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비밀연애3-외전(여자관점) (1)
바람난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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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시간전
회사에서 비밀연애를 읽어주신 분께 감사합니다.
원래 소설은 1인칭 남자 관점에서 썼는데, 여자 관점에서는 어떨까 고민했는데 여성의 섬세한 감정묘사로 써봤습니다. 이 부분은 총 3편입니다.
두번째 여자와의 내용에 대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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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콜라 잔
회식 자리에서 먼저 일어나지 않는 법을, 나는 아주 어릴 때 배웠다.
시골 큰집 제사 때마다 엄마는 부엌에서 마지막까지 남았다. 상을 다 치우고, 그릇을 다 닦고, 남은 전을 집집마다 싸서 들려 보낸 뒤에야 앞치마를 풀었다. 어린 나는 그 옆에 쪼그려 앉아 행주를 개며 생각했다. 끝까지 있는 사람은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구나. 그건 내가 처음 배운 생존법이었고, 서른이 넘은 지금까지 한 번도 버린 적 없는 습관이었다.
그날은 두 팀 합동 회식이었다. 고깃집 불판 위에서 기름이 튀었고, 누군가 소주잔을 내 앞으로 밀었다. 나는 웃으며 콜라 잔을 들어 보였다.
"저 박카스만 마셔도 얼굴 빨개져요."
다들 웃었다. 농담인 줄 아는 웃음이었다. 나는 굳이 정정하지 않았다. 사실을 말해도 농담이 되는 자리에서는, 그냥 같이 웃는 편이 덜 피곤하다.
그런데 테이블 끝에서 한 사람만 웃지 않았다. 옆 팀 과장님이었다. 그는 나를 보고 있었는데, 그 눈빛이 이상했다. 재미있어하는 얼굴이 아니라 무언가를 알아챈 얼굴. 나는 괜히 콜라 잔을 내려놓고 젓가락을 집었다.
그 사람에 대해 아는 건 많지 않았다. 7년인가 8년 차. 일을 잘한다는 평, 보고서에 빨간 펜을 많이 긋는다는 평. 그리고 반년 전쯤 그 팀에서 갑자기 그만둔 후배 여직원이 있었다는 것. 탕비실에서 누군가 목소리를 낮춰 그 얘기를 꺼냈다가 금세 화제를 돌렸던 기억이 있다. 나는 그때도 그냥 커피를 저었다. 남의 이야기에 끼어들지 않는 것 역시, 끝까지 남는 사람의 기술이었다.
2차 맥줏집, 3차 노래방. 나는 구석 자리에서 탬버린을 흔들었다. 남들 노래가 끝날 때마다 손바닥이 얼얼하도록 박수를 쳤다. 누군가 "기획팀 막내 한 곡!" 하고 외쳤지만, 나는 손사래를 쳤다. 사람 많은 데서 노래를 부르면 목소리가 떨린다. 떨리는 목소리를 들키는 건, 술에 빨개진 얼굴을 들키는 것보다 훨씬 부끄러운 일이었다.
가끔 고개를 들면 그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마이크를 잡지도, 누구와 크게 떠들지도 않았다. 화면 불빛에 얼굴 반쪽이 파랗게 물들어 있었다. 피곤해 보였고, 어딘가 혼자 같았다. 이상하게 그게 마음에 걸렸다. 나처럼 이 자리를 끝까지 버티고 있는 사람이 또 있다는 게.
자정이 가까워져서야 나는 가방을 챙겼다.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다들 조심히 들어가세요."
문을 닫기 직전, 마지막으로 방 안을 돌아봤다. 내가 앉아 있던 자리에 김 빠진 콜라 잔이 남아 있었고, 그 너머에서 그 사람이 그 잔을 보고 있었다. 나를 보는 것도 아니고, 잔을 보는 것도 아닌 얼굴로.
택시 안에서 나는 창문에 이마를 댔다. 술 한 방울 마시지 않았는데 볼이 뜨거웠다.
2. 새벽 한 시의 메시지
샤워를 하고 나와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있을 때 휴대폰이 울렸다.
'잘 들어가셨어요?'
그 사람이었다. 회식이 끝나면 의례적으로 오가는 인사. 나는 별생각 없이 답장을 보냈다.
'네, 방금 씻고 나왔어요. 과장님도 조심히 들어가세요.'
휴대폰을 침대 위에 던져두고 로션을 바르는데, 다시 진동이 울렸다. 이번에는 조금 길었다.
'혹시 잠깐 시간 돼요? 할 얘기가 좀 있어서. 집 근처 편의점에서 5분만.'
손바닥에 로션을 묻힌 채로 나는 그 문장을 오래 들여다봤다. 새벽 한 시. 기혼 남자. 할 얘기. 머릿속에서 경고등이 하나씩 켜졌다. 거절하는 문장도 이미 떠올라 있었다. '오늘은 늦어서요, 월요일에 회사에서 말씀해 주세요.' 그렇게 쓰면 됐다. 그게 맞았다.
그런데 엄지가 움직이지 않았다.
노래방 화면 불빛 아래 혼자 같던 얼굴이 떠올랐다. 웃지 않던 얼굴. 박카스 얘기에 모두가 웃을 때, 유일하게 내 말을 믿어준 것 같던 얼굴.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한 번도 누군가의 새벽 한 시가 되어본 적이 없었다. 늘 누군가의 낮이었다. 부탁하기 편한 사람, 믿고 맡기기 좋은 사람, 결혼하고 싶은 사람. 그런 말들은 칭찬이었지만, 듣고 나면 이상하게 가슴 한쪽이 서늘했다. 다 낮의 말이었으니까.
나는 거절하는 문장을 지우고 다른 문장을 썼다.
'과장님 술 많이 드셨죠? 제가 숙취해소 음료 사드릴게요.'
보내놓고 나서야 심장이 뛰었다. 이건 거절도 수락도 아니라고, 술 취한 선배를 챙기는 것뿐이라고 스스로에게 변명했다. 그 변명이 얼마나 얇은지는 나도 알았다. 화장대 앞에서 립밤을 바를까 말까 망설이다가, 끝내 바르지 않았다. 대신 회색 후드 집업을 걸치고, 젖은 머리를 질끈 묶었다. 꾸미지 않은 얼굴로 나가는 것. 그게 내가 나 자신에게 그어둔 마지막 선이었다.
동네 편의점은 형광등이 유난히 밝았다. 그 빛 아래서 그 사람은 회사에서보다 조금 작아 보였다. 넥타이를 반쯤 풀었고, 셔츠 소매에 고기 냄새가 배어 있었다.
나는 진열대에서 숙취해소 음료 하나와 박카스 하나를 집었다. 박카스를 고른 건 반쯤은 장난이었고, 반쯤은 증명이었다. 아까 다들 웃었던 그 말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걸, 적어도 이 사람한테는 보여주고 싶었다.
"이건 제 거예요. 오늘 이거 하나로 버텨볼게요."
그가 웃었다. 회식 내내 한 번도 보지 못한 웃음이었다. 그 웃음 하나에 새벽 한 시에 나온 일이 갑자기 덜 이상한 일처럼 느껴졌다.
편의점 앞 플라스틱 테이블은 밤이슬에 조금 축축했다. 할 얘기가 있다고 했던 사람은 정작 아무 얘기도 꺼내지 않았다. 침묵이 길어지면 나는 습관처럼 질문을 던졌다. 입사 몇 년 차세요, 그 팀 분위기는 어때요, 주말엔 뭐 하세요. 그가 대답하는 동안 나는 박카스 병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조금씩 마셨다.
"기획팀 보고서, 몇 번 본 적 있어요. 마지막 장 리스크 정리한 거. 그거 쓴 사람 누군지 궁금했는데."
나는 병을 내려놓았다. 그 보고서는 팀장님 이름으로 올라간 것이었다. 내가 밤 열한 시까지 남아 고친 페이지였다. 회사에서 그 페이지를 알아본 사람은 그가 처음이었다.
얼굴이 달아올랐다. 박카스 때문인지, 그 말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진짜네요. 박카스."
그가 내 볼을 보며 말했다. 나는 손등으로 볼을 가렸다.
"그쵸? 저 거짓말 안 해요."
그 말을 하면서 나는 알았다. 오늘 밤 내가 한 말 중에, 그게 유일하게 반만 진실이라는 걸.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다만 지금 이 자리에 나와 있는 이유에 대해서만큼은, 나 자신에게 정직하지 않았다.
3. 두 번째 노래방
"아까 노래방에서 한 곡도 안 불렀죠?"
그 사람이 길 건너편 건물을 턱으로 가리켰다. 2층 창문에 코인노래방 간판이 분홍색으로 깜빡이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가, 다시 끄덕였다. 사람 많은 데서는 못 부른다고, 목소리가 떨려서. 그는 그럼 딱 세 곡만, 하고 먼저 일어섰다.
계단을 오르는 동안 나는 계속 돌아갈 핑계를 찾았다. 내일 아침 일찍 약속이 있다고 할까, 갑자기 배가 아프다고 할까. 하지만 계단은 짧았고, 핑계는 끝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좁은 방에 둘이 앉으니 인조가죽 소파가 유난히 가까웠다. 무릎과 무릎 사이가 한 뼘도 되지 않았다. 리모컨을 쥔 내 손이 축축했다. 첫 곡을 고르는 데만 한참이 걸렸다. 너무 신나는 노래는 민망했고, 너무 슬픈 노래는 의미가 있어 보일까 봐 겁났다. 결국 고른 건 고등학교 때 이어폰으로 수백 번 들었던 오래된 발라드였다.
첫 소절에서 목소리가 떨렸다. 화면의 가사가 흐릿하게 보였다. 그래도 나는 멈추지 않았다. 한 줄 한 줄을 또박또박, 마지막 음까지 끝까지 불렀다. 중간에 그만두면 처음부터 안 부른 것보다 더 부끄러워진다는 걸 알았으니까.
노래가 끝나자 그 사람은 박수를 치지 않았다. 대신 조용히 말했다.
"끝까지 부르네요. 회식 때도 끝까지 있더니."
나는 마이크를 무릎 위에 내려놓았다. 누군가 그걸 알아본 건 처음이었다. 끝까지 남는 게 습관이 아니라 애씀이라는 걸.
세 곡은 다섯 곡이 되었고, 노래보다 이야기가 길어졌다. 그는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내 노래를 들었고, 내 얘기를 들었다. 고향 얘기, 엄마 얘기, 서울에 올라와 처음 살았던 반지하 방 얘기. 왜 그런 얘기까지 하고 있는지 나도 몰랐다. 아마 새벽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새벽에는 낮에 접어둔 말들이 저절로 펴진다.
다섯 번째 곡이 끝나고 화면이 광고로 넘어갔을 때, 그가 나를 봤다. 그 눈빛을 나는 기억한다. 무언가를 결심한 눈이 아니라, 결심하기 전에 이미 몸이 기울어버린 사람의 눈이었다.
그의 입술이 닿았을 때, 나는 피하지 않았다. 피하는 방법을 몰랐던 게 아니다.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손끝부터 어깨까지 전부 굳어서, 숨조차 쉬어지지 않았다. 머릿속은 하얀데 귀만 이상하게 밝았다. 옆 방에서 누군가 고음을 지르는 소리, 에어컨이 덜컹거리는 소리, 그리고 내 심장 소리.
입술이 떨어지고 나서도 나는 눈을 감지 못했다.
"……미안해요. 오늘 너무 예뻐서, 제가 실수했네요."
예뻐서. 그 말이 이상하게 아팠다. 칭찬처럼 들리는데, 듣고 나니 내가 무언가를 잘못한 것 같았다. 머리도 안 감고 나온 얼굴이었는데. 나는 무릎 위의 마이크를 내려다보며 한참 숨을 골랐다. 그리고 겨우 한 문장을 꺼냈다.
"과장님, 결혼하셨잖아요."
그건 질문이 아니었다.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었다. 이 사람에게는 돌아갈 집이 있다고, 그러니 지금 이 떨림은 아무 데도 갈 곳이 없다고.
그런데 그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대화가 사라진 집, 아이 얘기 말고는 할 말이 없는 아내, 주말마다 각자 다른 방에서 보내는 시간. 그는 바닥을 보며 말했고, 나는 그의 옆얼굴을 봤다. 그 얼굴이 노래방 화면 불빛 아래 혼자 같던 그 얼굴과 똑같았다.
지금 생각하면, 나는 그때 이미 알았다. 이 이야기가 하필 지금, 하필 나에게 쏟아지는 이유를. 알면서도 듣고 있었다. 회식 자리를 끝까지 지키듯이, 그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었다.
왜냐하면 나도 외로웠으니까. 아무에게도 미움받지 않으려고 끝까지 남는 일이, 사실은 아무와도 가까워지지 못하는 일이라는 걸 나는 너무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으니까.
나는 손을 뻗어 그의 손등을 한 번 쓰다듬었다. 조심스럽게, 다친 데를 만지듯이.
"많이 외로우셨겠네요."
그 말은 그에게 한 말이었지만,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내 목소리로 내 귀에 들어왔다.
노래방 앞에서 우리는 헤어졌다. 골목으로 들어서며 나는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뒤돌아보면 그가 아직 서 있을 것 같아서, 그리고 그게 너무 기쁠 것 같아서. 현관문을 닫고 신발도 벗지 못한 채 나는 문에 등을 기대고 주저앉았다. 입술을 손등으로 문지르다가, 그만두었다. 지우고 싶은 건지 기억하고 싶은 건지 알 수 없었다
블루메딕 후기작성시 10,000포인트 증정

윤지
인드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