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그늘

기억그늘4
지금은 이름만 동(洞)으로 남아 있는, 흔적이나 거리도 완전히 없어진지 오래된. 엄마는 어쩌다 오랜만에 집에 들어온 아빠랑 큰소리로 싸우고 했는데 그나마도 오던 어린이날 이나 추석, 크리스마스, 설날에도 아빠가 들어오지 않아서 궁금해 했는데 그게 엄마랑 아빠가 이혼한 때문이라는 안 것은 그로부터 오랜시간이 지나서 였습니다.
그러니깐 쌍팔년도 올림픽이 끝난지 얼마 안되서 금메탈 딴 선수들이 연일 신문이나 방송 뉴스에 나라를 구한 영웅처럼 묘사되기까지 할 때였는데 엄마는 시골인지 도시인지 모를 지방의 작은 소도시 이름모를 버스 정류장 도로변에 ‘처갓집호프양념치킨’ 가게를 오픈했습니다.
물론 지금처럼 프랜차이점 상표권이나 료열티가 엄격하지 않을때여서 처갓집인지 처가집인지 구분하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그때가 그니깐 내가 초등학교엘 들어가기 전이라는건 확실히 기억합니다.
도로변 버스정류장 뒤라 자리도 좋았고 가게가 1층에 슬라브 구조에 뒷문으로 가면 마당이있고 주인집 옆에 방 2개에 부엌까지 있는 방까지 세를 얻어 살게 되었습니다.
엄마의 선택은 나를 캐어하려면 어쩔수 없이 직장생활보다는 자영업이 나았을지 모릅니다.
그 처갓집 양념 통닭집은 오후12시 즈음 문을 엽니다.
장도보고 술도 주문하느라 일찍 여는거지만 나는 절대 가게에 출입할수가 없었습니다.
“애들 오면 안돼는 곳여!”
아랫입술을 깨물며 엄하게 말하는 엄마말에 나는 그 호기심 천국인 호프집을 갈수 없었습니다. 어쩌다 정말 어쩌다 엄마가 없을때 들어갈수 있었는데 정말 그때는 그곳이 그렇게 신기한 곳일수 없었습니다.
일단 들어가는 입구 출입문부터가 보물섬에 나오는 그 애꾸눈 선장의 선술집 분위기입니다
거기다 들어가면 입구위에 있는 나무 독수리 목각인형이 있고 왼쪽 카운터 위에는 목각의 인디언 추장 얼굴이 메달려 있습니다. 일단 그 두 목각 조각에서 나는 흥분했거든요.
왼쪽은 카운터인데 뒤에는 멋있는 양주 술병들이 있고 그 카운터 옆쪽으로는 주방이 있습니다. 주방과 카운터는 검은 커튼이 쳐져 있고 그 사이에 고개를 숙이고 허리를 구부려 홀로 나가는 거기도 커튼이 쳐져 있는 통로가 있습니다.
홀 오른쪽은 칸막이가 쳐져있고 4명씩 앉을 수있는 있는 쿠션이 있는 긴의자가 있습니다. 좁게는 6명이 앉아도 되는 의자입니다.
카운터쪽 안쪽에도 칸막이가 있는데 그래서 총 5테이블이 있습니다.
숨바꼭질 하기도 좋고 그 맥주냄새, 담배냄새, 그리고 찌든 기름냄새 어느것 하나 내 호기심을 자극하지 않는게 없습니다.
카운터는 두계단처럼 층이 있습니다 물론 안쪽은 물건을 수납할 수 있습니다.
카운터 안쪽과 주방과 통로는 어른이 간신히 비켜갈 지나갈 정도였고 카운터 안쪽에는 전화기와 작은 오디오가 있었고 바깥쪽은 생맥주 기계와 잔이 세줄로 쌓여 있습니다.
엄마가 키가 작았습니다.
그래서 일어서도 카운터에 거의 목만 보일 정도입니다.
다행히 홀로 나가는 카운터 밑으로 다니기는 편해보였습니다. (치킨집 묘사가 힘들군요 아 투다리! 그게 쉽군요)
하여간 그날은 봄은 아니고 그렇다고 겨울도 아니고 또 그날은 비도 아니고 그렇다고 안개도 아닌 또 그날은 한 낮부터 밤도 아닌데 어두웠고 TV에서 만화영화를 보려는데 아직 시간은(오후5시부터 했던가?) 않됬고 점심먹고 가게에 간 엄마를 만나야 과자라도 사먹게 돈을 달라고 하는데 우연히라도 만나야 되는데 가게는 불이 켜진거 같은데 엄마는 않보이고 그래서 가게 옥상으로 가는 계단을 올랐습니다. 몰론 옥상이라고 해봐야 주인집 장독 몇 개가 다고 그나마 치킨집 간판에 가려지지만 지나가는 사람과 차들이 보이는 만약 엄마가 가게 문을 열고 나오면 부를 작정이였습니다. 그런데 계단 중간쯤 가게 환풍기 구멍이 두 개 있습니다. 거기가 주방쪽이거든요 다만 허리를 숙이고 약간 고개를 엇비스듬하게 숙이면 가게안 주방쪽과 카운터가 보입니다.
물론 머리만 보이지만 물론 환풍기가 돌아가면 아무것도 않보이지만 맛있는 또는 매쾌한 튀김 냄새만 나지만 그런데 그날은 환풍기가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날씨가 안 좋아서가 아니라 손님이 없어서 인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시끄러워서? 깜빡 잊었을 수도....)
나는 엄마를 부를 양으로 고개를 숙이고 환풍기 날개를 손으로 돌리면서 엄마를 찾았습니다. 잔잔한 음악 소리 사이에서 환풍기 바로 밑 카운터에 서있는 엄마를 쉽게 찾았습니다. 하지만 엄마를 부를려다 멈췄습니다
배달하는 삼촌이 카운터 바닥에 목욕탕 의자에 다리를 길게 뻗고 앉아있었고 그 삼촌 다리사이에 엄마가 목을 길게 빼고서 허리를 숙이고 엉덩이를 뒤로 빼고 서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왼쪽 홀쪽과 오른쪽 출입문쪽을 두리번 거리며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뭐가 이상하냐구요?
그건 머리가 노란 배달삼촌이 엄마의 뒤에 앉아서 두손이 엄마 치마속에 있었습니다.
엄마는 무릅까지 내려오는 두꺼운 치마에 앞치마까지 입고 있었는데 그리고 두꺼운 모로된 내복도 입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엄마는 뒤를 돌아보며 삼촌의 손을 빼려고 엉덩이를 흔들고 뒤를 돌아보며 아랫입술을 깨물며 하지 말라는 눈짓을 주지만 그 배달삼촌은 오직 엄마의 흔들리는 엉덩이에만 관심이 있어보였습니다.
그리고 손을 빼기는 커녕 두 손을 깊숙이 치마속으로 더 넣더군요
나는 호기심이 생겨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엄마 치마속 배달삼촌의 손은 엉덩이를 주무르고 있는듯 했습니다.
엄마는 하지말라는 듯 엉덩이를 흔들고 고개를 돌려 삼촌을 눈치주고 손을 뻗어 삼촌 손을 막으려했고 다리를 오므리려고 했지만 삼촌은 별 신경도 안쓰고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급기야는 배달삼촌이 한손을 빼서 엄마의 엉덩이를 때리자 엄마는 난처한듯 얌전해졌습니다 그리고 아랫입술을 깨물며 애원하는 듯한 표정을 지였습니다.
하지만 다시 배달삼촌의 손은 엄마의 치마속 깊숙이 손은 넣더군요.
그리고는 이번에는 엄마의 두 다리를 벌리게 하고는 손을 깊숙이 넣더니만 무릎까지 무언가를 빠르게 벗겨 내리더군요.
그건 엄마의 낯익은 분홍색 팬티와 내복이였습니다.
엄마는 카운터에 팔둑을 걸친채 고개를 숙여야 했고 배달삼촌의 손은 엄마의 가랑이 사이 깊숙이 넣는것 같았습니다. 그리고는 곧 두 손이 위 아래로 또는 옆으로 흔들더군요
그럴때마다 엄마의 엉덩이도 흔들렸습니다.
그러다 배달삼촌의 손놀림이 더 크자 엄마는 다리를 오므리며 뒤를 돌아보며
“아파”
라고 하는듯했고(목소리는 들리지 않음) 엉덩이를 뒤로 빼는듯 했습니다.
그러자 배달삼촌은 치마속에 다시 깊숙이 손을 넣었습니다. 별일 아닌것처럼 씩 웃어보였습니다.
엄마는 계속해서 아픈듯 뒤를 돌아봤지만 배달삼촌의 행동은 달라진게 없었습니다.
한참 동안이나 배달삼촌의 손은 엄마의 치마속 깊숙이 넣은채 격하게 움직였습니다. 엄마는
그때마다 주저앉을듯 하며 몸을 비비꼬았고 엉덩이를 흔들었습니다.
그때 홀 쪽에서 손님이 부르는 소리가 났고 삼촌은 벌떡 일어나더니 홀에 맥주 서너병과 옥수수튀밥을 한그릇 퍼다 주고는 다시 카운터 안쪽으로 돌아와 입맞춤을 하더군요.
그리고 발목에 내려간 팬티와 내복을 입더니만 삼촌과 위치를 바꾸더니 이번에는 엄마가 삼촌 앞 목욕탕 의자위에 앉고 삼촌 츄리닝을 조금내리고는 배달삼촌의 조지를 꺼내더군요 배달 삼촌은 키를 맞춰주느라 약간 다리를 벌리더니 엄마가 했던것처럼 왼쪽 오른쪽을 두리번거리면서 엄마의 입에 자기 조지를 물렸습니다.
그렇게 배달삼촌은 엄마입에 자신의 조지를 박아댔고 잠시후 엉덩이에 힘을 주고는 발뒤굽을 들고는 몸을 움찔움찔 하더군요
그때까지도 엄마머리를 꽉 잡고 당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참동안 그렇게 있었습니다. 엄마는 삼촌의 조지를 입에 문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나는 엄마가 어떻게 잘못된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잠시후 엄마는 앞치마로 입 주위를 닦더니만 담배를 물고 한모금 연기를 뱉어냅니다. 그리고 피던 담배를 배달삼촌에게 주고는 목욕탕 의자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배달삼촌 옆구리를 쥐어 박더군요
내가 본건 거기까지입니다. 왜 그렇게 잘 기억하는 이유는 생소한 장면이여서도 이지만 그날 흠뻑 젖어서 지독한 감기에 걸렸고 그래서 그날 저녁 온몸이 불덩이처럼 열이나서 잠에서 깨다 자다 했고 엄마는 내 머리에 차가운 수건을 올려주었습니다.
“어딜 돌아다녀 비 쫄딱 맞고? 그러니 감기 걸리잖아”
1년에 서너명씩 배달 삼촌들이 바뀌곤 했습니다. 배달삼촌들은 우리집 내방에서 자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거의 엄마방에서 팬티차림으로 자고 있거나 아니면 팬티도 벗고 자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때 잠깐잠깐의 기억으로 배달삼촌들은 거의 인근 공고에 다니는 삼촌들이여서 나랑 같이 학교에 가는 경우가 많은데 아침 세수하려 화장실 가려다 보면 엄마방에서 배달삼촌은 엄마 다리를 잔뜩 벌리게 하고는 털이 시컴하게 난 그곳에 얼굴을 박고 있었습니다. 엄마는 힘들어 끙끙 앓는 소리를 내었습니다.
엄마는 새벽 2시 다되서 배달삼촌이랑 들어오기 때문에 나는 언제나 자고 있는 엄마를 아침에 보게 됩니다.
하지만 일요일 오전중에는 엄마방에서 배달삼촌이 함께 있는걸 보게 되는데 대게 옷을 벗고 싸우듯이 레스링을 하는듯 했습니다. 물론 엄마는 거의 밑에 다리를 벌리고 있었고 위에 올라탄 배달삼촌은 엄마 양다리를 잡고 구르고 있거나 였습니다
엄마는 끙끙 앓거나 가끔 ‘나죽어 삼촌 천천히’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배달삼촌이 뭘하는지는 알수 없었습니다.
주방에서 T셔츠에 팬티만 입고 설거지를 하는 엄마의 엉덩이 사이를 만진다든가. 찰삭 소리나게 때린다든지, 배달삼촌이 그 시컴한 자지를 빳빳하게 선채로 누워있는데 엄마는 그 삼촌의 입에 다리를 벌리고 쪼그려 앉아 엉덩이사이를 부비던, 배달삼촌 둘이 옷을 벗고 엄마랑 같이 이불속에 있던 그래서 완전히 몸을 그 두 삼촌들에게 맡기던, 서로 입을 맞추고 서로의 자지와 보지를 빨아주던, 두 다리를 완전히 V자로 들고서 잔뜩 벌리더니 엄마는 그곳을 손바닥으로 소리나게 치면서 ‘누가 좃물 줄래?’ 하던 그 많은 장면들을 나는 기억합니다
엄마는 내게 위선적이거나 일부러 감추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때는 나는 사춘기도 아니고 그게 무슨 행위인지 분간을 못할 때였으니깐요.
“니 오늘부터 아빠라 불러라 알았지?”
배달삼촌이 키득키득 웃으며 내게 말하는데 나는 왜라고 묻지도 못했습니다.
그래도 엄마와 배달삼촌간의 거침없는 욕설과 음담패설은 감당하기 힘들었는지도 모릅니다.
남녀간의 벗은 신체의 명칭은 그게 속어인지 비속어인지 모르고 알게 되었고 예를 들면 남자성기가 조지가 자지인지 좃인지 여자의 성기가 보지인지 좃구멍인지 씹구멍인지 엄마와 배달삼촌의 대화에서 알게 되었고 삼촌의 좃에서 나오는 하얀 물이 정액인지 좃물인지 엄마의 보지에서 나오는 하얀물이 보짓물인지 씹물인지 직접 보면서 알게 되었고 일요일 오전 두명의 배달삼촌들이랑 엉켜붙어 하는 모습을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았는데 한명은 엄마 입에 한명은 엄마 보지에 좃물을 싸는 것까지 보게 되었습니다.
엄마 입에 좃물을 싸고 마지막까지 자기 조지를 빨리던 배달 삼촌은 온갖 힘든 인상을 다 쓰면서 침대에서 내려오다가 나랑 눈이 마주쳤는데 하는 말이 “아 씨발 니 엄마 단백질 먹이느라 힘들어 죽것다” 했습니다. 그러자 엄마는 배달삼촌 엉덩이를 소리나게 때리면서 “불쌍해서 좃물 빼줬더니만 뭔소리야” 했습니다
그 두 배달삼촌은 씻고 와서도 다시 엄마 입에 조지를 물렸습니다. 엄마가 두삼촌들이 담배를 물자 자신도 씻고 나오면서 한마디 했다
“뭘 힘든일 했다고 벌써 담배 피워? 좃물있는지 없는지 확인해줄게 이리들 와봐”
삼촌들은 욕을 하면서도 키득키득 웃으면서 축늘어진 조지를 엄마 입에 넣더군요
엄마는 배달삼촌들과 거침없이 솔직하게 모든 말을 했습니다 뭘 감추려고 하거나 이쁘게 말할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삼촌 보지 아파 빨리 싸 혹은 입으로 해줄까?” “보지가 고픈데 누가 빨아 줄거야? 보지물 먹을사람?” “삼촌 좃물 다네 한번 더 빼먹자”“좃물이 적네? 어제 누구랑 했어?”
이루 말할수 없는 말들을 다 합니다
두 삼촌들은 마치 역할분담을 미리 약속한듯 엄마의 위 아래를 서로 맡았습니다. 젖가슴도 둘이 맡아서 한쪽씩 젖꼭지를 빨았고 한명이 엄마 아래 보지를 빨면 한명은 엄마랑 입을 맞췄습니다.
그러다 중학교 들어가기 한달전 나는 그 처갓집호프치킨집에서 아빠 집에 왔습니다. 새엄마를 아줌마라 불렀는데 엄마랑 달라 교양있고 격식을 차리고 에티켓과 예절있는 행동을 해야 했습니다. 그 아줌마가 데리고 온 나랑 동갑짜리 계집애가 있었는데 생일이 다행히 나보다 늦어 오빠라 불렸습니다.
한달에 한번씩은 엄마를 보러 찾아 갔는데 그해 봄이 다 갈무렵 더 이상 치킨집에 엄마는 없었습니다. 뒤 주인집에 물어봤지만 이사갔다고만 했습니다.
그리고 10년이 거의 다될 무렵 아빠는 내게 어디 병원에 가보라고 했습니다.
나는 처음에는 못알아 봤습니다. 엄마는 초췌한 아니 앙상한 모습으로 누워있었습니다.
폐암으로 지독한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고 있었습니다. 온 몸에 퍼진 암세포들로 인해 강한 마약성 진통제가 없이는 한숨을 못잔다고 합니다.
그 피접만 앙상했던 손을 잡고는 나는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왜 그동안 나를 안찾았니? 엄마가 엄마 같지 않아서?”
나는 고개를 저였습니다.
“니 아빠랑 헤어지고 나서 니 아빠가 양육비를 주기로 했는데 한푼도 안주더라 연락도 없고 그래서 어떡하겠니 너랑 먹고 살아야지 그래서 치킨집을 했어 그런데 배달이 문제야 일주일이 멀다하고 오토바이를 도둑맞고 고장나고 배달 나간애들이 그냥 타고 나가서 소식이 없는거야. 처음에는 경찰에 신고도 했는데 신고하면 뭔 소용이야 아무 연락도 없는데 그때만 와서 누가 타고 나갔냐? 묻고는 가버려 그리고 한참 지나서 전화하면 학생이 모른다고 하고 미성년자라 절도죄가 성립이 안된다고 하고 그래서 해답을 찾은거야 애들이 원하는건 어른 대접이야 성인으로 대해 달라는거지 담배를 피워도 되는 그리고 (엄마는 한손으로 동그라미를 만들고 한손으로 그 동그라미 속에 중지를 넣었다 뺏다를 하더군요) 이거야
뭐 내가 신사임당이니? 춘향이니? 지금이 조선시대니 고려시대니? 내가 정조지키고 아랫목에서 삸바느질하고 살았어야 하니? 나는 먹고 사는 문제가 당장 발등에 불이였어. 그나마 니 아빠가 중학교 들어가기전 너 데려가서 그나마 내가 풀려날 수 있었어. 그 배달하는 애들이 엄마 따먹었다고 해서 속상했니?“
내가 고개를 젓자 다시 말을 이었습니다.
“그럼 지들 아빠가 엄마를 따먹어서 지들이 엄마 보지에서 나온거야? 따먹기는 뭘 따먹어? 지들 엄마가 중학교때부터 아니면 고등학교때부터 숫자도 못셀정도로 많은 남자들 좃물을 받고 마지막 남자 좃물 받아서 태어난줄 모르고 그리고 대게 여자가 다리를 벌려준거야 하도 불쌍하게 굴어서, 그냥 좃물 한번 쌀려고 속보이는 짓하고 애걸하고 좃물 쌀려고 남자들 엉덩이 흔드는게 얼마나 우스워 보이는줄 알아? 너도 여자 따먹었다고 하니? 여자가 다리를 벌려 준거라고 생각 해본적 없니? 여자가 보지를 준거야”
비몽사몽 혼수상태였다가 마약성분의 주사를 맞으면 엄마는 그간 이야기들을 아무렇지 않게 조용히 말했습니다. 내가 무슨 오해하는 거라도 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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