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편]눈꽃의 후회 005
네코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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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꽃의 후회 005 ----------------------------------------------
가슴이 아려왔다.
엄마가 그렇게 내 걱정을 하다니……
맨날 아연엄마 편만 드는줄 알았는데…..
"근데 아연애비야….난 솔직히 너 걱정 별로 안한다…."
뭉클했던 기분이 순식간에 싹 사라졌다.
꼭 그렇게 초를 치시다니…..아버지 다웠다.
"핸드폰에 찍어라….육 구 팔 삼 다시 칠 삼……."
아버지는 번호를 쭈욱 부르셨다.
"얼른 안찍고 뭐하냐…."
아버지가 호통을 치셨다.
나는 움찔해서 핸드폰을 꺼내어 아버지가 부르는 번호를 저장했다.
뭔 번호인가? 전화기는 안 바꾸셧는데….그때 바꾸어 드린 신형 스마트폰
그대로인데…..
내가 번호를 다 저장하자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니 엄마 몰래, 이리 돈을 부쳐라….엄마가 모르는 나만의 비밀 농협계좌이다.
맥주집을 가려고 해도 실탄이 있어야지…..
내 나이에는 얼굴이고, 키고 다 필요없다. 그저 실탄이다.
전쟁에 실탄 안가지고 가면 그냥 끝나는 거다….
실탄만 있으면 나도 신성일이 최무룡이가 부럽지 않은거고….
실탄이 없으면 누가 내 손도 안 잡아준다."
아버지가 씨익 웃으면서 말씀하셨다.
"내일 올라가자마자 바로 쏴라…..엄마 몰래….
엄마한테 이르면, 너 죽고, 나 죽자……"
"맥주집이나 다방 갔다가 걸리시면 제가 송금해 줬다고 다 부실꺼
아니에요…..그럼 나만 엄마한테 혼날텐데요…."
"내가 걸려도, 계 탔다고 둘러대마….나만 믿어라…..
니가 실탄 안 쏴주면, 아버지 뻥 터져서 죽는다….
나 죽는 꼴 보고 싶으면 맘대로 해라….."
아버지가 말씀을 계속하셨다.
"견아, 내말 잘 들어라….
니 엄마는 맨날 니가 불쌍하다고, 너무 가엽다고 말을 하고
니 걱정을 하지만, 난 솔직히 니가 하나도 안 불쌍하다.
왜냐하면 너하고 나하고는 닮은꼴이라서, 난 니 엄마하고 다르다.
니가 뭔 생각을 하는지, 나는 다 알 수 있어….
이게 유전자가 무서운 이유야…..난 니 쌍판만 봐도 니가 뭔 생각하는지
다 보인다….."
"난 솔직히 니 나이때 외아들인 너를 먹여 살리기 위해서 목숨걸고 일했다.
그런데 난 가진게 별로 없었어.
진짜 맨주먹 붉은피하고 쇠깍는 기술 말고는 가진게 없었어…..
하지만 넌 지금 다르다. 아직 오십도 안 된 놈이 도시 한복판에 그것도
완전 노른자 자리에 궁전같은 건물을 가지고 있잖아.
벼락부자가 따로 있냐? 니가 벼락부자지…..
그리고 아버지가 니 성격은 잘 알잖아.
천성이 게으르고, 노력하는걸 싫어하지만, 어릴때 넌 땅따먹기 같은건
진짜 목숨걸고 하더라….세벳돈 준것도 꼬깃꼬깃 꾸겨서 일년넘게
가지고 다니고 말이야….
니꺼 지키는건 진짜 징하게 무섭게 하는 놈이잖아…..
니 마누라는 못 지켰지만 말이다….
젠장….말이 길었는데…..
간단히 말해서 돈도 많은데 즐기고 살아라….
아연에미가 나중에 또 외국에서 기어올지 안올지는 모르겠지만…..
너 혼자 강이 못키운다.
여자가 있어야해….
너처럼 허우대 당당하고 게다가 돈도 많아요….
아연애미 때문에 부자가 되었던 아니던간에 어쨌든 지금은 다 니 돈 이잖아….
엄마랑 나는 절대적으로 니 편이다.
니가 새장가 가면…..니 엄마하고 내가 쌍수를 들고 환영해줄께…..
니가 능력없고, 백수생활할때야, 우리가 아연에미한테 절절 기었지만….
솔직히 이제 니가 이렇게 잘 나가는데…..
계속 이렇게 불쌍하게 사는 니가 너무 측은하다.
나는 아니고 니 엄마가 그렇게 생각한다고…..
나는 너 하나도 안 불쌍해….
넌 상처 받아도 며칠 고기먹고 푹 자면 다 잊는 놈인걸 내가 아니까…..
내가 그러니까, 너도 당연히 그럴꺼야….."
아버지가 포개를 쳐다보면서 천천히 시조를 낭독하는것처럼 부드럽게
말씀하셨다.
"아버지 저 이제 여자 안만날꺼에요…..
여자 이제 지겨워요….
애들 제가 혼자 키우고 살꺼에요…"
내가 웃으면서 아버지한테 말을 했다.
솔직히 엄마랑 아버지가 나와 연지에 대해서 너무 많이 알고 있고,
또 많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게 놀라웠다.
"아연애비야….니가 그럴수 있을것 같지?
나중에 오십 넘으면 니 몸이 못 견딘다…..
내가 니 엄마 싫어서 계집질 하고 다니는거 아니다.
내 몸을 식히려고 그러는거야…..
너는 나보다 더하면 더했지….덜하지는 않을꺼다….
돈도 많은 놈이 그 돈 다 싸가지고 갈꺼냐?
너도 너무 애들만 챙기지 말고 돈 쓰면서 즐겁게 좀 살아라….
내가 애비로써 아들놈한테 할 말은 아니지만….
너랑 나랑…..그리고 우리 강이까지…..
우린 좀 특별해….
일반 남자들하고는 다르다고….
내가 그때 강이 부랄보고 한숨이 다 나오더라….
강이는 너랑 나보다 더 개량형인것 같더라….
강이는 아마도 크면 우리보다 더 할꺼다….."
"어휴….아버지 그만하세요…..아들한테 못하는 소리가 없으세요…."
내가 민망해서 아버지한테 손을 저으면서 말을 했다.
"논다…..나 말고 너한테 이런 직언을 해줄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냐….
하여간에 이제 아연에미는 그냥 잊고….잘 알아서 해라…
너 정도면 처녀장가도 충분하다.
아마 동네 색시들 줄줄이 줄 설꺼다…
다만 걱정이 니가 아연에미랑 거의 이십년가까이 살아서
눈이 너무 높다는게 문제겠지만 말이다."
"게다가 니가 취사병 출신이라서 그런지 해먹는건 더럽게 잘 해먹잖아.
맛있는 요리 해가면서 말이다.
니 얼굴이 사십대 중반의 얼굴은 아니잖아.
얼굴이 얼마나 잘 처먹었는지 팽팽하니 개기름이 좔좔 흐르잖어.
눈가에 주름살 하나 없는게 지금 니 쌍판이다.
게다가 내가 너 복싱시킨게 어언 몇 년이냐…..
운동으로 다져져서 몸 좋고 힘 좋은건 뭐 따라올자가 없지….
니가 마음이 순둥이라서 모질지가 못해서 그렇지….
잔소리 말고 엄마 아버지말 듣고 어디 좋은 처녀 하나 찾아봐…..
나이 차이 좀 많이 나면 어때…..
그리고 아연에미 같은 얼굴은 솔직히 거의 없다.
조선시대 태어났으면 시집도 못가고 궁궐로 끌려갔을 외모야…..
아연에미보다 외모는 조금 떨어지더라도 착하고 참한…..
강이 잘 키워줄 수더분한 여자로 하나 찾아봐…..
너 삼십대 후반이라고 후라이쳐도 먹힌다.
내 말 명심해서 들어 이놈아…딴청하지 말고…."
내가 자꾸 딴데를 쳐다보자 아버지가 혼자 일장 연설을 하시다가
버럭 소리를 지르셨다.
"에이…아버지 그만하세요….
저 여자 안 만난다니까요…."
내가 다시 손을 저었다.
"견아, 내가 니 쌍판만 봐도 다 안다니까…..
니가, 아연에미 얼마나 사랑하는지 이 애비가 모를것 같냐?
내가 이놈아 널 업고 물고 빨면서 키웠다.
사랑? 좋지……근데 니가 오십만 넘어봐라….
아닌말로 아연이 시집보내고 나봐….
사랑이고 개코고……지금 내 말 안 들은거 후회할꺼다….
넌 그 나이가 되어도 힘은 넘치겠지만 상판대기가 쭈글쭈글 해지잖어….
그러니까 처녀장가 갈라면 얼굴 팽팽한 지금 정신 바짝 차려야해…..
나도 너한테 이런 말 하기싫어….
니가 아연에미 쉽게 잊을 화상이 아니란거 내가 모르냐…..
어릴때 기계병아리 사온거 일주일만에 뒈졌다고 삼일을 울던 놈이 넌데….
니가 몸만 화화상 노지심이지….마음은 비단결이잖아….
하여간에 나는 니 엄마가 시키는대로 너 새장가 보내려고
노력 많이 하는거다.
난 니 엄마한테 씨알도 안 먹힐꺼라고 이야기 했는데, 니 엄마가
나한테 직접 이야기 차마 못 하겠다고 나 시켜서 하는거다.
니가 알아서 해라….
다만….내가 니 나이로 돌아가서 너같이 돈을 은행에 쌓아놓고
살 정도라면…..난 니 엄마외에 첩을 적어도 일곱명 정도는
두고 살 것이라는 걸 명심해라….
자식한테 차마 못 할 말이지만, 내 솔직한 심정이다.
화무는 십일홍이야 임마….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어….
나중에 내 나이되서 아버지 말 안 들은것을 땅을 치고 후회하지 말고….."
아버지가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그리고 나를 발길로 툭 치면서 말씀하셨다.
"내일 실탄 쏘는거 잊지마라….은밀하게….
요새 엄마가 실탄을 아주 씨를 말려서 정말 힘들다.
난 니가 오기만 기다렸는데, 저놈의 여편네가 바로 인터셉트를 하네….
젠장……"
아버지는 툴툴 대면서 견사 뒤로 가서 개똥을 치우는 삽을 들고
견사 청소를 하셨다.
아버지가 포개 앞에 서더니 포개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말씀하셨다.
"넌 도대체 정체가 뭐냐? 뭔 개가 이렇게 크냐?
넌 검정색이라도 아주 털에 윤기가 나는구나….."
아버지의 손길에 포개가 혀를 내밀고 좋아하는 것 같았다.
포개도 견사에 개들이 많으니까 신기한지 기분이 들떠보였다.
택봉이랑 살때도 혼자였었고, 편셔리 옥상에 살때도 혼자인데….
자기 말고, 물론 덩치가 그레이트 데인종만한 도사견은 없었다.
도사견도 간혹 팔십킬로에 이상의 거구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레이트 데인보다 키나 덩치가 더 큰 도사견이 있을리가 없었다.
포개는 그때 교접을 하러 갔을때보다 더 신나고 흥분되어 있는것
같았다.
도사견들이 견사 안에서 구르고 싸우고 완전 지랄발광인 이 개판인
분위기가 더 좋은 모양이었다.
포개는 개똥을 치우는 아버지 뒤를 졸졸 쫒아다니면서 구경을 하는 것
같았다.
그런 아버지와 포개를 보면서 생각을 했다.
나는 솔직히 너무 많이 놀랬다.
아버지가 말씀하시는 것들중에 틀린 말이 하나도 없었다.
진짜 아버지는 내 머리속을 훤히 보고 있는것 같았다.
아버지는 나를 너무도 정확히 알고 계시는 것 같았다.
진짜 유전자의 힘이라는 것이 너무도 무서운 것 같았다.
그리고 아버지와 나, 그리고 강이까지 이어지는 우리 집안 남자들의
발달된 남성의 힘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을 했다.
나도 정말 나이가 들면 아버지처럼 여기 저기 물총을 발사하고 다니려고
할까?
지금의 나 같으면 그런건 상상이 되지 않았는데…..
하지만, 아버지의 말들을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가 너무 병신같이
살고 있는건 맞는것 같기도 했다.
오연지가 뭐라고…..
이젠 오연지 없이도, 나 혼자서 이렇게 당당한데 말이다.
내가 경제적으로 개뿔도 없던 그 시절에….
오연지 지갑에서 오만원짜리나 맨날 삥땅쳐서, 그걸 몰래 모았던
그 시절의 편견이 아니었다.
내 평생 누구를 도와주고 기부하고 그런건 꿈도 못꾸었었다.
내 주머니가 가뭄인데 누구를 도와준단 말인가.
원래 콩 한쪽도 나누어 먹고 없는 가운데서 남을 도와주는게
참 된 나눔이라는건 티브이에서 귀가 따갑게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그건 솔직히 말이 쉽지, 행동은 어려운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다르다.
불쌍한 사람 있으면 백만원씩 팍팍 주는 것도 별로 어렵지 않았다.
도시락집 임차인 아들 수술할때 약소하지만 돈도 좀 주고
보증금도 다 빼주고 다시 보증금 채워 넣으라는 이야기도 안했다.
젊은 사람 일단 먹고 사는게 중요하니까 무기한 보류를 시켜주었다.
옛날에 개뿔딱지도 없을때는 그런 허세는 감히 생각도 못했었다.
그리고 편셔리 위해서 열심히 일하는 영식이와 홍진이 가끔 고기
배터지게 먹여줘도 지갑사정에 아무 문제 없었다.
임차인들 경조사때 화환 기본에 부조금이나 축의금 기본 일이십은
가볍게 나가고 있었다.
나도 많이 달라진 것은 사실이었다.
나를 위해서는 별로 쓰는건 없지만, 쓸때는 쓰면서 살고 있었다.
나도 옛날의 편견이 아니었다.
진짜로 말이다.
이젠 개뿔도 없을…..혹시 모를 일이지만, 있어도 나처럼 많지는
않을 것이었다.
개뿔도 없을것 같은 오연지보다는 내가 훨씬 더 부자였다.
아버지의 충고들이……물론 아버지의 의견은 아니라고 했다.
아버지의 의견은 즐기면서 살아라였고,
사실 중요한 건 엄마의 의견이었다.
우리집 진짜 대장은 아버지가 아니라 엄마이니까 말이다.
아버지를 움직이는건 항상 침착한 엄마였다.
아버지는 목소리만 크실 뿐이었다.
평생 같이 살 여자를 하나 구하라는 엄마의 의견….
엄마가 내 성격을 아니까 차마 직접 말 못 하시고 아버지를 시켜서
말씀하신…..새 여자를 알아보라는 그 의견…..
마음이 심란했다.
솔직히 오연지에 대한 미련 때문은 아니었다.
아버지는 내가 아직도 연지를 사랑하는줄 알지만, 그건 그간의 스토리를
세세히 모르셔서 그러는거다…..
갑갑했다.
안으로 들어가서 아버지와 막걸리를 마시면서 삶은 돼지고기를 먹었다.
냄새를 맡은 포개도 집 마당에서 내가 그릇에 담아준 커다란 삶은
돼지고기 덩어리를 먹고 있었다.
포개도 나처럼 고기라면 환장을 하는 것 같았다.
도사견들이 환장을 할까봐 견사가 없는 앞마당으로 포개를 오게해서
고기를 먹게했다.
애들도 먹고 아버지와 내가 같이 먹을것을 삶아서 그런지 엄마가
커다란 들통으로 한 가득 고기를 삶으셨다.
누가보면 마을 잔치하는줄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와 막걸리를 마시면서 고기를 씹었다.
엄마는 나에게 아연엄마 이야기는 아예 꺼내지도 않으셨다.
강이도 할머니집에 오니까 내 근처에는 오지도 않고 할머니 품에만
안겨 있었다.
핏줄의 힘이란게 참 무섭다는 생각을 했다.
아연이는 할머니의 몸빼바지 비슷한걸 입고서는 편하게 뒹굴거리기만
했다.
티브이를 보거나 스마트폰을 보면서 진짜 편한 자세로 방에서 뒹굴뒹굴
하다가 고기를 먹다가 하는 것 같았다.
아연이도, 그리고 강이도 시골집에 내려오니까 다들 마음이 여유로워지고
편해져 보이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연이야 워낙에 어릴때부터 방학때면 아예 이곳에 살았으니까
이곳이 집 같을 것이고, 강이는 할머니의 품이 좋은지 할머니의 품에서
떠나려고 하지를 않았다.
강이를 안고 있는 엄마의 저 품이 오연지의 품이어야 하는데….
강이가 웬지 모르게 측은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동안 엄마의 빈자리 없이 내가 다 채워준다고 자신을 했었는데….
시골집에 내려와서 보니 내가 백프로 다 채워주지는 못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그런 말씀을 아버지에게 시킨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아니…엄마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다음날 오전에 아연이와 강이 그리고 포개를 시골집에 두고서
다시 집으로 가기 위해서 옷을 입었다.
엄마가 나를 끌고 부엌으로 가서 말씀하셨다.
"아연애비야…..아연이 개학 바로 며칠전에 와라……그 전에 오지 말고…..
어제 아버지가 너한테 다 이야기 했다면서….
그게 엄마 뜻이야….
잘 생각해…..
내가 애들 데리고 있겠다는건…..너 생각할 시간 좀 주려고 그러는거야…
니가 애들 뒤치닥거리하고 있으면 혼자 곰곰히 생각할 시간이나
있겠니….
니가 인물이 빠져……능력이 없어…..
옛날하고는 많이 다르잖아…..너 힘들었던 것도 다 알고 말이다…..
엄마 뜻이 그렇다는 것만 알아라…."
엄마가 내 손을 잡더니 말씀을 하셨다.
"에이….엄마…..몰라…..
나 솔직히 그러고 싶은 생각 전혀 없어….."
"이놈아….엄마 말 들어…..강이 저 어린걸 니가 어떻게 혼자 키우려고….
아니지…... 어차피 아연이도 니가 다 키웠으니까 애는 니가 키운다고 해도…..
남자는 나이들면 외로워서 안 되는거야….너 때문에 안 된다고….
엄마 말 들어…... 알았어?
엄마가 요새 너 때문에 잠이 안 온단 말야…."
엄마가 크게 한 숨을 내쉬더니 말씀을 하셨다.
"여자는 원래 서방질에 미치면…..자식이고 뭐고 다 팽개치는거야….
옛날부터 바람난 년들은 원래 그랬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여자들이 더 무서운거야…..여자들의 바람이 말이야….
아연에미한테 너무 미련두지 마라….
원래….외로운 애였잖아…..
엄마는 아연에미 미워하지 않는다…..
아연에미도 불쌍한 애야…..
하지만 엄마가 생각하기에도, 여기까지 인 것 같다.
우리 아들 이젠 충분히 혼자 설 수 있어. 이십년이면 충분히 할만큼 했어….
엄마 말 명심해라….."
엄마 입에서 드디어 연지의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기분이 뭉클해지기도 하고 조금 이상해졌다.
엄마는 마치 대학생 아들에게 충고하듯이 말을 하셨다.
하긴…..엄마 눈에는 나는 항상 부족한 아이 같을테니까 그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아버지와는 다른 느낌의 충고였다.
아버지와는 친구같이 편안한 남자간의 대화였지만….
엄마가 하는 말은 내 가슴을 구석구석 파고드는 것 같았다.
마음이 아팠다.
그때였다 안방 문틈으로 살짝 문을 열고 몰래 엿듣던 아연이와
눈이 마주쳤다.
저놈의 지지배 아주 눈치는 지 에미 찜쪄먹는 지지배다.
나는 손으로 아연이에게 엿들지 말고 문 닫으라고 손짓을 했다.
아연이가 깜짝 놀라더니 얼른 방문을 닫았다.
내가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서 엄마에게 말을 했다.
"강이 식사 부드러운걸로 해주고…..고기는 힘줄 없는데로 잘 찢어서
해주어야 해…..그리고 강이 목욕시킬때……"
엄마가 웃으면서 내 말을 중간에 잘랐다.
"이놈아….내가 널 키웠다……누가 널 이렇게 남산만하게 건강하게
키웠냐? 니가 나한테 애 키우는걸 설명해서 뭐하게….."
말을 하고 보니 나도 정말 웃겼다.
강이 걱정을 하다 보니까 나를 키운 엄마한테 아기 키우는 주의사항을
이야기 하고 있었다.
아연이 처음 키울때 아기 키우는걸 나에게 알려준사람이 우리 엄마와
장모님인데 말이다.
"하여간 엄마 강이 조심해서 잘 봐죠….그리고 뜨거운거 조심하고….
아기들 제일 위험한게 화상이니까 커피나 이런거 강이 주변 금지….
모서리 전부 테이프 붙이고….."
그때 아버지까지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나시더니 주방으로 와서 말을 하셨다.
"이놈아 니 몸에 화상자국이나, 흉터 하나라도 있냐?
우리가 니 어릴때 어떻게 키웠는데…..그걸 니가 우리한테 설명을 하냐….."
"에이…몰라요….하여간 강이 잘 봐요…진짜…..
강이 티끌만큼이라도 상처나면 나 막 울꺼야…."
그걸 들은 아연이가 안방문을 열고 끼어들었다.
"아빠, 나는 잘 안 봐도 되는 거야? 그런거야?"
아연이가 웃으면서 말을 했다.
"아연아 너도 강이 잘 봐야 해…..알았지? 그리고 놀지만 말고 공부도
하고…..이제 고3이다…."
나는 아연이이게도 잔소리를 했다.
엄마랑 둘이 대화를 하다보니까 어느새 다시 가족들이 다 모였다.
아연이랑 놀던 강이가 다시 빠르게 걸어와서 엄마의 품에 안겼다.
아버지가 나를 보고 말을 하셨다.
"돈도 많은 놈이 옷도 좀 메이커 같은거 좋은 것도 좀 사입고 그래라…
그게 뭐냐…."
"왜요? 이거 편해요….전 스포츠 웨어가 사이즈도 편하고 좋아요….
미국애들 사이즈가 저한테는 딱이더라구요…"
아버지가 혀를 끌끌 차시더니 나를 보고 말하셨다.
"올라가면 백화점에 가서 거 뭐냐…다악스냐….거 다악스 매장에 가서
겨울 잠바 근사한거 하나 뽑아 입어라….다악스가 너 같이 떡대 좋은
놈들한테는 근사하게 잘 어울린다.
그리고 혹시 원 프러스 원 같은거 하면 하나 더 받아서 나한테 택배로
좀 보내고….."
아버지가 말끝을 흐리면서 씨익 웃으셧다.
엄마가 또 아버지 등을 후려치려고 해서 아버지가 잽싸게 몸을 피하셨다.
칠십대 노인네 몸이 무지하게 빨랐다.
어제 개똥 치울때 보니까 아버지 팔뚝의 핏줄이 나 장가 보낼때나 지금이나
별 반 달라진게 없는것 같았다.
읍내에서 자꾸 껄떡대는 아버지의 핑계가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아연아, 할애비 핸드폰으로 다악스 홈페이지 좀 접속해봐라…"
아버지가 아연이한테 스마트폰을 주면서 말씀 하셨다.
아연이는 닥스 홈페이지를 찾아서 아버지에게 내밀었다.
아버지가 눈을 찡그리면서 집중해서 손가락으로 페이지를 막 넘기더니
나에게 핸드폰을 보여주셨다.
"난 이 디자인이 맘에 들더라…..사이즈야 니가 입어보면 딱일꺼고…."
아버지가 날 보고 씨익 웃으셨다.
그렇게 아연이와 강이 그리고 포개를 시골집에 맡기고 다시 운전을 해서
집으로 올라왔다.
시골집에 애들을 맡기니까 진짜 하나도 걱정이 되지 않았다.
아버지 말이 맞았다.
내 몸에 화상이나 작은 흉터 하나 없이 날 소중하게 키워준 부모님인데…
아이들을 부모님한테 맡기는 것보다 더 안심되는 데가 어디 있겠나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집에 올라와서 은행에 가서 아버지 비밀계좌로 용돈을 부쳐드렸다.
그리고 백화점 닥스 매장에 가서 아버지가 원하던 디자인의 잠바와
엄마가 입을 잠바도 하나 같이 샀다.
아버지는 보나마나 이 새잠바를 입고 맥주집이나 다방에 가려고 하실텐데….
잠바들을 매장에서 바로 시골집으로 택배를 부쳐달라고 말을 했다.
나도 아버지의 말처럼 정말 나이 들어서 저렇게 여자를 밝히면서 사는건
아닌지 솔직히 의심이 들기도 했다.
나이가 들면서 어릴적 보았던 아버지의 버릇들을 하나씩 닮아가는
나를 발견할때마다 많이 놀랬었는데…..
나도 정말……혼자 이렇게 늙어가다가는 아버지보다 어쩌면 더 심하게
여자만 밝히는 노년을 사는건 아닌지 조금은 걱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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