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갈린 부부들 - 제 27화
처형Mandy봊이속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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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시간전
내가 가는 이 길은 우리 네 사람이 함께 발을 맞춰야지 그 누구도 다치지 않고, 갈 수 있더라고. 등신같이, 그걸 왜 이제야 느꼈을까? 당연히, 그게 내 마음대로 될 거라고 생각했나? 내가 어떻게 엘리나랑 주혁이 마음까지 통제를 하냐는 말이다.
착잡한 심정이 지속되는 가운데, 한 해도 어느덧 끝나가고 있었고, 크리스마스가 다가온다. 연말이 되면 마음이 싱숭생숭한데, 올해는 더하다. 이 와중에 주혁은 회사에서 스키장 이용권 두 장을 받았다며, 크리스마스에 하이원 리조트로 스키를 타러 가자는 말을 단톡방에서 해 버렸다. 나머지 두 사람 비용은 자기가 대고, 이번에는 자기 차로 갈 테니, 식비만 내 달라고 간청한다. 나는 망설여졌지만 수잔나가 너무나도 좋아했고, 주혁이 이렇게까지 성의를 보이는데 빠질 수도 없었다. 물론, 그 놈이 왜 이렇게까지 우리랑 같이 가고 싶어 하는 지 알았다.
만나는 시간 등 디테일한 사항을 대충 정하고서 대화를 마무리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근데 여보.”
“응?”
“당신 회사는 왜 이런 거 없어?”
“뭐?”
“아니, 주혁이 회사는 지난번에도 그렇고 펜션 숙박권이다 뭐다, 스키장 이용권까지 막 주는데, 당신 회사는 그런 거 안 주잖아. 작년에 크리스마스 선물로 뭐 받았지? 식용유랑 와인 한 병이 전부였잖아.”
순간, 분위기가 싸늘하게 식었다. 그냥 기분 좋게 가서 놀고 오면 될 걸, 얘는 굳이 긁어 부스럼을 만든다.
“그런 말을 왜 해?”
“좀, 부러워서......”
“뭐, 어쩌라고?”
“아니, 왜 그렇게 발끈해......?”
그녀는 말끝을 흐렸지만 이미 내 안의 감정은 올라올 대로 올라와 있었다.
“너 진짜 웃긴다. 꼭 그딴 식으로 비교를 해야 속이 시원해?”
“비교가 아니라......”
“아니라고? 난 그렇게 들리는데?”
수잔나는 입을 다물어버렸고, 공기는 순식간에 냉각됐다. 더 이상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그 동안 억눌려 왔던 감정이 터진 탓일까, 스스로도 도저히 제어가 안 됐다.
“아, 좆같네.”
“.......”
“됐어. 너네 셋이서 가.”
수잔나는 목소리를 떨며 말했다.
“뭐라고?”
“좆같다고. 너네끼리 가라고.”
그녀의 얼굴은 완전히 굳어버렸다. 나는 담배를 집어 들고 밖으로 나와서는 바로 주혁에게 전화했다. 아무 것도 모르는 그 놈은 목소리가 들떠 있었다.
“예, 형님.”
“야, 너네 셋이 가라. 난 빠진다.”
그는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
“왜 그러세요? 무슨 일인데요?”
“말해봐야 길어.”
“아니, 잠깐만요 형님. 이러시는 건 아니죠. 갑자기 왜요?”
나는 담배 연기만 연거푸 내뱉을 뿐, 입을 다물었다. 잠시 침묵이 이어지고, 다시 주혁의 목소리가 들렸다.
“혹시 수잔나랑 싸웠어요?”
“하.......”
“그러지 말고 일단 만납시다. 술 한 잔 해요.”
그마저도 나가기 싫었지만 결국 외투만 걸치고 집을 나섰다. 수잔나는 소파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말리려는 시늉도 하지 않았고, 따라오려는 기색도 없었다. 그 모습이 괜히 더 화를 자극했다. 나는 씹할, 최소한의 선이라도 지키려고 이렇게 아등바등 하고 있는데, 왜 쟤는 저런 식으로 엇나가고 지랄이지?
주혁과 나는 대학로 북문 근처에서 만났고, 착석한 지 10분도 안 되어 소주 한 병을 비웠다. 나의 이야기를 듣던 그가 혀를 끌끌 찼다.
“아유, 형님도 참.......”
“뭐?”
소주 한 잔을 털어 넣자 주혁이 두 손으로 술을 따라주며 말한다.
“아니, 그래, 비교해서 기분이 나쁠 수는 있어요. 근데, 그렇게까지 크게 일을 벌릴 필요가 있었나 싶어요.”
미친놈아, 사실 이렇게 된 건 너도 한 몫 했단다. 그냥 엘리나랑 둘이서 조용히 다녀오면 될 걸, 괜히 우리 둘까지 끌어 들여서는.
그는 조용히 잔을 부딪치며 말을 이어갔다.
“그러지 말고, 다 같이 가요. 사실, 저희 회사도 그렇게 직원들 복지 막 잘 챙겨주지 않아요. 올해야 매출이 많이 늘어서 그런 거지, 다음에 이런 기회 또 언제 올지 몰라요. 제가 뭐, 저희 둘만 즐겁자고 이러나요? 형님하고 수잔나한테도 추억 만들어 드리려고 그러는 거죠.”
“.......”
멍하니 잔만 바라보고 있는데, 주혁이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아나, 진짜 우리 경률이 형님, 은근 소녀 기질이 있으셔, 하하.”
“시끄러 인마.”
주혁은 내 표정을 살피더니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리려는 듯 잔을 채웠다. 하지만, 나는 더는 미룰 수 없었다. 우리 넷 중에, 적어도 주혁이만큼은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알아야했다. 지금 말하지 않으면, 영영 말 못 할 것 같아서.
“야, 주혁아.”
“예, 형님.”
“우리 그 때 정선 여행 갔다 온 뒤로....... 수잔나가 좀 변한 거 같아.”
그는 잔을 입에 대던 손을 살짝 멈춘다. 나는 숨을 깊게 들이켰다.
“사실, 나 네가 수잔나랑 단둘이 몇 번 만난 거 알고 있어. 같이 술 마신 것도 알고.”
주혁의 입꼬리가 내려갔다. 그는 잔을 비우고 천천히 내려놓았다.
“그게, 상황이 좀.......”
“됐어. 변명이나 듣자고 그런 말 한 거 아니야. 그 때 둘이 만난 걸 뭐라 할 것도 아니고. 근데 말이야, 우리가 처음에 얘기한 거 있잖아. 선은 지키자고. 서로 마음은 건들지 말자고.”
내 말투가 다그치는 건 아니었지만, 목소리는 단단하게 굳어 있었다. 주혁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을 들었다.
“난 그냥 네가 무슨 생각으로 그랬나 궁금했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말한 거야.”
잠시 정적이 흘렀다. 술집에서는 시끌벅적한 소리들이 들리는데, 우리 둘 사이만 유난히 조용했다.
주혁이 어렵게 입을 뗐다.
“형님, 사실은....... 저도 정선 갔다 온 후로 머리가 좀 복잡해요. 수잔나랑 단둘이 만난 건 그냥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어요. 솔직히 말하면...... 엘리나랑 이야기 할 때보다 더 즐겁고 코드가 잘 맞더라고요.”
“그래?”
“....... 네.”
그 말을 듣는데, 화가 난다기 보다는 오히려 안심이 되었다. 그래도, 이 새끼가 거짓말을 안 하고 있는 그대로 털어 놓는 게 고맙기도 했다.
그는 혼자서 자잔을 하고 말을 이었다.
“요즘 엘리나랑 예전 같지 않아요. 뭔가 둘 사이에 벽이 생긴 느낌이더라고요. 대화하다 보면 어색하고, 제가 뭘 말해도 반응이 시큰둥하고. 그래서인지, 수잔나랑 이야기할 땐 마음이 많이 편했어요. 제 말도 잘 들어주고, 뭐랄까....... 그냥 사람 자체가 따뜻하잖아요.”
“그래서, 그 따뜻함이 좋았던 거야?”
주혁은 주춤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근데....... 그게 다예요. 넘겨짚거나 감정적으로 휘둘릴 생각은 없어요. 저도 선 넘지 말아야 한다는 거 잘 압니다.”
멍하니 그 말을 듣고 있자니 속 깊은 데서 묘한 감정이 올라왔다. 질투도 아니고 분노도 아니고, 그토록 바라던 안도감이나 동질감이랄까?
‘아, 얘도 나랑 비슷한 구석이 있네.’
딱 그 생각이 들었다. 잔을 들어 한 모금 삼키고 목소리를 차분히 낮췄다.
“야, 주혁아.”
“네, 형님.”
“네가 정말로 선 안 남을 자신 있다면....... 우리 넷이 더 자주 보자. 더블 데이트를 하든 스와핑이든 부부 교환이든. 그게 서로의 외로움을 달래주고 독특한 재미를 준다면 나도 딱히 뭐라 할 생각은 없어. 단, 우리가 정한 룰 안에서 한다면야.”
그 말은 사실 나 자신을 향한 변명이나 다름없었다. 나부터가 엘리나와 단둘이 만나서 술도 마시고, 서로 기대기도 하고 심지어 떡도 몇 번이나 쳤다. 그런 내가 남한테 뭐라고 할 자격이 있나? 없다. 그러니까 오히려 솔직하게 말하는 게 나았다. (이후의 내용은 댓글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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