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했던 유부녀 길들인 이야기 6
고스트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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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7 22:42
그날은 평소보다 늦게까지 이야기를 했다.
회사 얘기도 끝났고, 저녁 메뉴 얘기도 끝났고, 주말에 뭘 할지도 대충 이야기했다.
그런데 둘 다 나가지 않았다.
밤 열두 시가 넘었다.
나: 안 자요?
그녀: 아직 안 졸려요.
나: 저도.
나: 오늘도 상황극 할래요?
그녀: 또 카페?
나: 아니요.
나: 이번에는 조금 야한 거.
답이 없었다.
그녀: 얼마나 야한데요.
그녀: 또 혼자 두 칸 올라가려고 했죠?
나: 한 칸만.
나: 둘만 있는 곳.
그녀: 어디요.
나: 방.
그녀: 왜 방이에요.
나: 둘만 있으려고.
그녀: 수상한데.
나: 그럼 안 할게요.
잠시 뒤 그녀가 다시 썼다.
그녀: 내용부터 말해봐요.
그녀: 듣고 결정할게요.
‘방’이라는 단어 하나로 공기가 달라졌다.
나: 몇 번 만난 사이예요.
나: 늦게까지 이야기하다가 밖에 비가 많이 와요.
나: 그래서 조금 더 있다 가기로 해요.
그녀: 어디서요.
나: 제 방.
나: 그쪽이 정해요.
나: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한참 뒤.
그녀: 가까이 앉는 데까지.
그녀: 싫으면 하지 말고요.
나: 아니요. 합니다.
나: 방에 들어왔어요.
나: 머리 젖었네요.
나: 침대 말고 바닥에 앉아요.
그녀: 저도 바닥.
그녀: 한 사람 정도.
나: 반 사람 정도.
그녀: 조금만.
원룸 바닥에는 나 혼자였는데도 그녀에게 조금 가까이 간 기분이 들었다.
나: 저는 그쪽 보고 있어요.
그녀: 그런 말 하지 마요.
나: 싫어요?
그녀: 아니.
처음이었다.
존댓말이 사라졌다.
딱 한 글자.
‘아니.’
나: 손은 어디 있어요?
그녀: 무릎 위.
나: 손 잡아도 돼요?
그녀: 손만?
나: 지금은.
나: 그럼 손만.
한참 뒤.
그녀: 네.
나: 잡았어요.
그녀: 너무 진짜 같아지니까.
나: 무서워요?
그녀: 조금.
나: 그럼 여기서 그만할까요?
그녀: 아니요.
그녀: 손까지.
나: 손 차가워요.
그녀: 원래 손 차가워요.
나: 이건 실제예요?
그녀: 네.
나: 하나 더 해도 돼요?
나: 어깨 닿을 정도.
그녀: 그건 손보다 가까운데.
그녀: 안 돼요.
나: 알겠어요.
그녀: 화 안 났어요?
나: 싫다고 하면 그만하기로 했잖아요.
그녀: 미안.
나: 또 반말.
그녀: 오늘만.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상황극이 끝난 줄 알았다.
그런데 그녀가 먼저 썼다.
그녀: 아직 손 잡고 있어요?
나: 놔야 돼요?
그녀: 아니요.
나: 그럼 잡고 있어요.
그녀: 네.
그 한마디가 그날 밤 가장 야했다.
손을 더듬는 것도 아니었고,
입을 맞추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놓지 말라는 뜻이었다.
잠시 뒤.
그녀: 조금 더.
나: 어디까지요?
그녀: 피터팬이 해봐요.
나: 싫으면 말하고요?
그녀: 네. 바로 멈추고.
나: 이제 얼굴 봐도 돼요?
그녀: 보고 있었잖아요.
나: 아니. 가까이서.
나: 숨소리 들릴 정도.
그녀: 조금만.
거절은 아니었다.
나는 실제로 허리를 세웠다.
원룸에는 나만 있었다.
그런데도 거리를 좁히는 기분이 들었다.
나: 가까워졌어요.
나: 고개만 숙이면.
그녀: …….
나: 입 맞춰도 돼요?
답이 없었다.
농담.
취소.
미안.
다 지웠다.
기다려야 하는 침묵이었다.
그녀: 한 번만.
네 글자였다.
실제로 닿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나는 화면 앞에서 숨을 한번 삼켰다.
나: 닿았어요.
나: 짧게요.
그녀: 네.
그 뒤로 한동안 아무 말도 없었다.
말하면 그 한 번이 깨질 것 같았다.
그녀: 왜 아무 말 안 해요.
나: 아까부터 별로 상황극 같지가 않아요.
그녀: 저도요.
그녀: 다시 해도 돼요.
나: 한 번만이라면서요.
그녀: 마음 바뀌었어요.
나: 또 닿았어요.
그녀: 이번엔 길어요?
나: 조금만 더.
나: 숨 참고 있을 정도.
그녀: ……알겠어요.
쓰고 싶은 말은 많았다.
입술 다음.
턱.
목.
옷깃.
그 문장들을 삼켰다.
나: 지금 더 하고 싶은 게 있어요.
나: 말하면 싫어할 수도 있어요.
그녀: 말은 해봐요.
나: 더 가까이 있고 싶어요.
나: 그것보다.
답이 늦었다.
알아듣고, 아직 열지 않는 침묵.
그녀: 오늘은 거기까지.
나: 알겠어요.
그녀: 아쉽죠?
나: 많이.
그녀: 참아요.
나: 네.
그녀: 잘하네.
내가 참는 것을 그녀가 보고 있었다.
나: 손 놓을까요.
그녀: 놓아요.
그녀: 그런데.
그녀: 말은 남아요.
그녀: 한 번만이요.
나: 두 번 했는데요.
그녀: 두 번도.
그녀: 그리고.
그녀: 말로만.
나: 말로만.
그녀: 약속.
나: 약속.
나는 웃지 않았다.
웃으면 가벼워질 것 같았다.
나: 잘 자요.
그녀: 피터팬도요.
그녀가 나갔다.
그날 우리는 처음으로 손을 잡았고, 처음으로 입을 맞췄다.
실제로는 아무것도 닿지 않았다.
나는 경기도 원룸에 있었고, 그녀는 내가 모르는 도시의 방에 있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몸은 거짓말과 현실을 구별하지 못했다.
그녀가 ‘손까지’라고 했을 때 심장이 빨라졌고,
‘한 번만’이라고 했을 때 나는 잠시 화면에서 눈을 떼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그녀가 말했다.
‘오늘은 거기까지.’
‘말로만.’
그날 처음 알았다.
욕망은 허락받은 곳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멈춰야 하는 곳에서 가장 선명해지기도 한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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