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하는 이야기 _ 28
[ 마지막 학기 ]
' 지이이잉~~~ 지이이잉~~~ '
조용한 열람실의 정적을 깨트리는
책상위에 놓여진 핸드폰의 진동소리에 화들짝 놀라 집어든 커다란 화면에는
익숙한 이름의 카톡이 잔뜩 쌓여있었어
"오빠~ 요즘 동아리에 왜 안오세요?"
"오늘 점심 같이 먹을래요? ㅎ"
어느덧 4학년 마지막 학기.
여기저기 단풍잎이 물들고 있는 가을녘 이른 아침부터 나는
학교 도서관 헌쪽 구석에서 열심히 각종 시험공부에 여념이 없었지
일찍이 학점관리를 잘 하고, 우수한 성적을 받으며
교수들의 눈에 띈 상위권 그룹은 이리저리 교수 추천을 등에 업고서 학교를 떠난지 오래됬고
이번 년도는 포기하고 내년을 노리는 인원들은
졸업예정자라는 신분을 포기할 수 없어서 휴학을 하며 졸업을 뒤로 미루고는 했지
그 많은 부류중에. 나라는 인간은.
공부나 취업활동 보다는 '여자'에 빠져서 이리저리 몸을 혹사(?) 하는데 여념이 없었기에
좋은 성적을 바란다기보다는. 그저 무사히 졸업하고 취업할수 있기를 바라며
뒤늦은 공부에 메달리고 있었을 뿐이야
덕분에 거의 외톨이가 되다싶이 학교를 다니고 있었는데
그런 나에게 말을 걸어주며 옆에서 어울려 주었던건
밝은 금발의 머릿결이, 어느덧 검게 물들어 차분하게 여성스러워진 나경이 뿐이었지
몇년전 사귄다던 그 녀석이 군대를 간 이후로, 복학을 하지 않아서 한결 프리? 해진 그녀는
오늘처럼 시시때때로 나에게 말을걸며 주위를 맴돌고 있었는데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군대에 가자마자 차인 충격으로 복학을 못하고 있다나?
뭐 그런것까지 내가 참견할 일이 아니니 뭐라 할 수는 없는데
왠지 미안해지는건 어쩔수 없는거겠지;;
"오빠~~~"
어느덧 약속 시간이 되어서 주섬주섬 가방을 정리하고 내려왔는데
반갑게 웃으며 나를 향해 손을 흔들어 주는 나경이가 마중나와 있었어
가을의 풍경과 어울리는 멋드러진 코트를 걸치고 활짝 웃고 있는 그녀.
'두터운 코트로도 저 어마어마한 가슴은 채 가려지지가 않네;; '
잠깐 딴 생각을 하는 나에게 다가와 팔짱을 끼며 생긋 웃어주는 그녀는
곧이어 온갖 맛집의 메뉴를 줄줄~ 읊어가며 나에게 선택을 미루고 있었지.
그런데…. 뭐… 언제나 그렇듯.
메뉴 고민은 쓸데없는 일이었던듯해.
점심식사?? 는 핑계고… 언제나 그렇듯… 함께있을 구실이 필요했을 뿐이었지.
"흐응~~ 하우웅~~~ 오빠…. "
'찌그덕~~ 찔걱~~ 턱턱턱~~~'
눠워있는 내 가슴 언저리에 묵직하게 놓여진 커다란 가슴과
내 두 손안에 가득 쥐어져있는 동그란 엉덩이.
내 몸을 꼭 끌어안고 바르르 떨고 있는 그녀의 등줄기를 따라 송글송글 땀방울이 맺혀가고 있을때
내 자지는 그녀의 뜨거운 보지에서 빠져나와 또다시 번들거리는 허벅지 주변에 잔뜩 쏟아내고 있었어
"하으읔…. 하아… 오빠…. 사랑해요…."
가쁜숨을 조금씩 진정시켜가며 내 품안에서 벗어나기 싫어 꼭 끌어안고 사랑을 속삭이는 어여쁜 아이.
난 대체 이 아이에게 언제까지 이런 몹쓸짓을 하게 되는걸까…
내 조그마한 방과 꼭 닮은 그녀의 자취방이 내집 처럼 익숙해진 요즘.
무언가…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매번 하고는 하지만,
나를 향해 예쁜 웃음과 함께 다가오는 나경이를 볼때마다
매번 본능이 이성을 이겨버려 잘못된 관계를 끊지 못한채 질질~ 이어오고 있었지
짧은 입맞춤과 함께 조심히 가라는 인사를 뒤로하고 나경이와 헤어져 집으로 가는 한걸음. 한걸음 마다
하나. 둘. 죄책감이 쌓여만 가고
어느덧 집에 도착해 살며시 문을 열고 들어가면
포근하게 데워진 작은 방 안에서 환하게 웃으며 나에게 안겨오는 예쁜 규영이를 꼭 끌어안으며
마음속으로 몇번씩 잘못했다고 빌고있는 내 모습에 점점 피폐해져 갔던거 같아
[ 전조 ]
"ㅇㅇ 아…. 나… 오늘 위로해주면 안될까?... 너무 힘들어…"
잔뜩 술에 취한채 내 앞에서 울고 있는 현진선배….
회사에서 무슨일이 있었던 것일까?
늦은밤 훌쩍이며 나를 찾아온 그녀를 꼭 끌어안으며 토닥여주고는 있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자세히 이야기 해주지는 않았어.
어렴풋이 나와의 관계 때문은 아닐까 싶기도 했지만
나 스스로 그 이야기를 꺼내놓기에는
아슬아슬하게 이어지고 있는 이 관계가 이대로 무너져 내리지않을까 싶은 걱정에
차마 입밖에 내지 못하고 있었지
"….. 왜…. 왜 그래가지고…. "
잔뜩 울면서 무언가를 자책하는듯한 그녀…
작은 몸짓의 그녀가 내 품안에서 바들바들 떨며 눈물을 흘리고 있는데
아무것도 해줄수 없다는 현실이 답답하기만 했었지.
몇시간을 훌쩍이며 나를 바라만 보다가 떠나간 선배.
그날이 꼬여버린 이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한 날이었음을 그때는 알지 못했어.
[ 모래성 ]
선배가 울면서 떠나간지 몇일이나 됬을까…
점점 저물어 가는 저녁 노을빛이 작은 창문을 통해 쏟아져 들어와
아직 불을 밝히지 않은 좁은 방안을 빨갛게 물들이고 있었어
평소 같았으면 TV소리가 시끄럽게 울려 퍼지고
그 소리에 지지 않을 정도로 환하게 웃고 장난치는 규영이와 나의 목소리가
가득 들어찼을 이 공간에, 지금은 숨이 막히는 침묵만이 계속 되고 있었지.
"….언니…."
전혀 부르면 안되는 시간과 장소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언니를 부르는 규영이의 목소리.
그리고…
몇번을 참아가며 움찔거리다 울먹이는 목소리로
절대로 해서는 안될 그 말을 토해내고는 잔뜩 울음을 터트려 버리고 말았어.
"… 언니….."
"…. 오빠 아이야?"
체념한듯 뚝뚝… 흘러내리는 눈물과 함께 살짝 고개만 끄덕이고 있는 선배.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나는 정말 기억이 끊겨버리듯 머릿속이 텅~ 비어 버렸지.
내가 대체… 무슨일을 저지른거지…
멍~ 하니 서있는 나와.
방 한쪽 구석에서 쓰러지듯 주저앉아 울고있는 선배.
그런 우리 둘을 바라보며 정말 서럽게 울던 규영이는 결국 집 밖으로 나가버렸어.
어찌보면 마지막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던 그 순간.
나는 내 아이를 품은 선배를 집 안에 남겨둔체로
집 밖으로 뛰쳐나간 규영이를 향해 뛰어갈수밖에 없었지.
집에서 그다지 멀리 떨어지지않은 놀이터에 주저앉아서
정말 서럽게 울고있는 규영이를 발견하고 다가갔지만
쉽사리 안아줄수도 없었고, 그저 울고있는 규영이 앞에 무릎꿇고 앉아 잘못을 빌수밖에 없었어
"오빠…. 나 진짜 오빠가 미치도록 싫어. 엄청나게 미워. 진짜 죽여버리고 싶어."
"근데…. 근데…. 오빠를 못보게 되는게 더 싫어…. 나 진짜 미쳐버릴꺼 같아… 어떡해…."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어둑어둑해진 한밤중까지 울음을 그치지못하던 규영이가
어떤 결심을 한듯.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더라.
"오빠… 언니한테 가자…"
잔뜩 울먹이면서 나를 이끄는 그녀와 함께 다시 찾은 내 작은 방 안에는
어느덧 텅 빈 공간만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급하게 규영이를 쫓아 나오며 두고나온 내 핸드폰 안 가득 남겨진 작별인사만이
덩그러니 놓여져있을 뿐이었지.
[ 마지막 ]
남녀의 이별이 항상 그렇듯이 활짝 웃으며 헤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자나?
더욱이 미친짓을 반복해버린 나의 경우는 그 끝이 행복할수 없음을 다 알고 있었음에도
애써 외면한체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던것이니까 더욱더 난장판이 되리라는걸 알고는 있었지.
하지만 이런식으로 끝이 다가오리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어.
"치익~~ 지지직~~ @#$@# "
내 앞 마주앉은 경찰의 무전기에서는 잘 알아듣지못할 소리가 울리고 있었고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눈물조차 말라버린채 주저앉아있는 규영이와
어떻게든 전화를 끊지 못하게 하려고 말을 걸고는 있지만,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채 어디인지 알수 없는 곳에서 훌쩍이는 소리만 전해오고 있는
선배의 울음소리만이 전화기에서 흘러나와 내 방을 채워나가고 있었어
선배가 남겨놓은 마지막 작별인사는
이 세상에서 자기만 사라지면 모든게 행복해질꺼라는 자살을 암시하는 인사였고
신고전화를 접수한 경찰이 찾아와 이런저런 인적사항과 이해관계를 묻는데
그 질문들에 대해서 대답을 할 수 없었어.
정말… 내가 미친짓을 저질렀다는것을 실감할 수 있었지.
어찌어찌 연결된 선배와의 전화가 끊기지 않도록 버티고 또 버틴 결과.
경찰 및 119 소방대원 분들이 선배를 찾아내게 되었고
차 안에서 온갖 수면유도제들을 다량 복용하고 누워있는 그녀를 급히 데리고
병원 응급실에서 조치를 취하고 있는 사이.
선배와 규영이의 부모님께서 병원 응급실에 도착하셨어.
이미… 몇번씩 뵈어오던 그분들.
난 대체 그분들에게 왜 이런 미친 고통을 안겨드린걸까.
어머님에게 세차게 뺨을 맞았지만 아무런 고통도 느낄수 없었고
아버님은 한참 나를 노려보시더니 아무말도 하지 않으신채 침대에 누워있는 선배에게 다가가셨어
다행히 선배는 금방 발견되었기에 간단한 위세척 치료로 위험한 일은 벌어지지않았고
병원 응급실 침대에서 눈물을 흘리며 나를 바라보는 눈빛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선배를 볼 수 없게 되었지.
그 지옥같은 밤을 보낸지 몇일이나 되었을까…
"오빠…. 오늘 언니 수술해요… 그냥 알고 있어야 할것 같아서…"
짧은 규영이의 문자 밑에 하나의 주소가 달려있었고
그 날. 그 곳을 찾아간 나는 병원문이 열리는 아침부터 기다린채로 서있었지만
차마 열린 그 문턱을 넘지못한채 요란한 소리와 함께 병원문이 잠기는 시간까지
한발자국도 떼지못하고 멍~ 하니 선채로 이름없는 나의 작은 녀석을 떠나보내게 되었어
찬바람이 불던 늦은 가을.
하루종일 밖에서 서있었던 결과일까?
다음날 나는 쉽사리 일어나지 못했고…
몇일간 먹지도, 제대로 쉬지도 못한채 그렇게 누워만 있던 내가 눈을 떳을때
내 눈앞에는 밝게 웃던 규영이, 애절하게 바라보던 현진선배.
그 누구도 없이 휑~ 한 천장만이 가득 내려앉고 있었지.
[ 칫솔 ]
"오빠~!! 오빠!!! "
잔뜩 흔들리는 내 몸.
흔들릴때마다 깨져버릴것만 같은 미친듯한 두통.
간신히 눈을 뜬 앞에는 정말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규영이의 얼굴이 있었어.
언제 보아도 참 아름다운 얼굴에 분명 보자마자 웃음이 나와야하는데
분명 입은 웃는데 왜 눈가가 시큰 거리게 되는건지…
항상 생그러운 눈웃음을 짓던 커다란 두 눈이 잔뜩 일그러지며 다시한번 눈물이 떨어지기 시작할때
살며시 그 눈물을 닦아주려 손을 들었는데
그런 내 손길을 가로막는 다른 손이 끼어들어왔지.
"그만해라…"
그제서야 겨우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곳에는 주섬주섬 규영이의 옷가지를 챙기고 있는 그녀의 어머님이 계셨어.
"이제 그만하렴…"
그 후에 뭐라뭐라 말씀이 많으셨는데
하나도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지.
그렇게 한차례 휩쓸고 나간 내 작은 방에는
분명 아직 핑크빛 커튼이 걸려있고, 욕실에도 아직 칫솔이 2개가 꽂혀있는데
두번다시 그 칫솔에 치약이 뭍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어
"오빠... 나…. 유학가요…"
그게 규영이에게서 마지막으로 온 문자였거든.
-----------------------------------------------------------------------------
'절그럭….'
다시한번 얼음 조각이 휘저어지며 울리는 소리에
나는 잠시 생각을 멈추고, 앞에 앉아있는 규영이를 다시 바라보게 되었어
무언가 고민하는듯 살짝 찡그리는 미간.
'약간 뾰루퉁~ 하게 짓고있는 저 표정에도 너는 여전히 아름답구나… '
"음…. 뭐… 어쩔수 없나…. 그래도 일단 알려줄께요. 잠시만…"
무언가 핸드폰에서 찾는듯한 규영이의 손짓이 잠시 움직이더니
"띵~"
내 핸드폰에서 짧은 알림과 함께 모바일 청첩장이 도착했음을 알리고 있었어.
작은 화면속. 환하게 웃고있는 반가운 얼굴.
거참… 이 자매는 어째 시간이 지나도 여전하네…
내 기억속 20대의 얼굴이 그대로 남아있는 여전히 아름다운 선배와
지금 내 앞에서 미묘한 미소를 띄고 있는 규영이.
그 둘은 지금도 다시한번 나를 설레이게 만들고 있지만
이제 두번다시 그럴 일은 없겠지…
그 이후로 이런저런 시덥잖은 이야기는 다시한번 몇번씩 오고갔으나
그냥.. 이제는 세상에 찌들은 30대 초반의 아저씨와
20대 중반의 아가씨가 사회생활하며 으레 건네는 형식적인 인사들 뿐이었어
그렇게 반갑지만 한편으로는 아쉬운 만남을 뒤로하고
각자의 보금자리를 향해 되돌아가게 되었지
이미 어둑어둑 어둠이 깔려버린 컴컴한 도로위를 달려가고 있을때
양 옆으로 스쳐 지나가며 울리는 바람소리가 그날따라 유독 가슴 시리게 조여오더라
"띵~~"
"오빠~~ 주말에 시간되면 오랜만에 술이나 한잔 할래요?"
짧게 날아온 카톡 한줄.
그나마 그 한줄의 글귀가 오늘 만나기 참 잘했다는 생각을 들게 만들었어.
[출처] 다시 시작하는 이야기 _ 28 (야설 | 은꼴사 | 놀이터 | 썰 게시판 - 핫썰닷컴)
https://hotssul.com/bbs/board.php?bo_table=ssul19&device=mobile&wr_id=156462
[이벤트]이용후기 게시판 오픈! 1줄만 남겨도 1,000포인트 증정!!
[재오픈 공지]출석체크 게시판 1년만에 재오픈!! 지금 출석세요!
[EVENT]09월 한정 자유게시판 글쓰기 포인트 3배!
이 썰의 시리즈 | ||
---|---|---|
번호 | 날짜 | 제목 |
1 | 2021.03.26 | 현재글 다시 시작하는 이야기 _ 28 (4) |
2 | 2021.03.25 | 다시 시작하는 이야기 _ 27 (4) |
3 | 2021.03.24 | 다시 시작하는 이야기 _ 26 (6) |
4 | 2021.03.24 | 다시 시작하는 이야기 _ 25 (9) |
- 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