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후배(22)-동성주의
리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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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간전
연기가 바람에 흩어졌다.
"할매가 마지막에 찾았다. 미안타 카믄서. 그래서 내가 연락했다."
"…….
"니 두 살 때 집 나갔다. 내가 술 묵고 손찌검했다. 할매는 며느리가 아 버리고 바람나서 도망갔다 캤지만, 니도 머리 컸으니까 이제 알아야 된다. 그 사람 잘못 아이다. 내가 그래 만들었다."
아버지는 나를 보지 않고 말했다. 수거함 위에 앉은 비둘기를 보며.
"나가서 옆 동네 남자랑 살림 차렸다 카더라. 몇 년 있다 아도 하나 낳았다 카고. 할매가 그 소리 듣고 니 엄마 사진 다 태웠다. 그 뒤로 이 집에서 그 이름 꺼낸 사람 없다."
"…애를 낳았다고요."
"아들이라 카더라. 니하고 대여섯 살 차이 날 끼다."
대여섯 살.
다섯 학번 아래.
"그 남자도 오래 못 갔다 카더라. 술 묵고 집에 잘 안 들어오고. 니 엄마가 그 아 혼자 키우다시피 했다꼬."
울 엄마 진짜 고생 많이 했거든. 혼자 나 키우다시피 했어. 아빠는… 뭐, 있으나 마나고.
담배가 손가락 사이에서 다 타들어 가 있었다. 뜨거운 줄도 몰랐다.
"…그 아들, 이름이 뭔지 아세요."
아버지가 처음으로 나를 봤다.
"그건 와."
"그냥요."
"모른다. 알 필요도 없었고."
아버지는 꽁초를 바닥에 비벼 끄고 먼저 들어갔다. 나는 주차장에 혼자 서 있었다.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소리 없이 무너지고 있었다.
나는 다시 지하로 내려갔다.
여자는 빈소 구석 식탁에 혼자 앉아 있었다. 손대지 않은 육개장이 식어 가고 있었다. 내가 맞은편에 앉자 여자가 흠칫 고개를 들었다.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한참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미안하다."
여자가 먼저 말했다.
"미안하단 말밖에 할 게 없다. 니 얼굴 볼 낯이 없어서 한 번도 못 찾아왔다. 할매가 오지 말라 캤고, 나도… 무서웠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묻고 싶은 건 하나뿐이었다. 그런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잘 컸네. 덩치가 니 아부지 젊을 때하고 똑같다."
여자가 젖은 눈으로 웃었다. 웃을 때 눈꼬리가 아래로 처졌다.
"니 대학 다닌다 카데. 할매가 동네 사람들한테 자랑을 그래 했다고… 어디 다니노?"
나는 학교 이름을 말했다. 과 이름도.
여자 얼굴이 멈췄다.
"…거기."
"…….
"우리 아도 거기 다닌다. 과도… 똑같은데."
여자가 핸드폰을 꺼냈다. 손가락이 떨려서 잠금이 몇 번 안 풀렸다.
"혹시 알까 싶어서… 니보다 한참 밑이라 모를 끼다만…"
화면이 내 쪽으로 돌아왔다.
꽁지머리. 후드티. 맨얼굴. 고향 집 평상에 앉아 수박을 들고 웃고 있었다.
웃을 때 아래로 처지는 눈꼬리.
매일 아침 내 품에서 눈을 뜨며 헤헤 웃던.
사흘 전 풀빌라 침대에서, 하얀 레이스 자락을 입에 물고 울던.
여보야, 하고 잠꼬대하던.
"…압니다."
내 목소리가 아주 멀리서 들렸다.
"정말? 아이고, 세상 좁네. 같은 고향이라고 친하게 지내나?"
여자 얼굴에 희미한 반가움이 번졌다.
"그라고 보니 아가 고향 선배 하나랑 친하다꼬, 그 선배가 밥도 사 주고 잘 챙겨 준다꼬 맨날 자랑을 하던데… 혹시 그게…"
여자가 말을 멈췄다. 내 얼굴을 봤기 때문이었다.
나는 일어났다. 의자가 바닥을 긁는 소리가 빈소 안에 크게 울렸다. 조문객 몇이 돌아봤다. 아버지가 안쪽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계단을 올랐다. 한 칸, 한 칸. 다리가 내 것이 아닌 것 같았다.
병원 밖으로 나오자 해가 지고 있었다.
주차장 끝 화단에 주저앉았다. 상복 바짓단이 흙에 젖었다. 손이 떨려서 담배에 불이 붙지 않았다. 라이터를 몇 번이고 켰다가, 결국 집어 던졌다.
이복형제. 아니, 그런 단어로 부르기엔 너무 가까웠다. 같은 배에서 나온. 같은 젖을—아니, 나는 그 젖을 먹은 기억이 없었다. 그 애는 먹었다. 그 엄마 품에서 컸다. 나는 할머니 품에서 컸다. 자다가 옆에 있는 걸 끌어안는 버릇. 엄마 품 찾느라 그런 기다, 할머니가 그랬다.
나는 엄마 품 대신 그 애를 안았다.
엄마가 낳은 아이를.
첫날 밤이 떠올랐다. 불 꺼진 방, 달콤한 향기, 침대 위에서 나를 기다리던 그 애. 처음 그 애 안에 들어갔던 순간. MT 골방. 여름 내내 같이 살던 원룸. 남쪽 바다 펜션 베란다. 풀빌라 통유리, 수영장 계단, 바닷길 야자수. 그 애 안에 쏟았던 그 모든 것들.
여보야.
속이 뒤집혔다. 화단에 고개를 박고 토했다. 아무것도 먹은 게 없어서 쓴 물만 나왔다. 나오고 또 나왔다. 눈물인지 침인지 모를 것이 턱을 타고 흘러내렸다.
주머니 속에서 핸드폰이 울렸다.
꺼내지 않아도 알았다. 화면을 보지 않으려고 했는데, 손이 먼저 꺼냈다.
오빠 ㅠㅠ 오늘도 바빠?
아까 엄마한테 전화 왔는데 엄마도 누구 장례식 갔대
오늘 다들 왜 이렇게 바빠 ㅋㅋ
나 혼자 오빠 방에 와 있어.
그 가터벨트 입고 기다릴게 ❤️
빨리 와 여보야
마지막 줄을 보는 순간, 핸드폰이 손에서 미끄러져 흙바닥에 떨어졌다. 화면이 켜진 채로 위를 보고 있었다. 하트가 깜빡였다.
나는 그걸 줍지 못했다. 화단 위에 웅크린 채, 해가 다 질 때까지 움직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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