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후배(에필로그)-동성주의
리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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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간전
그 애한테서 연락이 온 건 2년 가까이 지나서였다.
차단을 풀어 둔 건 아니었다. 모르는 번호로 문자가 왔다.
오빠, 나 전역했어. 한 번만 보자. 이유만 듣고 갈게. 그 뒤로는 진짜 안 찾을게.
이름은 없었다. 하지만 없어도 누군지 알았다.
나는 그 문자를 사흘 동안 열어서 보기만 했다. 나흘째 되는 밤, 답장을 보냈다. 장소와 시간만.
학교 근처, 예전에 우리가 자주 가던 국밥집 건너편 카페였다.
약속 시간보다 일찍 갔는데, 그 애가 먼저 와 있었다.
창가 자리. 짧은 머리. 검은 패딩. 군대에서 갓 나온 남자애들이 다 그렇듯 얼굴이 조금 탔고, 어깨가 조금 넓어져 있었다. 꽁지머리도, 웨이브도 없었다. 처음 보는 사람 같았다. 그런데 나를 보고 고개를 드는 순간, 웃을 때 아래로 처지는 그 눈꼬리가 그대로였다.
"…오랜만이네요, 선배."
선배. 그 애는 나를 그렇게 불렀다. 개강총회 날 처음 만났을 때처럼.
"…응. 오랜만이다."
나는 맞은편에 앉았다. 둘 다 커피에 손을 대지 않았다. 한참 말이 없었다. 창밖으로 신입생으로 보이는 학생들이 몰려 지나갔다. 우리도 저랬던 때가 있었다.
"살 빠졌네요."
그 애가 먼저 말했다.
"…너도."
"군대 밥이 맛없어서요."
그 애가 작게 웃었다. 나도 웃으려고 했는데 잘 안 됐다.
"저 이거 물어보려고 2년 기다렸어요."
그 애 목소리가 낮게 잠겨 있었다. 여자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 목소리가 이제는 나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제가 뭘 잘못했어요?"
"아니."
"그럼 저 싫어졌어요?"
"아니."
"그럼 왜요."
그 애가 테이블 위에 올려 둔 손을 꽉 쥐었다. 손등에 핏줄이 섰다. 예전엔 없던 핏줄이었다.
"이유만 알려 주세요. 그거 몰라서 저 2년 동안 진짜… 진짜 미치는 줄 알았어요. 군대에서도 자다가 깨면 그 생각만 했어요. 내가 뭘 했지. 베트남에서 뭘 잘못했지. 아니면 처음부터 다 장난이었나. 그 생각만."
나는 그 애 손을 봤다. 물집 잡힌 내 손을 꼭 쥐던 손. 붉은 종이에 엄마 이름을 또박또박 적던 손.
2년 동안 수없이 생각했다. 말할지, 말하지 말지. 끝까지 묻어 두는 게 그 애를 지키는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그 애 얼굴을 보니 알 것 같았다. 모르는 채로 사는 것도 그 애한테는 지옥이었다는 걸. 나는 그 애를 지킨 게 아니라, 나 혼자 도망쳤던 거였다.
이제 거짓말하지 마.
그 말을, 이번에는 지키기로 했다.
"…나 집에 일 생겨서 간다고 했던 다음 날 너희 어머니, 장례식 다녀오셨던 거 기억나?"
그 애가 눈을 깜빡였다.
"…네. 누구 장례식인지 끝까지 말 안 해 줬어요."
"우리 할머니 장례식이었어."
그 애 얼굴이 움찔했다.
그날 나는 그 애에게 전부 말했다.
베트남 셋째 날 아침에 받은 아버지의 톡. 절에서 붉은 종이 위에 적힌 이름이 어디서 본 것 같았던 것. 장례식장을 찾아온 엄마. 주차장에서 아버지가 들려준 이야기. 식은 육개장 앞에서 그 여자가 내민 핸드폰 화면.
그 애는 중간에 한 번도 끼어들지 않았다. 테이블 위에 손을 올려 둔 채로, 내 얼굴만 봤다. 처음엔 믿지 않는 얼굴이었다가, 나중엔 아무 표정도 없는 얼굴이 됐다.
말을 끝내고 나자, 카페 안에 캐럴이 흐르고 있었다. 2년이 지나 또다시 겨울.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 애한테 문자로 이별을 통보했던 때처럼.
그 애는 한참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커피잔을 들었다가, 마시지 않고 내려놓았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엄마가."
목소리가 갈라졌다.
"엄마가 술 마시면 가끔 울었어요. 누구한테 미안하다고. 물어보면 아무 말도 안 했어요. 저는… 그게 아빠 얘기인 줄 알았어요."
그 애가 고개를 숙였다. 짧은 머리 사이로 귀가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래서 그랬구나. 그래서 그렇게 갑자기."
"미안해."
"그 말 그만해요."
그 애가 고개를 들었다. 눈이 젖어 있었는데 울지는 않았다.
"선배가 그걸 혼자만 알고, 혼자 감당하고, 혼자 마음대로 떠나기로 한 게...하고... 그게… 그게 화나요."
"……."
"말해 줬으면 같이 울었을 거 아니에요. 같이 미쳤을 거 아니에요. 왜 혼자 그랬어요. 왜 맨날 혼자 노가다 뛰고, 혼자 감당하고, 혼자…"
그 애가 말을 잇지 못했다. 손등으로 눈가를 꾹 눌렀다. 이 인간아, 하고 내 가슴을 치던 그 손.
한참 뒤에 그 애가 말했다.
"…엄마한테는 말 안 할게요."
"……."
"엄마는 이거 알면 죽으려고 할 거예요. 진짜로. 그러니까 이건 선배랑 저만 아는 걸로 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애도 나와 같은 결론에 닿은 거였다. 2년 전 고향 집 이불 속에서 내가 닿았던 결론에.
"선배."
"응."
"하나만 물어봐도 돼요?"
"응."
"…그때 그거, 다 진짜였죠? 저 좋아했던 거. 베트남이랑, 여름이랑, 첫날 밤이랑. 그거 다 진짜였죠?"
나는 그 애를 봤다. 짧은 머리, 탄 얼굴, 넓어진 어깨. 그 안에 아직 있는 그 애를. 나는 한치 흔들림도 없이 앞으로도 변함없을 진심을 말했다.
"다 진짜였어. 하나도 빠짐없이."
그 애가 웃었다. 아래로 쳐진 눈꼬리 끝으로 눈물이 한 줄기 흘러내렸다.
"…그럼 됐어요."
카페를 나왔을 때 눈이 내리고 있었다.
우리는 건물 앞에서 잠깐 서 있었다. 그 애가 패딩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하늘을 올려다봤다. 눈 오는 날을 좋아하던 애였다.
"저 이제 갈게요."
"응."
"선배도 잘 살아요. 밥 잘 챙겨 먹고. 살 빠지면 안 돼요."
할머니가 하던 말이었다.
"…너도."
그 애가 한 걸음 물러섰다. 그러다 멈추고, 아주 잠깐, 손을 내밀었다. 악수하려는 것처럼. 나는 그 손을 잡았다. 차가웠다. 내 손바닥의 굳은살이 그 애 손끝에 닿았다. 그 애가 엄지로 그 굳은살을 한 번 쓸었다.
"아직 있네요."
"…응."
"안녕, 오빠. 메리 크리스마스.“
그 애가 손을 놓았다. 그리고 돌아서서 걸어갔다. 눈 속으로, 한 번도 돌아보지 않고.
나는 그 뒷모습이 골목 끝으로 사라질 때까지 서 있었다. 오빠. 마지막에 그 애는 나를 그렇게 불렀다.
그 뒤로 우리는 다시 만나지 않았다.
그 애가 졸업했다는 얘기, 어디 회사에 들어갔다는 얘기를 건너건너 들었다. 나도 학교를 마치고 고향에서 멀지 않은 도시에 취직했다. 아버지는 여전히 말이 없었고, 명절이면 할머니 산소에 같이 갔다. 엄마에게서는 그 이후로 한 번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나도 하지 않았다.
지금도 가끔, 자다가 옆을 더듬는다.
그럴 때면 할머니 목소리가 들린다. 엄마 품 찾느라 그런 기다.
나는 이제 그 말이 무슨 뜻이었는지 안다. 그래서 더듬던 손을 거두고, 혼자 돌아눕는다. 창밖에 눈이 오는 밤이면 특히 그렇다.
그 애도 어디선가, 눈 오는 걸 보고 있을 것이다. 그 때 그 애 옆에 그 애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줄 누군가가 함께이기를.
나는 그걸로 됐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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