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비밀연애3-외전(여자관점) (2)
바람난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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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시간전
4. 서랍 속의 박카스
주말 내내 나는 휴대폰을 뒤집어 놓았다. 그가 연락하지 않기를 바랐고, 동시에 연락이 오지 않을 때마다 화면을 뒤집어 확인했다. 일요일 밤까지 아무 메시지도 오지 않았다. 안도해야 했는데, 나는 이불 속에서 오래 잠들지 못했다.
월요일 아침, 나는 평소보다 이십 분 일찍 출근했다. 지하 1층 편의점에서 박카스 한 병을 샀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그 병을 쥔 손바닥이 차가웠다가 금세 미지근해졌다.
그의 자리는 비어 있었다. 모니터 옆에 아이가 그린 듯한 크레파스 그림이 붙어 있었다. 나는 그 그림을 보지 않으려고 고개를 숙인 채, 키보드 옆에 박카스를 내려놓았다. 포스트잇은 붙이지 않았다. 무슨 말을 써야 할지 몰랐고, 어떤 말을 써도 증거가 될 것 같았다.
그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대답이었다.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고, 나도 그 밤을 없던 일로 만들고 싶지 않다고, 하지만 그 이상은 나도 아직 모르겠다고. 박카스 한 병에 그렇게 많은 말을 담을 수 있다는 걸 그날 처음 알았다.
아홉 시 오 분 전, 그가 출근했다. 나는 내 자리에서 모니터만 보고 있었다. 그가 자리에 앉는 소리, 가방을 내려놓는 소리, 그리고 잠깐의 정적. 서랍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났다. 그는 그 병을 마시지 않았다. 서랍에 넣었다.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 하루 종일 생각했다.
저녁 무렵 메시지가 왔다.
'고마워요. 아까워서 못 마시겠어요.'
그 한 줄을 화장실 칸 안에서 열 번쯤 읽었다.
그 후로 우리는 몇 번 단둘이 만났다. 회사에서 두 정거장 떨어진 동네의 작은 파스타집. 그는 늘 창가가 아닌 안쪽 자리를 골랐고, 나는 그 이유를 묻지 않았다. 평일 저녁의 한산한 영화관에서는 팔걸이 하나를 두고 서로의 팔꿈치가 닿을락 말락 했다. 스크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나는 하나도 기억하지 못한다. 한강 공원 벤치에서는 바람이 불 때마다 그가 자기 재킷을 벗어 내 무릎에 덮어주었다.
그는 내 앞에서 술을 거의 마시지 않았다. 처음엔 나를 배려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그가 말했다. 맨정신으로 마주 앉아 있는 게 더 취하는 것 같다고. 나도 그랬다. 콜라 한 잔으로도 얼굴이 달아올랐다.
설렘이라는 건 이상한 감정이었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그의 메시지 하나에 웃음이 새어 나와서 마스크를 다시 올렸다. 그가 "오늘 그 블라우스 잘 어울려요"라고 보낸 날에는 그 블라우스를 일주일에 두 번 입었다. 퇴근 시간이 다가오면 자꾸 시계를 봤고, 약속이 취소되는 날이면 혼자 그 파스타집 앞을 지나쳐 집으로 걸었다.
나는 그걸 연애라고 불렀다. 마음속으로만. 소리 내어 부르는 순간 무언가가 깨질 것 같았다.
죄책감이 없었던 건 아니다. 회사 엘리베이터에서 그의 아내 또래의 여자를 보면 괜히 시선을 피했다. 주말에 마트에서 아이 손을 잡은 젊은 부부를 보면, 그 남자의 얼굴이 그 사람으로 보였다가 아니었다가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아직은 아무 일도 없었다고. 손 몇 번 잡고, 밥 몇 번 먹었을 뿐이라고. 그 '아직'이라는 말이 얼마나 많은 걸 숨기고 있는지 모르는 척하면서.
어느 날 파스타집에서 그가 내 보고서 얘기를 꺼냈다. 이번 분기 사업계획서, 내가 거의 혼자 쓴 거라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 그는 페이지 번호까지 짚어가며 좋았던 부분을 말해주었다. 나는 포크를 내려놓았다.
"과장님이랑 있으면, 제가 좀 괜찮은 사람 같아요."
말해놓고 나서 나는 얼굴을 감쌌다. 너무 솔직한 말이었다. 서른 해 넘게 나는 괜찮은 사람이 되려고 애써왔지만, 그걸 누군가에게 확인받고 싶다고 말한 건 처음이었다.
그가 테이블 위로 손을 뻗어 내 손을 잡았다. 그 손이 따뜻해서, 나는 하마터면 울 뻔했다. 그리고 동시에 어딘가 서늘했다.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고 처음으로 말해준 사람이, 하필 나를 가장 괜찮지 않은 자리에 앉혀놓은 사람이라는 사실이.
5. 비 오던 날, 나의 방
일기예보는 맑음이었다. 한강 공원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사 들고 벤치로 돌아오는 길에, 하늘이 갑자기 낮아지더니 굵은 빗방울이 쏟아졌다. 그가 내 손목을 잡고 뛰었다. 나도 뛰었다. 운동화가 물웅덩이를 밟을 때마다 웃음이 터졌다. 젖는 게 이렇게 즐거운 일이었나 싶었다.
가장 가까운 지붕은 우리 오피스텔 입구였다. 공원에서 걸어서 십 분. 처음 그에게 집이 근처라고 말했을 때, 나는 이 순간을 상상하지 않았다고 지금도 맹세할 수 없다.
현관 앞에서 우리는 숨을 몰아쉬었다. 그의 셔츠가 어깨에 달라붙어 있었다. 내 머리카락 끝에서 물방울이 쇄골로 떨어졌다.
"우산 갖고 나올게요. 여기서 잠깐만……"
그 말을 끝까지 하지 못했다. 잠깐만 기다리라는 말인지, 잠깐만 들어오라는 말인지 나도 몰랐다. 도어락 번호를 누르는 손가락이 떨렸다. 문이 열렸고, 나는 그걸 닫지 않았다. 그게 내 대답이었다. 누가 묻기도 전에 해버린 대답.
그를 내 방에 들인다는 건, 이상하게 몸을 보여주는 것보다 더 부끄러운 일이었다. 먼지 하나 없이 정리된 책상, 창가에 나란히 놓인 화분 세 개, 냉장고 문에 붙은 고향 부모님 사진. 혼자 사는 여자의 방이 너무 정돈되어 있다는 건, 그만큼 아무도 오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그가 그걸 알아챌까 봐 두려웠다.
수건을 꺼내 건넸다. 그는 수건을 받아 들고, 자기 머리가 아니라 내 머리카락을 먼저 닦기 시작했다. 정수리부터 천천히, 귀 뒤까지. 누군가 내 머리를 말려준 건 초등학교 때 엄마 이후 처음이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 순간 결심했다. 아니, 결심이 아니었다. 그냥 알았다. 오늘 밤 나는 도망치지 않을 거라는 걸.
그다음의 일을 나는 오래 기억할 것이다.
그가 망설였다. 의외였다. 노래방에서는 생각보다 먼저 몸이 움직였던 사람이, 내 방 한가운데서는 손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르는 얼굴이었다. 그래서 내가 먼저 그의 젖은 셔츠 단추에 손을 댔다. 첫 번째 단추가 잘 풀리지 않아서, 둘이 같이 조금 웃었다.
회사에서 나는 늘 한발 물러서 있는 사람이었다. 누가 뭘 부탁해도 "네, 해볼게요"라고 대답하는 사람. 그날 밤 나는 처음으로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말했다. 말로, 손끝으로, 숨으로. 이렇게 해달라고, 거기는 천천히, 아직 멈추지 말라고. 부끄러움은 어느 순간 녹아서 사라졌고, 그 자리에 낯선 내가 남아 있었다. 망설임이 없고, 솔직하고, 욕심이 많은 나. 서른 해 넘게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 모를 사람.
그의 놀란 얼굴을 보는 게 좋았다. 나를 하나의 틀에 넣어두었던 사람이, 그 틀이 깨지는 걸 바로 눈앞에서 보는 얼굴. 그건 복수 같기도 했고, 고백 같기도 했다.
창밖의 빗소리가 잦아들 즈음, 나는 그의 어깨에 이마를 기댔다. 그의 피부에서 내 바디워시 냄새가 났다. 그게 이상하게 마음을 아프게 했다. 이 냄새를 묻힌 채로, 이 사람은 몇 시간 뒤 다른 집 현관문을 열 것이다.
"놀랐죠? 저 그렇게 착한 애 아니에요."
농담처럼 말했지만, 사실은 확인하고 싶었다. 착하지 않은 나도 괜찮냐고. 순종적이지 않은 나도, 욕심 많은 나도, 결혼한 남자를 집에 들인 나도.
그는 대답 대신 내 손을 잡았다. 손가락 사이사이로 그의 손가락이 하나씩 들어왔다. 나는 그 대답이 마음에 들었다. 말로 하는 대답은 나중에 거짓말이 될 수 있지만, 손은 그 순간만큼은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까.
새벽 네 시, 그가 옷을 입었다. 젖었다가 반쯤 마른 셔츠는 구겨져 있었다. 나는 다리미를 꺼내려다가 그만두었다. 다려진 셔츠는 그의 아내가 알아챌 것이다. 구겨진 셔츠는 비 때문이라고 말하면 된다. 그런 계산을 하고 있는 내가 낯설었다.
현관에서 그가 내 이마에 입을 맞췄다. 문이 닫히고, 엘리베이터가 내려가는 소리를 끝까지 들었다. 그리고 나는 그가 쓰던 수건을 세탁기에 넣지 않고, 욕실 수건걸이에 그대로 걸어두었다.
6. 이름 없는 2년
그 후로 2년. 우리 관계에는 끝내 이름이 붙지 않았다.
일주일에 한두 번, 그는 퇴근 후 내 방에 왔다. 대개 화요일이나 목요일이었다. 나는 그 요일들을 기다리며 일주일을 살았다. 월요일은 기다리기 시작하는 날, 수요일은 지난밤을 되짚는 날,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는 그냥 견디는 날.
주말이 가장 길었다. 토요일 오후, 그의 메신저 프로필 사진이 바뀌는 걸 본 적이 있다. 놀이공원에서 아이를 목말 태운 사진. 그 아래 아내의 손이 살짝 찍혀 있었다. 손톱에 연한 분홍색 매니큐어. 나는 그 손을 오래 확대해서 봤다. 그리고 그날 밤, 처음으로 내 손톱에도 같은 색을 칠했다가 새벽에 지웠다.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아버려서.
냉장고 안쪽에는 늘 박카스 몇 병이 있었다. 그가 처음 우리 방에 온 다음 주에 한 상자를 사다 넣어두었다. 그는 침대에서 일어나면 냉장고 문을 열고 한 병을 꺼내 마셨다. "이거 마시면 다시 회사 가는 기분이야."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그가 돌아가고 나면 나는 빈 병을 헹궈서 분리수거함에 넣었다. 매번 같은 동작이었다. 그 동작이 나에게는 일종의 기도 같았다. 오늘도 무사히 지나갔습니다, 하는.
밤은 매번 뜨거웠다. 그 방에서만큼은 나는 망설이지 않았다. 회사에서 하루 종일 "네, 해볼게요"라고 말하던 입술이, 그 방에서는 "싫어"와 "더"를 마음대로 말했다. 그는 그런 나를 좋아했다. 나도 그런 나를 좋아했다. 문제는 그 방 밖에서는 그런 내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회사에서 우리는 철저했다. 회의실에서 눈이 마주쳐도 웃지 않았고, 회식 자리에서는 일부러 멀리 앉았다. 그가 다른 여직원과 웃으며 이야기하는 걸 보면 나는 화장실에 가서 손을 오래 씻었다. 질투할 자격이 없다는 걸 알면서 질투했다.
"결혼하고 싶은 여직원" 순위 얘기는 여전히 들려왔다. 남자 동기들이 술자리에서 내 이름을 꺼낼 때 그가 맥주잔을 들고 고개만 끄덕인다는 얘기를, 나는 다른 여직원에게서 전해 들었다. 그 얘기를 듣고 웃었다. 웃으면서 생각했다. 결혼하고 싶은 여자. 그런데 나를 가장 잘 아는 남자는, 나와 결혼할 수 없는 사람이구나.
그가 약속을 취소한 날들도 있었다. 아이가 열이 난다고, 장모님이 올라오셨다고, 아내가 오늘따라 이상하다고. 그럴 때마다 나는 '괜찮아요, 신경 쓰지 마세요'라고 답했다. 진심이었다. 그리고 그 진심이 나를 조금씩 갉아먹었다. 그의 미안함을 덜어주는 게, 어느새 나의 일이 되어 있었다.
한 번은 내가 몸살이 났다. 사흘 동안 출근도 못 하고 누워 있었다. 그는 메시지를 보냈다. '괜찮아요? 약 먹었어요?' 그리고 그게 전부였다. 올 수 없다는 걸 알았다. 와서는 안 된다는 것도. 하지만 열에 들뜬 새벽, 혼자 일어나 물을 마시러 가다가 냉장고 안의 박카스를 보고 나는 처음으로 소리 내어 울었다. 이 방에 그의 흔적은 박카스 몇 병과 수건 한 장뿐이라는 게, 그게 2년이라는 게.
엄마의 전화는 점점 잦아졌다. 서른셋이면 늦은 거다, 옆집 딸은 벌써 둘째를 낳았다, 너 혹시 만나는 사람 있으면 데려와라. 나는 매번 없다고 했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데려갈 수 있는 사람은 정말로 없었으니까.
"선 한 번만 봐. 엄마 친구 아들인데, 사람이 진국이래."
나는 처음으로 거절하지 않았다. 왜 그랬는지 지금도 정확히 모르겠다. 지쳐서였을까. 아니면 그 사람에게 무언가를 보여주고 싶어서였을까. 나에게도 다른 길이 있다는 걸. 그가 잡아주지 않으면, 나는 정말로 떠날 수 있다는 걸.
2년째 되던 해 가을이었다. 그가 침대에 누워 있고, 나는 머리맡에 앉아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맞선 상대가 보낸 메시지였다. '오늘 즐거웠습니다. 다음 주에 또 뵐 수 있을까요?' 마침표까지 정직하게 찍힌 문장.
"저 선 봤어요. 엄마가 하도 보채서."
나는 그의 얼굴을 보지 않고 말했다. 볼 수가 없었다. 그가 무슨 표정을 지을지, 그 표정에 내가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지 들킬까 봐.
"……그래서?"
그 한마디에 나는 알았다. 그는 나를 잡지 않을 것이다. 붙잡을 자격이 없다는 걸, 이 방에 처음 들어선 날부터 우리 둘 다 알고 있었으니까. 알면서도 나는 그 한마디가 조금 달랐으면 했다. '하지 마' 같은 말. '조금만 기다려' 같은 거짓말이라도.
"괜찮은 사람이에요. 지방 공기업 다니고. 저 결혼할 것 같아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할 거예요'가 아니라. 그 작은 틈을 그가 알아봐 주기를, 나는 마지막까지 바랐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오래 천장을 봤다. 그날 그는 처음으로 자고 가지 않았다. 새벽 한 시, 현관에서 신발을 신는 그의 등을 보며 나는 그 등에 이마를 대고 싶었다. 대지 않았다. 문이 닫히고 나서, 나는 냉장고에서 박카스 한 병을 꺼내 마셨다. 반도 마시기 전에 얼굴이 뜨거워졌다. 그날은 정말 박카스 때문이라고 믿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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