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잠 깊은곳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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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간전
운명적인 만남: 강남에서 시작된 이야기
한 달 전, 강남구 청담동의 한 프라이빗 다이닝 레스토랑 '르 솔레이유'에서는 은은한 피아노 연주가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크리스탈 샹들리에에서 뿜어져 나오는 따뜻한 빛이 마호가니 식탁과 리넨 테이블보를 부드럽게 비추고 있었다.
한준서는 약간 긴장된 마음으로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그의 아버지이자 대학병원 정형외과 과장인 한민석 박사의 오랜 친구이자 선배인 김대희 대표의 소개로 오늘 만나게 될 상대는 김대희의 외동딸 김지혜라는 여성이었다.
"준서야, 지혜B는 정말 특별한 아이야. 외모뿐만 아니라 마음씨도 곱고, 머리도 좋아. 네가 만나면 분명 좋은 인상을 받을 거야."
아버지의 말이 준서의 머릿속을 스쳤다. 그는 검은색 슈트에 은색 넥타이를 매고 왔는데, 지나치게 딱딱해 보일까 봐 재킷 단추 하나는 풀어놓은 상태였다.
오후 7시 정각, 레스토랑 입구에 섬세한 실루엣이 나타났다. 김지혜B는 아이보리 컬러의 실크 블라우스에 하늘색 미디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발목이 살짝 드러나는 길이의 스커트 아래로는 심플한 베이지색 펌프스가 보였고, 손에는 소박하지만 세련된 디자인의 핸드백을 들고 있었다. 그녀의 긴 흑발은 한쪽 어깨로 흘러내렸고, 얼굴에는 최소한의 화장만으로도 빛나는 미모가 두드러졌다.
웨이터가 그녀를 안내해 오자 준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지혜(B) 씨? 안녕하세요, 저는 한준서입니다."
"안녕하세요, 저 김지혜예요. 늦지 않게 왔나요?"
지혜의 목소리는 생각보다 부드럽고 청량했다. 그녀가 자리에 앉자, 은은한 플로럴 향이 공중에 퍼졌다.
첫 대화는 예상보다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준서가 신경외과 인턴 의사로서의 생활에 대해 말하자, 지혜는 진지하게 경청하며 적절한 질문을 던졌다.
"의사가 되시기까지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아마도 의대 3학년 때 첫 해부 실습이었어요. 그때 생명의 소중함과 의사의 무게를 진짜로 느꼈죠."
지혜는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는 표정을 지었다. "저는 경제학을 전공하면서도 사람의 삶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일에 항상 관심이 많았어요. 아버지 회사에서 인턴으로 일할 때도, 단순히 숫자보다는 그 뒤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더 끌렸고요."
식사가 진행되는 동안 그들은 예상치 못한 공통점들을 발견했다. 둘 다 클래식 음악을 좋아했고, 특히 차이코프스키를 선호했다. 지혜가 우연히 '지킬 앤 하이드' 뮤지컬 얘기를 꺼냈을 때, 준서는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저도 그 뮤지컬 정말 좋아해요! 지킬 박사의 내면의 갈등이 정말 잘 표현되었다고 생각했어요."
"정말요? 저는 지킬보다 하이드가 더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는데요." 지혜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준서는 그녀의 유머 감각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건 좀 의외인데요."
첫 만남이 끝날 무렵, 준서는 자신도 모르게 다음 약속을 청했다. "다음주에 전시회 하나 보러 가실래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한국 현대미술 특전이 괜찮을 것 같아서요."
지혜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다가 밝은 미소를 지었다. "좋아요. 다음 주 토요일 오후 2시 어떤가요?"
토요일 오후, 국립현대미술관 로비에서 준서는 카키색 셔츠에 베이지색 치노 바지를 입고 기다리고 있었다. 지혜는 흰색 블라우스에 연한 청색 데님 원피스를 입고 나타났다. 그녀의 머리는 단정하게 올려 묶었고, 귀에만 작은 진주 귀걸이를 착용했다.
"안녕하세요, 준서 씨."
"안녕하세요, 정말 멋지게 오셨네요."
전시관 안으로 들어서자, 둘은 자연스럽게 첫 번째 작품 앞에 멈췄다. 추상적인 형태의 대형 설치미술이었다.
"이 작품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세요?" 지혜가 물었다.
준서는 작품을 자세히 바라보며 말했다. "마음속의 갈등을 형상화한 것 같아요. 이 붉은 부분은 열정이나 분노처럼 보이고, 저 푸른 부분은 냉정이나 이성처럼 느껴지네요."
"의사다운 해석이네요." 지혜가 웃으며 말했다. "저는 이 작품을 사회적 역할과 개인의 정체성 사이의 긴장으로 읽혀요. 우리 모두 여러 개의 마스크를 쓰고 살아가잖아요."
그들의 대화는 작품에서 시작해 점점 더 깊은 철학적 담론으로 흘러갔다. 한 구석에서는 김환기의 추상화가 전시되어 있었다.
"이 그림을 보면, 제가 병원에서 마주하는 생과 사의 경계가 생각나요." 준서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떤 환자분은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오시고, 어떤 분은 그렇게 못 하시잖아요. 그 경계가 이 그림의 선들처럼 흐릿하면서도 분명한 것 같아요."
지혜는 준서를 향해 따뜻한 시선을 보냈다. "그런 깊은 생각을 하시는 군요. 저는 아버지 회사에서 인턴할 때, 수많은 숫자와 계약서 뒤에 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보았어요. 한 번은 작은 협력업체 사장님이 사업이 어려워져서 울면서 아버지에게 도움을 청하셨던 적이 있어요. 그때 저는 경제가 단순한 숫자 게임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죠."
전시를 모두 본 후, 그들은 미술관 카페에 앉았다. 창밖으로는 서울의 스카이라인이 보였다.
"지혜 씨는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으세요?" 준서가 물었다.
지혜는 커피잔을 돌리며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지었다. "솔직히 말하면, 아버지의 기대처럼 대기업에서 일하는 삶이 제게 맞는 길인지 확신이 서지 않아요. 저는 사람들과 더 가까이에서 소통하며 그들의 삶에 실제로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어요. 아마도 사회적 기업이나 비영리 단체에서 일하는 게 더 맞을지도 몰라요."
"아버지께서는 그 생각을 어떻게 보시나요?"
지혜는 살짝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아버지는 제가 '안정된' 길을 가길 원하세요. 하지만 점점 저도 제 마음을 확실히 표현해야 할 때가 온 것 같아요."
세 번째 만남: 한강에서의 석양 데이트
다음 주 금요일 저녁, 그들은 반포한강공원에서 만나기로 했다. 준서는 진한 청색 폴로셔츠에 흰색 반바지를 입고 자전거를 타고 왔고, 지혜는 편안한 핑크색 맨투맨과 캡릿진을 입고 있었다.
"오늘은 좀 캐주얼하게 오셨네요." 준서가 웃으며 말했다.
"네, 오랜만에 편안한 옷을 입으니까 기분이 좋아요." 지혜도 환하게 웃었다.
그들은 한강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석양이 강물 위로 떨어지며 금빛 물결을 만들고 있었다.
"가끔 이렇게 쉬는 시간이 필요하죠." 준서가 말했다. "병원 생활이 너무 바쁘다 보니, 자연을 즐길 시간이 거의 없어요."
"저도 그래요. 대학 생활도 바쁘지만, 그보다는 항상 '완벽해야 한다'는 압박이 더 커요. 교수님들의 기대, 친구들의 시선, 아버지의 바람..."
지혜의 목소리에 작은 피로감이 스쳤다. 준서는 그녀를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저도 의대 다닐 때 비슷한 압박을 느꼈어요. 항상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하지만 어느 날 깨달았어요. 완벽함보다 진실함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그들은 벤치에 앉아 강을 바라보았다. 지혜가 조용히 말을 이었다.
"준서 씨는 정말 좋은 의사가 될 것 같아요. 환자들을 진정으로 이해하려는 마음이 느껴지거든요."
"고마워요. 하지만 저도 아직 많이 부족해요. 지난주에 첫 응급실 당직을 서면서, 한 환자를 살리지 못했어요. 그날 밤은 잠을 잘 수가 없었죠."
준서의 목소리가 무거워졌다. 지혜는 그의 손을 살짝 스쳤다.
"그런 순간들이 준서 씨를 더욱 훌륭한 의사로 만드는 거겠죠."
저녁이 깊어지자, 그들은 공원 옆의 푸드트럭에서 간단한 저녁을 사서 강가에 앉아 먹었다. 따뜻한 고구마 라떼를 마시며, 그들은 각자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저는 어릴 때 항상 외과의사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병원에서 놀았어요." 준서가 회상하며 말했다. "아버지가 수술을 마치고 나오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그렇게 사람들을 도우는 의사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죠."
"정말 아름다운 꿈이에요." 지혜가 말했다. "저는... 좀 외로운 어린 시절을 보냈어요. 아버지가 항상 바쁘셨고, 엄마는 해외에서 지내시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그래서 책과 영화가 제 가장 친한 친구였어요."
"어떤 책을 좋아하셨어요?"
"제인 오스틴을 정말 좋아했어요. 특히 '이성과 감성'이요. 두 자매의 다른 성격과 선택이 정말 흥미로웠어요."
"저는 '위대한 개츠비'를 좋아했어요. 허영과 사랑, 그리고 미국 꿈의 허구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 깊었죠."
대화는 점점 더 개인적으로 깊어졌다. 그들은 서로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이 자연스럽게 발전하고 있음을 느꼈다.
ㅡㅡㅡ
서울의 한 대학병원 6층 산부인과 실습실에서는 긴장된 침묵이 흘렀다. 검진대 위에 누운 김지혜 B의 완벽한 육체가 10명의 인턴 의사들 앞에 드러난 지 이미 10분이 흘렀다. 그녀는 여전히 깊은 수면제의 영향으로 의식이 없는 상태였다.
지도 교수인 박정희 교수가 차분한 목소리로 설명을 시작했다.
"여러분, 지금 보이는 것은 건강한 22세 여성의 정상적인 생식기 구조입니다. 대음순, 소음순, 음핵, 질구, 요도구의 위치와 형태를 잘 관찰하세요."
인턴들 중 한 명이 손을 살짝 들었다. 그는 특별히 잘생긴 용모에 진지한 눈빛을 가진 29세의 인턴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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