말을 직접 들으니 속이 순간 묘하게 내려앉았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잔을 들었다.
“야, 그래도 여자친구라고 소개했는데 그렇게 막 해도 되는 거냐?”
진태가 어이없다는 듯 나를 봤다.
“이 씨발 새끼가 이제 와서 뭔 소리야.네가 그랬잖아. 분위기 보고 계속될 것 같으면 그냥 하라고.”
“알아.”
나는 바로 대답했다.
“그렇게 되라고 분위기 만든 것도 나고.”
진태가 잠깐 내 얼굴을 보더니 헛웃음을 쳤다.
“그럼 왜 사람 찔러보듯 물어보는데.”
괜히 잔만 한번 만지작거리다가 피식 웃었다.
“그냥 확인하는 거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마음 한구석에서는 미경이 거기까지는 가지 않았기를 바랐다. 분위기는 만들었고 어디까지 가나 보고 싶었던 것도 맞았다.
그런데 막상 진태 입으로 정말 관계가 있었다는 말을 들으니 생각보다 속이 편하지 않았다.
내가 밀어놓고도, 마지막 선만큼은 미경이 넘지 않았기를 바랐던 것 같았다.
나는 잔을 내려놓고 대충 내 생각을 털어놨다.
나중에는 남편한테 돌아갈 생각조차 들지 않게 만들고 싶다고.
“근데 걔가 그렇게까지 할 만한 여자냐?”
“뭐가.”
“아니, 네가 이렇게 머리 굴리고 나까지 끌어들이면서 매달릴 정도냐고.”
진태는 그 말만 하고 다시 잔을 들었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
“뭘.”
“아까부터 노예니 타락이니 , 돌아갈 생각도 못 하게 만든다 그러는데. 구체적으로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나는 잠깐 웃었다.
“한 사람으로는 재미없다고 느끼게 만들 정도로. 문란하게”
진태가 말없이 나를 봤다.
말하면서도 이상하게 그 그림이 점점 또렷해지며 확신이 들었다.
“그 정도까지 가면 집에 돌아가서 예전처럼 살 생각이 들겠냐.”
진태가 잠깐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너 아직 그 여자를 잘 모르는 거 아니냐?”
“야, 니가 한번 해봤다고 나보다 잘 안다는 식으로 말하냐?”
“그래. 네가 더 잘 알겠지.”
진태는 잠깐 나를 보더니 피식 웃고 말았다.
“그러고 보니 네가 말한 거랑 비슷한 느낌인곳이 하나 있긴 해.”
“뭔데.”
“이쪽 성인용품 하는 사장중에 아는 사람이 있거든? 룸처럼 따로 대여해주는 곳.”
“뭐 하는 데인데?”
“커플이나 부부들이 단체로 빌려서 노는 데.”
나는 잔을 내려놨다.
진태가 별일 아니라는 듯 말을 이었다.
“스와핑 쪽 사람들도 오고, 네토 성향 부부들도 오고. 솔로 남자 몇 명 초대해서 같이 노는 경우도 있다더라.”
“그런 데가 진짜 있어?”
“어. 아는 사장이 공간 크게 해놔서 대여비로 꽤 번다고 하더라고.”
진태가 잠깐 생각하다 덧붙였다.
“전에 그 사장이 나한테도 모임 한번 참가해보고 싶으면 얘기하랬어. 연결해준다고.”
“그래? 가면 뭐 하는데”
나는 잔을 내려놓았다.
진태가 잠깐 나를 쳐다보더니 헛웃음을 터뜨렸다.
“야, 이 새끼야.”
“왜.”
“스와핑 모임 가서 뭐 하겠냐.”
“아니, 처음 가면 뭐 준비해가야 되는 거 없어?”
진태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왜, 도시락 싸가게?”
“아니, 처음 가니까 모르지.”
“그냥 사람 만나러 가는 건데 뭘 그렇게 준비해. 가면 분위기 보면 알아.”
나도 피식 웃었다.
“암튼 취향 있는 부부나 커플들 모여서 놀고 그러는 거야. 분위기 타면 단체 플레이도 하고.”
“진짜 여러 명이 같이?”
진태가 잔을 들며 웃었다.
“그럼 사람 잔뜩 모아놓고 끝까지 쎄쎄쎄만 하다 오겠냐?”
“미친놈.”
“네가 자꾸 뻔한 걸 물어보잖아.”
그날 술자리가 끝난 뒤 진태가 바로 아는 사장에게 연락을 넣었다.
생각보다 연결은 빨랐고 며칠 뒤 모임을 주선한다는 사람에게 간단한 규칙과 분위기에 대한 설명도 들었다.
처음 오는 사람은 무조건 커플이나 기존 참가자의 소개가 있어야 했고, 누가 어떤 성향인지도 미리 확인한다고 했다.
진태는 혼자 참가하는 솔로 남자로 이름을 올렸다.
나는 미경과 함께 커플로 들어가기로 했다.
미경한테는 길게 설명하지 않았다.
그냥 아는 사람들끼리 모이는 자리가 하나 있다고 했다.
“무슨 모임인데요?”
“소라넷 쪽에서 알던 커플이나 부부들 모이는 자리래요.”
나는 미경 반응을 슬쩍 봤다.
소라넷이 원래 성인사이트였던 만큼, 괜히 이름을 꺼냈다가 내가 그런 쪽을 찾아다니는 사람처럼 보일까 조금 신경 쓰였다.
그런데 미경은 소라넷이 뭐냐고 묻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지도 않고 그냥 별다른 반응 없이 내 말을 듣고 있었다.
오히려 그게 조금 의외였다.
그렇게 셋이 같은 모임에 이름을 올렸다.
진태는 솔로 남자.
나와 미경은 커플.
며칠 뒤 약속된 장소에 도착했다.
내가 상상했던 분위기와는 전혀 달랐다. 소파에 앉아 술을 마시는 부부도 있었고, 처음 보는 사람들끼리 웃으며 이야기하는 커플들도 있었다.
누가 봐도 특별할 것 없는 사람들이었다. 미경도 처음에는 조금 조용히 주변을 살피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옆에 앉은 여자와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오히려 긴장이 조금 풀렸다.
그러다 미경이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안쪽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잠시 뒤 걸음이 멈췄다.
검은 가림막 너머로 벽 하나가 보였다.
일정한 간격으로 둥근 구멍들이 뚫려 있었다.
미경이 한동안 그쪽을 바라봤다. “저건 뭐예요?” 마침 옆을 지나던 남자가 걸음을 멈췄다. 진태가 소개시켜준 모임 주최자였다.
“아, 저쪽이 처음 보면 제일 궁금하죠.” 남자는 별일 아니라는 듯 웃으며 미경 옆에 섰다.
“글로리홀이에요. 벽 구멍으로 여성분이 하체만 내밀고, 이쪽에서는 빨거나 넣는 거예요. 얼굴은 안보이고.
안쪽이랑 바깥쪽이 막혀 있어서, 누구 것인지 확인이 안되죠 ㅎㅎ.”
미경이 다시 벽 쪽을 바라봤다.
“저 구멍마다 여자들이 다 들어가는 거예요?”
주최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모임마다 달라요. 다 채우는 날도 있고, 몇 자리만 쓰는 날도 있고요.”
“안쪽에서는 밖이 안 보여요?”
“네. 서로 얼굴 안 보고 하는 컨셉이라서요.”
미경은 다시 벽을 한번 훑어봤다.
구멍 개수를 세어보는 것처럼 시선이 천천히 옮겨갔다.
주최자가 그 모습을 보고 웃었다.
“안쪽도 한번 보실래요? 그냥 구조만 보셔도 돼요.”
미경이 나를 한번 봤다. 놀랐다기보다는 꽤 궁금한 표정이었다.
“들어가 봐도 돼요?”
“그럼요.”
미경은 잠깐 망설이다 가림막 안쪽으로 들어갔다. 나도 따라가려 했지만 주최자가 손으로 살짝 막았다.
“안쪽은 참가하는 분만 들어가요. 여기서 보시면 됩니다.”
잠시 뒤 벽 아래로 미경의 두 다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맨다리였다. 쭉 뻗은 선에 발목이 유난히 가늘었다.
주최자는 옆에 달린 장치를 가리켰다.
“그리고 이건 선택이에요. 움직이지 않게 자세를 잡아주는 용도인데, 불편하면 안 하셔도 되고요.”
안쪽에서 잠깐 침묵이 흘렀다.
그러다 미경 목소리가 들렸다.
“해봐도 괜찮을 것 같아요.”
주최자가 다시 확인했다.
“괜찮으세요?”
“네.”
그제야 주최자는 장치를 하나씩 맞춰주며 사용법을 설명했다.
나는 미경의 모습을 보고만 있었는데 어느새 저 안에 들어가 있었다.
주최자가 장치를 한번 확인하고 미경에게 물었다.
“불편한 데는 없으세요?”
안쪽에서 미경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 괜찮아요.”
“그럼 그냥 체험만 해보고 나오셔도 되고요. 실제로 참가하고 싶으면 말씀만 하시면 돼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여기까지 들어온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괜히 내가 한마디 더 얹었다가 미경이 마음을 바꾸는 게 싫었다.
잠시 조용했다.
그러다 안쪽에서 미경이 물었다.
“여기 있으면 밖에서는 제가 누군지 정말 모르는 거죠?”
“네. 따로 말하지 않는 이상 몰라요.”
다시 짧은 침묵.
나는 벽 아래로 나온 미경의 다리만 바라봤다.
그리고 잠시 뒤,
“그럼…… 한 번 해볼게요.”
순간 나는 미경을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내가 권한 게 아니었다.
분위기를 몰아간 것도 아니었다.
미경이 먼저 말했다.
주최자는 별다른 반응도 없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입구 쪽으로 걸어가 작은 등을 하나 켰다.
벽 위에 붉은 불이 들어왔다.
아까까지 주변에서 이야기하던 몇몇 남자들이 마치 신호처럼 그쪽을 바라봤다.
그중 한 사람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저도 모르게 잔을 내려놓았다.
남자는 벽을 따라 걸어왔다.
하나.
둘.
셋.
비어 있는 자리를 지나,
미경이 있는 곳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 순간 이상하게 숨이 막혔다.
내가 미경을 이곳까지 데려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마지막 한 걸음은,
미경이 먼저 내디뎠다.
블루메딕 후기작성시 10,000포인트 증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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