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갈린 사랑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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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간전
=== 지키고 싶은 비밀, 그리고 눈물겨운 거짓말
그녀의 따뜻한 손을 잡은 순간, 내 안에서는 두 가지 감정이 격렬하게 충돌했다. 여전히 나를 설레게 하는 첫사랑의 감촉,
그리고 매일 밤 벽 너머로 들려오던 그 잔인한 소리의 기억. 하지만 채아의 눈망울은 여전히 맑았고,
나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한 치의 거짓도 없어 보였다. '무슨 사정이 있겠지. 내가 지켜줘야 해.' 나는 이 가녀린 첫사랑을 내 손으로 무너뜨리고 싶지 않았다.
공원 벤치에 앉아 한참을 망설이던 채아가 드디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지훈아, 사실 나... 고등학교 졸업하고 집안 사정이 갑자기 안 좋아져서 대학 진학을 포기했어.
지금은 그냥... 작은 중소기업에 취직해서 다니고 있어. 마케팅이랑 현장 관리 같은 잡무를 주로 맡아서 하는데, 워낙 작고 정신없는 회사라 부모님한테도 구체적으로 무슨 일 하는지 말씀드리기 좀 그렇더라. 너한테도 멋진 모습만 보여주고 싶었는데... 미안해."
말을 이어가는 채아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중소기업이라는 단어 뒤에 숨겨진,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그 '진실'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밤마다 감독과 스태프들을 이끌고 자신의 집을 스튜디오 삼아 카메라 앞에 서야 하는 성인 비디오 배우의 삶. 오죽 형편이 어려웠으면 그런 선택을 했을까 싶어 가슴이 미어지는 듯 아파왔다.
채아의 눈가에 살짝 고인 물기를 본 순간, 내 마음은 굳어졌다.
'채아가 상처받게 두지 않을 거야. 절대 내가 눈치챘다는 걸 모르게 해야 해.'
나는 잡은 손에 힘을 꽉 주며, 짐짓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호기롭게 웃어 보였다.
"야, 중소기업이 어때서! 일찍 사회생활 시작해서 독립도 하고, 이렇게 좋은 오피스텔도 구했잖아. 난 네가 정말 대단해 보여. 그리고... 사실 나,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보수적이거나 순진한 애 아니야."
채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침을 한번 삼키고, 어젯밤 채아를 지켜주겠다고 다짐하며 머릿속으로 수없이 연습했던 인생 최대의 거짓말을 꺼내놓았다.
"나 아까 첫 경험 없다고 한 거, 부끄러워서 그냥 해본 소리야. 사실 나... 남몰래 좋아하는 이상형이 따로 있거든.
나 실은 AV 배우가 이상형이야. 완전 매니아 수준이라니까? 당당하게 자기 직업에 자부심을 갖고 카메라 앞에서 프로페셔널하게 연기하는 모습이 얼마나 멋진데! 난 그런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면 정말 편견 없이, 오히려 세상에서 가장 뜨겁게 사랑해 줄 수 있어. 그러니까 채아 너도 내 앞에서 기죽을 필요 전혀 없어!"
채아의 직업을 전적으로 지지하고 이해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내 나름의 눈물겨운 배려였다. 내 고백을 들은 채아의 얼굴이 순간 붉어지더니, 이내 당황한 듯, 어이없는 듯 복잡한 표정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나는 속으로 '통했다'고 생각하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 벽 너머의 진실 (반전)
같은 시간, 내 자취방 옆집인 1502호 안.
조명 장비가 투박하게 깔린 거실 한복판에서, 어젯밤 채아의 방에서 들려왔던 그 신음소리의 진짜 주인공, 신인 AV 배우 '유아'가 땀을 닦으며 가운을 걸치고 있었다.
"아휴, 채아 대리님한테 진짜 고마워해야 해. 감독님, 요즘 강남권에 이 가격에 이 정도로 깔끔하게 빠진 촬영 인테리어 스튜디오 구하기 하늘의 별 따기인 거 아시죠? 회사에서 사택으로 잡아준 방인데, 촬영 때마다 이틀에 한 번씩 흔쾌히 비워주시고 정리까지 다 해주 시잖아."
카메라를 정리하던 감독이 혀를 내두르며 맞장구를 쳤다.
"그러게 말이야. 한채아 대리가 우리 성인콘텐츠 제작 총괄팀으로 입사하고 나서 현장 로케이션 비용이 반으로 줄었어. 일도 야무지게 잘하고, 촬영 크루들 스케줄 조율도 기가 막히게 하잖아. 이번 신작 대박 나면 한 대리한테 인센티브 제대로 챙겨주라고 사장님한테 말해야겠다."
그렇다. 채아는 AV 배우가 아니었다. 그녀는 성인 비디오 제작사의 엄연한 정직원, '기획 마케팅팀 대리'였다.
회사가 복지 차원 겸 촬영 스튜디오 연계를 위해 얻어준 오피스텔이었기에, 채아는 정기적인 촬영 스케줄이 있을 때마다 군말 없이 방을 비워주고 회사 크루들에게 장소를 제공했던 것이다. 가끔 촬영이 새벽까지 길어질 때면, 채아는 밤새 근처 찜질방이나 카페에서 밤을 지새우며 회사 업무를 보곤 했다.
하지만 아무리 세상이 변했어도, 대학에 갓 입학한 순진한 첫사랑 지훈이에게 자신이 '성인 비디오 제작 회사'에 다닌다는 사실을 곧이곧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 환상이 깨질까 두려워 그저 '작은 중소기업'이라고 돌려 말했던 채아였다.
===. 엇갈린 마음의 평행선
공원 벤치, 지훈의 폭탄선언에 채아는 속으로 밀려오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지훈이가... AV 매니아였다고? 이상형이 AV 배우라고?!'
고등학교 시절, 전교 상위권을 놓치지 않고 교과서만 보던 그 순수했던 모범생 지훈이가, 1년 사이에 도대체 어떤 풍파를 겪었길래 저런 파격적인 취향을 갖게 된 걸까. 채아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자신이 성인 비디오 회사에 다닌다는 사실을 알면 경악할까 봐 숨긴 거였는데, 오히려 지훈이는 그 방면(?)의 열렬한 지지자라며 눈을 반짝이고 있으니 말이다.
"어... 응, 그렇구나. 지훈이 너... 정말 개방적인 아이였구나... 하하..."
채아는 어색하게 웃으며 손에 든 가방끈을 꼭 쥐었다. '내가 AV 회사 직원이라는 걸 알면, 혹시 나보고 배우 데뷔하라고 권유하는 건 아니겠지?' 하는 엉뚱한 걱정까지 들기 시작했다.
그 옆에서 지훈은 채아의 어색한 미소를 '자신의 과거를 들켜 부끄러워하는 여배우의 수줍음'으로 철석같이 오해한 채, 속으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
'성공했다. 채아가 상처받지 않았어. 앞으로 채아가 밤마다 내 옆집에서 어떤 촬영을 하든, 난 끝까지 모른 척하며 채아의 든든한 안식처가 되어줄 거야!'
지훈의 눈빛에는 한 여자를 어둠 속에서 구원해 내겠다는 순교자 같은 비장함과 순정 가득한 광기가 감돌았다.
서로가 생각하는 '비밀'의 실체가 완전히 엇갈린 줄도 모른 채, 두 사람은 1502호의 길고 얇은 벽을 사이에 두고, 그렇게 세상에서 가장 기묘하고 눈물겨운 연애를 시작하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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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