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갈린 부부들 - 제 6화
처형Mandy봊이속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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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시간전
너무 욕정에 사로잡혔던 탓일까? 뒷일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잠깐 회사에 다녀온다고 말했지만, 엘리나를 만나 술을 마셨다. 수잔나에게는 뭐라고 말을 해야 할까? 머리를 굴렸고, 곧 있을 일을 상상하면서 면서 현관문을 연다.
따뜻한 실내 공기가 피부에 닿는다. 그런데 그 온기 속에서 묘한 긴장감이 느껴진다. 수잔나는 거실 조명도 켜지 않은 채,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빛이 희미한 불빛을 받아 가만히 나를 관통했다.
“왔어?”
담담한 목소리였지만, 그 짧은 한마디에서 모든 걸 읽을 수 있었다.
“응. 일이 생각보다 많아서 늦었어.”
차분하고자 그렇게 노력했건만 내 목소리는 이미 떨리고 있었다.
수잔나는 한동안 말을 멈춘 채 내 얼굴을 가만히 바라봤다. 멀리서도 금방 느낌이 온다는 듯, 그녀의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러다 코끝이 아주 살짝 꿈틀거리고, 곧바로 눈썹이 좁게 모였다. 나의 표정, 몸짓을 보고는 내가 술 마셨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회사 갔다면서, 술은 왜 마셨어?”
그 질문이 너무 직설적이라 순간 숨이 막혔다.
“아, 팀장이랑 잠깐......”
변명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수잔나는 한숨을 묵직하게 내뱉으며 내게로 다가왔다.
“자기야.”
“응?”
“나 바보 아니야.”
“무슨....... 말이야?”
“정말 회사 갔다 온 거 맞아?”
그 말에 나는 나도 모르게 눈을 피했다.
‘아, 씹할....... 들킨 건가? 아니면 그냥 의심일까?’
현관문을 열기 전에 연습했던 말은 입 밖으로 쉽게 나오지 않았다. 엘리나와의 일이 떠올랐고, 동시에 내 심장이 서서히 조여드는 것만 같았다. 방금 전까지의 열기와 충동은 흔적만 남긴 채 사라지고, 죄책감과 불안감이 가슴 속을 채웠다. 나는 뜸을 들이다가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
“예상보다 일이 늦게 끝났어.”
말하면서도 나 스스로 믿지 않았다. 수잔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고개를 옆으로 살짝 기울이며 나를 오래 바라봤다. 내가 거짓말을 할 때마다 나타나는 작은 습관들을, 그녀는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여보.”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너무 차분해서 오히려 더 무서웠다.
“우리, 요즘 이상한 거 알아?”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인정하는 순간 모든 게 무너질 것 같았다.
“뭔 지는 모르겠는데, 당신 평소 같지가 않아. 회사 일 때문이랍시고 자꾸 나가서 늦게 오는데, 느낌이 달라.”
그 말에 나는 애써 태연한 척 웃어 보이려 했지만, 입꼬리가 제대로 올라가지 않았다. 나는 겨우 목소리를 가다듬고 대답했다.
“의심하게 해서 미안해. 회사 일이 많이 바쁘다 보니 내가 당신한테 소홀했나보다.”
수잔나는 한숨을 길게 내쉬더니, 한쪽 손으로 이마를 매만졌다.
“그래, 바쁜 건 알겠어. 나도 일하는 입장이라 이해해. 근데...... 계속 이런 느낌이 들면 불안해져. 내가 괜히 오버하는 걸 수도 있지만.”
그 뒤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마, 내가 했던 말들조차 진심이 아닌 것처럼 들렸음이라. 바보가 아닌 이상, 순간을 모면하려고 꾸며낸 말이라는 것을 모를 리 없으니까.
수잔나는 한숨을 내쉬며 방으로 들어갔지만 나는 한 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두려움, 후회, 그리고 미처 정리되지 않은 엘리나와의 기억들.
‘어떻게 해야 하지?’
* * *
그 후 며칠 동안, 나는 마음 한구석에 계속해서 불안을 품고 지냈다. 집에 있을 때면 수잔나의 눈짓 하나에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엘리나에게서 메시지가 올까 봐 핸드폰 알림을 꺼두고는 시도 때도 없이 확인했다. ‘대체 내가 왜 이러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녀와 함께 나누었던 몸의 대화, 웃음, 그리고 서로가 처한 외로운 현실을 누구보다 잘 공감해주던 시간들이 끊임없이 마음을 잡아 끌었다. 그냥, 간단히 말하면....... 엘리나가 보고 싶고, 그리웠다.
하지만, 수잔나가 낌새를 알아차린 이상, 나는 결정해야 했다. 오래 고민할 것도 없이 하나의 결론을 냈다. ‘끝내자’가 아니라, 앞으로 들키지 않도록 더 ‘철저해지자’는 것. 며칠 동안 엘리나와 주고받은 카톡을 모두 지우고, 혹시 남아 있을지도 모를 흔적들을 샅샅이 없애며 스스로를 다잡았다.
그리고 며칠이 흘러, 다시 토요일이 찾아왔다. 평소라면 “난 이번에도 안 갈래”라며 손사래를 쳤을 수잔나가, 그날은 내 물음이 끝나기도 전에 고개를 끄덕였다.
“응, 이번엔 갈게.”
내가 며칠 전 보였던 어설픈 행동들 ㅡ늦은 귀가, 불필요한 변명들— 그 모든 조각들이 그녀 머릿속에서 하나의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수잔나는 아마 이렇게 생각했을 거다.
경률이 뭔가 숨기고 있다면, 그 시작은 그 모임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였을까. 그녀의 대답 속에는 단순한 동의가 아니라, 조용히 무언가를 지켜보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확인하려는 마음. 그리고 혹시 모를 불안을 스스로 정리하려는 마음.
나는 억지로 웃었다.
“그래, 같이 가자.”
여섯 시 반. 이제는 익숙한 그 곳의 문을 열고 들어가니, 사람들이 손을 흔들며 나를 반겨준다. 수잔나도 수줍게 인사를 건네고, 자리에 앉는다. 그리고 내 눈에 들어온 한 사람. 엘리나. 늘 보던 것처럼 아름다웠고, 예뻤다. 그녀는 평소처럼 웃으면서 내게 인사를 건넸고 나도 반갑게 받았을 테지만 그 순간만큼은 그럴 수 없었다.
“수잔나, 오랜만이야.”
“응, 그러게, 헤헤.”
수잔나와 엘리나는 가볍게 포옹을 하며 서로 인사를 주고받았다. 엘리나는 옆에 앉은 남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쪽은 내 남편, 주혁이야.”
엘리나의 말에 우리 둘의 시선이 그녀 옆의 남자로 향했다. 그는 약간 긴장한 듯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심주혁입니다.”
수잔나는 반갑다는 듯 두 손을 모아 그의 인사를 받아줬다.
“반가워요! 드디어 만나네요. 엘리나한테 이야기 들었어요.”
나는 그와 악수하며 짧게 인사를 건넸다. 손을 맞잡는 순간, 이상한 느낌이 전해졌다. 나랑 불륜 관계에 있는 사람의 남편이라. 주혁은 아무것도 모른 채 순진한 미소를 지었고, 그 무구함이 오히려 숨을 턱 막히게 만들었다. 시선을 피하려는 순간, 엘리나가 아주 잠깐 나를 바라봤다. 그 1초도 되지 않는 눈빛 교환이 머리를 얼어붙게 했다. 그녀의 표정엔 별 다른 의미가 없어 보였지만 그게 더 무서웠다. 들켜선 안 되는 관계가 바로 눈앞에서 교차하는 순간. 이 모임의 공기가 서서히 변하고 있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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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