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편]눈꽃의 후회 001
네코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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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간전
ㅇr내와 편.견 그 후의 이야기들..
-- 눈꽃의 후회 --
눈꽃의 후회 001 ----------------------------------------------
도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한 것인가?
잠시 전의 일들이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니 기억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내 머리가 무언가에
번쩍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내 스스로 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본능적인 방패막이일까?
내 스스로 기억의 통로를 차단시킨 것일까?
머리가 어지럽고 혼란스러웠다.
뭔가 있어서는 안 될 일이 벌어진 것 같았다.
어안이 벙벙했다.
주변을 둘러 보았다.
내 눈에 보이는 장면들이 나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내 눈에 띄는 그것들이 내 기억을 잠시 전으로 되돌려 주고 있었다.
아주 천천히 말이다.
이곳에 있다는 것이, 내가 아까부터 이곳에 있다는 것이 확실한 것은
이 향 냄새때문이었다.
정말 오묘한 향냄새였다.
제사지낼때 쓰는 그런 향 냄새가 아닌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향 냄새였다.
하지만 눈이 아프거나 머리가 아프지는 않았다.
조명이 꺼진 방 안에는 창 밖에서 비추어 주는 달빛만이 조명 역할을
해주고 있는것 같았다.
그리 많이 어두운 것은 아니었다.
달빛만으로도 방안의 모든것들이 구별이 되었다.
보름달이 뜬 날일까?
창문을 열어서 확인을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분명히 방안의 모든 것들을 식별할수가 있었다.
작은 물건들까지 말이다.
천장의 전등을 키고 싶어도 스위치가 어디 있는지, 지금 찾을수는
없었다.
나는 지금 무척이나 당황을 한 상태였다.
벽에 걸린 기묘한 그림들을 보았다.
마치 어릴때 보았던 무당집에 내가 갇혀 있는 느낌이었다.
정신이 혼미했다.
아니 어지럽다는 표현이 맞을까?
고개를 돌려서 옆을 보았다.
내가 지금 이렇게 두리번 거리면서 헤매고 있을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뭔가 큰 잘못이 생긴것 같은데, 내가 자꾸만 이렇게 멍하게 있으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머리에 번쩍하는 느낌을 받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지금 솔직히 제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었다.
본능적으로 내 발아래를 보았다.
원래 내가 두리번 거릴곳은 거기였는데, 나는 지금 너무 떨리고
두려워서 그곳을 피하고 있었던것 같았다.
아주 작은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말이다.
내 한쪽 옆에 쓰러져 있는 아내를 보았다.
바로 내 발 아래 옆이었다.
분명히 아내였다.
내 아내 오연지였다.
아니, 나를 떠났던 전 아내 오연지였다.
아니…진짜로 아니…
지금 그런게 중요한게 아니었다.
지금 바닥에 쓰러져 있는것은 오연지였다.
아까까지만 해도 나와 이야기를 나누었던 아내였다.
불을 켜지 않은 방에서 아내와, 그 녀석과 대화를 나누었다.
우리는 왜 불도 켜지 않고 달빛에 의존해서 이 오묘한 향내가 나는
방안에서 대화를 나누었던 것일까?
내가 지금 모르는게 아니었다.
나는 분명히 알고 있는데 제대로 생각이 나지 않을 뿐이었다.
아니….그 생각을 스스로 차단하고 있는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꽤 오랜 대화였는데, 무슨 내용인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나는 지금 내 스스로에게 도대체 무얼 숨기려고 하고 있는 것일까?
일어선채로 바닥에 쓰러져서 작은 미동도 하지 않는 아내를 보았다.
하체에는 아무것도 입지 않은채 버선같은 이상한 것을 발에 신고 있었다.
아내의 가느다란 발목 아래를 그 버선같은 것이 덮고 있었다.
아내는 위에 개량 유카타 같이 생긴, 일본 온천 같은데서 입는것 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허리까지만 오는 짧은 길이였다.
아래는 아무것도 입고 있지 않았다.
맞다, 아내가 맞았다.
분명히 저 차림새로 조금전까지 나와 대화를 나누었던 기억이 났다.
아내는 움직이지 않았다.
내가 아내한테 도대체 무슨 짓을 한건가?
아니 내가 아내한테 어떤짓을 한 것은 아닐것이다.
아니….아니어야 한다.
내가 어떻게 감히, 내 아내였던 오연지에게…..
있을수가 없는 일이다.
아니, 아니다 결국은 내가 한 것이나 마찬가지인가?
아내의 옆에 누워있는 남자를 보았다.
남자는 알몸이었다.
실오라기 하나 안걸친 알몸으로 아내의 바로 옆에 누워있었다.
그 역시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은채 쓰러져 있었다.
내가 아내와 그에게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인지….
분명했다.
내가 조금전까지 대화를 나누던 그 녀석이다.
정말 어떻게 하지…..
아내의 아래가 눈에 들어왔다.
작은 털오라기 하나 없이 맨들맨들 했다.
그리고 그 옆에 쓰러져 있는, 남자를 보았다.
남자의 아래에도, 털이 한올도 없었다.
남자도 실오라기 하나 안 걸친 알몸이기에 그게 너무나도
생생하게 보이고 있었다.
방안으로 비추는 환한 보름달빛이 그 광경을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하의를 아무것도 입지 않은 아내와, 옷을 아무것도 입지 않은 남자의
음부가 너무나도 자세히 보였다.
아까 아내와 그 녀석과 마주쳤을때는 아래를 신경쓰지 못했다.
아니 보긴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것을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우리가 나누었던 대화들 때문일 것이다.
미친 년 놈들……
아니, 솔직히 내가 지금 그걸 신경쓸때가 아니었다.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내 손을 보았다.
피가 묻어 있었다.
내 손에 피가 묻어 있는것이 보였다.
두 손으로 잠시 얼굴을 감쌌다.
피비린내이다.
나는 이 냄새가 너무도 생생하다.
마회장이 칼에 찔려 피를 철철 흘릴때, 그리고 내 팔이 칼에 스쳐서
피가 흐를때, 내 뇌리에 남은 그 피비린내는 아마 죽을때까지
잊혀지지 않을것이다.
지금 내 후각으로 그 피비린내가 느껴지고 있었다.
손을 떨면서 다시 손을 보았다.
피였다. 분명한 피였다.
빨리 무언가를 해야 하는데 나는 아무것도 못하고 있었다.
바닥을 보았다.
다다미 구조의 깨끗한 일본 전통식 방이었다.
바닥에 쓰러진 아내, 그리고 그 옆에 쓰러진 남자, 그리고 피 묻은 내 손
나는 정말 손가락 하나 까딱할수 없을 정도로 얼어붙은것 같았다.
아니, 아니다.
내가 지금 까딱하지 못하는 것은 손가락이 아니다.
내 몸이 아니다.
어쩌면 나는 지금 내 머리가 얼어버린것 같았다.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해서든 이해하고 빠른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데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정말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내가 어떻게 손을 쓸수가 없었다.
눈을 감았다.
이젠 정말 어떻게 해야 하나……
"회….회장님……"
나도 모르게 마회장을 찾았다.
마회장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분명히 나는 이곳에 마회장과 같이 온 것은 아니었다.
마회장은 시내에 있을텐데….
회장님이 낯선 이곳에서 나를 도와줄수는 없을 것이다.
회장님을 모시고 왔어야 했는데, 회장님과 같이 왔어야 했는데….
나는 미친듯이 후회가 밀려왔다
하지만 어쩔수가 없었다.
빨리 정신을 차려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나는 지금 무아지경에 빠진것만 같았다.
정상적인 사고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나는 다다미구조의 방에 주저 앉았다.
피비린내가 내 코에, 내 후각에 머물러서 떠나지 않고 있었다.
이 모든게 찰나의 순간이었다.
분명히 많은 생각을 하고 있는데 내 머리가 번쩍 한 이후로
불과 몇 초도 지나지 않은것 같았다.
다다미구조의 방에 주저 앉았다.
그리고 아내의 얼굴 근처로 갔다.
아내는 작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안돼……이건 꿈이야….이건 있을수 없는 일이야…
여…연지야…..연지야…..일어나….연지야…….안돼….
분명히 말을 하려고 했는데 입밖으로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속으로만 크게 외치고 있었다.
아내를 흔들었다.
아내의 몸을 흔들면서 내 눈앞이 흐려졌다.
눈에 눈물이 맺힌것 같았다.
내가 미쳤지….내가 정말 미쳤지….
내가 정신줄을 놓은게 틀림없지….
어떻게 이런 상황도 예측못하고….
이런 일을……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을……
연지야……연지야..일어나…..
나는 마음속으로 계속해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흐려진 눈 앞이 캄캄해지는 것 같았다.
일본식 온천에서 입는듯한 간이 유카타 같은 옷의 앞섶이 풀어헤쳐졌다.
매듭이 처음부터 묶여있지 않았었나 보다.
상체만 간신히 가리는 짧은 길이의 유카타였다.
아내의 몸이 보였다.
아내의 가슴이 보이고, 아내의 아랫배에 자궁암수술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연지야 일어나….
목소리가 아직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나는 미친듯이 아내를 흔들었다.
아내는 작은 미동조차 없었다.
지난 일들이 내 눈 앞에 슬라이드처럼 빠르게 지나가기 시작했다.
눈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눈에 고인 눈물 때문일까?
사람이 죽을때가 되면, 죽기전 그 찰나의 순간에 자신의 지난 세월이
눈 앞을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고 했는데, 내가 지금 그런 것 같았다.
지금 내 눈앞에는 지난 일들이 너무도 빠르게 지나가고 있는 것 같았다.
내 눈에 고인 눈물이 아내의 뽀얀 빰 위로 떨어졌다.
나는 젖먹던 힘까지 다해서 아내의 몸을 흔들면서 아내를 불렀다.
나오지 않고 내 목에 맺혀있던 목소리가 터졌다.
"연지야….연지야 눈 좀 떠봐….연지야….제발……
내 손에 묻은 피가 아내의 새하얀 가슴 속살에 묻은것이 보였다.
달빛 아래이지만 그런것들은 너무도 선명하게 잘 보이는 것 같았다.
내 눈 앞에 아내의 모습이 보이지 않고 지난 일들이 펼쳐졌다.
분명히 내가 비몽사몽인 정신으로 아내를 흔드는 것이 몇 초 사이에
다 이루어지는 일 같은데….마치 시간이 정지된 것만 같았다.
이곳에 온게 후회가 되었다.
이곳에 오지 말것을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까지 오기까지의 과정들이 눈앞에 쫘악 펼쳐지는 것 같았다.
……………………………………………………………………………………………………
12월이었다.
가을에 연지는 떠나버렸다.
정말 노래가사처럼 가을을 남기고 떠난 사람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계절이 바뀌어서 겨울이 되어버린것이었다.
연지가 떠나고 내가 다시 정상 생활로 돌아온것은, 그냥…. 바로 였다.
침울하고, 실의에 빠져서 지낸 기간이 없었다.
새로운 사실 몇 개와 아내의 이메일 때문에 조금 심란하기는 했었지만,
그런것들은 이젠 별로 중요하지도 않았다.
아내의 이메일을 보고 바로 지워버릴 정도로 이젠 정말 무덤덤해진
내 자신을 느낄수 있었다.
지운것을 후회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사림이 무슨일을 함에 있어서 준비를 하고 안 하고의 차이가 그만큼
큰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준비를 한 이별은 아픔을 채워둘 공간을 미리 마련해 놓아서 그런지
적극적인 대응을 할 수가 있었다.
거실의 한 쪽 벽면을 차지한 대형 가족사진을 보았다.
오연지는 이제 여기 없어도, 누가 뭐래도 아연이와 강이의 엄마이다.
아이들에게 엄마의 얼굴을 잊어먹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아연이에게는 연지가 계속해서 연락을 하는것 같으니까,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연이를 이미 한 번 버렸던 그런 상처가 있으니까, 아연이에게 두 번의
상처는 주지 않으려는 그런 마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의 빈자리를 느낄새가 없었다.
아침 일찍 아연이 아침을 먹여서 학교를 보낸후에 빨래와 청소를 하고
강이가 일어나면 강이도 아침을 먹이고 내가 출근하면서 어린이집에
맡긴다.
어린이집에 도착하면 아빠한테 빠이빠이도 안하고 안으로 바삐 들어가는
아들 녀석의 뒷모습을 보면서 가벼운 미소를 짓고,
그런후에 바로 회사로 출근을 해서 일을 시작한다.
이제는 무덤덤해진 불륜남녀들의 정사장면을 촬영하면서 마회장과 같이
잡담을 하고, 촬영한 내용들을 편집해서 의뢰한 고객님들에게 보내준다.
그러면 친자확인이 들어오고 시간이 좀 있다가 재산분할과 이혼소송의뢰가
들어온다.
요새는 남편보다 아내의 외도로 인한 이혼신청이 급증하는 추세였다.
요새 남자들 정말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통죄 폐지 이후에 바람핀 년들이 고개 빳빳이 들고 재산분할해 달라고
핏대 올리는 것을 보면서 세상 참 많이 변했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편셔리를 한 번 쭈욱 둘러보고 영식이의
체육관에서 적게는 삼십분, 필받는 날은 두시간 넘게 운동을 한다.
가장 큰 재산은 내 몸뚱아리라는 생각은 항상 변함이 없었다.
내가 건강해야 이젠 아이들 건사하면서 행복하게 지낼수 있으니까
내 몸을 관리하는 것에 소흘할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 몸 관리를 하는건 내가 제일 좋아하는 복싱으로 하니까
즐겁기도 하고, 항상 새로운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땀을 쭈욱 뺀후에 수왕보로 바로 올라가서 온천을 가볍게 하고
그런후에 어린이집으로 향한다.
집에 안 가겠다고 바둥대는 강이를 강제로 들쳐 매고서는 집으로 가서
저녁을 준비하고 강이와 아연이 저녁을 먹여서 재우고 나면
하루의 일과가 끝이난다.
자식을 맡겨놓은 부모의 심정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일주일에 한 두번
정도는 마트에서 제일 좋은 과일들을 꽤 많이 골라서 어린이집으로 배달을
시킨다.
강이도 먹고 친구들도 간식으로 나누어 먹으라고 말이다.
강이는 이제 엄마가 없기 때문에 내가 그런것까지 신경을 써주어야만 했다.
다른 애들은 가끔 엄마들이 어린이집으로 간식을 넣는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어린이집 원장이나 선생님들이
강이를 많이 이뻐해주는게 눈에 보였다.
낮에 가끔씩 어린이집 선생님들이 강이의 사진을 찍어서 내 문자로
보내주고는 했다.
마음 같아서는 하루종일 강이랑 같이 있고 싶었지만, 그럴수는 없었다.
그리고 강이도 집에 있는것보다는 어린이집에 있는걸 더 좋아하는것
같았다.
매일같이 저녁에 내가 데리러 가는 시간이 되어 나를 마주치게되면
도망부터 가니까 말이다.
아이 둘을 그렇게 돌보고 집안일을 하면서 회사를 다니는게 어쩔때는
아주 조금 힘들게 느껴질때도 있었다.
돈이 없어서 그렇게 힘들게 다 직접하는건 아니었다.
돈은 차도 넘쳤다.
들어오는 돈은 많아도, 나가는 돈은 훨씬 적었기 떄문이었다.
하지만 다른건 몰라도, 내 새끼 키우고 옷 빨아 입히고 청소하는건
남을 시키고 싶지 않았다.
연지와 살면서도 내가 다 했던 일들이다.
연지와 그런 일들이 있기전 17년동안이나 내가 군말없이 다 했던 일이다.
잠깐잠깐 취직을 했던 기간에도 내가 다 했던 일들이다.
회사마치고 와서 말이다.
내가 무슨 대단한 일을 한다고, 그런 일들을 돈을 주고 사람을 사서
시키고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내 새끼들 키우고 돌보는건 내 손으로 다 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나도 솔직히 몰두할 것이 필요했다.
가만히 멍하니 있다가는 연지와의 추억만 떠올라서 별로 좋지는 않았다.
체육관에서 운동을 하거나 집에서 집안일이나 요리를 할때는
아무 생각도 안나고 그냥 마음이 편해서 좋았다.
하지만 거실에 커다랗게 있는 가족사진 때문에 연지의 생각이
지워질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
이젠 연지가 미운 마음이 전혀 없다.
예전에도 별로 미워한적은 없었지만 말이다.
아니….조금은 미워했었나?
별로 기억도 나지 않지만 말이다.
아이들을 다 재우고 나면 그때부터 내 시간이었다.
자기전에 거실에서 영화를 본다.
한쪽 귀에만 이어폰을 꽂고 영화를 본다.
혹시나 강이가 깨거나 무슨 소리가 들릴까봐 양쪽에 다 이어폰을 꽂을수는
없었다.
그렇게 하루에 한 두시간 영화나 미드를 보고, 가끔은 수왕보에 설치한
노래방 기계로 노래를 부르면서 나는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다.
연지가 떠난 이후에 말이다.
나쁘지 않았다.
아연이가 너무도 자연스럽게 엄마와 아빠의 이별을 받아들여주어서 좋았다.
아연이는 이제 일년만 있으면 성인이다.
고3이라는 길고 긴 터널을 지나면 말이다
설마 아연이가 나처럼 재수를 하지는 않을 것이다.
재수도 공부 잘 하는 놈들이나 재수를 해야지….나는 재수 시절에
공부를 제대로 한 기억도 없었다.
술먹고 놀기 바빴었지….
강이는 하루가 다르게 쑥쑥 크고 있었다.
이젠 걷는것도 익숙하고 표정도 점점 더 다양해지고 있었다.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웠다.
편셔리에서 꼬박꼬박 거액의 월세가 입금이 되고 있었다.
그리고 마회장도 이젠 나에게 월급을 주는게 아니라 한달 실적을
정산을 해서 인센티브 식으로 일정 비율의 이익을 잘라 주었다.
그러니까 옛날에 받던 월급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돈을 많이 받았다.
마회장도 물론 변호사 사무실과 친자확인 업체에서 커미션을 건당으로
받기 때문에 마대정보진흥 자체의 매출이 내가 처음 입사했을때에
비해서 말도 못하게 늘어난 상태였다.
마회장은 그래서 그 이익을 나에게도 일정 비율로 나누어 주고도
옛날보다도 훨씬 더 많이 번다고 했다.
마회장과는 이젠 가족과 같은 관계였다.
서로 숨기는게 없을 정도였다.
마회장은 자신이 갑자기 죽거나 무슨 일이 생기면 간숙씨의 뱃속에 있는
아기가 너무 불쌍하다면서 각종 보험과 저축을 엄청나게 하고, 또
부동산에도 지속적인 투자를 하고 있었다.
죽어서 남겨줄것은 돈 밖에 없다고 말이었다.
그런 마회장을 보면서 나도 생각을 했다.
내가 죽으면 내 모든 재산은 아연이와 강이의 소유가 된다.
아연이야 솔직히 똑똑하기로 따지면 오연지에 버금가기 떄문에
별로 걱정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강이가 문제였다.
저 어린게 이 험한 세상을 돈만 가지고 어떻게 살아나간단 말인가.
정말 조심조심해서 건강하게 살아야 겠다는 생각을 마회장을 보면서
다시 한 번 다짐을 했다.
나한테 들어가는 돈은 먹는거 말고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행복했다.
내 새끼들을 위해서 저축을 한다는것 만큼 기분좋고 행복한 일은 없었다.
그렇게 12월의 중순이 지나고 있는데, 마회장이 점심을 먹다가 말을 했다.
"편이사, 내가 순전히 개인적인 호기심으로 조사를 했는데, 뭐 조사랄것도
없지 뭐…..말해줄까 말까? 너한테는 조금 민감한 문제인데…."
이런…..보나마나 아내에 대한 이야기 일 것이다.
별로 알고 싶지 않았다.
북해도인지 러브레타인지 하는 곳으로 날라버린 아내의…..
아…..이런…나는 아직도 혼자 생각을 할때 아내라는 그런 칭호로 연지를
생각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의식적으로 자꾸만 아내가 아닌 연지라고 부르고 있는데….
자꾸만 습관적으로 아내, 아내 생각을 하는 내가 좀 우수웠다.
이혼도 했는데….
이젠 내 아내도 아닌데…..
날 두고 떠나갔는데 말이다.
언젠가는 돌아온다는 개구라성의 이메일을 어디선가 날린 그런 오연지인데…
난 왜 아직도 연지를 아내라고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에이 하여간에 연지면 어떻고, 아내면 어떻냐는 생각이 들었다.
내 입으로 누군가에게 말하는 것이 아닌, 혼자 마음속으로 생각하는건데…
아내라고 하면 좀 어떠냐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참, 진짜 엉뚱한 년이기도 했다.
쟈니를 그렇게 며칠동안 면회를 하더니 뜬금없이 홍콩으로 갔다가….
다시 일본으로 날라버린것도……
참……기가 막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워버린 아내의 메일을 다시 한 번 보고 싶었지만, 이젠 볼 수가 없었다.
어찌되었든간에, 아내가 없어져도 아직 내 발기력은 멀쩡했다.
그것만으로도 감사했다.
혼자 그런 망상을 하다가 눈앞의 마회장을 보았다.
"싫어요, 안 들을래요….보나마나 아내 관련된 이야기일것 아니에요…."
내가 살짝 웃으면서 마회장에게 말을 했다.
마회장이 웃으면서 말을 했다.
"그래, 니 맘대로 해라…."
마회장은 말을 마치고 나서 혼자 입 안에 든 음식을 씹으면서
혼자 손가락을 하나씩 세고 있었다.
나는 잠시후에 마회장을 보면서 기어들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근데요……어떤건지 살짝 운만….…."
마회장이 웃으면서 대꾸했다.
"니가 십초내에 다시 물을 것으로 내가 생각을 했지…..
딱 칠초 걸렸네….내가 손가락으로 일곱을 세었다."
마회장에게 쪽팔리고 그런건 없었다.
마회장은 왜 또 가만히 있는 잔잔한 호수같은 내 마음에
또 돌멩이를 던지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있잖아, 저기 그 봉옥봉인지 여의봉인지 그 놈있잖아….
이름이 하도 야리꾸리해서 내가 한 번 알아보았지….
봉옥봉이하고 니 와이프를 연관시키는게 좀 그랬지만,
솔직히 니 말과 행동에 항상 모든 답이 다 있더라고…
그래서 내가 일본에 혹시 봉옥봉이라는 놈이 있는지 좀 알아보았지.
그랬더니 정말 의외의 결과를 얻게 되었다."
하아…..
마회장의 정보력이 고마울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마회장의 정보력은 나라는 인간, 편견이라는 인간을 변화시켰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마회장이 아니었으면 아내가….아니 어쩌면 아내보다는 강이가
잘 못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어쩔때는 정보가 너무 앞서나가고 정확하다보니까 겁까지 났다.
지금 이순간이 그랬다.
마회장이 아내의 출입국 기록을 밝혀주기로는 아내는 분명히 북해도…
그러니까 일본말로 훗카이도로 입국을 했다고 했다.
즉, 일본으로 갔다는 이야기였다.
택봉이는 카메라 가방에 쪽지로 나에게 봉옥봉을 평생 경계하고 살라고
남겼다.
택봉이는 분명히 뭔가를 눈치챘던것이었다.
눈치빠른 늙은이같으니라고 말이다.
마회장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것인지 솔직히 너무 궁금했다.
내가 밥먹던것을 멈추고 마회장을 뚫어지게 쳐다보자 마회장은
나를 보고 웃으면서 말을 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얼른 밥 먹고 사무실에 올라가서 보여줄께…
봉옥봉인지 봉봉쌕쌕인지 그 놈을 말이다."
마회장은 말을 마치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
이런…..
그냥 말을 하지…..
우리는 밥을 다 먹고 사무실로 올라갔다.
이미 떠나버린 여자이다.
이미 떠나버린 사람인데, 봉옥봉이가 뭘 하는 놈인지 내가 알아서
뭐 하겠는가?
아내가 일본으로 들어갔는데, 봉옥봉이가 일본에 있으면 같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잘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아내가 나에게 보낸, 내가 지워버린 메일의
야리꾸리한 내용을 보면 비슷한 뉘앙스도 있었다.
아내가 혹시 봉옥봉이를 칼로 찔러서 죽여버리기 위해서 일본에
입국한것은 아니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에 칼로 찔러 죽일것이면 그때 가족여행에서 아연이가 보았다는
봉옥봉이와 아내의 키스장면은 어떻게 해석될 것인가?
기억이 가물가물 하지만 분명히 봉옥봉이가 키스를 하면서 아내의 가슴도
만졌다고 했던것 같은데 말이다.
머리속이 다시 복잡해 지는것 같아서 머리를 흔들었다.
일본에 가서 아내가 닌자가 된다고 해도, 신경쓰지 말자고 스스로
자기 최면을 걸었다.
마인드 컨트롤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마회장은 사무실에서 컴퓨터 키보드를 두들기더니 어떤 사이트에
접속을 했다.
"자 봐라….이 놈이 봉옥봉이다.
놀랍게 생겼지….."
마회장은 나에게 모니터를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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