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했던 유부녀 길들인 이야기 3
고스트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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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분전
세 번째 밤에는 내가 먼저 방을 만들지 않았다.
일부러 그랬다.
퇴근해서 씻고, 컵라면에 물까지 부어놓고도 세이클럽에 접속하지 않았다.
그녀가 들어오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정확히 말하면 조금 다른 마음이었다.
내가 방을 만들지 않아도 그녀가 나를 찾을까.
그게 궁금했다.
그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우스웠다.
우리는 이틀 대화했을 뿐이었다.
이름도 몰랐다.
전화번호도 몰랐다.
그런데 벌써 상대가 나를 찾는지 확인하고 싶어졌다.
나는 컵라면 뚜껑을 젓가락으로 눌러놓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세이클럽에 접속했다.
방은 만들지 않았다.
대화방 목록을 한참 내려봤다.
그리고 멈췄다.
「오늘도 보통의 하루」
방장이 보통의하루였다.
나는 제목을 두 번 읽었다.
웃음이 났다.
혹시 나를 기다린 건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안전했다.
나는 바로 들어가지 않았다.
삼십 초쯤 기다렸다.
그 정도 기다리면 내가 우연히 발견한 것처럼 보일 것 같았다.
그리고 들어갔다.
보통의하루: 어
나: 어?
보통의하루: 왔네요.
나: 제가 올 줄 알았어요?
보통의하루: 아니요.
나: 그런데 왜 왔네요예요
보통의하루: 들어왔으니까요.
나: 기다렸죠
보통의하루: 아니요.
나: 방 제목이 수상한데
보통의하루: 뭐가요.
나: 평범한 일상 공유랑 비슷하잖아요
보통의하루: 우연이에요.
나: 정말?
보통의하루: 네.
나: 거짓말
보통의하루: 나갈래요?
나는 웃었다.
나: 아니요
보통의하루: 그럼 조용히 계세요.
나: 네 방장님
보통의하루: ㅋㅋ
나: 세 번째
보통의하루: 또 세고 있네.
나: 안 세려고 했는데 기억나요
보통의하루: 이상한 사람이네.
나: 벌써 이상한 사람이 됐어요?
보통의하루: 조금요.
나: 어제까진 괜찮은 사람이었는데
보통의하루: 제가 언제요.
나: 마음속으로
보통의하루: 자기 마음속 아니고요?
나는 잠시 손을 멈췄다.
그녀가 처음으로 말을 받아쳤다.
처음 들어왔던 날의 짧은 대답과는 많이 달랐다.
그게 좋았다.
나: 말 많이 늘었네요
보통의하루: 누구 때문에요.
나: 저 때문에?
보통의하루: 질문을 계속 하잖아요.
나: 싫어요?
답이 바로 오지 않았다.
나는 괜히 긴장했다.
보통의하루: 아직은 아니요.
‘아직은.’
나는 그 말을 몇 번 읽었다.
나: 아직은이라는 말이 무섭네요
보통의하루: 조심하세요.
나: 뭘요
보통의하루: 질문 너무 많이 하지 말라고요.
나: 알겠습니다
보통의하루: 진짜요?
나: 아니요
보통의하루: ㅋㅋ
나: 네 번째
보통의하루: 진짜 이상하다.
나: 오늘 뭐 했어요
보통의하루: 바로 질문.
나: 이건 인사잖아요
보통의하루: 일했죠.
나: 그건 알아요
보통의하루: 그러면 왜 물어봐요.
나: 오늘 하루를 물어보는 거죠
보통의하루: 평범했어요.
나: 어제도 평범했잖아요
보통의하루: 평범한 사람이니까요.
나: 진짜?
보통의하루: 왜요. 아닌 것 같아요?
나: 아직 모르죠
보통의하루: 세 번째잖아요.
나: 그 말 계속 써먹네요
보통의하루: 좋은 말이잖아요.
나: 그럼 네 번째 되면 하나 알려줘요
보통의하루: 뭘요.
나: 직업
보통의하루: 싫어요.
나: 다섯 번째
보통의하루: 싫어요.
나: 열 번째
보통의하루: 그때 생각해볼게요.
나: 지난번엔 다섯 번째라며
보통의하루: 마음이 바뀌었어요.
나: 너무하네
보통의하루: 그쪽은 다 말했어요?
나는 잠시 생각했다.
나: 뭘 알고 싶은데요
보통의하루: 나이.
드디어 나왔다.
나는 모니터를 보며 등을 의자에 기대었다.
사실 내가 먼저 묻고 싶었던 질문이었다.
지난 이틀 동안 몇 번이나 참았다.
그녀가 먼저 물어보니까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바로 대답하면 기다렸다는 티가 날 것 같았다.
나: 나이는 왜요
보통의하루: 그냥.
나: 그냥 금지
보통의하루: 왜요.
나: 맨날 그냥이잖아요
보통의하루: 편한 말인데.
나: 나이 알면 뭐 하게요
보통의하루: 말 놓을지 결정하게요.
나: 말 놓고 싶어요?
보통의하루: 아직 모르죠.
나: 또 아직.
보통의하루: 나이요.
나는 숫자를 적었다.
그리고 지웠다.
괜히 한 살 줄여볼까 생각했다.
그럴 이유가 없는데도 그랬다.
여자 앞에서 남자는 가끔 이상한 계산을 한다.
나이가 많으면 늙어 보일까.
적으면 어려 보일까.
결국 사실대로 썼다.
나: 스물여덟
잠시 답이 없었다.
나는 기다렸다.
나: 왜요
보통의하루: 생각보다 많네요.
나는 화면을 노려봤다.
나: 생각보다?
보통의하루: 네.
나: 몇 살인 줄 알았는데요
보통의하루: 스물다섯?
나: 왜요
보통의하루: 말하는 게.
나: 철없어 보여요?
보통의하루: 조금.
나: 충격인데
보통의하루: 피터팬이잖아요.
나는 웃었다.
나: 그쪽은요
보통의하루: 뭐가요.
나: 나이
보통의하루: 왜요.
나: 방금 제 거 들었잖아요
보통의하루: 제가 먼저 물어봤죠.
나: 그러니까 이제 차례죠
보통의하루: 꼭 그래야 돼요?
나: 공평해야죠
보통의하루: 스물여섯.
나는 숫자를 보고 잠시 가만히 있었다.
두 살 아래.
이상할 것도 없는 숫자인데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왜 편했는지는 굳이 생각하지 않았다.
나: 누나 아니네
보통의하루: 누나였으면 어쩌려고요
나: 존댓말 더 열심히 했죠
보통의하루: 지금도 존댓말 하잖아요.
나: 반말할까요?
보통의하루: 싫어요.
나: 단호하네
보통의하루: 아직은요.
나: 또 아직
보통의하루: ㅋㅋ
나: 다섯 번째
보통의하루: 이제 그만 세요.
나: 알겠어요
보통의하루: 진짜?
나: 아니요
보통의하루: 예상했어요.
우리는 잠시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런데 처음처럼 어색하지 않았다.
채팅에서 침묵이 편해지는 데도 시간이 필요한 모양이었다.
나는 컵라면을 열었다.
면이 불어 있었다.
나: 망했다
보통의하루: 뭐가요.
나: 라면
보통의하루: 또 라면이에요?
나: 오늘은 컵라면
보통의하루: 그게 다른가요.
나: 설거지가 없죠
보통의하루: 자랑이다.
나: 혼자 살면 중요합니다
보통의하루: 밥 좀 챙겨 먹어요.
그 문장을 읽는데 이상했다.
누군가에게 아주 오래 듣던 말 같았다.
실제로는 처음이었다.
나: 걱정해주는 거예요?
보통의하루: 아니요.
나: 바로 아니라고 하네
보통의하루: 그냥 하는 말이에요.
나: 그냥 금지
보통의하루: 그럼 취소.
나: 그건 더 싫은데
보통의하루: 까다롭네요.
나: 밥 챙겨 먹으라는 말 좋았는데
보통의하루: 그럼 먹어요.
나: 네
보통의하루: 진짜 말 잘 듣네.
나: 누가 말하느냐에 따라 다르죠
전송하고 나서 조금 후회했다.
너무 티를 냈나.
그녀의 답이 잠시 없었다.
나는 컵라면을 한 젓가락 먹었다.
보통의하루: 그런 말 잘하죠?
나: 어떤 말
보통의하루: 여자한테.
드디어 왔다.
나는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여자 이야기.
연애 이야기.
그쪽으로 넘어갈 수 있는 문이었다.
처음 방을 만들던 날의 나라면 바로 들어갔을 것이다.
‘여자한테만 그래요.’
‘그쪽한테만.’
그런 식으로.
나는 몇 번 문장을 썼다가 지웠다.
나: 잘 못해요
보통의하루: 거짓말.
나: 왜요
보통의하루: 잘할 것 같아요.
나: 어떤 점이
보통의하루: 그냥.
나: 금지라니까요
보통의하루: 느낌.
나: 여자 많이 만나봤을 것 같아요?
답을 보내고 나니 심장이 조금 빨라졌다.
그녀가 내 연애를 궁금해한다.
나는 그렇게 받아들이고 싶었다.
보통의하루: 모르죠.
나: 궁금해요?
보통의하루: 아니요.
나: 너무 빨리 아니라고 하는데
보통의하루: ㅋㅋ
나: 여섯 번째
보통의하루: 진짜 그만.
나: 알겠어요
보통의하루: 그런데
나: 네
보통의하루: 여자친구는 있어요?
나는 화면을 바라봤다.
원래라면 내가 물어야 할 질문이었다.
나는 속으로 웃었다.
천천히 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없어요
보통의하루: 오래됐어요?
나: 이건 궁금한 거 맞죠
보통의하루: 그냥 대화예요.
나: 1년쯤?
정확히 따지면 조금 넘었다.
그 정도는 중요하지 않았다.
나: 그쪽은요
답이 없었다.
오래 걸렸다.
나는 컵라면을 먹으면서 기다렸다.
나: 대답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요
그 문장을 보내고 나서 스스로 조금 놀랐다.
원래 나는 알고 싶으면 물어보는 사람이었다.
특히 여자와 관계된 건 더 그랬다.
남자친구가 있는지 없는지는 가장 먼저 알아야 할 정보였다.
가능성이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해야 했으니까.
그런데 이번에는 그녀가 대답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아니,
괜찮은 척이라도 하고 싶었다.
보통의하루: 없어요.
짧은 답이었다.
나는 읽자마자 기분이 좋아졌다.
그 감정을 숨길 사람은 방 안에 나밖에 없었는데도 괜히 표정을 감췄다.
나: 오래됐어요?
보통의하루: 좀 됐어요.
나: 얼마나요
보통의하루: 질문 하나만 한다면서요.
나: 언제요?
보통의하루: 방금 마음속으로.
나는 웃었다.
나: 제 마음을 어떻게 알아요
보통의하루: 알 것 같아요.
나: 어떤데요
보통의하루: 궁금한 거 많은 사람.
나: 맞아요
보통의하루: 참는 것도 많고.
손이 멈췄다.
나: 제가요?
보통의하루: 네.
나: 뭘 참는데요
보통의하루: 모르죠.
나: 또 모르죠
보통의하루: 그냥 그런 느낌.
나는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조금 들킨 기분이었다.
사진을 묻지 않은 것.
사는 곳을 캐묻지 않은 것.
전화번호를 달라고 하지 않은 것.
남자친구 이야기를 먼저 꺼내지 않은 것.
나는 내가 꽤 자연스럽게 행동했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그걸 눈치채고 있었던 걸까.
나: 제가 뭘 참고 있는 것 같은데요
보통의하루: 말 안 해줄래요.
나: 왜요
보통의하루: 틀리면 창피하잖아요.
나: 맞으면요?
보통의하루: 그것도 조금 창피하고.
나: 그럼 언젠가 말해줘요
보통의하루: 언젠가요.
나: 열 번째?
보통의하루: 그 말 좋아하네요.
나: 약속하기 편하잖아요
보통의하루: 그럼 열 번째.
나: 진짜?
보통의하루: 그때까지 만나면.
‘만나면.’
채팅으로 계속 만난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 단어가 좋았다.
나: 만날 거잖아요
보통의하루: 어떻게 알아요.
나: 내일도 들어올 거면서
보통의하루: 내일은 모르죠.
나: 왜요
보통의하루: 약속 있어요.
마음이 아주 조금 가라앉았다.
나는 바로 물었다.
나: 무슨 약속?
그리고 손을 멈췄다.
너무 빨랐다.
누구랑.
남자랑?
그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물론 실제로는 키보드 앞이었지만.
나는 쓴 문장을 지웠다.
대신 다시 적었다.
나: 좋은 약속이에요?
보통의하루: 친구 만나요.
나는 괜히 안심했다.
나: 여자친구?
보통의하루: 왜요.
나: 그냥
보통의하루: 그냥 금지.
나는 웃었다.
나: 배웠네
보통의하루: 여자친구요.
그제야 마음이 완전히 풀렸다.
나는 그런 내 감정을 보면서 조금 당황했다.
벌써 질투 비슷한 걸 하고 있었다.
고작 세 번째인데.
나: 재밌게 놀아요
보통의하루: 그래서 내일은 못 들어올 수도 있어요.
나: 알겠어요
보통의하루: 서운해요?
나는 한참 대답하지 않았다.
솔직하게 ‘조금’이라고 말할까.
아니면 아무렇지 않은 척할까.
처음부터 내가 하던 일이었다.
욕망을 숨기고,
기대를 숨기고,
외로운 것도 숨기고.
평범하고 여유 있는 남자처럼 보이는 것.
나는 결국 익숙한 쪽을 골랐다.
나: 아니요. 하루인데요 뭐
보통의하루: 거짓말.
손이 멈췄다.
나: 왜 거짓말이에요
보통의하루: 모르겠어요.
나: 그냥 느낌?
보통의하루: 네.
나: 조금은 서운할 수도 있죠
이번에는 보내고 나서 지우고 싶지 않았다.
잠시 뒤 답이 왔다.
보통의하루: 저도 조금 그럴 것 같아요.
나는 그 한 줄을 오래 바라봤다.
무슨 뜻인지 다시 묻지 않았다.
잘못 물었다가 그녀가 설명해버리면,
지금 느끼는 뜻과 달라질 것 같았다.
그래서 그냥 두었다.
나: 그럼 모레 봐요
보통의하루: 방 만들 거예요?
나: 만들죠
보통의하루: 제목은요?
나: 평범한 일상 공유
보통의하루: 맨날 똑같네.
나: 그래야 찾죠
보통의하루: 누가요?
또 시험하는 것 같았다.
나는 웃었다.
나: 보통의하루가
답이 한동안 없었다.
나는 괜히 너무 직접적이었나 싶었다.
보통의하루: 알겠어요.
나: 뭐가요
보통의하루: 찾을게요.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날 대화 중 가장 짧은 말이었는데,
가장 오래 남았다.
찾을게요.
우리는 얼굴도 몰랐다.
전화번호도 몰랐다.
서로 어디에 사는지도 정확히 몰랐다.
누군가 컴퓨터를 켜고,
누군가 방을 만들고,
수많은 대화방 사이에서 같은 제목을 찾아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그 시절에는 그것만으로도 약속이 됐다.
나: 잘 자요
보통의하루: 피터팬도요.
나: 모레 봐요
보통의하루: 네.
나: 약속
보통의하루: 약속까지 해야 돼요?
나: 싫으면 말고요
보통의하루: 알겠어요.
나: 뭐가요
보통의하루: 약속.
그녀가 나갔다.
나는 화면에 남은 대화를 위로 올려봤다.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왔네요.’
‘여자친구는 있어요?’
‘저도 조금 그럴 것 같아요.’
‘찾을게요.’
그날 처음 알았다.
채팅에서는 상대의 얼굴을 볼 수 없기 때문에,
말 하나를 더 오래 본다는 걸.
표정이 없어서 상상하고,
목소리가 없어서 의미를 붙이고,
짧은 문장 하나에 마음대로 마음을 만들어 넣는다.
어쩌면 우리는 아직 서로를 좋아한 게 아니었을 것이다.
서로가 만들어낸 상대를 조금씩 좋아하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나는 컴퓨터를 끄면서 생각했다.
내일은 그녀가 오지 않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미 모레가 기다려졌다.
| 이 썰의 시리즈 (총 7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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