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갈린 부부들 - 에필로그
처형Mandy봊이속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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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시간전
호주에 온 지 1년이 조금 넘었을 무렵이었다. 멜번의 계절은 여전히 낯설었고, 익숙해졌다고 믿었던 일상은 사실 아무것도 붙잡지 못한 채 흘러가고 있었다.
나의 일상과 삶은 엘리나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같은 집, 같은 침대, 같은 식탁. 남들이 보기엔 안정된 동거였을지 모르지만, 글쎄, 그 시간동안 정말로 ‘행복하다’고 느꼈던 적은 많지 않았다. 불행하다고 말하기엔 또 애매했다. 그저 도피였다. 한국에서, 네 사람의 관계에서, 그리고 나 자신으로부터 도망쳐 온 삶. 엘리나에 대한 감정은 한국에서 느꼈던 것 이상으로는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햇빛 아래에서는 분명히 보이는데, 손을 뻗으면 사라지는 신기루 같았다.
* * *
평범한 토요일 오후.
엘리나는 소파에 앉아 노트북으로 일을 하고 있었고, 나는 식탁에 앉아 커피를 식히고 있었다. 휴대폰이 진동했다. 별생각 없이 화면을 켰다가, 손이 그대로 굳었다.
[친구로 등록되지 않은 사용자입니다]
그리고 이름을 보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나는 엘리나를 힐끔 보고는 방으로 들어왔다.
[수잔나 - 경률.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
[나 - 어...... 오랜만이네]
[수잔나 - 한국에 있을 때, 네가 한국 떠났다는 얘기 들었어. 지금 멜번이야?]
지난 1년 동안 애써 덮어두었던 감정들이, 마치 오래된 서랍을 억지로 열어젖힌 것처럼 쏟아져 나왔다. 잊었다고 생각했다. 아니, 잊고 있다고 믿고 싶었다.
나는 한참을 화면만 바라보다가 짧게 대답했다.
[경률 - 응]
[수잔나 - 그렇구나]
별로 달갑지 않은 대화였지만, 오래 전 그녀와 함께 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피어나기 시작했고, 어떻게 지내는 지 궁금했다. 안부 정도는 물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경률 - 주혁이는? 잘 지내고 있어?]
답장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수잔나 - 주혁이랑 끝났어]
짧은 문장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나는 숨을 한 번 고르고 다시 물었다.
[경률: 아...... 그랬어?]
잠시 ‘입력 중’ 표시가 떴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수잔나 - 응. 나도 지난 주에 호주로 돌아왔어. 지금 부모님 집에서 지내]
그 순간, 가슴 어딘가가 묘하게 뒤틀렸다. 반가움도, 분노도 아니었다.
나는 감정을 정리하지 못한 채, 망설이다가 메시지를 보냈다.
[경률 -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이번엔 답장이 조금 늦었다.
[수잔나 - 당신 잘 지내는지 궁금했어. 멜번에 있으면…… 한 번 보고 싶어]
심장이 크게 요동쳤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이제는 그저 한때 부부였던 사이로서, 단순히 안부가 궁금했을 뿐일까. 아니면 나조차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그리움이 되살아난 것일까. 모르겠다. 다만 분명한 건, 끝났다고 믿어왔던 이야기 어딘가에 아직 닫히지 않은 문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 인식이 나를 자리에서 밀어냈다.
나는 옷을 챙겨 입고 조용히 방을 나왔다. 엘리나가 고개를 들었다.
“어디 가?”
“잠깐 바람 좀 쐬고 올게.”
거짓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전부도 아니었다.
차에 올라타 수잔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멜번 시내에서 예전에 우리가 자주 갔던 그 카페에서 보자는 말이었다. 시동을 걸면서도 왜 하필 그곳이어야 하는지, 만나서는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그저 몸이 기억하는 방향으로, 생각보다 손이 먼저 움직였을 뿐이다.
사이드 브레이크를 풀고 운전대에 손을 올리던 순간, 메시지 알림음이 차 안을 울렸다.
[수잔나 - 응, 알았어. 나도 지금 나갈게. 이따 봐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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