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미경 시리즈 외전 - 빌린여자 5
김끝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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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분전
미경과 나는 생각보다 자주 만났다.
처음에는 한번만 가져보면 된다고 생각했던 여자였다. 그런데 몇 번 더 만나고 나니 미경이 내 하루에 끼어드는 시간이 점점 길어졌다.
처음에는 PT가 끝나면 그걸로 끝이었다. 다음 약속도 그날 정했고, 연락이라고 해봐야 몇 시에 올 건지, 오늘 운동은 가능한지, 늦으면 얼마나 늦는지 묻는 정도였다.
그러다 필요한 말 사이에 쓸데없는 말이 하나씩 붙기 시작했다.
퇴근이 늦는 날이면 미경에게 짧게 메시지가 왔다.
“아직이에요?”
별 의미 없는 말인데 휴대폰에 미경 이름이 뜨면 한번 더 화면을 들여다보게 됐다.
“네. 오늘 좀 늦네요.”
“고생하네요.”
대화는 거기서 끝날 때가 많았다. 그래도 내가 편의점 커피나 늦은 저녁 사진을 보내놓으면 몇 분 뒤 미경이 마시고 있는 커피 사진이 돌아왔고, 쉬는 날에는 내가 보낸 하늘 사진 대신 음식이나 길거리 사진이 답처럼 왔다.
어디라고 설명하지 않아도 대충 뭘 하고 있는지 알게 됐다.
나 역시 묻지도 않은 걸 먼저 말하고 있었다.
오늘은 늦게 끝난다거나, 내일 오전에는 시간이 난다거나, 아직 점심도 못 먹었다는 얘기들.
원래 누구한테 하루 일과를 꼬박꼬박 알려주는 성격은 아니었는데 미경에게는 그런 말이 별로 어색하지 않았다.
만나는 모습도 달라졌다.
예전에는 운동이 끝나면 밥을 먹든 모텔을 가든 목적지가 있었다. 언제부턴가는 그런 것도 없이 그냥 차에 태웠다.
“어디 가요?”
“그냥 좀 돌아다니게요.”
“어디로?”
“몰라요.”
미경은 처음엔 어이없다는 듯 웃었지만 몇 번 지나자 더 묻지도 않았다.
차에 타면 가방부터 뒷좌석에 던져놓고, 내가 틀어놓은 음악이 마음에 안 들면 자기 휴대폰을 연결했다.
“또 이거 들어요?”
“왜요. 좋은데.”
“맨날 똑같은 것만 듣잖아요.”
“그럼 좋은 거 틀어봐요.”
미경이 고른 노래가 흐르기 시작하면 창밖을 보며 작게 따라 불렀다.
한번은 신호를 기다리다 그 모습을 오래 보고 있었는데, 눈치를 챘는지 미경이 고개를 돌렸다.
“왜요.”
“그냥.”
“뭐가 그냥이에요.”
“그냥 좋아서.”
미경이 잠시 나를 쳐다보다 입꼬리를 올렸다.
“설레게 그러지 마요.”
그 말을 해놓고는 다시 아무렇지 않게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는 괜히 웃음이 나왔지만 말하지 않았다.
이상한 건 그런 시간이 모텔에서 있었던 일보다 더 자주 떠오른다는 거였다.
밥을 먹다가 내 셔츠에 뭐가 묻어 있으면 미경은 대화를 끊지도 않고 손을 뻗어 떼어줬고, 내가 피곤해 보이는 날이면 커피를 두 잔 시켜 한 잔을 내 앞으로 밀었다.
“이거 마셔요.”
“내 건데?”
“그러니까 마시라고요.”
좋아한다는 말을 주고받은 적은 없었다. 보고 싶다고 먼저 매달린 적도 없었다.
그런데 헬스장 문이 열리고 미경이 들어오면 기분이 먼저 풀렸고, 평소 오는 시간이 지나면 벽시계에 눈이 갔다. 답장이 늦으면 굳이 알림도 없는 휴대폰을 한번씩 뒤집어봤다.
처음에는 내가 미경을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냥 오늘은 좀 늦네.
그 정도라고 넘겼다.
그런데 하루 이틀 지나면서 알게 됐다.
나는 미경이 없는 시간을 이미 의식하고 있었다.
차를 타고 어디를 가지 않아도 괜찮았고, 밥만 먹고 헤어져도 아쉽지 않은 날이 생겼다. 옆에 앉아 각자 휴대폰만 보고 있어도 굳이 정적을 채우려고 하지 않았다.
어떤 날은 오래 만난 연인처럼 편했고, 어떤 날은 몇 년 같이 산 사람처럼 서로 하는 행동을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다가 둘만 남으면 또 전혀 달라졌다.
서로를 대하는 건 익숙해졌는데 몸이 가까워지면 처음처럼 정신이 없었다.
그 차이가 좋았다.
편한데도 여전히 끌렸고, 익숙한데도 질리지 않았다.
누가 먼저 우리가 무슨 사이라고 정한 적은 없었다.
미경도 나한테 그런 걸 묻지 않았고 나도 굳이 확인하려 하지 않았다.
확인하는 순간 지금까지 아무렇지 않게 이어지던 것들이 오히려 이상해질 것 같았다.
그래서 말하지 않았다.
다만 내 쪽에서는 이미 답이 끝나 있었다.
나는 이미 연애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처음보다 훨씬 가까워졌고, 같이 있는 시간도 이제는 특별한 약속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나도 모르게 미경을 내 사람처럼 생각하는 일이 많아졌다.
다만 하나는 그대로였다.
아무리 오래 같이 있어도 어느 시간이 되면 미경은 꼭 시계를 봤다.
처음에는 당연하다고 넘겼다. 나는 오래전에 이혼했지만 미경은 아니었고, 집에는 남편이 있었다.
그걸 모른 채 만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미경이 내 생활 안으로 깊이 들어올수록 그 당연한 사실이 자꾸 신경에 걸렸다.
일을 하다가도 미경 생각이 났고, 쉬는 날이면 제일 먼저 시간이 맞는지부터 떠올렸다. 밥을 먹고, 차를 타고, 딱히 할 말도 없이 옆에 붙어 있는 것까지 이제는 하루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하루가 끝나는 자리에 나는 없었다.
“벌써 가요?”
“응.”
“오늘은 좀 더 있다 가면 안 돼요?”
미경이 나를 쳐다봤다.
“왜요?”
대답이 바로 나오지 않았다. 오늘만이라도 집 생각하지 말고 여기 남아달라고.
그런 말을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내가 너무 초라해질 것 같았다.
“그냥…… 오늘은 좀 더 같이 있고 싶어서.”
미경은 잠깐 나를 보더니 시선을 내렸다.
몇 분 전까지 내 옆에 기대 웃고 있던 얼굴에서 웃음기가 빠졌다. 눈빛도 조용히 가라앉았다.
조금 전까지는 둘만 있는 시간이 전부인 것처럼 굴던 사람이, 시계를 보는 순간부터 다시 내가 모르는 생활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갈게요.”
그게 끝이었다.
미안하다는 말도 없었고, 아쉽다는 표정도 없었다.
미경은 가방을 챙겨 들고 옷매무새를 한번 정리한 뒤 문 쪽으로 걸어갔다.
붙잡으면 멈출 것 같다가도, 막상 등을 보고 있으면 절대 멈추지 않을 것 같은 걸음이었다.
문이 닫히고 나면 늘 나만 남았다. 낮에는 내 여자 같았는데, 시계를 보면 가방을 챙기고 나갔다. 잡았다고 생각하면 없었다.밤이 되어도 가지 못하게 하고 싶었다.
그게 점점 사람을 미치게 만들었다.
나는 미경을 안고 있으면서도 결국 남편에게 돌려주고 있었다.
그 생각이 들기 시작하자 견딜 수가 없었다.
빌려 쓰는 기분이었다.
몇 시간 동안 내 사람처럼 있어도 시간이 끝나면 원래 주인에게 돌려줘야 하는 사람.
그게 너무 싫었다.
나한테 웃고, 나를 찾고, 나와 자면서도 마지막에는 아무렇지 않게 돌아가는 모습이 점점 잔인하게 느껴졌다.
그때부터 생각이 하나씩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더 오래 붙잡으면 되나.
더 좋아하게 만들면 되나.
아니면 아예 돌아갈 이유를 없애버리면 되나.
처음에는 스스로도 그런 생각이 우스웠다.
그런데 미경이 또 시계를 보고 일어나는 날이면 같은 생각이 다시 올라왔다.
한번 잡은 여자를 다시 놓치고 싶지 않았다.
아니.
잡았다고 믿었던 여자가 사실은 처음부터 완전히 내 것이 아니었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더 갖고 싶어졌다.
이번에는 밤이 되어도 가지 못하게. 다시는 저 문을 열고 나가지 못하게.
미경의 하루 끝까지 전부 내 것이었으면 했다.
그 뒤부터는 미경과 같이 있을 때도 남편 생각이 자꾸 끼어들었다.
둘만 있는 순간인데도 머릿속 한쪽에는 늘 그 사람이 있었다.
깊게 박힌 채로 허리를 움직이며 물었다. 빠졌다 들어갈 때마다 미경의 숨이 흔들렸다.
“하아…… 으, 깊어.”
“남편이랑 끝낼 생각은 없어요?”
미경이 나를 바라봤다.
처음에는 한번 만나면 끝날 여자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는 아니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연락이 와 있었으면 했고, 일을 끝내고 나면 제일 먼저 보고 싶었다. 같이 밥을 먹고, 차를 타고, 아무것도 안 하고 옆에 붙어 있는 시간까지 전부 내 생활이 되어 있었다.
몇 시간 만나고 돌려보내는 걸로는 부족했다.
나는 미경을 만나고 싶은 게 아니라, 같이 살고 싶었다.
“나는 그런 생각 없어요.”
미경의 대답은 짧았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한 번도요?”
“네.”
그 대답을 듣는 순간 몸에 힘이 들어갔다.
같이 살고 싶다는 말에 돌아온 건 고민도 망설임도 아닌, 단호한 거절이었다.
더 깊고 거칠게 박았다. 같이 살자는 말에 생각없다는 그 거절에 넣을 때마다 분노가 안으로 찍히고 빠질 때마다 질투가 따라붙었다
“나랑 이렇게 지내면서도?”
미경이 내 목을 끌어안은 채 잠시 숨을 골랐다.
“그거랑…… 그건 다르죠.”
“뭐가 다른데요.”
미경이 잠깐 나를 바라봤다.
“내가 당신을 만나는 것하고,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걸 전부 버리는 건 같은 일이 아니잖아요.”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미경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사장님한테는 하나로 보일지 몰라도, 나한테는 아니에요.”
그 말이 제일 잔인했다.
나한테는 이미 전부 같은 문제였다.
미경을 보고 싶은 것도, 같이 있고 싶은 것도, 밤마다 집에 보내기 싫은 것도 결국 하나였다.
그런데 미경에게는 아니었다.
“하아…… 아파요. 살살 해줘요.”
나는 이를 한번 악물고 움직임을 늦췄다.
몸은 멈출 수 있어도 머릿속에서 올라오는 질투까지 가라앉지는 않았다.
거절의 끝에는 늘 남편이 있었다. 안고 있을 때도, 입을 맞출 때도, 지금 미경의 안에 정액을 쏟고 있는 이 순간에도 그 생각이 스쳤다.
미경은 내 품 안에 있는데도 완전히 내 쪽으로 오지 않았다.
그 사실이 미칠 것 같았다.
내 손이 미경의 머리카락에 닿았다. 미경은 바로 움직이지 않았다.
잠깐 나를 올려다봤다.
그 눈빛이 싫다는 뜻인지, 망설이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손에 들어간 힘을 풀었다.
억지로 움직이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데 미경은 일어나지 않았다.
내 손이 떨어졌는데도 그대로 내 앞에 남아 있었다.
잠시 뒤, 이번에는 내가 끌어당기지 않았는데 미경이 스스로 거리를 좁혔다.
그 순간 이상할 만큼 만족스러웠다.
내가 시켜서가 아니라,
손을 놓은 뒤에도 미경은 일어나지 않았다.
고개가 숙여진 채 귀두를 천천히 물었고, 혀가 아랫면을 누를 때마다 볼이 좁아졌다 풀렸다.
눈은 감겨 있었고, 깊이 넣으려 하면 배가 막혔다. 막힌 자리에서 다시 끝을 빨았다.
그 얼굴을 보니 생각이 기울었다.
미경이 스스로 남편을 버리길 기다리는 게 아니라,
남편 쪽에서 먼저 미경을 놓게 만들면 어떨까.
그 생각이 떠오르는 순간 질투가 이상할 만큼 차갑게 가라앉았다.
한 번의 외도 정도라면 용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잠깐 흔들렸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다시 돌아오면 받아줄 수도 있다.
그게 싫었다.
용서할 마음조차 들지 않을 만큼.
남편이 미경을 다시 봤을 때,
내가 알던 여자가 맞나.
그 생각부터 들게 만들고 싶었다.
이 여자를 더 아래로 끌어내리고 싶었다.
돌아갈 집도, 남편이라는 자리도 더 이상 예전과 같을 수 없을 만큼.
언젠가 남편이 다시 미경을 보더라도 자기가 알던 아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거기까지 가면,
적어도 다시 그 사람 품으로 돌아가지는 못할 것 같았다.
블루메딕 후기작성시 10,000포인트 증정


오즈8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