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공작원 류서희 2편
"그러니까...저기...서로 인사들 나누라고. 마카, 이 쪽은 얼굴 귀엽고 얼빵한 낭랑 16세 남파공작원 류서희. 소총에 수류탄까지 들고 온 주제에 아무것도 못 쏘고, 아무것도 못 터트린 채 잡힌 공작원이지. 중무장한 걸 보면 아마 정찰총국 제2국(정찰국) 소속일 거야. 그리고 류서희, 이 쪽은 아마추어 AV 배우 경력이 있는 전직 체첸 테러리스트 마카 바카예바. 체첸과 시리아, 아프가니스탄을 거쳐서 이 나라까지 흘러 들어 왔는데, 이슬람 문화권 출신 답지 않게 아주 발랑 까진 15세 틴에이저(Teenager)다."
"어제 통화 중에 이상한 한국말로 고함치는 여자 목소리가 끼어들어서 누구지? 했는데 당신이었구나? 흐응...이 나라 영화나 드라마에서 자주 보여 주던 '북한 간첩' 의 모습은 은밀하고 인정 사정 없는 살인기계였는데, 역시 현실은 달라. 그치? 밥 훔쳐 먹다가 들켜서 총 들고 난동이나 부리는 간첩이라니."
아침부터 심심해서 한정훈의 집에 놀러 왔다가 처음 보는 여자에게 난데없이 인종차별적인 욕을 먹은 체첸인 소녀, 마카 바카예바는 한정훈으로부터 류서희의 대략적인 프로필을 전해 듣고는, 마치 그녀에게 대놓고 들으라는 듯이 제법 유창한 한국어로 그녀에게 반격을 가했다. 초면부터 욕을 먹은 것이 어지간히 분했는지, 한정훈이 서로를 소개해 주면서 한 인신공격은 아무래도 좋은 듯 했다.
"그래. 처음 보는 사이에 막말부터 한 건 내가 사과 할께. 그런데 조선말도 알 만큼 아는 애가 연장자에 대한 예의가 없네? 주체조선의 혁명 전사가 얼마나 무서울 수 있는 지 궁금한 게 아니라면, 당장 그 말버릇부터 고치는 게 좋을 걸. 남조선 놈들이 제일 무서워 하는 것들 중 하나가 바로 나처럼 강철같은 훈련을 견뎌 낸 끝에 남파되는 혁명 전사들이야."
"아이고~ 무서워라~! 그런데 그 '혁명 전사' 들의 실전 기록이 어땠더라? 정찰총국 제2국이 겪었던 가장 최근의 실전이 분명 1996년 강릉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11명은 쓸데없이 팀킬 당했고, 13명은 개털렸고, 한 명만 살아남았지 아마? 그런 놈들이 뭐? 지랄도 정도껏 하세요. 어이, 류서희 씨. 체첸인 몰라? 체첸인? 1800년대부터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루스키 놈들의 궁둥짝을 지독하게 물어 뜯었으며, 지하디스트들에게 경외받는 용맹하고 긍지 높은 전사들이라고! 러시아 놈들의 무식한 집중 사격에서 살아남아 봤어? 없으면 말을 말라고!"
"기래, 기래! 불벼락 맞고도 살아 남아서 참 좋갔다! 얼마나 미친 에미나이처럼 날뛰고 다녔으면 로씨야 놈들이 불벼락까지 퍼부었겠니? 무식한 게 자랑이가? 유격전(게릴라전)이 대체 메라구 생각하는 기가? 당장 이리 오라, 이 썅간나 에미나이야! 내래 이 자리에서 주체격술의 무서움을 보여 주갔어!"
"오냐, 한번 해 보자! 너네 영도자 동지 고모부 되시는 분께 안부나 전해라!"
마카의 싸가지 없는 말투를 지적했다가 이 건방진 빨간머리 소녀의 도발에 보기 좋게 역공을 당한 류서희는, 얼굴을 새빨간 분노로 물들이면서 부들부들 거렸고, 이 이상 두 사람을 내버려 뒀다가는 자신의 집 안이 남아나지 않을 것을 직감한 한정훈이 재빨리 둘의 사이를 중재했다.
"저기 말이야, 숙녀분들? 내 집에서 '체첸 반군 VS 북한 남파공작원' 드림 매치를 벌이는 건 자제해 달라고. 여긴 가정집이지 디스커버리 채널의 데들리스트 워리어(Deadliest Warrior) 촬영장이 아니에요."
당장이라도 격투를 벌이려는 둘을 가까스로 진정시킨 한정훈은, 한숨을 한번 쉰 다음 마카를 돌아보며 이 난리가 벌어지게 된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서 한 마디 했다.
"그리고 마카, 오늘이 토요일이라고는 하지만 이렇게 이른 아침부터 남의 집에 멋대로 들어오지 말아 달라고."
"그치만 심심한 걸. 동아리 모임도 취소됐고, 파티마는 차 끌고 쇼핑하러 나갔고, 루슬란은 밤새 액션 영화 보다가 늘어져서는 아직까지 자고 있는 데다가, 아셰트는...음..."
류서희라는 이방인을 노려 보면서 영역을 침범당한 늑대처럼 으르릉 거리던 마카 바카예바는, 자신이 왜 이런 이른 아침부터 한정훈의 집에 들어 왔는 지를 해명하다가, 자신보다 7살 연상인 의붓언니의 행적을 설명할 타이밍이 닥쳐 오자 갑자기 표정이 굳어지면서 말문이 막혔다.
"......아. 그거구나. 역시 순진했던 사람일수록 한번 타락하기 시작하면 겉잡을 수가 없는 법이지. 그렇게 청순한 얼굴을 한 산골 처녀가 사실은 알몸에 바바리코트만 입고 방뇨나 자위하는 장면을 셀프 촬영하는 치녀...니헥!"
너무나도 무감각하게 가족의 치부를 까발리는 것을 들은 마카는, 즉시 소파에서 일어나 한정훈의 발을 세게 짓밟으면서 그를 때려 죽일 듯한 눈빛으로 노려 보았다.
그리고 류서희는 정찰총국의 우수한 혁명 전사답게, 갑작스레 찾아온 반격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물론 한정훈의 폭로를 듣고 속으로는 정말 경악을 했지만, 원래 진정한 전사는 적에게 자신의 심리적인 동요를 드러내지 않는 법이다.
"아핫. 아하하하핫! 사람들이 돌아 다니는 길거리에서 발가벗고 오줌을 누거나 해괴망측한 짓거리를 하는 걸 찍는다고?! 완전 미친 거 아냐?! 역시 타락한 자본주의 황색 바람에는 그 '긍지 높은 전사의 자존심' 이란 것도 하등 쓸모가 없나 보네!"
"그러는 그 '주체사상의 혁명 전사' 께서는 타락한 황색 자본주의보다 주체사상 체제가 더 우수하다는 걸 증명하고 싶어서 아침부터 부엌에 애액 냄새가 풀풀 풍기도록 놀아 나셨나?"
"야 이 쥐방울 만한 년아, 그게 내가 만든 냄새라는 증거 있어? 증거 있냐고!"
"진정해. 애액 냄새나는 류서희 양. 마카는 그저 좀 발랑 까졌을 뿐이지, 나한테 발정 해결을 부탁하는 전화를 할 정도로 진성 치녀인 의붓언니랑 똑같은 애는 아니라고."
"............일단 이 간나새끼부터 닥치게 하는 게 좋겠디?"
"그래. 이 이상 쓸데없는 소리를 지껄이기 전에, 저 망할 입부터 다물게 하자고."
집단의 분열을 막기 위해서는 역시 "공통의 적" 을 만드는 것이 제일이다. 두 처자의 국경을 초월한 단합, 그리고 평안한 일상을 위해서 위악(僞惡) 을 자처한 이 남자, 한정훈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을 사람은 없으리라 믿는다.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한정훈의 지극정성이 하늘을 감동시켰는지, 류서희와 마카가 한정훈을 향해 천천히 주먹을 풀면서 다가오는 그 순간 이질적인 어떤 노랫소리가 그녀들의 발을 묶었고, 한정훈은 즐거운 토요일 아침부터 눈이 밤탱이가 되는 끔찍한 사태를 피할 수 있게 되었다.
["민중의 기 붉은 기는 전사의 시체를 싼다- 시체가 식어 굳기 전에..."]
한정훈이 어제 류서희의 전투배낭에서 입수하였던, 오늘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혹여나 그녀를 통해 어떤 정보를 얻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전원을 켜 둔 일본제 단파라디오에서, 웅장하게 남성 합창으로 불러대는 '적기가(The Red Flag)' 의 북한판이 흘러나오는 게 아니겠는가. 마침 현재 시간 역시 아침 8시 정각으로, 정각 혹은 30분에 방송된다는 난수방송의 시간대와 일치했다.
"...명령이다!"
"어이! 조심하라고!"
자신의 방을 향해 급하게 달려가다가 미끄러져서 엉덩방아를 찧을 뻔한 류서희를 보며, 한정훈은 주의를 줬으나 경황이 없던 그녀의 귀에는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우선 한정훈의 책상에서 빈 A4 용지 하나와 펜 한 자루를 챙겼고, 방바닥에 엉덩이를 깔고 앉아서는 자신의 전투배낭을 뒤적여 난수방송의 해독에 필요한 코드북을 꺼냈다. 남한에서 1980년대에 발간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름도 잘 모를 소설책이었다.
["125호 전문을 보내드리겠습니다. 125호 전문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영광 3조, 영광 3조. 전문 부르겠습니다."]
마카는 지금 아주 느리고 또박또박한 목소리의 한국어 방송에 집중하면서 왼손에는 책을, 오른손에는 볼펜을 들고 A4 용지를 빤히 쳐다보는 류서희를 바라 보며 옆에 있는 한정훈에게 조용히 물었다.
"지금 저 여자가 하는 게 그거지? 영화 '의형제' 에서 나온 것처럼 북한에서 내려온 통신 해독하는 거 맞지? 실제로 보니까 진짜 신기하네."
한정훈은 15세 소녀다운 호기심으로 눈을 번뜩이는 마카를 향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녀가 방송 해독에 집중할 수 있도록 조용히 하라는 의미로 입가에 왼쪽 검지손가락을 갖다 대었다.
류서희가 장기간 파견되어 남한 사회에 침투하는 장기 공작원이었다면, 영상 혹은 오디오 파일에 메시지를 숨겨서 전달하는‘스테가노그래피(Stegano Graphy)’방식으로 지령을 받았겠지만, 그녀는 단기간 안에 이루어지는 테러, 암살, 파괴 등의 공작을 위해 파견된 공작원이기에 이렇게 라디오를 지급하고 난수방송으로 지령을 내리는 것이다.
"아........."
난수방송에서 느리게 말해주는 숫자를 따라서, 열심히 코드북의 페이지를 뒤적거리며 어떤 단어들을 A4 용지에 써 내려가던 류서희는 방송이 완전히 끝나자마자 짧은 탄식을 흘리며 펜을 책상에 떨어뜨렸다.
그녀의 표정이 급속도로 어두워지는 것을 본 마카와 한정훈은 조심스럽게 그녀의 곁으로 다가갔고, 난수방송을 해독한 메시지가 적힌 A4 용지를 슬쩍 쳐다보았다.
["진달래. 시들었다. 산행. 중지. 산꾼들. 하산."]
"진달래" 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내용을 추리해 보자면 그녀가 남파되어 맡기로 했던 작전이 전면 취소되었으므로 공작원들은 모두 복귀하라는 지령인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류서희가 이렇게까지 침울한 얼굴을 하는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다. 아무리 북한이 인민들에게 "지도자를 결사옹위하기 위해 나가서 싸우다 죽는 것이야말로 영광스러운 일이다" 라는 세뇌 교육을 한다고 하지만, 단지 작전이 취소되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렇게까지 세상이 끝장난 듯한 얼굴을 할까?
"여기서 말하는 '진달래' 가...류서희, 너를 의미하는 거지? 그렇지?"
"......."
"잠깐만...그렇다면 '진달래가 시들었다' 는 메시지의 의미는...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여자가 어떤 이유로 북한에서 '죽은 사람' 이 됐다는 의미야?"
"......."
류서희는 두 사람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그저 조용히 고개를 숙이면서 한정훈과 마카의 의견이 정답이라는 것을 증명할 뿐이었다.
"그래서 얼굴을 퉁퉁 부을 정도로 얻어 맞아서 이성이 날아간 그 양아치가 글쎄, 쇠숟가락을 들고 덤비지 뭐야. 핸섬 잭처럼 그걸로 내 눈알이라도 파내고 싶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난 그렇게까지 잔인한 사람이 아니라서, 숟가락을 뺏어다가 그놈 머리를 드럼처럼 신나게 두들겨 줬지. 아파서 죽으려고 하더라."
"하하하! 그거 정말 웃기는 이야기야 한정훈!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서희!"
"으응...그렇네."
그렇게 해서, 류서희가 난수방송 메시지를 해독한 이후 집안의 분위기가 급속도로 침울해지는 것을 느낀 한정훈과 마카 바카예바는 일단 그녀를 데리고 기분 전환을 시켜 주기로 결정했다. 마카는 류서희와 자신의 나이 차이가 겨우 1년밖에 되지 않으니, 그녀를 "서희" 라는 이름으로 불러도 된다는 허가를 얻어냈다.
세 사람이 침묵 속에서 시내를 정처 없이 걸을 뿐인, 이 어색한 분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한정훈과 마카는 자신들의 과거 에피소드를 몇 개 이야기해 주었다. 지금 한정훈이 이야기하고 있는 에피소드는 몇 년 전에 같은 고등학교 양아치들과 싸움이 붙었던 당시의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에 마카가 영화 "더 룸" 의 토미 웨소(Tommy Wiseau) 감독처럼 굉장히 어색하게 웃으면서 맞장구를 쳐 주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류서희가 풍기는 절망의 오오라를 완전히 걷어낼 수 없었다.
'하아......인생 씨발.'
'으아아아...젠장...어, 어색해! 어색해서 미칠 것 같다고!'
그나마 저 북한의 윗대가리 놈들이 '너희 더이상 필요 없으니까 자살하라우!' 따위의 쓰레기 명령을 내린 것보다는 나았지만, 이미 북한 정부로부터 죽은 사람 취급을 받았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그녀에게는 절망적이었다. 치욕스럽게 남한 당국에 생포당하여 방송에 불려 나가는 것보다는, 조국통일을 위한 작전 도중 명예롭게 죽은 사람으로 남는 것이 그녀의 가족을 위해서라도 더 좋을 테니 류서희는 이제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가 없는 몸이 된 것이다.
한정훈과 마카는 이 버림받은 공작원을 어떻게 위로해야 할 지 막막해졌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점은, 그녀가 처음으로 보는 서울의 깨끗하고 화려한 거리를 눈에 담느라 정신이 없다는 것일까. 아무래도 그녀와 함께 서울을 한번 돌아 보면서, 그녀 스스로가 심란한 마음을 추스릴 수 있는 무언가를 찾길 바래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 일행이 한 시간 정도 시내를 걷던 와중, 류서희가 무언가를 발견했는지 사람이 뜸한 차도 겸 인도에 우두커니 멈춰 서서는 상가 건물 한 채를 바라보고 있었다.
1층에 주차장이 구비되어 있는 그 건물은 2층에 넓은 서점이 있었고, 3층에는 "베고니아 산악회" 라는 어떤 산악 동호회의 사무실이 있었다.
"......"
류서희가 고개를 들어서 상가 위쪽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인지한 마카는, 그녀가 2층의 서점에 관심이 있는 것이라고 판단하여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혹시 책에 관심이 있는 거야? 그러면 서점에 들어가서, 마음에 드는 책 몇권 골라 볼까?"
"......"
"저기요!!!"
"힉!!"
자신의 대답을 무시한 채 멍하니 건물만 바라보는 류서희에게 순간 짜증이 난 마카는, 무심코 소리를 높여서 그녀를 큰 목소리로 불렀고, 갑자기 들려온 큰 소리에 깜짝 놀란 류서희는 마치 '시오니 레지스' 처럼 깜짝 놀라서는 마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한편 소리를 지르고 만 마카는 몇 초 안가서 자신의 성급한 행동을 후회했고, 자신의 감정을 진정시킨 다음 다시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그...그러니까... 저 상가 건물 2층에 서점이 있잖아? 서희가 아까부터 자꾸 저 건물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길래, 혹시 책에 관심이 있는 건가 해서."
"...아. 아아! 하하하... 응! 맞아! 평양에 있을 때도 독서하는 걸 좋아해서, 여러가지 책을 읽어 봤거든. 그래서 저 건물 2층에 있는 서점을 본 순간 '남조선에서 나오는 책은 어떨까?' 하는 궁금증이 생기더라고."
순간 한정훈과 마카는 류서희의 반응이 뭔가 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지만, 난수방송 메시지를 받고 우울해 있던 그녀가 기운을 어느 정도 되찾았다는 사실에, 머릿속에서 금방 그 의문을 지워 버렸다.
"저기 말인데, 혹시 괜찮다면 서점에 들어가서 책 구경좀 할 수 있을까? 너희도 각자 하고 싶은 여가 활동이 있을 테니까, 여기서 잠시 헤어졌다가 1시간 뒤에 다시 만나면 어떨까?"
"혼자서 괜찮겠어? 여긴 평양이 아니라고. 필요하다면 내가 동행해 줄 수도--"
"쓸데없는 걱정은 접어 둬. 비록 내가 단기간에 치고 빠지는 정찰총국 연락군관이지만, 남조선 사회가 어떤지는 어느 정도 훈련 받았다고. 물론 장기간 활동하는 연락군관들에 비하면 부족하지만 그래도 미아처럼 헤멜 정도는 아니야."
"그, 그럼 서희가 말한 대로, 각자 헤어졌다가 한 시간 정도 뒤에 보자! 한정훈, 우리는 저쪽 오락실에서 기다리자!"
"이, 이봐. 천천히 가자고! ...그럼, 사고 치지 말고 얌전히 있어라. 내가 준 비상용 핸드폰, 어떻게 쓰는 지 알지?"
조금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류서희의 안내역을 맡겠다고 자청한 한정훈의 의견이 정중하게 거절당하자, 마카는 이 이상 분위기가 이상해지기 전에 재빨리 게임센터로 향하면서 한정훈을 불렀고, 한정훈은 류서희를 조금 걱정된다는 눈빛으로 바라 보았으나 그녀는 두 사람을 향해 조용히 웃어 보였다.
".........사고 같은 건 치지 않아. 그럴 생각도 없고. 그것만은 맹세할 수 있어."
두 사람의 모습이 게임 센터 안으로 완전히 사라지자, 류서희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면서 상가 건물의 계단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는 둘에게 진실만을 이야기 했다. 어린 시절에 독서하는 것을 좋아했다는 말은 사실 이었으나, 2층의 서점에 볼일이 있다는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으니 확실히 진실만을 이야기 한 셈이다.
어제 강화도로 향하는 잠수함 안에서 조선노동당 225국 소속 연락군관을 사촌으로 둔 침투조장이, 자신을 포함한 조원들에게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나 해 주었다. 5년 전 225국에게 포섭되어 현재 서울에서 "들꽃혁명당" 이라는 이름의 지하혁명조직을 운영하고 있는, 남한 주체사상파(일명 주사파) 학생운동 조직 출신의 박석원(朴錫沅) 이라는 남자에 대한 이야기였다.
침투조장의 사촌이 증언한 바에 따르면 그는 "내가 아청법 위반으로 잡혀서 개인적인 망신을 당하는 것은 참을 수 있어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잡혀서 이 나라의 운명을 건 혁명을 망치는 것만은 참을 수 없다." 라는 말을 남겼으며, 그의 노트형 콤퓨터(노트북 컴퓨터)에는 음란 영상물과 사진이 많았고, 그 음란한 자료를 위장망으로 삼아서 꽁꽁 숨겨진 "남조선 혁명을 이룩하기 위한 중요 자료들" 역시 많았다고 했다.
침투조장의 사촌은 그를 "'색정(色情)에 오염될 대로 오염된 반동' 이라는 껍데기로 자신을 철저하게 포장한, 훌륭한 혁명가" 라고 평가했는데, 그 색정에 오염된 모습이 정말로 단순한 겉껍데기일 뿐인지, 아니면 있는 그대로의 본모습인 것인지는 직접 만나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원래 이 귀중한 정보는 만에 하나 일이 잘못되어 서울에서 빠져나가지 못했을 경우, 남조선 현지의 협력자를 찾아서 도움을 받으라는 의미로 침투조장이 알려준 것이었다. 물론 북한에서 죽은 사람이 된 자신이 서울에서 빠져나갈 이유는 없었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더더욱 류서희는 그와 접선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내겐 이런 방법밖에 없지."
계단을 타고 상가 건물 3층까지 올라간 류서희는, 3층 복도 끝에 위치한 들꽃혁명당의 사무실 문 앞에 서서 심호흡을 하며 자신이 들은 정보를 다시 한 번 머릿속에서 정리했다.
침투조장이 알려 줬던 이쪽의 접선 암호는 "올해는 해당화가 참으로 예쁘게 피었다고 들었습니다." 이고, 그쪽의 반응은 "그렇습니다. 하지만 소나무는 언제 봐도 아름답지요." 라고 했었지.
"......"
류서희는 비장한 얼굴로 눈 앞의 문을 열고 조용히 사무실 안을 들여다 보았다. 우드타일(Wooden Tile) 바닥재가 깔린 그 사무실 안에는 사무용 책상 몇 개와 상담용 소파 및 테이블, 전기난로 등이 놓여져 있었고, 연령대가 다양한 10명 정도의 남성들이 등산복 차림으로 소파나 바닥에 앉아서 잡담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신발을 벗고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 사무실 맨 뒤쪽에 위치한 산악회 총 책임자의 자리로 향했다. 그런 그녀를 산악회의 회원들이 잠시 쳐다 보았으나, 얼마 안 가서 시선을 거두고 다시 잡담을 재개했다.
"안녕하세요! 베고니아 산악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마치 루트비히 판 베토벤의 초상화에서 그대로 따온 듯한 백발머리를 한 50대 초반의 남자, 박석원이 류서희를 보면서 친절하게 영업용 인사를 했다.
"아. 그 저기...크흠! 안녕하세요! '올해는 해당화가 참으로 예쁘게 피었다고 들었습니다.'"
북조선 우표에서 본 베토벤의 헤어 스타일과 이 박석원의 헤어 스타일이 정말 똑같다는 생각에 잠시 빠져 있던 류서희는, 머릿 속의 잡생각을 떨쳐 버리고 자신이 여기에 온 목적을 단도직입적으로 박석원에게 전달했다.
"네? 해당화요? 해당화가 개화할 시기는 벌써 한참 전에 지나지 않았나요?"
'뭐, 뭐야? 이건 원래 나와야 할 대답이 아닌데?'
하지만 박석원이 예상 외의 반응을 보이는 데다가, 자신의 대답을 들은 다른 산악회 회원들이 갑자기 잡담을 멈추면서 사무실 안이 침묵에 휩싸이자, 류서희는 조용히 식은땀을 흘리면서 당황하기 시작했다.
"예...그, 그렇죠... 그러니까...그 해당화에 대해서 말인데..."
"말씀 드렸잖아요? 지금은 해당화가 필 시기가 아니라고요."
이번에도 정상적인 반응이 아니다. 잡담을 멈춘 산악회 회원들이 천천히 자신의 주변으로 다가오기 시작하자, 류서희의 표정에서 핏기가 가시기 시작했다.
'아니야! 이 반응도 아니라고! 이, 이거 뭐가 잘못됐나? 설마 암호가 바뀐 건가? 아니야! 침투조장이 한참 전에 바뀐 암호를 알려 줬을 리가...'
마치 경호원처럼 박석원의 양 옆에 도열하여 차렷 자세로 꼿꼿이 서 있는 산악회 회원들과, 그 회원들에게 포위되어 당황한 기색이 가득한 류서희의 얼굴을 무표정하게 번갈아서 쳐다 보던 박석원은, 갑자기 자신의 무표정과 침묵을 깨고 유쾌하게 웃기 시작했다.
"으하하하하핫! 내가 몇년 동안 여러 연락군관 분들을 만나 봤지만, 동지처럼 잔뜩 겁먹은 반응을 보이는 사람은 처음이었습니다! 아주 제대로 웃겼어요! '들꽃혁명당' 에 잘 오셨습니다, 동지!"
"하...하하...하하하... 생각보다 짖궃은 분이시군요? 박석원 동무."
결국 침투조장의 정보가 틀리지 않았음이 증명되자, 류서희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한 숨을 쉬었고, 10명의 산악회 회원, 아니 들꽃혁명당의 조직원들이 박수를 치면서 류서희를 환영해 주었다.
"뭐, 우리가 누구이며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이미 당에서 다 알려 드렸을 테니까, 우리도 연락군관 동지가 누구이고 어디 소속이며, 임무는 무엇인지에 대해서 굳이 물어 보지 않겠습니다. 저희 들꽃혁명당이나 북에서 내려 오신 연락군관 동지 분들이나 모두 다 같이 혁명을 위해 싸우는 전우들 아닙니까. 분명 연락군관 동지...아, 편의상 '해당화' 동지라고 부르겠습니다. 해당화 동지 역시 뭔가 곤란한 사정이 생겨서, 혁명 과업의 완수에 대한 협조를 구하기 위해 우리를 찾아 오셨겠죠?"
"무, 물론이죠 동무! 대남연락소에서 훈련은 열심히 받았지만, 역시 실제로 보는 서울과 훈련에서 본 서울의 풍경이 너무나도 차이가 나서 적응하기 힘들더군요."
류서희에게는 정말 다행히도, 박석원은 그녀가 남파된 공작원이라는 사실이 확인되었다는 것 만으로 그녀를 충분히 신뢰하는 듯 했다. 그녀의 임무는 무엇이고 이름과 소속은 어떻게 되는 지도 캐묻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침투조장의 사촌 되시는 이름 모를 225국 연락군관 동지. 정말로 이 남자는 훌륭한 혁명가가 맞았습니다. 그리고...음, 미안합니다.'
"그러니까...제가 이 서울에 성공적으로 적응할 수 있게 동무들이 여러 가지로 도와 주셨으면 합니다! 물론, 저도 동무들의 도움을 거저 바라지는 않겠습니다. 제가 여러분께 지불 가능한 한도 내에서나마 최대한 보상을 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을 위해 몸을 바치는 한이 있더라도요!"
"응? 지금 '몸을 바치는 한이 있더라도' 라고 하셨나요?"
그런데 어째서일까? 류서희의 그 한 마디를 들은 박석원의 눈빛이, 마치 상품 파손이라는 약점을 잡힌 택배 배달원의 입에서 "용서해주십시오. 뭐든지 하겠습니다" 라는 대답을 들은 게이 고객의 눈빛처럼 이상하게 변한 것 같았다.
'.........뭐지? 나 뭔가 잘못 한 건가?'
그리고 잠시 후. 류서희는 박석원이 원하는 것을 들은 뒤에야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깨달았다.
'...장난하냐고 지금!!!'
조장에게 들었던 대로였다. 컴퓨터에 언제나 추잡한 것만 처 넣고 다니는 이 발정난 중늙은이는 정말로 색정에 오염될 대로 오염된 변태였다.
'그래, 한정훈 그 종간나이는 충성심도 없는 반동이니까 그렇다고 쳐! 그런데 조선로동당과 협력하는 남조선 혁명 투사를 자처하는 놈들이 당의 지시로 파견된 혁명 전사를 성노리개 취급해?! 이게 말이 되는 상황이냐고, 말이!'
지금 얼굴에 붉은 입 두건만 두른 채 완전한 나체 차림인 들꽃혁명당의 조직원들과 박석원은, 차라리 그 한정훈이 더 낫겠다 싶을 정도로 기분 나쁘게 자신의 몸을 훑어 보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의 조직원은 비싸 보이는 소니제 캠코더를 가지고 벌써부터 자신의 몸을 이리 저리 촬영 중이었다.
목 뒤에서 가지런하게 묶인 포니테일을 만지작 거리던 류서희는 몸에 소름이 돋는 것과 동시에, 눈 앞의 이 사이비 혁명가 무뢰배들에게 살의를 느꼈지만, 곧 자신의 현실을 다시 한 번 생각하면서 체념할 수 밖에 없었다.
'니기미......생각 같아서는 박석원 저 종간나이의 대가리를 까부수고 싶지만, 어쩔 수가 없네. 도대체 내가 어쩌다가 이런 신세가 된 건지...'
자신에겐 아무런 무기도 없는 데다가, 저들의 전투력이 어떤지도 모르는 시점에서 무작정 맨손으로 덤벼드는 것은 너무 위험하다. 게다가, 이도 저도 아닌 입장이 된 자신에게는 역시 이 길 밖에 없었다. 자신의 신변을 보장받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해 내야 했다.
류서희는 격한 분노로 빠직- 하고 뇌혈관이 튀어나오면서 눈썹이 일그러지면서도, 애써서 캠코더를 향해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하아......언제나 조국통일을 위해서 불철주야 노력하시는 지하혁명조직 동무들의 노고를 결코 잊지 않는 당에서는, 오늘 여러분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아주 특별한 선물을 준비했습네다!"
그렇게 한숨을 한 번 쉬고, 박석원이 지시한 대로 억지 웃음을 지으며 오프닝 멘트를 날린 류서희는 상반신에 손을 뻗어서 자신의 항공점퍼를 벗었고, 이후 차례로 티셔츠와 바지까지 벗어 던져 속옷만 걸친 알몸이 되었다.
"오, 오오오...! 저걸 봐! 김정일화... 김정일화야...! 성스러운 김정일화가 새겨진 팬티야!"
"고급 당원에게만 주어진다는 그 명예로운 팬티를 실제로 보게 될 줄은...!"
시커먼 남정네들이 얼굴에 붉은 입 두건만 두르고 완전히 발가벗은 채로, 여성의 속옷 차림을 보고는 그 속옷이 신성한 물건이라는 것에 감동하는 그 광경은,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헛웃음이 나오지 않고는 못 배길 지독한 블랙 코미디였다. 하다못해 얼굴이나 가슴 같은 곳도 아닌, 한낱 속옷에 말이다.
그 자리에 있는 조직원들 모두 "어째서 신성한 김정일화를 여성의 지저분한 분비물을 막아 주는 팬티에 그려 넣었는가?" 라고 분개하는 기색이 없는 것은 이상해 보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들은 주체적인 주체사상으로 충만한 남한 태생의 지하 혁명조직이다. 위대한 주체사상과 자본주의의 창의성이 결합된 이들은 분명 "팬티는 사람이 입는 섬유들 중에서도 분비물과 투쟁하는 최전선에 있는 존재이므로 존경받을 가치가 있다!" 라고 생각하는 것이겠지.
물론 빨래망(Laundry Net)을 잘라서 이어 붙인 것 같은 수수한 흰색 당원용 브래지어는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류서희는 재빠르게 그 분위기를 파악해 내고 말없이 브래지어를 풀었다. 그렇게 해서 그녀의 B컵과 C컵의 경계에 위치한 그녀의 유방이 모습을 드러내자, 브래지어에 관심이 없던 들꽃혁명당 조직원들은 브래지어가 벗겨 지자 마자 작게 환호했다.
이제 남은 천쪼가리는 류서희의 가랑이 사이를 보호하고 있는 '위대한 김정일화' 밖에 남지 않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것을 벗기는 영예는, 혁명조직의 지도자 박석원에게 주어 졌다. 그녀의 엉덩이 쪽에 무릎을 꿇고 앉은 박석원은 스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팬티를 끌어 내렸고, 자연 그대로의 수풀로 보호받는 붉은 혁명의 계곡이 드러났다.
"자, 동무들. 두 눈으로 똑똑히 보시라요. 백전백승의 명장, 위대한 영도자께서 언제나 남조선 혁명을 위해 투쟁하는 동무들의 노고를 치하하기 위해 하사하신 혁명 전사 '해당화' 의 구멍을!"
류서희는 얼굴을 붉히고 굉장히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마치 뉴스 원고를 읽는 아나운서처럼 아무렇지도 않은 어조로 파렴치한 대사를 읊으면서 자신의 대음순을 양 손으로 활짝 벌려 그 꽃잎을 눈 앞의 모두에게 보여 주었다.
세상에, 혁명 전사의 구멍이라니. 이 따위 연출을 생각해 낸 저 박석원이라는 종간나 새끼는 도대체 얼마나 타락한 것인가. 류서희는 지하 혁명조직 조직원들이 감탄하는 소리를 들으며, 이렇게까지 해야 할 정도로 궁지에 몰리고 만 자신의 운명을 저주했다.
분비물로 더럽혀진 신성한 김정일화 팬티를 손에 들고 유심히 그 안과 밖을 촬영하던 캠코더 담당은 그녀의 그런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가 대음순을 손으로 벌리자 마자 그 살색 동굴을 열심히 캠코더에 담아내는 "촬영 전투" 에 임하느라 바빴다.
2분 정도 뒤에, 류서희가 뒤로 돌아 서서 모두가 보고 있는 방향을 향해 엉덩이를 쭉 내밀고, 항문과 음부 모두가 잘 보이도록 엉덩이 살을 양 손으로 넓직하게 벌리는 쇼를 펼치자 그것 역시 그의 캠코더에 빠짐없이 확대와 축소를 반복하며 기록되었다.
"그럼, 해당화 동지. 시작합시다."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박석원의 선언에, 류서희는 말 없이 바닥에 놓여 있던 팬티를 주워서는 팬티의 다리 구멍에 자신의 왼쪽 다리만을 집어 넣고, 그 상태 그대로 팬티를 허벅지 위쪽으로 말아 올렸다.
그녀의 신원을 증명할 요소가 그 당원용 팬티와 말투 뿐이기에 일반적인 한국산 포르노와 차별점을 두기 위한 이유인지, 아니면 이 박석원이라는 작자도 한정훈과 같이 특이한 성적 페티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인지는 알 길이 없지만 말이다. 혹은 둘 다 일지도 모르겠다.
뭐 이런 행위를 시킨 이유가 어찌되었던 간에, 류서희 본인의 입장에서도 이 속옷들은 17년 간 그녀의 부모가 그녀를 키우면서 준, 부모로써의 정을 느낄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물건들 중 하나였다. 그런 걸 잃어 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이 행위를 받아 들였다.
"......아!"
양 손을 바닥에 대고 다리를 활짝 벌린 채로 주저 앉은 류서희의 뒤에 조직원이 한 명 다가와 그녀의 B컵 사이즈 유방을 이리저리 주무르자, 류서희는 약한 신음소리를 내었고, 이어서 다른 조직원 두 명이 조용히 다가와 그녀의 얼굴 양 옆쪽에 자신들의 음경을 들이 대었다.
자신의 유방을 어루만지는 감각을 조용히 음미하다가 난데없이 얼굴 앞에 냄새나고 외설스러운 막대기 두 개가 나타나자, 류서희는 당혹스러운 얼굴로 두 조직원에게 항의를 표했다.
"윽...! 동무들, 이건 좀 너무하지 않습네까?"
"그, 그게 말입니다...수도 요금을 못 내서 집에 물이 끊기는 바람에..."
"아무리 그래도 이건..."
류서희는 머리를 긁적이며 변명을 하는 조직원들을 보며 속으로 황당해 했다. 이 인간들이 지금 누구 놀리나? 이런 나라에서 수도 요금을 낼 돈이 없어 못 씻고 다니는 사람이 나온다고?
그녀는 조용히 한숨을 쉬면서 양 손으로 그 냄새나는 조직원들의 남근들을 붙잡고, 손바닥으로 그것들을 자극하는 운동을 시작했다. 그것이 그녀가 해 줄 수 있는 최대한의 성의 표시였다. 이 망할 놈들이 만약 이것들을 자신의 입에 집어 넣기라도 한다면, 주저없이 그것을 깨물어서 끊어 버릴 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그 조직원들에게는 그런 핸드잡마저도 영광스러웠는지 그들은 류서희가 손으로 자신들의 음경을 자극하자, 음경에 예민하게 전해지는 쾌락에 몸 둘 바를 몰라 했고, 몇 분동안 조용히 그녀의 호의를 받으면서 작게 신음하던 그들은 곧 류서희의 얼굴에 진한 정액을 뿌렸다.
"꺄앗?!"
등 뒤에 앉은 조직원이 자신의 젖가슴을 부드럽게 주무르다가 갑자기 가슴을 찌그러 뜨릴 기세로 세게 꽉 쥐는 것과 정확히 동일한 타이밍에, 아침에 뭘 식사로 먹었는지 비린내로 가득한, 그 미지근한 온도의 백탁액이 얼굴에 뿌려지자 류서희는 자연스럽게 그 기분 나쁜 감촉에 작게 비명을 질렀다.
그녀가 맨 처음 느낀 감정은 자신의 아랫도리에 묻으면 기분이 좀 더러워 지는 것으로 끝날 액체가 얼굴을 오염시켰다는 혐오감이었으나, 백탁액에서 풍겨 오는 이성의 냄새를 맡으면서 그녀는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아...안 되는데...이러면...'
두 자지를 열심히 만졌던 손을 다시 바닥에 대고 앉은 몸을 지탱하면서, 정액의 냄새로 인해 사타구니가 근질근질해 오는 것을 느낀 류서희는, 방금 전 자신의 얼굴에 사정한 두 조직원과 뒤에 앉아서 젖가슴을 가지고 놀던 조직원이 캠코더 밖으로 물러 서는 것도 인지하지 못 한 채로, 표정과 몸을 굳히고 잠시동안 멍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그녀는 지금, 혁명 전사를 양성하기 위한 강철같은 훈련이나 북조선의 "사회주의" 체제와 주체사상을 통한 정신무장으로도 결코 인간의 본능을 100% 억누를 수 없다는 교훈을 몸으로 깨닫고 있는 중이었다.
"해당화 동지. 지금 동지의 구멍이 손도 대지 않았는데 달아오르고 있군요?"
"예...? 그, 그런..."
그리고 그것을 증명하고 있는 근거는 류서희의 표정과 반응 외에도, 직접적으로 탐욕스럽고 붉게 부풀어 오른 그녀의 몸틈새였다.
"자지와 접촉 하자 마자 곧바로 교접 준비에 임하는 그 마음가짐, 혁명 전사로써 훌륭한 자세입니다."
입을 가리고 있는 붉은 두건 때문에 보이지는 않았으나, 눈썹과 눈가의 모양으로 보건대 확실하게 활짝 웃고 있는 박석원은 류서희를 칭찬하면서 그녀의 앞에 다가가 천천히 몸을 숙였다.
그렇게 류서희와 마주본 채 무릎을 꿇고 앉은 박석원은, 음모와 음부에 잠시 자신의 물건을 비빈 다음, 말도 없이 그녀의 몸 안에 그것을 쑤셔 넣었다.
"......윽!"
"저, 정말로 들어갔다! 위대한 영도자께서 하사하신 혁명 전사 보지에 우리의 자지가 들어갔어!"
"저기, 박석원 동지. 어떻습니까? 해당화 동지의 몸에 대한 느낌은?"
"아읏! 읏...! 크읏...! 흐아아아앗!"
박석원은 허리만을 움직여서 철퍽 철퍽 소리를 내며 류서희의 표정을 한참 망가뜨리던 와중에, 주변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들꽃혁명당 조직원이 "멍청한 질문" 을 하자, 허리 운동을 계속 하면서도 그의 질문에 어이없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 무슨 멍청한 질문인가! 타락한 자본주의의 오류 그 자체인 남쪽의 갈보년들보다, 강철 같은 훈련으로 단련된 혁명 전사의 보지가 더 우수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 아닌가!"
"으읏! 읏! 으극... 극..."
이것은 대학생 시절에 이미 김씨 일가에 대한 충성서약까지 써서 조선노동당 대외연락부 요원을 통해 보냈을 정도로 평생 북한의 주체사상과 체제를 선망하였으나, 한 번도 방북을 하겠다는 생각은 해 본적 없는 박석원이 류서희에게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칭찬이었다.
하지만 지금 질벽이 박석원의 육봉에 자극당하면서 가까스로 신음소리를 억누르고 있는 류서희에게는, 그런 칭찬에 신경쓸 만한 정신적 여유가 없었다.
"에에이! 멍청한 놈! 귓구멍을 파고 잘 새겨 들어라! 김일성 민족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민족이며, 세계 그 어느 민족과 비교해도 뛰어나게 우수한 민족이다!"
박석원은 방금 전 멍청한 질문을 던졌던 조직원에게 사상 교육을 복습시키면서, 한 편으로는 허리를 계속 움직이며 점액질이 쩔벅- 쩔벅- 대는 소리를 냄과 동시에 양 손으로 류서희의 유두를 잡아 당겼다.
"아아아으으......?!"
"특히 그 중에서도 항일 빨치산 백두 혈통이 세상에서 가장 우수하며, 이것은 과학으로도 증명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증명하기에는 시간이 충분치 않으니, 너희들이 항상 지니고 있는 '한 자루의 총' 으로 직접 그 우수성을 체험해 보도록!"
물론 박석원이 그것을 정말로 증명할 수 있지만 시간이 없어서인지, 혹은 그저 말도 안 되는 뻥카에 불과한 지는 1994년 완전증명 이전의 "페르마의 대정리" 처럼 알 길이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우두머리의 정사를 구경하고 있는 들꽃혁명당 조직원들에게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진실로써 받아들여지고 있는 듯 했다.
"오...오오... 이제 슬슬 갈 것 같습니다, 동지! 당신의 안에 쌉니다! 으오오...!"
"흐아아아아앙?!❤"
허리를 움직이는 속도를 높이던 박석원은 곧 음경과 고환을 움찔거리면서 사정을 알렸고, 그 질내사정 특유의 참을 수 없는 자극으로 류서희의 굳게 닫힌 입이 마침내 풀리고야 말았다.
박석원은 그 늙은 몸을 떨면서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요도에 남아 있는 정액을 몽땅 류서희의 자궁 안에 들이붓고는, 소변기에 소변을 모두 보고 바지 지퍼를 다시 올리는 사람처럼 무심하게 그 자리에서 자지를 빼내고 일어나 퇴장했다.
"아...으으...아으..."
"후우...그것 참... 정말로 영광스럽고 꿈만 같았습니다. 자, 이제 '천삽뜨기 운동' 의 '1000번 삽질 하고 한 번 허리 펴기' 정신으로 조금만 더 수고합시다. 해당화 동지. 남조선 혁명을 위하여!"
"......에?"
질내사정을 당한 그 자세, 그러니까 바닥에 양 손을 대고 앉은 상태 그대로 거칠게 숨을 고르던 류서희는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만약 이게 농담이라면, 이 박석원이라는 늙다리는 정말 최악의 유머 센스를 가지고 있는 게 분명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농담이 아니었다. 자신이 단 한 번의 절정에도 몸을 제대로 추스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듯, 잠자코 차례를 기다리던 전라의 들꽃혁명당 조직원들이 마치 먹음직스러운 생고기를 눈앞에 둔 늑대 무리처럼 두 눈을 흉흉하게 빛내면서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한 것이다.
"이, 이런 말도 안 되는...자, 잠깐만... 동무들! 고저...동무들의 그 뜨거운 마음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내래 잠시만 좀 쉬게......흐아아아아아아!!!"
다급하게 손으로 가슴과 사타구니를 가린 류서희였으나, 오히려 그것은 역효과만을 불러 왔고, 들꽃혁명당의 작은 사무실 안에서는 바깥의 그 누구도 들을 일이 없을 비명이 울려퍼졌다.
"...!!! !! !!!"
그리고 50분 후, 류서희는 며칠간 씻지 못해서 역한 냄새를 풍기는 들꽃혁명당 조직원의 자지를 입에 문 채, 머릿속에서 자신의 16년 인생을 되돌아 보고 있었다.
"헉...헉...내가 진짜 살아 있길 잘 했다니까! 내가 3년 전에 북녘에서 온 동포의 깨끗한 보지를 먹게 될 줄 미리 알았더라면, 성매매 미수로 구속되어 동네 망신을 당하는 어리석은 짓거리는 하지 않았을 거야! 흐으으...!"
이 냄새나고 징그러운 물건이 입 안에 들어왔다는 것도 충분히 괴로웠는데, 정액을 줄줄 흘리는 항문은 30분 전에 억지로 뚫려서 쓰라린 고통을 안겨다 주고 있는 데다, 뒤에서는 다른 조직원이 자신의 허리를 붙잡고는 몸틈새를 향해 열심히 피스톤 운동을 하며 자극으로 정신을 못 차리게 하고 있으니,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아마 미쳐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입구멍도 기분 좋다고. 자지가 이빨에 걸리적 거리긴 하지만, 이것도 이거 나름대로 기분이 좋아."
한편 그 냄새나는 물건을 류서희의 입 안에 마치 아기에게 젖병을 물리듯이 집어넣고 그녀의 뒤통수를 양 손으로 붙잡고 있는 다른 조직원은, 일방적으로 허리를 돌리면서 그녀의 목구멍에 자신의 그것을 들이 박고 있었다.
펠라치오라는 행위 자체를 모르는 그녀였기에 들꽃혁명당 조직원의 남근은 왕복 운동 와중에 계속해서 류서희의 이빨에 약하게 긁혔지만, 본인은 그것도 쾌감으로 받아 들이고 있는지 별로 표정이 일그러지는 기색이 없었다.
"으음...! 음...! 음...!"
"감사합니다. 민족의 위대한 영도자 김정은 동지! 영도자 동지께서 주신 혁명 전사 보지의 맛!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덕분에 류서희의 입에서는 지금 자지가 질벽을 자극하는 쾌락을 느끼면서 새어 나오는 야릇한 교성, 그리고 입이 자지로 막히면서 말소리를 대신하는 음성이 결합된 묘한 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오! 오! 오! 좋아! 좋아! 간다! 지상 락원 행 열차가 간다! 간다고!"
류서희의 골반 쪽을 붙잡고 피스톤 운동을 하면서 자신의 뱃살과 그녀의 엉덩이가 부딫히는 요란한 소리, 그리고 그녀의 항문에서 흘러 나오는 정액이 뱃살의 압력에 뭉개지는 철퍽- 철퍽- 소리를 동시에 내던 조직원은 사정이 임박함을 알리며 그 소리들을 더욱 빠르고 거세게 만들었다.
"으흐으음!!! 음! 으으음음!!!"
"으...이제 나도 싸 버릴 것 같아...아아아아...!"
"같이 가는 겁니다, 해당화 동지! 수령님이 약속하신 지상 락원으로!"
"!!!!!!!!!❤"
두 조직원의 요도로부터 꿀럭 꿀럭 하고 정액이 용솟음치면서 류서희의 입 안과 질 안을 가득 채웠고, 류서희는 또 다시 몇 번째인지 모를 질내사정의 열기에 몸을 떨면서, 자기도 모르게 입 안을 침범하는 정액들을 삼키며 눈을 까뒤집었다.
"콜록...! 콜록...! 헉...헉..."
사정 작업이 끝나자 두 조직원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각자 사용하던 류서희의 구멍에서 거의 동시에 남근을 빼 냈다. 류서희는 정액으로 잔뜩 더럽혀 진 입, 음부, 항문 세 구멍에서 정액 방울을 흘리며 한동안 개처럼 멍하게 네 발로 엎드려 있다가, 얼마 못 가 그대로 바닥에 엎어졌다.
"하아...하아..."
쉴 틈 없이 연속되는 성교의 절정으로 상당히 지쳐 있었던 그녀는 기침으로 입 안에 남은 나머지 정액들을 토해 냈고, 팔다리를 축 늘어뜨리고는 초점 없는 멍한 눈빛을 한 채로 누워 있었다.
한편, 들꽃혁명당 내에서 서열이 가장 낮았기에 지도자 박석원과 선배 조직원들이 열심히 "전투" 를 치르는 것을 촬영 해야 했던 캠코더맨은, 정액이 흘러나온 자국이 보이는 입, 음부, 항문을 클로즈업 해서 촬영하는 것을 끝으로 마침내 그 기나긴 캠코더맨 노릇을 멈출 수 있었다.
외부인용 탁자에 캠코더와 테이프를 분리해서 올려 놓은 캠코더맨이 재빠르게 옷을 벗고, 마침내 쓰러진 류서희의 엉덩이를 양 손을 이용해 억지로 들어 올려서는 그대로 자신의 남근을 박아 대는 장면을 지켜 보던 박석원은, 그 자리에서 등을 돌려 뒤에 서 있던 조직원들에게 웃으면서 말했다.
"민족의 진정한 자주독립과 혁명을 위해 30년이라는 시간을 바쳐 왔지만, 오늘만큼 멋지고 영광스러운 하루는 처음이라네. 동지들은 어떻게 생각하나?"
성 경험이 전무하여 삽입 몇 분 만에 사정 직전까지 도달한 캠코더맨이, 생각보다 빨리 허리 운동의 스피드를 올리기 시작했음에도 기운이 빠져서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못하는 류서희의 모습을 보면서, 잠시 한눈을 팔던 조직원들이 다시 박석원에게 시선을 집중하고 그의 질문에 답변했다.
"아,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지도자 동지! 3년 만에 북에서 내려 보낸 연락군관이 우리 들꽃혁명당의 동지들을 위안하고 동지들의 혁명을 도와 준다니, 이게 다 전부 민족의 태양 김일성 수령님이 우리를 하늘에서 도와주신 덕분입니다!"
"저 아프가니스탄의 미개한 탈레반 놈들도 이런 섹스 비디오를 가지고 인터넷에서 인기를 끌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IS도 강한 여성 전사들을 포르노 배우로 동원하여 '왜곡된 성욕' 에 대한 수요를 충족시키고 있지요! 우리도 그 놈들의 방식을 따라 해 보면 어떨까요?"
"으음...! 좋은 의견이야, 동지. 들꽃혁명당에 가입하면 해당화 연락군관 동지가 위안해 줄 것이며, 오직 들꽃혁명당의 동지들에게만 이 고화질 명품 비디오를 독점적으로 나눠 준다는 이야기를 홍보에 추가한다면, 더 많은 동지들을 끌어 모을 수 있을 걸세! 우리 들꽃혁명당이 부패 권력의 시녀인 사법부 놈들과 대등하게 맞설 수 있을 정도로 부흥하게 될 거라고! 하하하하핫!"
"그래?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네 상상 속에서만 말이야. 이 늙다리 변태 새끼야!"
"내가 언제나 말했을 텐데! 변태가 아니라고! 변태라는 이름의 신사라............고?"
남파 연락군관 해당화에 열광하며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 들꽃혁명당에 가입한 투사들이, 경찰 놈들을 무자비하게 짓밟으며 청와대와 국회의사당으로 진격하여 썩어 빠진 정치가 놈들을 끌어 내리고 조리돌림하는 광경을 상상하면서 아주 행복하게 정신줄을 놓고 웃던 박석원과 들꽃혁명당의 조직원들은, 갑자기 들려온 낯선 억양의 한국어와 퍽- 하고 누군가를 때리는 소리를 듣고도 뭔가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하다가, 뒤늦게 깜짝 놀라서 자신들의 뒤를 돌아 보았다.
절정을 맞으면서 류서희의 질 안에 마지막으로 사정한 캠코더맨은, 사정을 끝마침과 동시에 침입자에게 뒷목을 손날로 가격당하여 쓰러졌고, 침입자는 그런 캠코더맨의 어깨를 붙잡아 왼쪽으로 패대기 쳤다. 동시에 류서희의 질에서 뽑혀 나온 캠코더맨의 남근은 아주 조금 남아있던 정액 몇 방울을 바닥에 흘렸다.
박석원과 조직원들의 대화에 난입하여 막내 조직원을 손날로 때려 눕혔던 그 침입자는, 짧은 갈색 곱슬머리와 갈색 눈동자를 가진 서아시아 계통으로 추정되는 외국인 소녀였는데, 아이보리색 스키니 진과 회색 스웨터로 보호받고 있는 옅은 구리색 피부가 인상적이었다. 그녀가 지금 6인치 전술화를 벗지도 않은 채 사무실에 발을 들여놓고, 산업 폐기물을 보는 듯한 눈으로 째려보고 있지만 않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역시 어느 나라를 가나 사람들이 생각하는 건 똑같아. 아프가니스탄이나 이 한국이나 다를 바가 없어. 저기 있잖아? 이런 꼴을 여기서도 보게 되니까 '남성혐오' 라는 안 좋은 게 내 머리 안에 자리를 잡는 듯한 기분이 들어."
"어느 나라를 가나 좆같은 새끼들이 있고, 어느 나라를 가나 성자같은 사람들이 있는 법 아니겠어? 너무 한쪽만 보지 말자고, F."
그 "F" 라고 불린 호리호리한 구리색 피부 소녀의 뒤로, 그녀보다 확실히 연하로 보이는 다른 소녀가 부츠를 벗지 않은 채로 나타났다. 이번에는 패딩 점퍼와 청바지 차림을 한 적발의 백인 소녀였다.
"그래서, 들꽃혁명당인지 들판혁명당인지, 당신들은 도대체 여기서 뭣들을 하고 있는 거죠?"
갑작스런 상황에 다른 들꽃혁명당 조직원들과 마찬가지로 어안이 벙벙했으나, 리더답게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박석원은 뜬금없이 사무실에 난입해서 자기들끼리 영어로 떠들고 있는 이 외국인 소녀들을 향해 삿대질을 했다.
하지만 F라는 소녀가 한국어로 한 질문을 무시한 걸 보면, 박석원 역시 내심 이 상황에 당황하고 있는 것 같았다.
"뭐, 뭐야! 너희는 또 누구야? CIA냐? 우리가 누군지 전부 다 엿들은 건가?"
"어이 영감! 질문에 질문으로 대답하지 마! 학교에서 의문문에 의문문으로 대답하라고 가르쳤냐!"
"당장 나가--크헉!"
붉은 머리 백인 소녀가 박석원을 질책하면서, 옆에서 두 소녀를 제지하기 위해 달려든 조직원의 손목을 역으로 붙잡아서는 꺾은 다음 팔꿈치로 그의 면상을 후려 갈겼고, 조직원은 비명을 지른지 단 3초만에 기절했다.
"아니, 됐다. 여기서 뭘 했는지는 사무실 꼬라지만 봐도 답 나오네. 우리가 누구냐고? '성 모니카'(Saint Monica, 혹은 Monica of Hippo)다. 이제부터 너희들을 회개시켜 줄 거거든."
"이런 씨...! 어이! 막아! 막으라고!"
두 소녀들이 사무실을 찾은 목적이 자신들에 대한 공격행위임을 뒤늦게 인지한 박석원은, 들꽃혁명당 조직원들에게 이 침입자들을 막을 것을 지시했고, 그렇게 '베고니아 산악회' 사무실에는 들꽃혁명당 조직원들이 지르는 비명소리가 신나게 울려 퍼졌다.
서아시아계 소녀가 가랑이를 걷어 차고는 탁자에서 집어든 유리 재떨이로 머리통을 후려 갈겼고, 백인 소녀는 책상 위를 박차고 올라가서 조직원에게 플라잉 니킥을 먹이고는, 곧바로 옆에서 달려드는 또 한명의 조직원이 내지른 팔을 붙잡아 그를 바닥에 커맨드 삼보로 패대기치는 등 평온했던 토요일의 사무실이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대체 뭣들 하는 거야 이 새끼들아! 계집애 둘을 못 잡아서 빌빌대다니!"
하지만 박석원이 아무리 소리를 질러 봤자, 군 경력이라고는 21개월 육군 소총수 복무와 몇 년의 예비군 훈련이 전부이며, 운동 부족과 음주에 찌들기까지 한 들꽃혁명당 조직원들이 전직 아프가니스탄 코만도와 전직 체첸 반군을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 객관적인 사실을 종합해 보면, 박석원의 명령은 '일단 총검을 들고 기합을 넣으면 어떻게든 된다!' 라는 사상을 가진 일본군 장교의 명령과 사실상 다를 바 없었다.
"에에이! 멍청한 놈들! 민족 혁명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언제나 '한 자루 총' 으로 무장해야 한다고 언제나 정신교육 시간에 강조했건만!"
"까꿍."
방금 전부터 등 뒤의 창문이 열려서 차가운 겨울 공기가 들어오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던 박석원은, 난데없이 뒤에서 들려온 남성의 목소리에 뒤를 돌아 보려 했으나, 곧 그 목소리의 주인의 팔뚝이 목을 강하게 짓누르자 힘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다.
"?! 크헉...켁...!"
"내가 볼 때는 말이야, 모두들 당신 말을 따라서 '한 자루 총' 을 제대로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 사타구니 쪽에, 안 씻어서 냄새 풀풀 풍기는 거 하나."
박석원은 남자의 슬리퍼 홀드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발버둥을 쳐 보았으나. 얼마 못 가서 의식이 멀어지며 그 자리에서 기절하고 말았다.
"그냥 '한 자루 총' 으로 무장하라는 말만 했지, 그 '총' 을 제대로 정비하라는 말은 안 했나 봐?"
그렇게 사무실의 창문을 열고 나타나 박석원을 제압한 남자, 한정훈은 모두 바닥에 의식을 잃고 널부러진 들꽃혁명당 조직원들을 둘러 보면서, 더블 코트 옷자락을 정리하며 마카 바카예바의 비아냥에 대답했다.
"이 나라 종북주의자들이 다 그렇지 뭐. 동아리방에 처박혀서 아무 짝에 쓰잘데기 없는 민족주의 망상만 열심히 하고, 정말로 생존에 필요한 체력 단련과 현실의 문제 해결은 게을리 하는 머저리들이야. 너 1997년 부부간첩 사건 때 최정남과 강연정이 어떻게 붙잡혔는 지 몰라? 어떤 NL 계열 병신 새끼 하나가 자길 찾아온 부부 간첩을 '안기부에서 자길 함정에 빠트리려고 보낸 놈들' 이라 착각해서는 자진신고하는 바람에 잡힌 거라고. 그 이유가 뭔지 알아? 이 새끼들은 북한에서 하는 주장을 그대로, 100% 신뢰하거든. 그러니 북한에서 간첩을 안 보낸다고 하면, 무조건적으로 그 말을 믿고는 진짜로 북한에서 간첩을 보내도 그게 거짓이라고 인식하는 거야. 병신 주사파 새끼들."
"그거 정말이에요? 세상에, 힌두쿠시에 처박혀서 '연구' 나 하는 탈레반 떨거지들도 그렇게 멍청한 생각은 안 하는데."
"'세상은 넓고, 병신은 많다' 는 거야, 파티마 양. 인터넷이 낳은 명언 중 하나지. 그래도 여기 있는 종북주의자 놈들은 그렇게까지 멍청하지는 않았던 모양이야. '3년 만에 북에서 내려보낸...' 이라고 했으니 이전부터 계속 북한 간첩들과 일해온 것 같군. 도대체 어쩌다가 국정원이 이런 놈들을 못 잡아 낸거지?"
"F" 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파슈툰인 소녀, 파티마가 어이 없다는 눈빛으로 마카를 대신해 한정훈에게 대답했고, 한정훈은 어깨를 으쓱이면서 인터넷 명언 한 마디를 알려 주었다.
"약속한 1시간을 넘기고 15분이나 지났는데 서점에도 안 보이길래, GPS로 비상전화 위치를 추적해 봤더니 설마 이런 곳에 있었을 줄은 몰랐어. 류서희 양."
"......"
한정훈은 잡담을 멈추고, 여기에 온 진짜 목적인 류서희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마카의 부축을 받아서 겨우 일어난 그녀는, 면목이 없다는 듯 한정훈의 시선을 옆으로 피했다.
그녀의 사타구니에서 흘러 나오는 정액들은 그렇잖아도 어색한 분위기를 더 어색하게 만드는 중이었고, 한정훈은 한숨을 쉬며 안쓰럽다는 어조로 류서희에게 한번 더 말을 걸었다.
"내가 분명히 사고 치지 말라고 했잖아? 세상에 믿을 놈들을 믿어야지, 어떻게 이런 발정난 색욕마인 같은 놈들을 믿을 수가 있어? 이놈들이 이상한 약이라도 먹였으면 어떻게 할 생각이었던 거냐? 그리고 지금 이 개판을 보니까, 아주 네가 지쳐 쓰러질 때까지 박아댄 것 같은데, 그렇게 쓰러진 널 이놈들이 그 다음에 과연 널 어떻게 하려 했을까? 그건 생각 안 해봤어?"
"그...그럼 나보고 어떡하라고..."
한정훈의 질책에, 류서희는 지금까지 들을 수 없었던 침울한 목소리로 자신이 왜 이렇게까지 할 수 밖에 없었는가를 항변하기 시작했다.
"북에서는 내가 죽은 줄 알고 있으니 되돌아 갈 수도 없어. 가족들을 생각하면 그냥 '임무 수행 도중 명예롭게 사망한 공화국의 영웅' 으로 남아있는 게 낫겠지. 하지만 난 죽고 싶진 않아. 그래서 이 남조선에 귀화를 하고 싶지만, 이곳에서 굳이 날 받아 줄 충분한 이유가 없다고. 너도 마카가 한 말을 들었잖아! 자기 가족이 분명 미제 놈들의 적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어떻게 아프가니스탄에서 빠져 나왔는지! 미제 놈들이 그냥 좋다고 마카와 그 가족들에게 새 인생을 줬을까? 아니었잖아? 그렇다면 나도 마찬가지로 남쪽 정부가 날 받아 들일 만한 이유를 어떻게든 만들어야 하는 거잖아?"
"......"
"그래서 내가 알고 있는 정보를 이용한 것 뿐이야. 225국의 지령을 받아 움직이는 남쪽 지하혁명조직을 찾아 내고, 그들 사이에 잠입해서 기회를 엿보다가 정보를 빼오는 게 내 계획이었지. 물론...이런 놈들일 줄은 나도 몰랐어."
자신이 이 남한 지하혁명조직의 아지트까지 찾아가서 이런 치욕적인 일을 당한 이유를 약간 격앙된 어조로 설명하던 류서희는,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과거사를 들먹이며 자학을 하기 시작했다.
"하아...그래. 내가 하는 짓이 다 그렇지 뭐. 어렸을 때부터 매일 부모님이나 형제 자매들한테는 '백두산 줄기 항일 빨치산 가문의 망신이다' 라고 욕 먹고 매 맞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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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2024.02.19 | 북한공작원 류서희 3편 (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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