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갈린 부부들 - 제 10화
처형Mandy봊이속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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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시간전
엘리나는 거실로 나와서 머리를 말리고, 나는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아이보리색 홈웨어 원피스를 입은 그녀. 풍만한 골반과 출렁이는 젖가슴. 드라이기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보고 있자니, 숨을 고르던 똘똘이가 다시 기지개를 켠다.
“......”
나는 뒤로 가서 엘리나를 조용히 안았다. 가슴에 손을 얹으니 브래지어를 하지 않은 맨 살의 감촉이 그대로 전해졌고, 엉덩이골에 밀착한 사타구니에는 다시 온기가 돌며 좆 뿌리에 힘이 들어갔다.
“치킨 식겠다. 저녁부터 먹을까?”
엘리나는 돌아서서 내 손을 부드럽게 뿌리쳤다. 아쉬움을 잠깐 삼킨 채, 우리는 테이블로 와서 치킨을 뜯었고, 맥주 한 잔씩 채워서 건배를 했다. 가을 밤, 그녀의 집에서 히터를 틀어 놓고 아늑하게 함께 저녁을 먹고 있으니, 행복하면서도 아쉽다. 이런 집 데이트조차 행복한데, 엘리나가 내 아내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치킨이 몇 조각 안 남았을 때, 테이블 위에 올려뒀던 휴대폰이 울렸다.
[수잔나 ♥]
나는 볼륨 버튼을 눌러 소리를 죽이고는 전화기를 뒤집었다.
“안 받아?”
“아, 별 거 아냐. 하하.”
벨소리는 지독할 만큼 오래도록 울렸다. 그리고 곧 카톡 메시지 한 통이 왔다.
[수잔나 - 어디야? 아직도 일해?]
나는 테이블 아래로 휴대폰을 내려 답장했다.
[나 - 다 끝났어. 곧 들어갈게]
[수잔나 - 아까 당신 회사 갔다가 문 닫혀 있던데....... 회사 맞아?]
얘가 회사를 갔다고? 아, 씹할.......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욕이 절로 튀어 나왔다. 등골이 서늘해지며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내가 욕하는 걸 들었는 지, 엘리나가 걱정스런 표정을 하고 물었다.
“괜찮아?”
“미안한데, 나 가봐야 할 것 같아.”
“지금?”
“응.”
치킨 몇 조각이 그대로 남아 있었고, 따뜻했던 분위기는 순식간에 깨져 버렸다. 나는 허둥지둥 옷을 주워 입고 일어났고, 엘리나는 현관문 앞까지 나를 따라 나왔다.
“수잔나지?”
“응......”
그녀는 걱정 섞인 한숨을 내뱉었다.
“나중에 연락 될 때 연락 줘. 아무 일 없었으면 해.”
나는 고개만 끄덕였고,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차에 올랐다. 술을 마셨지만 대리 기사를 부를 생각조차 나지 않았고, 그대로 운전대를 잡고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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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현관문을 연다. 아니나 다를까, 집 안 공기가 너무나도 냉랭하다. 수잔나는 팔짱을 끼고 소파에 앉아 있다가 나를 보자 걸어왔다.
“여, 여보.”
그녀의 눈썹은 일그러져 있었고, 첫 마디부터 이미 톤이 올라가 있다.
“당신 뭐야?”
“뭐가?”
“솔직히 말해. 오늘 어디 갔었어?”
“일하러 갔다고 했잖아.”
수잔나는 잠시 고개를 돌려 ‘피식’하고 코웃음을 쳤다.
“나 오후에 어학원 사람들하고 영화 보러 갔어. 집으로 오는 길에 당신이랑 같이 갈 수 있을까 해서 회사 들렀는데, 문 닫혀 있던데?”
수잔나의 말이 끝나자마자, 내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하지만 당황하는 기색을 보여선 안 됐다. 나는 최대한 자연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침엔 회사에 있었는데, 오후에 클라이언트 미팅이 잡혀서 나갔어.”
“번역하는 사람이 왜 고객을 직접 만나?”
“가끔은 그래. 일 얘기하다 보면 직접 만나야 할 때가 있어.”
입에서는 술술 변명이 나왔지만, 머릿속은 이미 불이 난 듯 복잡했다.
“그럼, 그 사람한테 연락해 봐.”
머릿속이 하얘졌다. 나는 짜증이 올라오는 걸 억누르지 않고 그대로 터뜨렸다.
“아니, 당신은 생각이라는 걸 하고 말하는 거야? 그 사람 영어 한 마디도 못 해. 전화해서 뭐라고 해? 한국말로 대화하면, 네가 알아듣고 판단할 수 있어?”
“.......”
“그리고 이런 사적인 의심 하나 푼다고 고객 귀찮게 하면, 그게 얼마나 무례한지 알아? 몰라서 하는 말이야?”
내 목소리가 점점 커졌고, 나도 내가 얼마나 공격적으로 나가는 지 알았다. 하지만, 지금 멈췄다가는 오히려 들킬 것만 같았기에 그럴 수 없었다.
수잔나는 움찔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나는 말을 이어갔다.
“전화 잘못했다가 고객이 기분 상해서 일감 끊기면, 당신이 책임질래?”
나도 모르게 점점 수잔나를 몰아붙였지만 그래야만 한다. 그게 오히려 안전하니까.
수잔나는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였다. 마치 잘못한 사람처럼. 하지만 실제로 잘못한 쪽은 나였다. 죄책감에 내 목소리는 차츰 낮아졌다.
“됐어. 나 씻고 올게.”
수잔나는 바닥만 바라본 채 멍하니 서 있었다. 나는 그런 그녀를 그대로 두고 욕실로 향했다. 옷을 벗은 뒤 유튜브로 음악을 크게 틀고 샤워기를 켰다. 뜨거운 물줄기가 머리를 적시는 동안, 가슴 속을 들여다보니 온갖 생각들이 뒤엉켜 있었다.
수잔나는 왜 갑자기 내 회사까지 찾아왔을까? 그것도 하필 오늘?
큰 고비를 넘겼다는 안도감과 동시에, 엘리나와 조금 더 오래 함께 있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묘하게 뒤섞여 기어 올라왔다.
그렇게 생각들을 하나씩 정리하고 씻고 나온다. 수잔나는 여전히 소파에 앉아 있다. 눈가가 젖어 있고, 볼에서는 두 줄기 눈물이 주르륵하고 흘러내린다. 내 가슴이 무너졌고, 그녀의 곁에 앉아서 손을 잡았다.
“자기야.......”
“저리 가.”
수잔나는 내 손을 휙 뿌리치고 돌아앉았다. 나는 다시 다가가서 그녀를 끌어안고 내 품으로 끌고 왔다.
“흑.”
이내 내 어깨가 젖어 왔다. 나는 그녀의 등을 부드럽게 토닥이며 내 품 안으로 끌고 왔다. 불현듯, 어젯밤의 기억이 떠올랐다. 주말에 영화 보러 가자고 다가왔던 수잔나를 나는 차갑게 밀어냈다. 회사 일 핑계로 둘러대며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않았다. 그때의 무심함이 지금 그녀의 눈물이 되어 나를 질책하는 것이라.
불륜이라는 삶은 생각보다 훨씬 더 험난했다. 들키지 않기 위해 치밀하게 움직여야 하고, 한마디 말도 조심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정작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가장 큰 상처를 주고 있었다. 그런데도 엘리나를 놓고 싶지는 않았다. 그녀와 함께하는 순간들은 너무 달콤했고,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더 깊은 욕망이 먼저 나를 휘감았다.
하지만 수잔나의 의심은 분명히 커져가고 있었다. 오늘 있었던 일도 그렇고, 앞으로 더 집요하게 파고들지도 모른다. 그 느낌이 손을 뻗어 서서히 내 목을 조여 오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들켜서는 안 됐다. 그러면 모든 게 끝이니.
수잔나는 한 동안 내 품에서 떠나지 않았다. 머릿속에서는 오만 가지 생각이 들러붙었지만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었다. 그저 태연한 척, 내가 정말 잘못했기에 사죄하듯이 그녀를 안고 있을 수밖에. 그렇게 그날 밤은 조용히 넘어가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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