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미경 시리즈 외전 - 취향 4
김끝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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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전
며칠 뒤 우리는 다시 진태 가게에 갔다. 이번에는 내가 먼저 권하지도 않았다.
미경은 매장에 들어가자 익숙하게 진열대를 둘러보다가 신제품 몇 개를 집어 들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제품들을 만져보고,
마음에 들지 않는 건 별 미련 없이 다시 내려놨다.
한참을 보던 미경이 작은 상자 하나를 골라 진태에게 가져갔다.
“이건 어때요?”
진태가 상자를 받아 설명을 읽어보더니 제품을 꺼냈다.
몇 가지 기능을 보여주자 미경이 바로 물었다.
“이것도 직접 해보면 돼요?”
진태가 나를 한번 봤다.
아주 짧은 시선이었다.
“그러셔도 되고요.”
미경이 제품을 받아 들었다.
“그럼 이것도 한번 해볼게요.”
그 말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오히려 내가 잠깐 멈칫했다.
진태가 제품과 젤을 챙겨 이벤트룸 쪽으로 먼저 걸어갔다.
미경은 그 뒷모습을 잠깐 바라보다가 손에 든 제품을 한번 내려다봤다.
아주 짧게 망설이는 기색이 보였다.
그러다 별말 없이 천천히 그 뒤를 따라갔다.
뒤따라가는 그 모습이 이상하게 눈에 남았다.
이번에는 미경이 굳이 돌아보지도 않았다.
진태가 먼저 안으로 들어가고,
미경도 그 뒤로 들어갔다.
방 앞에 서 있던 나는 습관처럼 안으로 따라 들어가려다가 지난번 일이 떠올라 문턱에서 멈췄다.
안쪽에 서 있던 미경이 문 쪽을 바라보고 있었고 이어 진태의 손이 문을 잡은 채 천천히 밀었다.
눈앞에 열려 있던 방안이 조금씩 좁아졌다.
미경의 몸이 먼저 가려지고,
어깨가 사라지고,
마지막엔 얼굴만 좁은 틈 사이에 남았다.
그리고 완전히 사라졌다.
철컥.
잠금장치가 걸리는 소리가 났다.
나는 그 소리를 듣고도 한동안 문앞에 서있었다.
이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진태 목소리가 평소와 같은 낮고 차분한 말이 들렸다.
뭘 누르라는 건지,
어떤 기능이 먼저 작동하는 건지 설명하는 것 같았다.
미경의 대답도 들렸다.
“네.”
잠시 뒤 다시.
“이거요?”
진태가 뭐라고 대답했는지 잘 들리지 않았다.
곧 낮은 기계음이 문 너머에서 울리기 시작했다.
웅―
잠깐 멈췄다가 다시 이어졌다.
미경의 목소리가 간간이 섞이며 미경의 질문과 진태의 대답이 이어졌고,
그리고 시간이 조금 지나자 말이 거의 없어졌다.
기계음 사이로 숨을 고르는 소리만 가끔 들렸다.
웅―
기계음이 한번 더 길게 이어졌다.
미경의 숨소리가 조금 커졌고 그 뒤로 진태가 무슨 말을 했다.
목소리가 낮아지며 미경도 뭔가 대답했다.
무슨 말인지는 들리지 않았는데 오히려 그게 더 신경 쓰였다.
나는 문 가까이 한 걸음 갔다가 멈췄다.
뭐라고 하는 거지.
굳이 들으려고 하면 들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렇게까지 하고 있는 내가 우스워서 다시 한 걸음 물러났다.
잠시 뒤 기계음이 완전히 멈추는 순간에나 끝난 건가 싶어 긴장했다
그런데 문은 열리지 않았다.
안에서는 낮은 소리가 이어졌는데 그게 말인지 숨인지, 처음에는 구분되지 않았다.
문틈에 귀를 대자 축, 하는 젖은 소리가 아주 약하게 났다. 뭔가 축축한 소리는 뭔가를 빠는것 같기도하고 입이 닿는것 같기도 하고 젤이 묻은 손이 움직이는 소리 같기도 했다.
확신이 없었다. 그런데 한 번 더, 쩝, 하고 짧게 끊겼다 이어졌다
내용은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잠깐 웃는 소리도 들린 것 같았다. 확실하지 않은 그 상황에 머리속에 온갖 상상이 되기 시작한다.
나는 문을 바라봤다.
조금 전까지는 제품 소리라도 있어서 안에서 뭘 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자먼 지금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그게 더 견디기 힘들었다.
조심스럽게 손잡이를 내리눌렀지만 문이 움직이지 않았다. 잠겨 있었다.
안에서는 여전히 축, 하는 젖은 소리와 끼익-끼익하는소리가 약하게 새어 나왔다. 나는 손잡이를 놓은 채, 그 소리만 듣고 있었다.
지난번부터 내가 보고 싶었던 건 결국 이런 거였다.
안으로 들어가서 확인하고 싶었다. 둘이 지금 어떤 상황인지,
미경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내가 옆에서 하나하나 시키지 않아도,자기 발로 어디까지 들어가는지.
그걸 확인하겠다고 여기까지 와놓고 이제 와서 문을 열 수도 없었다.
몇 분쯤 더 지났다. 약간의 소리나마 들리던 그 방이, 너무 조용해서 오히려 안쪽이 더 신경 쓰였다.
그러다 갑자기 안에서 작은 움직임이 들렸다.
옷을 정리하는 것 같은 소리. 무언가 내려놓는 소리.
그리고 잠시 뒤,
철컥.
문이 열렸다.
진태가 먼저 나왔다.
표정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장갑도 끼고 있지 않았고 제품 상자만 한 손에 들고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기능은 다 알려드렸어.”
그게 전부였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진태가 카운터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몇 초 뒤 미경이 나왔고 얼굴이 조금 발그레했다.
머리카락도 아까보다 살짝 흐트러져 있었다.
그런데 표정은 이상할 만큼 편했다.
미경은 나오자마자 나보다 진태 쪽을 먼저 봤다.
진태도 카운터 뒤에서 고개를 한번 들었다.
둘 사이에 말은 없었다.
그런데 아주 잠깐,
서로 뭔가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그게 마음에 걸렸다.
미경이 내 쪽으로 걸어왔다.
손에는 아까 고른 상자가 들려 있었다.
“이것도 괜찮네요.”
웃으면서 말했다.
나는 미경 얼굴을 한동안 봤다.
“괜찮아요?”
“뭐가요?”
“그냥.”
미경은 별일 아니라는 듯 상자를 한번 들어 보였다.
“아까 거보다 이게 더 나은 것 같아요.”
그리고 그대로 진열대 쪽으로 다시 걸어갔다.
나는 뒤에서 미경을 바라봤다.
분명 몇 분 전까지만 해도 나와 같이 들어온 여자였다.
그런데 닫힌 문 안에서 진태와 둘만 있다가 나온 뒤의 미경은,
아주 조금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실제로 뭐가 달라졌는지는 설명할 수 없었다.
말투도 같았고,
걸음도 같았고,
내 앞에서 웃는 얼굴도 같았다.
그런데 진태를 대하는 거리만은 전보다 짧아진 것 같았다.
둘 사이에 내가 모르는 장면 하나가 생긴 사람들처럼.
그 생각이 들자 질투가 뒤늦게 올라왔다.
보고 싶어서 문밖에 남아 있었는데,
막상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나니 더 많은 걸 상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제야 알았다.
내가 정말 보고 싶었던 건 미경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가 아니었다.
저렇게 내 예상에서 자꾸 벗어나고, 내가 생각하지 못한 방향으로 먼저 움직이는 여자를 결국 내 뜻대로 움직이게 만들고 싶었다.
미경이 톡톡 튀어나갈수록 그 마음은 더 강해졌다.
자유로운 모습을 좋아하면서도, 그 자유가 내 손을 벗어나는 건 견딜 수 없었다.
나는 미경을 바꾸고 싶었던 게 아니었다.
어쩌면 처음부터, 내 뜻대로 만들고 싶었던 건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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