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머니4-1
4-부 첫 경험- 2
그런데… !!??
더욱 기가 막히는 꼴은 그녀는 지금 겉치마 속에 아래 밑이 타 개진『속 고쟁이』만 입고 있는 거야.
그 당시의 여자들은 대부분 속옷으로 지금의 팬티라는 것을 입지 않고 속치마에 속바지만 입고들 살았는데… 그 속바지라는 것이 아래가 확 타개 지도록 만들어져 있어서 여자들이 길을 가다가도 아무데서고 앉기만 하면 엉덩이를 까 내리고 소변을 볼 수가 있었던 거야.
그토록이나 멋쟁이고 세련된 내 엄마도 한복을 입으실 때면 언제나 치마 속에 속치마를 입으시고 그 안에다는 그 속 고쟁이만을 입으시고 팬티는 안 입으시는 걸… !!??
물론 양장을 하실 때에는 요즘의 팬-티라는 것을 입으시지만… !?
이런 옷을 우리 「언년이」가 입고 있었던 거야.
그래서 내가 그녀의 밑에 깔려서 몸부림을 치는 동안 내 얼굴이나 입 코등이 그녀의 맨 볼기짝에 깔려서 짓이겨지고 있었던 모양인거야.
그러는 동안에 내 얼굴의 입이나 콧잔등이가 그녀의 아래 보지구멍이나 엉덩이 아래의 항문에 깔려서 짓이겨지고 있었던 거지… 그러니 내가 숨이 막힐 수밖에… !?
그 대신 입을 벌리고 숨을 쉬려고 하면 무언가 까실까실 한 터럭이 걸리적거리며 미끌 미끌 내 입술을 자극하고 있는 것을 느끼고 있었던 거지.
흥분되었던 마음이 가라앉자「언년이」는 자신의 그런 모습을 발견하고 깜짝놀라면서 타고 앉았던 내 머리에서 내려앉으며 무안한 듯 옆으로 돌려 잡아 앉았어.
나도 고개를 돌이질 하며 일어나서 반대로 돌아앉았지 .
그리고 겁에 질린 채「언년이」를 돌아다보지도 못하고 또 붙들릴 까라는 듯이 재빨리 도망쳐서 안채로 달아나 버린 거야.
대장… !! 내가 좀 이상한 이야기를 하나할 께… !!
『속 고쟁이』… !!??
이 옷에 대해서는 옛날부터 전해오는 슬픈 전설이 있어 왔어…
어느 야담과 실화라는 잡지에서 읽은 이야기를 잠시 소개 해 볼게… !!
지금부터 육 칠 백 년 전의 이야기라는 거야 ….
그때는 우리나라 인「고려(高麗)」가「몽고(蒙古)」라는 나라의 지배를 받고 있었던 시절이었대. 그 당시 몽고군의 침략은 근 삼십 여 년에 이르는 대 전란으로써 그 당시의 임금은 왕궁을「강화(江華)」로 옮기고 장기간 항전하였으나 본토(本土)는 그야말로 쑥대밭이 되고 말았었대. 그다음의 임금은「몽고」와 강화조약을 맺고 나서야「개경(開京)」으로 환도하게 되기는 했었다는 데… !?
그러나 이때부터 몽고족(蒙古族)이 세운「원(元)」나라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는 것이지.
단순히 속국으로써 지배를 받는 그런 대우가 아니라 임금은「원(元)」나라의 황실여인과 결혼을 하여야 하고 백성들은「원」나라 군인이나 관리들의 종자(種子)를 받아서 그 나라와 혈통을 같이하는 민족 대혼합의 역사적인 정책에 휘말리는 치욕의 세월을「고려(高麗)」제 31대「공민왕(恭愍王)」때 까지 자그마치 80 여 년이나 걸쳐서 실행을 하며 살아오고 있었다는 거야.
그 당시 온 나라 안에 있는 군인이라고 하면 그 모두가 몽고 군 들 뿐이었었대…
왜냐하면 고려조의 군인들은 전쟁에서 졌기 때문에 강제로 무장해제를 당해서 군인으로써의 역할을 못하게 되었던 것은 당연한 사실이었겠지 … .
그래서 나라전체는 몽고군인 놈들의 세상천지가 된 셈이었다는 게야.
또 몽고군인 놈들은 전쟁을 하는 동안 자기네나라에서 수만리 떨어진 타국에 와서 수년간이나 걸쳐 목숨을 걸고 싸워서 승리를 하는 동안 그들은 모두가 여자에 대해서 굶주릴 대로 굶주린 상태가 아니겠는가 말이야 ….
그래서 놈들은 지나가는 여자가 되었든 여염집에 들어앉아 있는 여자가 되었든지 간에 여자만 보게 되면 닥치는 대로 노소를 가리지 않고 겁탈을 하고 다녔다는 거래.
그러나 어느 누구도 이놈들의 행패를 항의하거나 시비하는 사람도 없었고 또 겁탈을 당한 여자도 어디 가서 하소연 할 수도 없었던 시대였다 는 거지.
그러기 때문에 여자들은 그들 스스로가 놈들에게 겁탈을 당하지 않으려고 입고 있는 치마 속에다『단속곳』이라고 하는 두툼한 옷을 몇 겹씩 껴입고 다니게 되었던 거래.
지금으로 말하면 여자의 갑옷이라고 하는 콜-셋이라고 보면 틀림없을 꺼야.
그렇게 되자 놈들은 여자를 잡아 눕혀놓고 겁탈을 하려고 해도 그 옷이 걸려서 쉽게 일을 치를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여자들이 반항을 하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하게 되고 낭패를 당하는 일이 잦아지게 되자 결국은 또 성질 급한 몽고 놈들의 행패로 우리나라 고려여인들이 목숨을 잃거나 엉뚱한 인명피해가 늘어나게 되었던 거래.
그래서 결국 몽고와 강화조약(江華條約)을 맺으면서 임금은 세상에 두 번 다시 볼 수 없는 민족말살(民族抹殺)정책인 칙령(勅令)을 발표하게 까지 이르게 된 거래.
- 모든 고려의 여인들은 이후부터 치마아래에『단속곳』을 입으면 안 된다…
그리고 고려여인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몽고 군인이 원하기만 하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말고 즉석에서 그 군인의 청을 들어주어야 하며 또 그 청을 쉽게 들어줄 수 있도록 항상 속옷의 밑이 타개 진『고쟁이』만 입고 다녀야 한다… ! -
라고 하는 전 세계 어느 역사에서도 있을 수 없는 그런 기막힌 칙령이 공포되게 되었다는 거야.
「고쟁이」라는 옷은 그 당시에 처음으로 고안되었다고 하는데 이 옷은 여인들이 입는 치마 아래에 받쳐 입는 바지 옷으로서… 그 바지 아래 여자의 가랑이 쪽 밑이 타개 져서 여자가 앉거나 쪼그리기만 해도 그 아래가 훤히 보이도록 뚫어져 있게 만든 옷으로서 직접 속살이 바깥으로 나오고 그 속살들을 아무 때나 몽고 군인들이 만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해서 고안된 옷이었다는 게야.
그래야만 성질 급한「몽고」군인들이 아무 데서나 또 아무 때나 여자를 겁탈하기 쉽고 편하게 사내놈들의 욕심을 채울 수 있도록 하고자 해서 마련한 조치였다는 거래.
그렇게 되고 보니까 고려의 여인들은 언제나 치마 밑에는 홋 속치마를 입어야 되고 또『고쟁이』를 입음으로써 아무 데에서나 몽고군인의 욕정을 처리해주어야 하는 임무를 가지고 살게 된 거래.
그런 칙령이 공포되고 나서부터는 몽고 군인들은 일부러 라도 아무 집에나 들어가서『고쟁이』를 입고 있나 안 입었나를 조사한답시고 여인들의 치마를 들어 올리게 하고 엎드려서 아래 밑구멍을 내놓도록 하는 진풍경들이 도처에서 벌어지기도 했었다는 거래.
심지어는 가령 고려의 높은 벼슬을 하는 재상이 그의 안방에서 자기아내와 함께 부부간의 잠자리를 보전했다 할지라도 지나가던 졸병인 몽고 군인이 그 안방에 들어오면 부리나케 재상인 남편은 자리를 비켜주어야 했고… 그러면 그 여인은 예 의 그『고쟁이』를 찾아 입고서 칙령을 어기지 않았다는 표시로 그 몽고군인 놈 앞에서 치마를 걷어 부친 채 고쟁이 아래 타개 진 곳 안의 부끄러운 속살을 보여 주어야 했다는 거래.
그리고는 밤이 새도록… 또는 며칠이고 간에 그 몽고 군인이 돌아 갈 때까지 그 집안 식구는 물론 그 재상까지도 몽고와 고려의 인종교배(人種交配) 행사를 해야 한답시고 그 집안의 가장 귀하신 안방마님이거나 며느리까지를 다 불러놓고 한방에서 놈들의 씨앗을 받아서 수태(受胎)가 될 때까지에 봉사를 해야만 되었다는 거였대.
세상에 두 번 다시 있을 수 없는 칙령이요 치욕적인 제도 였 던 거지.
실지로 어느 재상집에서는 밤에 자기조상님의 제사를 올리기 위해서 멀리 출타해있던 아들내외와 딸들까지 불러다 놓고 제사를 지내고 있던 중에... 마침 한밤중인데도 그 집옆을 지나가던 몽고 군인 두어명이 집안에 불이 환하게 켜져있는것을 보고 그 집으로 들어가서... 아닌밤중에 홍두께라더니...
그날 부터 그 재상집은 대문을 닫아걸고 몇날 며칠을 그 몽고군인 두놈을 대접해야만 했다는 이야기가 실지로 전해오고 있어... 그 후에 그 재상집 며느리는 자진을 하고 말았다는 소문이었지만... !!??
소위 권력을 가졌다는 높은 사람들까지 이럴진대 하물며 일반 서민이나 상민의 집안에서는 말 할 것도 없었겠지.
그런 제도 하에서 오랜 세월이 흐르게 되자 고려여인들의 성(性)에 대한 풍습들이 문란(紊亂) 하게 바뀌게 되었고 그 다음 너 나 할 것 없이 고려의 여인들은 한 번씩 또는 몇 번씩의 몽고족 남자들에게 겁탈 아닌 수청을 안 들어 준 여자가 없게끔 되었던 거래. 심지어는 몽고군인의 씨를 받아서 수태를 하는경우라면 경사가 났다고 할정도였다는 전설이 있었어.
종래에는 여인들 간에도 몽고족 남자들에게 몇 번 또는 몇 명의 몽고족 남자와 관계를 갖고 있느냐가 상류사회 여인으로써 행세를 할 수 있느냐를 결정하게 까지 되고 말았대.
사회의 풍토와 유행이 이토록 변해가자 백성들의 복장까지도 몽고족 흉내를 내어서 몽고 복장의 옷들을 뻔뻔스럽게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우리나라의 옛날부터 내려오는 미풍양속들은 차차 사라져 가게까지 된 거였대.
그 후「공민왕」대에 이르러 국권을 다시 찾고 몽고 놈들을 몰아내기까지 백 여 년에 걸쳐 그들이 우리나라에 미친 영향은 이루 말로써 다 표현할 수가 없을 정도라는 거지.
이런 세월이 자그마치 백 년간이나 지나다 보니까 우리나라 국민의 혈통 속에는 모두가 몽고족의 피가 흐르게 되고만 결과가 되었대.
물론 역사학자들은 이런 사실을 구태여 강조하려고 는 안 하고 있지만 …
믿거나 말거나 나도 야담과 실화라는 잡지에서 읽은 내용인거야.
이런 슬픈 역사 속에서 생겨난 옷이 바로「속 고쟁이」라는 옷인 게야.
물론 그 당시의 나나「언년이」는 속 고쟁이라는 옷의 내력이나 슬픈 역사에 대하여 전혀 아는바가 없었지만 말이야…
대장 … !
그때서야 밖에 나가셨던 어른들과 일꾼들이 두런두런 돌아오기 시작했어.
- 「동훈」아 ! 밖에 나가지 말아라 … 어쩐지 분위기가 이상한 것 같다… ! -
할머니께서 나를 보시자 마 자 말씀하셨어.
아마도 할머님은 내 얼굴에 아까「언년이」한 테 맞아서 부어 올라있는 손바닥자국을 보지 못하신 모양이셨어.
하기는 밖은 이미 어둑어둑 해지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한 거지.
나는 당연히 아까「언년이」한테 얻어맞은 분풀이로 어른들한테 자초지종을 고자 질 했어야 했었겠지… !?
그런데 웬일인지 나는 천연덕스럽게 마루에 걸터앉아 있으면서 아무소리도 하지 않고 있었던 거야.
평소의 내가 아니었어 …
나는 본능적으로 남자가 여자한테 얻어맞는다는 것이 어쩐지… 좀 그런것 같다는 생각이 든 거지… ??
그리고 또 내 귓속에는 아까「언년이」가 나한테 했던 말이 자꾸만 맴돌고 있는 거야.
‘ 이제 세상은 바뀌었어 … 내 말 한마디면 네 아버지고 할아버지고 다 죽게 된다는 걸 알란 말이야 … ! ’ 하던 그 말소리 말이야…
또 아까 나를 깔고 앉아서 짓 이겨대다가 흥분이 갈아 앉고 난 뒤에 옆으로 비켜 앉으며 나를 바라보며 표정 짓던 그녀의 그토록 이나 낭패해 하던 눈빛이 내 머리 속에 떠 오른 거야. ‘ 나는 이제 죽었구나… ’ 라고 말하는 듯한 후회와 공포에 질려 있는 그녀의 눈 빛 을 보면서 나는 도망쳐 나왔지만… !!??
아무리 아까는 흥분해서 세상이 바뀌었다고 큰 소리를 치긴 했지만 막상 현실적으로 자기나 자기엄마는 이 집에서 쫒 겨 나면 당장 갈 곳이 없는 것 아닌가 말이야… !?
그녀는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 ? 하는 생각이 자꾸만 머리에 떠올라서 나는 어른들한테 고자질을 할 수가 없었어.
고자질은커녕… !? 나는 어두워지는 하늘을 바라보면서 저녁 내내「언년이」걱정만 하고 있었어.
밤도 자정이 넘어 가고 있었어… .
저녁도 안 먹고 이렇듯이 늦게 까지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
아직은 집안 식구 누구도 그녀의 부재를 눈치 채지 못하고 있는 모양이야.
그러나 나만은 그녀가 걱정이 되어서 못 견디겠는 거야.
혹시나 정말 그녀가 말한 대로 세상이 바뀌었다고 다른 데로 가 버렸나… ?
저「공주」에 있다는「삼식이」한테 아주 가 버린 건 아닐까… ?
정말 그렇게 가버렸다면 어쩌나… ??
「언년이」엄마는 지금 안채의 찬 모 방에서 세상모르고 자고 있을 텐데…
그녀의 딸이 없어졌다는 걸 알게 되면 어떤 얼굴을 할까 … ?
별별 생각을 다 하면서 나는 안절부절 못하며 애 닳아 하고 있는 거지 …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동구 밖까지 나가 돌아보면서 그녀를 찾고 있었어.
[출처] 내 어머니4-1 ( 야설 | 은꼴사 | 성인사이트 | 성인썰 - 핫썰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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