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갈린 부부들 - 제 34화
처형Mandy봊이속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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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시간전
새해가 밝은 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며칠이 훌쩍 흘러갔다. 수잔나는 겨울방학 특강을 해야 하는 관계로 학생들이 방학을 한 것과는 상관없이 계속 출근을 했다. 그런데, 일이 많다는 핑계를 대고 집에 늦게 들어오는 나날은 여전히 계속되었다.
얘가 일의 특성상 잔업을 할 리가 없는데....... 자주 늦었고, 늦는 동안에는 연락이 잘 안 된다는 점에 한동안 잠잠했던 의심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지난번에 봤던 카톡 대화도 그렇고, 정선 여행 갔을 때 단둘이 뒹굴던 걸 목격한 것도 그렇고....... 특히나 우리 넷이 함께 모이고 난 후에는 그녀의 행동이나 말투가 눈게 띄게 달라졌다. 이제는 내가 두 눈으로 직접 확인을 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1월 셋째 주의 토요일. 수잔나는 주말 수업이 잡혔다고 하면서 집을 나가버렸고, 나는 반신반의하면서 잘 다녀오라는 말만 했다. 집 청소를 하면서 쓰레기통을 비우는데, 봉투를 묶으려던 순간 무언가가 내 눈에 걸린다.
“?”
파란색으로 된 종이밴드였다. 꼬깃꼬깃 접혀진 종이를 펼쳐보니 놀이동산 이름이 적혀 있고, 지난 주 토요일의 날짜가 찍혀 있었다. 그 날 수잔나와 뭘 했는지 가만히 떠 올려보는데, 수잔나가 수업이 있다면서 아침 일찍 나가서는 저녁 늦게 들어왔던 날이었다. 수업이 있다는 건 핑계고 누군가랑 놀이동산에 놀러간 것이다. 같이 간 새끼는 100% 심주혁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하.......”
나는 그걸 만지작거리면서 한 동안 고민에 빠졌다. 두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기에 마냥 의심해서는 안 된다, 일 끝나고 어학원 동료들하고 같이 갔을 수도 있지 않냐는 생각은 잠깐 스쳤다가 이내 사라지고 만다. 결국, 나는 그 종잇조각을 주머니에 넣고는 쓰레기봉투를 집어 들고 밖으로 나왔다. 전봇대 앞 쓰레기 집하장에 놓고 뒤돌아서는데, 길고양이 한 마리가 어슬렁거리다가 ‘야옹’하고 운다. 참 웃기게도 그 녀석이 내 마음을 대변해주는 것 같았고, 나는 허탈하게 웃다가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여보세요?”
“어머, 경률아!”
엘리나의 목소리는 참으로 밝았다. 그 목소리를 듣는데, 뭐랄까, 착잡하던 가슴에 평온함이 스며들고 그녀가 이내 보고 싶어졌다.
“주말인데 뭐 하고 있어?”
“음...... 경률이 네 생각하고 있었어!”
“풉. 흐흐.”
웃자고 한 그 말이 왜 이렇게 내 가슴을 후벼 팔까? 한숨을 내쉬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보고 싶어......”
“어?”
“별 일 없으면 만날래? 데이트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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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 북문 쪽으로 접어들자, 주말을 즐기러 나온 사람들로 가득하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 그녀와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 서로의 체온에 의지하면서 추위를 이겨낸다. 살짝 배가 고프다는 말에 우리는 길가 포장마차 앞에 멈춰 서서 어묵을 먹는다. 엘리나는 호호 불면서 한 입 베어 물었고, 나는 옆에 있던 떡꼬치를 집어서 그녀와 한 입씩 나눠 먹는다. 이따금씩 스치는 찬바람에 엘리나의 머리칼이 얼굴로 흩날릴 때마다, 무심한 척 손을 들어 머리칼을 귀 뒤로 넘겨주었다. 정말 별 것 아닌 이 순간이 참으로 행복한데, 그 행복 뒤로는 항상 차가운 현실이 마주한다. 엘리나는 절대 나의 여자일 수가 없다는 것을.......
그럼에도 괜찮았다. 언제 끝날 지 모르는 관계이긴 하지만....... 걱정만 하기보다는 한 순간이라도 더 많은 추억을 남기고 싶었으니까.
어묵꼬치로 배를 채우고서는 오락실로 들어갔다. 총 게임 앞에 나란히 서서 같이 게임을 하기도 하고, 인형 뽑기 기계 앞에서는 오기가 생겨서 5,000원을 넘게 쓰기도 했다. 내 노력과 정성이 통했던 것일까? 마침내, 흰색 강아지 인형 하나가 딸려 나왔고, 자기가 뽑지 않았음에도 엘리나는 크게 박수를 치며 기뻐했다. 당연히 내가 가질 생각은 없었기에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그걸 들고서는 아이처럼 웃으며 기뻐하던 모습이...... 한 동안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해가 지자 우리는 근처 룸식 술집으로 들어갔다. 마주 보고 앉지 않고, 일부러 나란히 앉았다. 엘리나가 부대찌개를 먹고 싶다고 해서 그걸로 주문했다. 술잔이 몇 번 오가자, 분위기는 조금 더 부드러워졌다.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근데, 이렇게 나와도 괜찮아?”
엘리나는 건더기를 앞접시에다가 푸면서 대답했다.
“응, 괜찮아. 주혁이도 오늘 집에 없거든.”
그렇겠지. 그 새끼도 오늘 수잔나 만나러 나간 것이 틀림없을 것이니.
“요즘 주혁이랑은....... 어떻게 지내?”
“못 지내지....... 말이 나왔으니까 하는 말인데, 지금 당장 이혼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야. 오늘 아침에도 일어나니까 말도 없이 나갔더라고.”
“그랬구나.”
엘리나는 먼저 잔을 들어서 내게 건배를 청했다. 한 잔을 비우기가 무섭게 또 한 잔을 따르고 들이킨다. 무슨 일이 있었는 지는 모르겠지만, 술 한 잔에 나쁜 기억을 털어 버리려는 것 같아 정말 안타까웠다.
이쯤 되면, 엘리나도 알아야 할 것 같았다.
“주혁이 말이야....... 아마 수잔나 만나고 있을 거야.”
내가 그렇게 말하자 엘리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표정을 보아하니, 아마 이미 알고 있는 듯했다. 그래,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데, 엘리나가 아직까지 모르고 있다는 게 말이 안 되지. 그녀는 한숨을 길게 내쉬면서 말했다.
“나도 알고 있었어.”
“정말?”
“응.......”
보글보글 끓는 찌개를 보며 그녀는 말을 이었다.
“그거 알아? 주혁이가 요즘 수잔나랑 나랑 대놓고 비교질 한다?”
“?”
“그 전에는 안 그랬는데, 작년에 처음으로 우리 넷이서 정선 여행 갔다 오고 나서부터야.”
“비교를....... 어떻게 하는데?”
“수잔나처럼 좀 날씬해져 봐라, 왜 이렇게 살을 못 빼냐부터 시작해서, 일자리까지. 그 어학원 그만둔 것도 내가 잘못했다는 식으로 몰아가질 않나.”
말문이 막혔다. 나는 적어도 수잔나를 엘리나와 비교하면서 깎아 내리지는 않았는데......
엘리나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다음 말을 내뱉었다.
“그리고 뭐라는 줄 알아? 수잔나라고 말하지는 않았는데, 요즘은 당신이랑 잠자리하기가 싫대. 내 몸 보면 좆이 안 서네 어쩌네....... 흑.”
엘리나는 북받쳐 왔던 울음을 삼켰다. 나는 그녀를 끌어안고 내 품으로 안아왔다. 엘리나가 어때서? 살집 조금 있는 게 그렇게 못 봐 줄 꼴인가? 이렇게 따뜻하고 착한 여자를....... 심주혁 개새끼 진짜.......
나는 속에서 올라오는 울분을 삼키고서 그녀의 머리칼을 부드럽게 쓸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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