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의 다른 온도(1)
민서는 마흔셋이었다.
아들이 스물셋이 된 해 가을, 그녀는 문득 깨달았다.
자신이 ‘엄마’라는 단어 안에 갇혀 살고 있다는 것을.
재현은 대학원에 다니며 집에 거의 들어오지 않았다가, 졸업 논문 마감 3주 전 갑자기 돌아왔다.
“엄마 방에서 자도 돼? 내 방 매트리스가 너무 딱딱해.”
그 말 한마디가 시작이었다.
처음엔 그냥 익숙한 체온이었다.
같이 영화 보다가 잠이 들고, 새벽에 서로의 숨소리를 들으며 깨어나는 일상이 쌓였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민서는 재현이 옆에 누워 있을 때면
자신의 심장 박동이 조금 더 크게, 조금 더 천천히 느껴진다는 걸 알게 됐다.
어느 늦은 밤, 거실 소파에서
재현이 물었다.
“엄마는… 나 말고 다른 사람 좋아해본 적 있어?”
“……갑자기 왜.”
“그냥. 궁금해서.”
민서는 대답 대신 웃었다. 웃음 뒤에 숨을 삼켰다.
“엄마는 이제 그런 감정 안 생길 줄 알았어.”
거짓말이었다.
지금 이 순간, 생기고 있었다.
재현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말했다.
“나도 엄마 말고는… 사실 별로 안 끌리더라.”
그 말은 농담처럼 가볍게 나왔지만,
떨어지는 말끝에 묵직한 진심이 묻어 있었다.
민서는 손을 뻗어 재현의 앞머리를 살짝 쓸어 넘겼다.
평소처럼, 엄마처럼.
그런데 손끝이 떨리고 있었다.
“우리… 이러면 안 되는 거 알지?”
민서의 목소리는 작았다. 거의 속삭임에 가까웠다.
재현은 대답 대신 민서의 손을 잡았다.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놓을 수 없었다.
“알아.”
재현이 말했다.
“근데 엄마가 나한테 제일 솔직한 사람이었으면 좋겠어.
나도 엄마한테 제일 솔직하고 싶고.”
민서는 눈을 감았다.
눈꺼풀 안쪽에서 뜨거운 게 차올랐다.
“그럼… 우리 그냥 솔직해질까?”
그녀가 물었다.
“아무도 모르게.
아무도 이해 못 해도.
우리끼리만 아는 온도로.”
재현은 대답 대신 민서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엄마한테 하듯, 아들에게 하듯,
그러나 전혀 다른 온도로.
그날 밤 이후로
그들은 서로를 ‘엄마’ ‘재현아’라고 부르면서도
동시에 전혀 다른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이름.
말하면 무너질 것 같은 이름.
그들은 연인이 되지 않았다.
가족이 되지도 않았다.
그 사이 어디에도 없는, 오직 둘만이 아는 온도의 관계가 되었다.
가끔 민서는 생각했다.
이건 사랑이 아니라고.
이건 그냥… 오래된 핏줄이 잘못 흘러가는 소리라고.
하지만 재현이 옆에서 조용히 숨 쉬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그녀는 깨닫는다.
잘못된 온도라도,
이 온도가 지금 내게는 가장 진짜라는 것을.
그리고 언젠가 이 온도가 식을 날이 올 거라는 것도.
그날이 오면 아마 둘 다
아주 조용히,
서로를 놓아줄 거라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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