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내가 사랑했던 아내

“우리 이혼하자.”
밤늦게까지 야근을 하고서 집으로 돌아온 나를 향해 내 아내가 이혼이란 단어를 입에 담았다.
“그게 무슨 소리야, 혜연아?”
처음에는 그것이 농담인 줄로만 알았다.
내가 야근을 너무 자주 해서 삐진 걸까? 아니면 우리 딸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 걸까? 그것도 아니라면 혜연이 몰래 담배를 피웠던 게 들키기라도 한 걸까?
나는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아내에게 이유를 물었고, 혜연이를 나를 향해 담담한 목소리로 이유를 밝혔다.
“더 이상 당신하고 살고 싶지 않아.”
아내의 차디 찬 목소리가 내 가슴을 찔렀다.
“……당신하고 같이 살아도, 사는 게 아닌 것 같아.”
내가 무엇을 잘 못 했기에 혜연이가 이런 쓴 소리를 하는 것일까?
이제까지 살면서 가족에게 소홀히 했다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열심히 살았고, 열심히 일했고, 아내와 딸에게 헌신했다.
내 몸이 부서지도록 말이다.
‘그런데 왜……?’
이해할 수 없는 일에 머릿속이 까만 먹지처럼 어두컴컴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억장이 무너지는 듯했다.
“이 말 하려고 당신 기다렸어.”
이 말과 함께 혜연이는 나를 지나쳐 집을 나가려고 했다.
“이 시간에 어딜 가려고 그래? 유정이는 어쩌고!”
“오피스텔 얻어놨어. 거기에 유정이 재워두고 왔으니까 얼른 가봐야 해.”
“혜연아, 너 왜 그래!”
“말했잖아! 당신하고 더 이상 살 수 없다고!”
“그러니까 이유를…….”
“이혼하자, 우리.”
혜연이는 한 점 온기조차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로, 나와 헤어지자며 강요했다.
왜 그런 건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물론 혜연이의 태도가 예전 때만큼 다정하지 않다는 것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부부이기…….
항상 신혼일 수만은 없기에 자연스럽게 그리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모두가 그랬듯이, 다들 정으로 사는 거라고 생각했다.
쿵.
굳게 닫힌 문이 너무나도 무심하게 느껴졌다.
지금이라도 당장 저 문을 열고서 혜연이를 따라가, 좀 더 자세한 이유를 묻고 싶었다.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다.
하지만 나를 무심히 쳐다보던 혜연이의 시선이 너무나도 차가워서 차마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았다.
‘꿈……. 꿈이지, 이거?’
도무지 믿겨지지가 않는 현실에 가슴이 아려왔다.
화를 내고, 울고, 빌고……. 뭐라도 해서 혜연이를 말리고 싶었다.
아니, 해야 되었다.
덜컥!
“혜연아……!”
뒤늦게라도 집 밖으로 나가 아내의 이름을 불러보지만, 이미 아내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간 모양인지 그 어디에도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텅 빈 공간만이 내 눈에 들어올 뿐이었다.
마치 무언가에 홀린 것만 같았다.
“하, 하하…….”
헛웃음을 터트린 나는 도로 집 안으로 들어와서 소파에 앉았다. 그 후,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보지만 아내의 모습도, 유정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휑하니, 비어있는 집이 나를 감싸고 있을 뿐이었다.
‘왜?’
내가 뭘 실수했나?
혹시 오늘이 결혼기념일이었던 건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을 머릿속에 떠올려보지만, 그 어떤 답도 나오지 않았다.
가슴이 꽉 막힌 것처럼 답답해져왔다. 속이 더부룩한 게, 지금이라도 당장 구역질을 할 것만 같았다.
“전화해볼까?”
덜덜 떨리는 손을 애써 진정시키며 스마트폰을 들어 올린 나는 혜연이의 번호를 눌렀다. 그리고 통화버튼을 누르자, 잠시간의 연결음 뒤에 [상대방이 전화를 받을 수 없어…….]라는 여성 알림음이 들려왔다.
의도적으로 내 전화를 피하고 있는 것이었다.
“……왜?”
이게 꿈이라면 좋을 텐데?
너무나도 갑작스레 다가온 현실에 머리가 찢어질 것만 같았다.
숨을 한번, 두 번 들이켤 때마다 격통이 느껴졌다.
“안 돼. 안 돼, 이건 아냐.”
몇 번이고 홀로 중얼거린 나는 이내 안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혜연이가 어째서 나와 이혼을 하려는 건지, 알아내야만 했다. 분명히 무언가 이유가 있을 게 틀림없었다.
서랍을 열고, 장롱을 열고, 침대 밑까지 뒤졌다.
“이건…….”
그러던 중에 서랍장 안에 들어있는 종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아주 깊숙이 들어가 있어서, 이렇게 뒤지지 않았다면 찾아내지 못 했을 종이였다.
나는 애써 가슴을 가라앉히며 종이를 펼쳤다.
“아…….”
종이에는 azoospermia이라고 적혀있었다.
얼추 보아하니, 어떤 병에 대한 검사 결과인 듯이 싶었다. 이에 나는 곧바로 스마트폰을 꺼내서 azoospermia를 쳐보았다. 그러자 곧 화면에 무정자증(azoospermia)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설마.”
읽고, 다시 읽어보지만 화면 위에 써져있는 단어는 바뀌지 않았다.
무정자증(azoospermia).
그것은 나를 뜻하는 것이었다.
============================ 작품 후기 ============================
예지몽을 한번 읽으신 뒤에 보는 것을 추천해드리겠습니다.
물론 예지몽을 읽지 않으셔도 이해하는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습니다.
00002 [내가 사랑했던 아내] =========================================================================
“내가 무정자증이라고……?”
그럼 유정이는 대체 누구의 아이지?
갑자기 모든 게 부정당한 느낌이 들었다.
이제껏 쌓아올렸던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너무나도 끔찍해서 헛구역질이 났다.
“…….”
고개를 푹 숙인 채로 몇 번이고 꺽꺽대던 나는 이내 아내의 직장 동료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다행히도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은 전화를 받아주었다. 이에 나는 애써 목청을 가다듬은 뒤에 입을 열었다.
“아, 안녕하세요. 강 지한입니다.”
-네?
“유 혜연 씨, 남편이요.”
-아……! 네, 안녕하세요. 어쩐 일이세요?
“다름이 아니라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어서 이렇게 전화를 했습니다.”
-네?
“혹시……. 저기, 그러니까……. 제 아내가 회사에서…….”
여기까지 말하던 나는 이내 입술을 꾹 다물었다.
내가 지금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다는 말인가? 아내의 외도를 의심하다니! 그것도 아내의 회사 사람에게 물어보면서까지 말이다.
분명 이 검사 결과도 다른 사람의 것일 게 틀림없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늦은 시간에 전화 드려서 죄송합니다.”
이 말과 동시에 나는 재빨리 전화를 끊었다.
그래, 분명히 내가 오해를 하고 있는 게 틀림없을 것이다.
혜연이도 분명 금방 화를 풀고서 유빈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올 것이 틀림없었다.
“그래, 다른 이유일 거야.”
몇 번이고 홀로 중얼거린 나는 이내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하염없이 종이를 바라보던 나는 문득 떠오른 게 있어서 서랍장 안을 좀 더 뒤져보았다.
‘혹시 다른 게 더 있지 않을까?’
이 검사 결과가 다른 사람의 것이라는 증거 같은 게 말이다.
‘……내 것일 리가 없잖아.’
유정이는 누가 뭐라고 해도 내 딸이었다.
그런 딸이 다른 사람의 딸이라니……? 말이 안 됐다!
유정이는 이제 3살이었고, 나와 혜연이는 결혼 5년차 부부였다.
혜연이가 나와 사는 동안에 다른 남자와 바람을 폈다고? 그럴 리가 없다. 혜연이는 다른 누구보다도 상냥한 아내였고, 무엇하나 부족하지 않은 아내였다. 나를 사랑했고, 나도 그런 혜연이를 사랑했다.
지금와서 그 감정이 조금 식었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로를 사랑하는 감정을 의심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아…….”
부스럭 소리와 함께 손에 종이 하나가 잡혔다.
조심스럽게 종이를 꺼내 펼쳐보니, 상단에 친자확인서라고 적혀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검사 대상은 나와 유정이었다.
“아아…….”
검사 결과를 본 순간, 입술 사이로 신음성이 새어나왔다.
다리에 힘이 풀리고, 손이 저절로 떨려왔다. 믿을 수 없는 결과에 눈앞이 캄캄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차라리 이대로 죽어버렸으면 싶을 지경이었다.
“이럴 리가 없어.”
유정이가 내 딸이 아니라니!
그럴 리가 없다며, 몇 번이고 검사 결과를 살펴보지만 내용은 변하지 않았다.
결과는 여전했다.
유정이가 내 딸이 아니었다.
∴ ∵ ∴ ∵ ∴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지만, 원래대로 돌아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아침을 차려주던 아내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나와 함께 아침 늦게까지 잠을 자던 유정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하하…….”
헛웃음이 절로 터져 나왔다.
이토록 끔찍하게, 절망적이었던 때가 언제였을까?
모든 게 부정당해서, 이제까지 지켜왔던 모든 게 부서지는 듯했다.
“……혜연아.”
나는 혜연이가 임신했을 때, 그렇게 기뻐했는데……. 아아,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혜연이는 그렇게 기뻐하지 않았었던 것 같다. 어딘가 모르게 불안해보였다.
마치 못된 짓을 벌인 사람처럼 말이다.
그 때, 알아봤어야 했는데…….
주마등처럼 혜연이의 표정과 말소리, 행동 하나하나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씨발 년. 개 같은 년. 쓰레기 같은 년…….”
성인이 된 이후로 단 한번도 입에 담지 않았던 욕설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항상 스스로를 냉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되고 나니 전부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릿속은 기름칠이 되지 않은 기계마냥 뻑뻑하게 돌아갔고, 가슴 속에서는 열불이 치솟았다.
나는 왜 이토록 바보 같이 당할 수밖에 없었던 걸까?
“……왜.”
왜 나를 배신한 걸까?
내가 뭐가 부족해서? 무정자증이라서? 하지만 나는 몰랐는 걸……. 아니, 적어도 나에게는 알려줘야 했던 거 아냐? 최소한……. 부부니까 이야기 정도는 해줄 수 있잖아. 같이 고민해볼 수 있잖아.
그렇게 아이를 가지고 싶었다면 입양했어도 됐잖아!
그 정도로 내가 미덥지 못 했던 거야? 그런 거야, 혜연아?
뚜르르르.
그 때였다.
바닥에 떨어져있던 스마트폰이 울리며 전화가 왔다는 것을 알렸다.
동시에 그걸 본 순간 혹시나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혹시 혜연이한테서 온 전화가 아닐까?
전부 농담이었다고. 사실은 자기가 꾸민 거짓말이었다고 말이다. 깜짝 카메라였다고 말이다. 정말로 그런 거였다면 얼마든지 웃으면서 넘어갈 수 있었다. 제발 이게 깜짝 카메라였으면 할 정도였다.
“혜, 혜연아?”
나는 서둘러 전화를 받은 뒤에 떨리는 목소리로 혜연이를 불러보았다.
-아, 저기……. 강 지한 씨, 핸드폰 아닌가요?
“아…….”
통화음 너머로 들려온 목소리는 혜연이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어젯밤 내가 전화를 걸었던 아내의 회사 동료의 목소리였다.
-괜찮으세요?
“괘, 괜찮습니다…….”
나는 애써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대답했다.
아내의 회사 동료에게까지 추태를 보일 수는 없었다.
게다가 무엇 하나 확정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물론 여러 가지 검사 결과가 내 손에 들려있긴 했지만……. 이게 내 몸을 검사한 결과라는 증거는 그 어디에 없었다. 어쩌면 혜연이가 장난삼아 둔 걸지도 몰랐다.
그래, 혜연이가 바람을 피우는 걸 직접 보지도 않았고 말이다.
누가 뭐래도 혜연이는 내 아내인 걸? 유정이 엄마인 걸?
-저기……. 제가 이런 말을 해도 되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네?”
-어제 혜연 씨 때문에 전화하신 거 맞으시죠?
그 물음을 듣는 순간, 나는 직감적으로 그녀가 아내에 대한 일을 알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설마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점차 확신으로 변해갔다.
“호, 혹시 뭔가 아시는 게 있으십니까?”
-…….
이런 내 물음에 상대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해주세요. 아무거나 좋으니까 말해주세요!”
나는 필사적으로 도움을 구했다. 그리고 이런 내 외침에 상대방에게 닿은 모양인지, 드디어 수화기 너머로 말소리가 들려왔다.
-사실은요.
============================ 작품 후기 ============================
솔직히 말해서 좀 짧을 겁니다.
무지 짧습니다. 엄청 짧은 단편이 될 겁니다!
너는나의것 님 : 헛, 그러시군요.ㅎ
elas 님 : 복수하고 얼른 끝낸 다음에 하폰 전기 마저 써야죠.ㅎ
월눙 님 : 예지몽 보셨으면 바로 아실 수 있습니다!
뇨호호호홋 님 : 네, 이어지는 소설입니다. 주인공만 바뀌어서요.
...(-1)... 님 : 불쌍하지만... 원래 이런 캐릭터였는걸요.ㅠ
00003 [내가 사랑했던 아내] =========================================================================
수화기 너머로 꿀꺽, 하고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혜연 씨요. 그러니까……. 제가 이런 말을 해도 되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망설이는 기색이 잔뜩 느껴졌다.
그래, 망설일 만도 했다.
지금 자신의 말 한 마디로 한 사람의 가정이 완전히 파탄 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자신의 책임이란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 기여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지금 내게 있어서 그녀가 가지고 있는 정보는 무척이나 중요했다.
“괜찮으니까 어서 말해주세요.”
나는 다급한 마음과는 다르게, 최대한 차분하게 상대방을 다독여서 대화를 유도했다.
-아니요, 역시…….
“제게 필요한 이야기입니다. 제발 이야기해주세요.”
-그렇지만…….
“제가 혜연이와 이혼하게 되더라도 결코 그쪽 책임이 아닙니다. 오히려 절 도운 거라고 생각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제발 저 좀 도와주세요.”
나는 간절함을 담아서 이야기했다.
혜연이가 어째서 나와 이혼하려고 하는 건지…….
그 상대가 누구인 것인지…….
유정이가 누구의 아이인 것인지도 말이다.
꼭 듣고 싶었다.
설사 그것이 아내의 외도라도 말이다.
-사실 혜연 씨……. 다른 부서의 이 현우 씨와 자주 같이 다니세요.
“네?”
전혀 예상지도 못 한 이름이 튀어나오자, 나도 모르게 반문하고 말았다.
-출근도 같이하고, 퇴근도 같이하고……. 물론 그게 이상하다는 것은 절대로 아닌데, 두 사람이 좀 이상하게 행동해서……. 다들 바람 난 거 아니냐고 해서…….
“자, 잠시만요. 이 현우 씨라면 제 동서되는 사람입니다. 처제의 남편이란 말입니다! 그 사람이 왜 제 아내를…….”
-그런데 그 두 사람, 너무 가깝게 다니는 것 같아서…….
“아뇨, 그럴 리가 없습니다. 현우가 그럴 리가……. 다른 사람은 없습니까? 현우 말고요. 다른 사람이 있을 겁니다!”
나는 그럴 리가 없다며 부정하며 상대방에게 몇 번이고 물어봤다.
-없어요. 혜연 씨하고 항상 같이 다니는 건, 이 현우 씨 뿐인 걸요. 그 외의 사람은 본 적 없어요.
“저, 정말입니까? 정말로 현우 뿐이었나요?”
-네. 정말이에요. 정말로……. 다른 사람들한테 물어봐도 다들 그렇다고 말할 거예요.
“…….”
확신을 담아 이야기하는 상대방의 목소리에 나는 스마트폰을 내려놓았다.
‘그럴 리가 없어.’
현우가 처제하고 얼마나 사이가 좋은데……. 혜연이하고 그럴 리가 없었다. 그리고 혜연이도 예전에 딱 잘라 이야기했었고 말이다.
그냥 사이좋은 대학 동기라고 말이다.
그렇게 말했는데, 혜연이가 구태여 현우랑 바람이 날 이유가 없었다.
현우가 그렇게 좋았다면 나하고 결혼하지 않고, 그와 결혼했을 게 틀림없었다.
‘그럴 리가 없잖아.’
고개를 가로저은 나는 다시금 스마트폰을 들어 올린 뒤에 입을 열었다.
“아닐 겁니다. 현우가……. 그럴 리가 없습니다.”
-죄송해요. 제가 괜한 말을 해서…….
“아니요.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라고 말한 나는 그대로 뚝, 전화를 끊었다.
‘어떻게 하지?’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혜연이의 이혼 통보부터 시작해서 무정자증, 유정이……. 여기에 현우까지.
무엇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었다.
“하아.”
세수를 하듯이 얼굴을 쓸어내린 나는 이내 몸을 일으켰다.
일단 혜연이하고 만나봐야 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혜연이를 만나서 무정자증부터 시작해서 친자확인서까지 물어볼 필요성이 있었다. 물어본 다음에 차근차근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실이 엉켰다면 하나하나 풀어 가면 될 뿐이었다.
힘겹게 몸을 일으킨 나는 곧바로 집을 나가 차에 올랐다. 그 후, 혜연이를 보기 위해서 아내가 근무하는 회사로 향했다.
아무리 내게 이혼하자고는 했지만, 그래도 회사에는 나올 게 틀림없었다.
그리고 여차하면 현우에게 물어보는 수도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현우를 의심하는 건 아니었다. 그저 혜연이랑 친하니까……. 처제의 남편이니까 물어보는 것이었다.
‘현우가 그럴 리가 없잖아.’
애써 잡념을 떨쳐낸 나는 회사 앞에 차를 댄 뒤에 혜연이를 기다렸다.
그리고 그렇게 얼마간 기다리자, 저 멀리서 혜연이 차가 주차장 안으로 들어오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곧 주차를 끝마친 혜연이가 차 밖으로 나왔다.
‘혜연아…….’
그 모습을 보니, 입가에 절로 미소가 그려졌다.
그도 그럴 것이 혜연이의 표정이 그 어느 때보다도 밝아보였기 때문이었다. 저렇게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 매일 같이 날 향해 지어주던 혜연이의 미소였다. 그래, 어제 일은 내가 잘 못 들은 게 틀림없었다.
분명히 어제는 다른 일이 생겨서…….
“아…….”
그 때, 보조석 쪽에서 다른 남자가 내렸다.
그는 혜연이와 마찬가지로 환하게 웃으며 차에서 내리더니, 곧바로 내 아내에게 다가섰다. 그리고는 스스럼없이 키스를 했다.
내 아내에게…….
순간 내가 잘 못 본 거라고 생각했지만, 혜연이는 남자의 갑작스런 키스에도 불구하고 당황해하는 기색 없이 그대로 받아주었다. 그리고는 둘이서 팔짱을 끼고서 회사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현우가…….”
나는 그 둘이 내가 타고 있는 차 앞을 지나가는 것을 똑똑히 목격했다.
“……말도 안 돼.”
말도 안 된다며 부정해보지만, 혜연이와 키스를 하고. 혜연이와 팔짱을 끼고서 걷고 있는 남자는 틀림없이 이 현우였다.
처제의 남편이었다.
‘내가 뭔가에 홀린 건 아닐까?’
그래, 분명히 무언가에 홀린 것일 것이다.
홀려도 단단히 홀려서……. 그리고 지금 이건 꿈이고 말이다.
너무나도 지독한 악몽에 홀려서, 이렇게 깨어나지 못 하고 헤매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아, 아아…….”
쿵! 쿵! 쿵!
깨어나라고 몇 번이고 핸들에 머리를 박아보지만, 통증만 뚜렷해질 뿐 눈앞의 현실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방금 전에 내 앞을 지나가던 두 사람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이제 어떻게 해야 되지?’
막막해졌다.
너무나도 끔찍한 현실에 손발이 덜덜 떨려왔다.
그냥 이대로 죽어버렸으면 싶을 정도였다.
죽으면 모든 게 끝나지는 않을까 싶었다.
‘……아니야, 아직 확실한 게 아니잖아. 좀 더 보자. 보면 알 수 있을 거야. 그래, 알 수 있어.’
나는 애써 마음을 가라앉히며 숨을 차분히 골랐다.
‘내가 잘 못 본 걸 수도 있잖아.’
현우가 어떻게 처제를 놔두고서 내 아내와 바람을 핀다는 말인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거기다가 두 사람이 그렇게 서로를 사랑하는 사이였다면, 진작 결혼하고도 남았을 게 틀림없었다.
그래, 내가 잘 못 본 것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둘이서 한 차를 타고 온 것은 그저 회사가 같으니까, 우연히 같이 타고 온 것이 틀림없었다.
아니, 사실 혜연이는 오피스텔을 얻은 게 아니라 처제의 집에서 자고 온 것일지도 몰랐다.
그래, 유정이도 있는데 어떻게 오피스텔에서 잔다는 말인가? 틀림없이 유정이는 지금 처제하고 놀고 있을 게 틀림없었다.
‘이건 분명 잠을 못 자서 그런 걸 거야.’
거기다가 아내의 직장 동료의 이야기까지 들은 탓에 더 그렇게 보이는 걸 수도 있었다.
그거 있지 않는가? 여러 가지 일들이 겹쳐서 하나의 끔찍한 환각을 만들어내는 것을 말이다.
그래, 이게 바로 그 사례일 게 틀림없었다.
‘……진정하자. 똑바로 보자. 다시 내 눈으로 보는 거야.’
애써 마음을 다그친 나는 핸들을 꽉 붙잡았다.
============================ 작품 후기 ============================
내 아내가 이렇게 쌍년일리가 없어!
didiren 님 : 네, 우빈이가 도와줍니다. 근데 예지몽 능력으로 돕거나 하진 않습니다.
너는나의것 님 : 그냥 불쌍합니다. 우리 주인공.ㅠㅠ
검은공작 님 : 흠, 이게 파멸이... 일단 이 현우는 철저하게 파멸합니다. 근데 혜연이는 좀 다른 방향으로 파멸합니다.
하렘love 님 : 너무 잘 정리하셔서 반박 불가군요! 완벽해요!
00004 [내가 사랑했던 아내] =========================================================================
∴ ∵ ∴ ∵ ∴
“…….”
퇴근 시간이 되자, 한산하기 그지없던 주차장이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혜연이는…….’
나는 내 앞을 지나가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바라보며 아내를 찾았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아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혹시 오늘 야근인 걸까? 아니면 퇴근이 조금 늦는 것뿐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아내를 기다리고 있는데, 저 멀리서 처제의 남편과 함께 주차장 쪽으로 걸어오고 있는 아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아…….”
두 사람은 다정하게 손을 잡고 있었다.
내가 지금 무엇을 본 걸까?
나는 저것을 보기 위해서 여기서 기다리고 있었던 게 아니었다.
회사까지 빠지면서……. 이러려고 했던 게 아니었다.
‘나는, 나는…….’
머리가 욱신욱신 거려왔다.
양 손으로 얼굴을 감싼 나는 그대로 고개를 숙였다.
차마 아내의 모습을 마주 볼 용기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대로 차 밖으로 뛰쳐나가서 아내에게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며 따질 용기도 나지 않았다.
모든 게 두려웠다.
모든 게 믿겨지지 않았다.
아내도, 유정이도, 나도.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몇 번이고 부정해 보지만, 눈앞의 현실은 조금도 바뀌는 것이 없었다.
“아.”
이렇듯 괴로워하고 있는 와중에 아내의 차가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이에 나는 재빨리 시동을 넣은 뒤에 아내의 차를 쫓았다.
‘그래, 아직 아니야. 아니라고.’
아내의 외도를 내 눈으로 직접 보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믿을 수 없었다.
그래, 키스랑 손잡는 것 정도는 아무라도 할 수 있었다.
아니, 어쩌면 내가 잘 못 본 것일지도 몰랐다. 무언가에 홀려서, 환각 같은 것을 본 걸 수도 있었다.
그래, 착각이다.
착각이 아니고서야 아내가 다른 남자와 키스하고 손잡고 팔짱을 낄 리가 없었다.
“그래, 착각이라고!”
크게 소리쳐, 나 자신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은 나는 똑바로 정면을 바라보였다.
그리고 이런 행위가 놀랍게도 나 자신을 진정시켜주었다.
한 사람의 남편으로서,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힘을 주었다.
그래, 이 모든 게 진짜일 리가 없었다.
혜연이는 내 아내였고, 유정이는 내 딸이었다.
둘 다 나의 사랑스런 가족이었다.
그 가족이 이깟 착각 때문에 깨질 순 없었다.
애써 마음을 가라앉힌 나는 핸들을 꽉 붙잡았다. 그 후, 아내의 차를 따라 차분히 뒤쫓았다. 다행히 아내의 차는 내 눈에 익은 차종이었기에 쉽게 따라갈 수 있었다. 더욱이 지금 아내의 차가 가고 있는 방향은 처제의 집이었다.
‘그래, 처제의 집에서 지내고 있었던 거야.’
처제의 집을 향해 가고 있는 아내의 차가 내게 자신감을 불어넣어주었다.
그리고 아내의 차가 아파트 앞에 섰을 때, 나는 비로소 웃을 수 있었다.
그래, 이 모든 게 내 착각이었다.
이제 아내는 차에서 내려서 현우와 함께 아파트 안으로 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처제의 집에 들어가서, 처제와 놀고 있던 유정이를 만날 것이다.
분명히 혜연이는 사랑스런 미소를 지어보이며 유정이를 안아주겠지.
“그래, 그럴 리가 없지.”
나는 그 모습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안도했다.
천천히 숨을 고른 나는 혜연이가 차에서 내리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이런 내 기대와는 다르게 차에서 내린 건, 이 현우.
처제의 남편 한 사람 뿐이었다.
‘대체…….’
차에서 내린 현우는 곧바로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고, 아내는 다시금 차를 몰아 어디론가로 가기 시작했다.
‘……정말로 오피스텔을 얻은 거야?’
다시금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어떻게 하지? 아내를 쫓아야하나? 아니면 처제의 집에 가봐야 하나?’
손발이 덜덜 떨려 와서 무엇 하나 선택할 수 없었다.
아내를 쫓을 수도, 처제의 집으로 들어갈 수도 없었다.
이 일을 어떻게 해야 될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나는 이내 스마트폰을 들었다. 그리고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
-상대방이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삐 소리 후…….
하지만 아내는 내 전화를 받아주지 않았다.
분명히 내 통화를 피한 게 틀림없었다.
배터리가 없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없을 리가 없었다.
‘아니야, 없었던 걸지도 몰라.’
앞머리를 쓸어 올린 나는 현우가 들어간 아파트 입구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이제 어떻게 해야 되는 걸까?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되는 거지?
‘집으로 돌아갈까?’
혹시 집에서 혜연이가 유정이와 함께 날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닐까?
따뜻한 저녁밥을 차려놓고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래,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그래, 분명히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야.”
이리 생각하며 차에 시동을 다시 거는데, 돌연 뚜르르르 하고 벨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고개를 돌려 스마트폰을 바라보니, 액정에 유정이 엄마라는 이름이 떠올랐다.
“아!”
그걸 본 순간, 너무 기뻐서 눈물이라도 날 것만 같았다.
분명히 이걸 받으면 혜연이가 ‘당신 오늘 언제 와요?’라고 묻겠지? 아니, 그 전에 분명히 내 전화를 받지 못 한 이유를 설명해줄 것이다. 그리고 어제 있었던 일도 전부 깜짝 파티였다고 말할 것이고 말이다.
무정자증에 관한 것도, 친자확인서에 관한 것도 전부 다른 사람의 것이라고 말이다.
나는 스마트폰을 들어 올린 다음에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 여보세요.”
말소리가 조금 떨리긴 했지만, 괜찮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재산 어떻게 할 거야?
다짜고짜 재산에 관한 걸 묻는 혜연이의 태도에 나는 그만 스마트폰을 떨어트릴 뻔 했다.
“재, 재산이라니……?”
-우리 이혼해야 하잖아.
딱 잘라 말하는 혜연이의 목소리가 내 가슴을 무너지는 듯했다.
“농담이지? 그렇지?”
-정말이야. 어제 말했잖아. 더 이상 당신하고 살고 싶지 않다고.
“혜연아!”
-구질구질하게 굴지 말자. 우리.
정나미 떨어진다는 말투로 쏘아붙이는 혜연이의 말소리에 순간 머리가 어질어질 거려왔다.
“너 왜 그래? 내가 뭘 잘 못 했는데?”
-…….
이런 내 물음에 혜연이는 그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에 나는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힌 다음에 입을 열었다.
“무정자증 때문에 그런 거야?”
-당신……. 알고 있었어?
놀란 목소리로 되묻는 혜연이의 태도에 나는 직감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내가 정말로 무정자증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어제 봤어. 당신 서랍장에서.”
-…….
이런 내 말에 그녀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수화기 너머로 ‘하아.’하고 한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곧 이어서 혜연이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맞아, 그것 때문이야. 당신, 사실 따지고 보면 남자도 아니잖아.
“혜연아…….”
-씨도 없으면서, 무슨 남자야?
“난……!”
-그러니까 우리 이혼해. 난 더 이상 당신하고 못 살아.
내 말을 중간에 자르며 쏘아붙이는 혜연이의 말소리에 순간 머릿속에서 뚝, 하고 무언가가 끊어졌다.
아니, 좀 더 정확히는 목덜미 쪽에서 화악, 하고 열기가 치솟았다.
“아아악!!!”
나는 그대로 있는 힘껏 소리치고는 스마트폰을 집어던졌다.
하지만 그렇게 했음에도 화가 조금도 풀리지 않았다. 오히려 화가 더 나는 듯했다. 목덜미가 뻣뻣해져 와서는 전신의 피가 머리로 쏠리는 듯했다.
“이 현우!”
다시금 크게 소리친 나는 곧장 차문을 박차고 나가선 아파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 작품 후기 ============================
어서 빨리 복수하고 싶은데, 잘 쓰고 싶단 욕심 때문에 자꾸 썼다 지웠다 반복하네요.
이거 참 큰일이네요. 사실 이것도 마음에 안 들어요!
좀 더 심리묘사를 잘 하고 싶은데...!
부디 너그러운 마음으로 읽어주세요.
이런 종류의 복수물은 한번도 안 써봐서 이렇습니다.ㅠㅠ
유조아。님 : 네. 칼부림했던... 그 남편입니다.
검은공작 님 : 정말인가요? 가, 감사합니다! 감격입니다.ㅎ
여관집아들 님 : 후후, 그건 기본 아닙니까?
papilion 님 : 만약에 제가 이 상황이었다면 진짜... 다 죽여버렸을듯요. 그런 의미에서 주인공은 정말 잘 참고 있는 겁니다.
허니앙쥬 님 : 엌ㅋㅋ 자르다니요! 죽여야죠 +ㅂ+
00005 [내가 사랑했던 아내] =========================================================================
아파트 안으로 들어선 나는 곧바로 엘리베이터를 잡았다.
“아닐 거야…….”
머릿속이 당장에 폭발할 것만 같았다.
부글부글, 속에서 열불이 치솟는 것만 같았다.
애써 냉정해지려고 해도, 도저히 냉정해질 수가 없었다. 오직 내 머릿속에는 현우와 아내에 대한 일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두 사람이 나 몰래 그런 짓을 했다고 생각하면…….
유정이가 사실은 내 딸이 아니었다는 걸 생각하면…….
“아니야! 아닐 거라고!”
크게 소리쳐보지만, 분이 풀리지 않았다.
아무리 좋게 생각해보려고 해도 아내가 내게 했던 말이 귓가에서 도무지 떠나질 않았다.
띵.
[16층]
그 때, 16층에 도착했다는 알림음과 동시에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이에 나는 곧바로 엘리베이터 밖으로 나간 뒤에 처제의 집 앞으로 다가갔다. 그 후, 초인종을 누르자 잠시 뒤에 덜컥 소리와 함께 현우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형님?”
“이 현우, 너 바른대로 말해!”
나는 우악스레 그의 멱살을 붙잡으며 몰아붙였다.
“이것 좀 놓고 이야기 하시죠, 형님!”
현우가 내 손을 강하게 치며 말했다. 중간에 켁켁 거리는 걸 보아하니, 숨이 막힌 모양이었다.
“아…….”
그 모습을 순간, 머리에 쏠렸던 피가 조금을 가라앉았다.
‘그래, 그럴 리가 없어.’
현우에겐 처제가 있었다.
멀쩡한 처제를 놔두고서 현우가 외도를 할 이유가 조금도 없었다.
그래, 그럴 리가 없다.
“아니, 이 밤중에 여긴 무슨 일로 오신 겁니까?”
내 손에서 풀려난 현우는 자기 목을 슬슬 어루만지며 물음을 던졌다.
“너……. 내 아내를 어떻게 했어?”
“아, 혜연이요?”
내 물음에 그는 마치 전부 다 알고 있다는 듯이 피식 웃음을 터트리며 집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왜요? 형님이 알아서 뭐하시게요?”
“너……!”
“아니, 형님이라고 할 필요도 없겠네요. 곧 혜연이랑 이혼하게 될 테니까요.”
현우는 태연하게 소파에 앉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뭐, 보니까 다 알고 오신 것 같은데……. 유정이, 제 딸이란 거 아시나요?”
그 물음을 듣는 순간, 잠시마나 냉정했던 머리가 핑글 돌았다.
“당신도 참 웃긴 사람이네. 어떻게 씨도 없으면서 결혼할 생각을 하는지……. 옛날 사람들이 그걸 보고 병신이라고 부르는 거 아시죠?”
나를 보며 비웃는 현우의 태도에 손발이 다 떨려왔다.
저 새끼가 문제다.
이 일의 원흉이 바로 저 녀석이었다.
“쓰레기 같은 놈……. 너 같은 새끼는…….”
나는 부엌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현관문은 그쪽이 아닙니다. 반대로 가셔야죠.”
내 뒤로 이 현우의 비아냥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그 비아냥거리는 것도 지금이 전부였다.
전부라고!
“죽어, 이 시발새끼야!”
식칼을 집어든 나는 곧바로 소파에 앉아있는 이 현우에게 달려들었다.
“악!”
워낙에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이었기에 현우는 별다른 저항도 못 하고 그대로 가슴께를 찔렸다.
푸욱-, 하고 식칼이 살을 찢고 뼈에 닿는 느낌이 생생하게 전해져왔다.
“꺼억!”
“아, 아아…….”
꿀럭꿀럭, 뿜어져 나오는 새빨갛게 피를 본 순간, 머리가 차갑게 식었다. 동시에 턱! 하고 내 손목을 잡는 현우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반쯤 뒤집어진 눈으로 꺼억꺼억 거리며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아니야, 아니라고!”
당황한 나는 그대로 식칼을 놓으며 뒤로 넘어졌다.
“꺼억, 꺽……. 꺽…….”
이런 나를 따라 현우도 고꾸라지며 연신 꺽꺽 거렸다.
그리고는 잠시 뒤, 거실 바닥에 넘어진 채로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아, 어…….”
그 모습을 본 순간, 머릿속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혀가 굳어서,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고개를 숙여, 내 손을 보니 온통 새빨갛게 물들어있었다.
특히나 현우가 내 손목을 움켜잡던 감각이 생생하게 남아있었다.
“……트, 틀려!”
엉덩이를 질질 끌며 뒤로 물러난 나는 쓰러져 있는 현우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미동조차 않는 걸 보니, 죽은 게 틀림없는 모양이었다.
‘진짜로?’
내가 사람을 죽였다는…….
도무지 믿겨지지 않는 사실에 구역질이 치밀어 올랐다.
이제껏 살면서, 사람을 죽일 거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내가 처제의 남편을…….
“혀, 현우야…….”
나는 조심스럽게 그를 불러보았다. 그러나 그의 대답은 조금도 들리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정신을 놓아버릴 것만 같았다.
이 미친 상황이 너무나도 끔찍해서, 나도 같이 자살하고 싶었다.
“아아!”
나는 그대로 크게 소리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야. 내가 한 게 아니야.’
나는 몇 번이고 이리 생각하며 그대로 집 밖으로 나갔다.
그래, 어차피 집 안에 있던 사람은 나랑 현우뿐이었고, 아무도 못 봤으니까……. 아무도 모를 게 틀림없었다.
나만 입 다물고 있으면 괜찮을 거다.
그리고 설혹 누군가 물어본다고 해도 그냥 장난이었다고…….
“어, 어?”
그게 장난일 리가 없잖아!
엘리베이터에 탄 나는 1층을 누른 뒤에 바닥에 주저앉았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뭐라고 말해야 되는 거지?
혜연이를 어떻게 보지?
이제 더 이상 유정이를 못 보는 걸까?
‘아니야, 내가 잘 한 거야. 그딴 쓰레기 자식……. 죽어야 됐어. 죽어야 됐다고!’
애써 나 자신을 납득시킨 나는 재빨리 몸을 일으킨 뒤에 1층에 선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그 후, 차까지 겨우 걸음을 옮긴 나는 그대로 운전석에 앉은 뒤에 의자 등받이에 등을 편히 기댔다.
“하하…….”
어쩐지 헛웃음이 나왔다.
이게 정말로 현실인 걸까?
아니면 지독한 악몽인 걸까?
뭐가 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시발.”
손으로 얼굴을 가린 나는 진지하게 자살을 생각했다.
============================ 작품 후기 ============================
좀 짧더라도 이해해주세요.
너무 쓰기 어렵네요.
좀 더 지한(주인공)의 심정을 잘 표현하고 싶은데... 이런 종류의 소설은 정말 오랜만에 써보는 거라서 힘드네요.
이 기분... 짐승에게 길들여지다 이후로 처음이네요.ㅜㅜ
시이크으리잇 님 : 칼빵!
월눙 님 : 혜연이도 나름 사정이 있는 건데... 뭐, 용서해주긴 글렀죠
여관집아들 님 : 맡겨주세요!
BlackCats 님 : 혜연이가 지한과 먼저 결혼한 뒤에 현우와 수연이가 결혼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된 겁니다. 사실 혜연이는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 없었습니다.
현우는 그냥 친구로만 여기고 있었죠. 그런데 남편인 지한이 무정자증이란 걸 깨닫고 나선....
허니앙쥬 님 : 뭐... 나쁜 년이란 건 확실하죠.
00006 [내가 사랑했던 아내] =========================================================================
∴ ∵ ∴ ∵ ∴
나는 결국 자살을 선택하지 못 했다.
이따위 삶에 무슨 미련이 남아있다고, 나는 끝까지 목숨을 부지한 채로…….
내가 저지른 살인의 대가를 받기 위해서 경찰서를 찾아갔다.
“사람을 죽였습니다.”
내가 내뱉은 말 한 마디에 모든 경찰들이 긴장한 표정을 짓고 말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무언가 사정이 있다고 짐작한 모양인지 경찰들은 비교적 나를 친절하게 대해주었다.
내가 자수를 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내 목소리에 자포자기한 기색이 어려 있었기 때문일까.
나를 배려해주는 경찰 분들의 태도에 점차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이름이 어떻게 되십니까?”
“강 지한입니다.”
“시체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아파트에……. 아파트에 놔두고 왔습니다.”
이런 내 말에 경찰은 무언가 짐작이 가는 바가 있는 모양인지, 한 명에게 무어라 말해서는 자료를 가져오게 시켰다. 그리고는 곧 원하는 것을 찾아낸 모양인지, 한층 더 조심스러워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혹시 그 사람의 이름이 이 현우 씨입니까?”
“네, 네. 그 사람 맞습니다.”
나는 떨떨 떨리는 입술을 애써 진정시키며 대답했다.
“일단 다행이라고 해야겠군요. 상태가 위중하긴 해도 목숨을 건졌으니까요.”
“네?”
그 말에 나도 모르게 놀란 목소리를 내고 말았다.
“……그, 그럴 리가 없습니다! 제가 분명히 두 눈으로 똑똑히……!”
“진정하세요. 여기에 적혀있는 대로라면 바로 위층에 살고 계신 이웃 분께서 아내분과 함께 발견해서 바로 119에 신고한 덕분에 목숨을 구했다고 나와 있으니까요. 틀림없이 잘 못 보신 게 분명합니다.”
이러한 경찰의 말에 꿀꺽, 침을 삼켰다.
‘사, 살아있다고?’
순간 알 수 없는 무기력감이 내 몸을 억눌렀다.
그럼 나는 도대체 왜 자수한 거란 말인가?
나는, 나는…….
“괜찮으십니까?”
“…….”
내 몸을 흔들며 묻는 경찰의 태도에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 했다.
너무나도 혼란스러워서, 아무런 말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이걸 기쁘게 받아들여야 될지, 아니면 분하게 받아들여야 될지. 아니면 여기서 웃어야 될지, 울어야 될지……. 화를 내야 될지 도저히 분간이 가지 않았다.
분명히 내가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다행스러운데, 그 다행스러움만큼이나 분했다.
이 현우를 죽이지 못 했다는 사실이 내 가슴을 갈기갈기 도려내었다.
‘확실히 죽여야 됐는데…….’
그 놈의 목에 칼을 꽂아야했는데!
마지막까지 확인하지 못 한 나 자신의 소심함이 한심스러웠다.
끔찍할 정도로 내가 싫었다.
“일단 이거라도 드세요.”
그 때, 경찰 한 분이 내 곁으로 다가와 커피 잔을 내밀었다.
“……세상 살다 보면 한번쯤 실수하고 뭐 그럴 수도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너무 그렇게 자책하지 마세요.”
“아니야!”
나는 경찰분이 내민 커피 잔을 강하게 쳐내며 소리쳤다.
“……그런 새끼는 죽어야 됐어! 죽어야 됐다고! 아아…….”
말을 내뱉는 동시에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렸다.
풀썩, 소리와 함께 땅바닥에 주저앉은 나는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고개를 숙여보니, 바닥에 엎질러져 있는 갈색 액체가 눈에 들어왔다.
“죄송합니다.”
그걸 본 순간 나는 사과의 말을 내뱉었다.
눈물이 줄줄 흘러나와서 눈앞이 흐려졌다.
나 자신이 너무나도 미천하게, 한없이 작게 느껴져서 어리석다고 생각됐다.
병신 같은 새끼.
나 같은 건, 그냥 죽어야 되었다.
나만 죽었다면 혜연이도 행복하게, 이 현우랑 살았을 게 틀림없었다. 유정이도 나 같은 가짜 아빠가 아닌 진짜 아빠의 품에 안길 수 있게 될 테고 말이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몇 번이고 사과한 나는 그대로 땅바닥에 엎드렸다.
“일단 일어나세요. 서 순경, 이리 와서 좀 도와줘.”
“네, 네!”
순식간에 두 명의 경찰이 내 몸을 부축해서 일으켜주었다.
“일단 마음 좀 가라앉히세요. 그 다음에 조서를 꾸리겠습니다.”
이리 말한 경찰은 나를 자리에 앉혀둔 뒤에 어디론가 가버렸다. 그리고 이런 내 곁에는 아직 젊어 보이는 청년이 바짝 긴장한 얼굴로 서있었다.
나는 그를 한번 쳐다보고는 곧 다시금 고개를 푹 숙였다.
왠지 이 모든 게 부질없게 느껴졌다.
이게 전부 꿈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몇 번이고 머릿속으로 되뇌었다.
“형부!”
그렇게 몇 번이고 머릿속으로 현실을 부정하고 있는데, 돌연 저 멀리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거기에는 처제와 한 명의 낯선 사내가 서있었다.
그 둘은 순식간에 내 곁으로 다가와서는 입을 열었다.
“……어떻게 된 거에요, 형부?”
“처, 처제……. 내가, 내가…….”
“형부, 엉엉. 엉.”
눈물보를 터트리는 처제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루 말할 수 없는 죄책감이 밀려왔다. 틀림없이 현우랑 행복하게 잘 살고 있었을 텐데, 내가……. 아아, 나는 도대체 무슨 짓을 벌였다는 말인가?
“일단 진정하세요, 부인.”
“하, 하지만……!”
“일단 일어나세요. 이 다음부턴 제가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이리 말한 남자는 처제를 내게서 떨어트려놓더니, 곧 진지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일단 제 소개부터 해야겠군요. 저는 김 우빈이라고 합니다. 부인과 함께 이 현우 씨를 발견한 사람이죠.”
그 말을 듣는 순간 손발이 벌벌 떨려왔다.
이 사람이 현우를 발견한 탓에, 이 현우가 살 수 있었던 것이었다.
이 남자만 없었다면…….
‘아니야.’
틀리다.
이 남자가 아니었더라도 처제가 발견해서 현우를 살려냈을 게 틀림없었다.
곧바로 마음을 추스른 나는 이내 입을 열었다.
“강 지한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강 지한 씨.”
이 말과 동시에 내게 손을 내미는 남자의 태도에 나는 잠시 그를 쳐다보았다.
“……악수입니다. 서로 소개를 했으면 악수를 해야죠.”
이 남자, 제정신인 걸까? 나는 덜덜 떨리는 입술을 꾹 억누르며 그를 쳐다보다가 이내 손을 내밀어 그의 손을 맞잡았다. 그러자 순간 더없이 따스한 온기가 느껴졌다. 뭐라고 할까, 이루 말할 수 없는 든든함 같은 것이 느껴졌다.
“좋습니다. 그럼 본론으로 넘어가죠.”
이 말과 동시에 그는 내 손을 놓으며 말을 이었다.
“……왜 이 현우 씨를 찌르신 겁니까?”
“그, 그걸 왜…….”
“부인께서 대답을 원하고 계시니까요.”
이리 말하며 처제를 보여주는 남자다. 이에 내가 처제를 바라보자, 처제는 눈물로 그렁거리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내가 이유를 말해주길 원해했다. 이에 나는 잠시 입술을 꾹 다물었다가 이내 천천히 입술을 벌렸다.
“현우가 제 아내와 바람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그, 그 이가요?”
처제는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모양인지, 더없이 크게 놀란 목소리로 내며 내게 물음을 던졌다.
“진정하세요, 부인. 아직 말이 다 안 끝나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일단 다 들읍시다. 그리고 부인도……. 음, 그렇군요. 이건 지한 씨도 아셔야 될 것 같군요.”
이리 말한 남자는 나와 시선을 마주치며 입을 열었다.
“……지한 씨는 그 동안 부인이 이 현우 씨에게 폭행당했다는 걸 알고 계십니까?”
“네? 처, 처제가요?”
이번에는 내가 크게 놀란 목소리를 내고 말았다.
“그렇습니다. 그 동안 부인은 이 현우 씨에게 이혼을 이유로 온갖 폭행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얼추 들어보니, 이게 다 이 현우 씨와 지한 씨의 아내 분이 만남을 가지고 계셨기 때문에 벌어진 일 같군요.”
“…….”
그 말에 내가 재빨리 처제를 바라보자, 처제는 남자의 말이 모두 사실이라는 듯이 고개를 떨어뜨린 채로 어깨를 가늘게 떨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예지몽의 주인공이 등장했군요.
흠, 풀어나가는 게 참 난해하네요.
월눙 님 : 여기까지도 아시는 내용일겁니다. 대화는 하니까요
여관집아들 님 : 그렇습니다. 죽음보다 더 한 걸 선사해줘야죠
RE:SET 님 : 전작을 한번 보시는 게 좋습니다.
빙뢰륜 님 : 아뇨, 이어지는 겁니다. 예지몽 결말 부분부터 이어지니까요
나나나나자유로와 님 : 그야 당연히 처절하게 복수해야죠!
00007 [내가 사랑했던 아내] =========================================================================
“미안해, 처제……. 내가, 내가 제대로 처신하지 못 해서…….”
순간 처제에 대한 미안함이 물밀 듯이 차고 들어왔다.
내가 혜연이의 마음을 제대로 헤아렸다면……. 적어도 내가 무정자증이란 병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기라도 했다면 혜연이와 어떻게든 말로 잘 풀어 봤을 텐데 말이다.
적어도 이런 결과는 가져오지 않았을 게 틀림없었다.
“아니에요, 형부. 형부 탓이 아니에요.”
“미안해, 처제. 정말로 미안해.”
“형부…….”
거듭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내 말에 처제는 급기야 눈물을 보이며 내 몸을 꽉 끌어안아주었다.
“……전 정말로 괜찮아요. 괜찮아요. 그러니까 그러지 마세요.”
“…….”
다정하기 짝이 없는 처제의 목소리에 울컥 눈물이 쏟아졌다.
대체 어쩌다가 일이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나 때문에 처제가 남편에게 폭행을 당하고…….
“일단 진정하세요. 부인도요.”
그 때, 남자가 조심스럽게 나와 처제를 떼어놓으며 입을 열었다.
“……강 지한 씨라고 하셨죠?”
“네, 그렇습니다…….”
“아내 분과는 어쩌다가 이렇게 된 겁니까?”
질문을 받는 순간, 말문이 턱 하고 막혀왔다.
“…….”
이걸 어떻게 말해야 될지, 쉬이 감이 잡히지 않았다.
“대답하기 힘드시다면 이야기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좀 있다가 강 지한 씨의 아내 분을 보러가기로 약속이 되어있으니까요.”
“혜연이한테 말입니까?”
혜연이를 보러간다는 말에 순간 마음이 다급해졌다.
“일단 진정하세요.”
“하, 하지만……!”
심장이 너무나도 빠르게 뛰어서, 순간 나도 모르는 사이에 터져버리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지한 씨!”
“아……!”
순간 내 어깨를 꽉 하고 붙잡는 남자의 손길에 천천히 이성이 되돌아왔다.
“진정하세요. 아직 이야기가 안 끝났습니다.”
“…….”
이러한 그의 말에 나는 얌전히 자리에 앉았다. 이에 그는 안도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입을 열었다.
“개인적으로 저는 지한 씨의 아내 분과 만나서 따로 이야기를 듣기 전에 강 지한 씨의 이야기부터 듣고 싶습니다. 이 일이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인지……. 최소한 부인도 알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 말을 듣고 보니 처제는 아무것도 모른 채 남편에게 이혼을 이유로 폭행을 당하며 살아왔다.
그렇게나 착하고 성실한 처제인데……. 뭐가 아쉬워서 남편에게 폭행을 당하면서…….
순간 이루 말 할 수 없는 미안함이 밀려왔다.
“제가…….”
나는 처제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제가 무정자증을 앓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말과 동시에 처제의 얼굴에 경악 어린 표정이 서렸다. 반면에 남자는 이 모든 것을 마치 다 알고 있었다는 듯이 담담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어쩌면 나를 배려해주는 차원에서 감정을 억누르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아내 분께선 그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네……. 혜연이가 먼저, 저보다 먼저 알고 있었더라고요. 저는 얼마 전에 알았습니다.”
이 말에 남자는 침음성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아내 분께서 이 현우 씨와 만남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은요?”
“그것도 얼마 전에 알았습니다.”
“당혹스러우셨겠군요.”
“…….”
그는 이런 내 심정이 이해간다는 듯이 무척이나 안타까워하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하지만 그는 죽어도 내 심정을 이해하지 못 할 것이다.
이건 오직 당사자만이 알 수 있는 감정이었다.
평생, 그 누구도 내 감정을 이해해줄 수 없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사정은 얼추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하나 더 묻겠습니다.”
남자는 나를 똑바로 마주 바라보며 물음을 던졌다.
“……강 지한 씨는 어떻게 하고 싶으십니까?”
이 물음에 나도 모르게 움찔 몸을 떨고 말았다.
어떻게 하다니…….
“전…….”
다시 예전처럼 혜연이와 유정이가 있는 삶을 돌아가서.
‘아니야.’
과연, 내가 예전처럼 행동할 수 있을까?
혜연이와 유정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아니.
그럴 수 없다.
이미 그 둘은 더 이상 내 가족이 아니었다.
“부인, 잠시 먼저 나가주시겠습니까?”
“하지만…….”
“잠깐이면 됩니다. 나가주세요.”
그 때, 남자가 단호한 목소리로 처제에게 부탁했다. 그리고 그 부탁에 처제는 잠시 나와 남자를 번갈아보더니, 곧 어쩔 수 없단 표정을 지어보이며 먼저 경찰서 밖으로 빠져나갔다.
“……강 지한 씨, 편하게 이야기해주세요.”
이리 말한 그는 무릎까지 꿇어가며 나와 시선을 똑같이 맞췄다.
“설마 이대로 아무것도 안 하실 생각이십니까?”
“저는…….”
“강 지한 씨, 지금 당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을 그대로 말해주세요. 그러면 제가 어떻게든 도와드리겠습니다.”
이 말과 동시에 내 눈동자를 빤히 쳐다보는 남자다.
그 시선이 너무나도 뜨거워서, 그리고 그 속삭임이 너무나도 달콤해서……. 나도 모르게 그만 복수라는 단어를 입에 담을 뻔 하고 말았다.
‘복수라니…….’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었다.
“……복수를 원하지 않으십니까?”
그 때, 남자가 다시금 말했다.
“원하신다면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어, 어떻게요?”
나도 모르게 그만 방법을 묻고 말았다. 그리고 그 물음을 들은 남자는 옅게 웃음을 터트리며 입을 열었다.
“간단합니다.”
이 말과 동시에 그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을 이었다.
“……이 현우, 유 혜연. 그 두 사람을 사회에서 완전히 매장시켜버리면 됩니다.”
그는 나를 내려다보며 너무나도 상냥하게, 그리고 다정하게 속삭였다.
============================ 작품 후기 ============================
아무래도 소설 특성상, 이 현우에 대한 이야기보다 유 혜연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이 나올겁니다.
뭐, 이 현우 같은 경우에는 사회 매장이 쉬우니까요.ㅎ
halem 님 : 저도 흥미가 도는 소재이긴 하지만, 얼른 완결내고 하폰 전기 마저 쓰고싶네요.ㅎ
여관집아들 님 : 쓰기 어려워요!
검은?
[출처] [펌]내가 사랑했던 아내 ( 야설 | 은꼴사 | 성인사이트 | 성인썰 - 핫썰닷컴)
https://hotssul.com/bbs/board.php?bo_table=pssul&page=8&wr_id=44542
[이벤트]이용후기 게시판 오픈! 1줄만 남겨도 1,000포인트 증정!!
[재오픈 공지]출석체크 게시판 1년만에 재오픈!! 지금 출석세요!
[EVENT]04월 한정 자유게시판 글쓰기 포인트 3배!
- 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