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가 원인이 되어 사고가
MemoryDigger
24
1927
12
04.13 20:08
어린 청소년 시절, 외국으로 이주해 시골에 살던 중 큰 사고를 당해 몇 달 동안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다.
고통은 상상을 초월했다. 숨이 막힐 듯한 격렬한 통증 때문에 비명을 지를 때면, 난리가 난 줄 알고 병원 복도로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온 적도 있었다.
약 한 달 동안은 상체만 제한적으로 간신히 움직일 수 있었고, 몇 달이 지나서야 누군가의 부축을 받으며 겨우겨우 걷기 시작했다.
한 달여 후에 굳어진 무릎 관절을 꺽을 때는 죽을 것 같았다
소변 튜브를 빼는 순간, 속을 불로 지지는 듯한 화끈한 고통이 밀려와 비명을 지를 뻔했다.
진통제로 통증을 겨우 누그러뜨린 채, 잠도 제대로 못 이루고 짧은 순간만을 겨우 붙잡아 눈을 붙일 수 있었다.
그 시절 가장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 것은, 몸의 수치심과 한 여사친, 그리고 간호사들이 불러일으킨 복잡한 감정이었다.
옷 한 조각 걸치지 못한 채, 얇디얇은 병원 시트 한 장만 몸 위에 걸쳐져 있었다. 추우면 담요를 덧대 주었지만,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나이였다.
시트 아래로 드러나는 몸의 윤곽이 마치 알몸인 것처럼 느껴져, 창피함과 불안으로 가슴이 미어졌다.
어린 시절 한국에 있을 때도 공중목욕탕 가기를 거부하고, 어머니가 집에서 씻겨 주실 때 몸을 보는 것, 손을 대는 것조차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그런 내가 당한 처지에서 친구들이 찾아오면 남자든 여자든 머릿속이 하얘졌다.
심장이 쿵쾅거리고 얼굴이 화끈거려, 그냥 자는 척하거나 억지로 괜찮은 척하며 몇 마디 대답만 건성으로 내뱉었다.
그 방문객 중 동생뻘 친구인 그녀는 나보다 한 살 어린, 밝고 명랑한 아이였다.
평소에도 솔선수범에새 모임에서 굳은 일을 다 맡아했고, 친동생보다 더 친근감 있고 밝은 미소로 발랄하게 나를 따랐다.
매일 한 시간씩 버스를 타고 병원까지 찾아와 몇 시간씩 머물며 바깥 세상 소식을 전해주고, 책을 읽어주고, 말동무가 되어주었으며, 내가 자고 있으면 조용히 옆을 지켜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자다가 문득 깨어나는 순간이었다.
아래가 뻣뻣하게 우뚝 서 오른 것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얇디얇은 시트는 아무것도 가려주지 못했다. 오히려 그 윤곽을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무의식중에 몇 번 꿈틀거리며 움직이는 것까지 생생히 느껴졌다.
실눈을 떠보니 그녀가 침대 발치 바로 끝에 앉아 있었다.
누워 있는 내가 봐도 시트가 텐트처럼 높이 솟아 있었다.
그녀의 시선이 정확히 그곳에 머므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미친 듯이 뛰었다.
‘제발… 내려가라, 제발…’ 속으로 미친 듯이 외쳤지만, 그것은 오히려 더 강렬하게 꿈틀대며 힘차게 반응했다.
자율적으로 순간순간 경련하듯 꿈틀거리는 것이 너무도 선명하게 느껴졌고, 시트 위로 적나라하게 그 형태가 드러났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귀 끝까지 불이 붙는 것 같았다.
숨이 막혔다. 죽고 싶었다.
나는 평소에도 매우 보수적이고 자신에게 엄격했다.
과일 나무 아래서 상투를 여미지 않는 게 나였다.
수년간 학생회 간부 일을 하며 충분히 공식적으로 만날 동기가 있었지만, 절대로 일대일로 여학생과 있는 일을 피했다.
그룹으로 활동하거나 공공장소에서 공적인 이유로만 만났다.
거의 20년이 지난 후 결혼할 때까지 한 번도 연애를 해보지 않았고, 이성으로서 여자의 손끝 하나 제대로 잡아본 적이 없었다.
결혼 이후로도 단 한 번도 한눈을 판 적이 없었고, 유혹을 느껴본 적도 없었다. 나 자신을 ‘짐승 이상의 존재’로 여기던 나만의 가치관이었다.
하지만 그런 건 아무 의미가 없었다.
몸은 내 의지를 완전히 배신한 채, 더 크게, 더 뻔뻔하게 그녀 앞에서 고개를 들고 있었다.
하체를 돌려 감출 수도, 상체를 일으킬 수도 없었다. 그저 누워서 떨고만 있을 뿐이었다.
참다못해 잠에서 깨는 척 작게 신음하며 눈을 떴다. 목소리가 떨려서 “어… 왔어?” 하고 간신히 인사했다.
그런데 나와 그녀의 시선 정중앙에 그 높이 솟은 텐트가 여전히 꿈틀거리며 내려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말을 꺼내려 했지만 목이 메여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러자 그녀가 먼저 작게 웃으며, 밝지만 살짝 붉어진 얼굴로 부드러우면서도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아, 오빠. 나 남동생하고 같이 커서 그런 거 다 볼 만큼 보고, 동생 씻겨주면서 키워서 알 건 다 알아. 그러니까 불편해하지 마. 진짜야.”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얼굴이 불타오르는 듯 뜨러웠고, 눈물이 핑 돌 지경이었다.
그저 얼굴을 붉힌 채로, 그녀와 나 사이에 높이 솟아 있는 그 ‘텐트’를 두고 한참 동안 대화를 이어가야 했다
그날도 그녀가 주로 이야기를 이끌었고, 가끔 그녀의 시선이 그곳으로 고정됐고, 나와 눈이 마주치면 그냥 씨익 웃고 넘어갔다.
수치심 때문에 찢어질 것 같은 가슴, 당황 그러면서도 그녀의 따뜻한 배려와 장난기 어린 미소가 뒤섞여 이상한, 설명할 수 없는 미묘하고 복잡한 감정이 뒤섞여 가슴 한구석을 저며왔다.
고마운 것은, 그 이후로 그런 일이 생기면 본인이 보기에 부담이 됐는지 내가 불편해할까 봐 배려해서인지 조심스럽게 손을 넣어 불편하지 않도록 자리를 잡아주고, 위에 담요를 여러 겹으로 덮어서 표가나지 않게 해주었다는 것이다.
이미 간호사들에 손길에 어느정도 익숙해지긴 했지만 그녀의 손길이 색다르게 부드럽고 따스함이 느껴졌다.
당시 그 상황을 슬기롭게 정리해 서슴없이 나의 것을 쥐고 거북하지 않도록 자리를 잡아주고 덮어서 가려주는 그녀의 배려심이 다른 감정없이 고마울 뿐이었다. 가족들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떠 고민거리를...
이것도 내가 변한 한 가지였다.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할 정도로 아프고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니, ‘내 몸에 누가 와서 뭘 하든 맘대로 하라’는 태도가 생긴 것이다.
내 몸에 손은 댄 사람들 중에 내가 불안감이나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내 아내말고는 유일했던 것 같다.
또 다른 강렬한 기억은 매일 나를 씻겨주던 간호사였다. 내 담당 간호사는 키가 작고 체구가 아담한, 20대 중반의 인형처럼 귀여운 얼굴의 여성이었다.
새벽마다 찾아와 몸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꼼꼼하게 씻겨주었는데, 특히 그곳을 닦을 때마다 죽을 것처럼 창피했다.
온몸을 다 닦은 뒤, 침대 옆에 의자를 가져다 놓고 앉아 솜을 적셔 천천히 닦아주었다. 머릿속에서는 계속 ‘흥분하지 마… 제발 일어나지 마…’ 하고 외쳤다.
처음에는 다행히 아무 일도 없었다. 그런데 매일 반복되다 보니 긴장감이 서서히 풀리면서 몸이 저도 모르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눈을 뜨고 “미안해요…”라고 중얼거리자, 그녀는 호호 웃으며 말했다.
“순진하네. 괜찮아, 이런 일은 늘 있어서 지금은 익숙해. 오히려 이렇게 반응하는 게 회복이 잘 되고 있다는 좋은 신호야.”
그녀의 밝은 미소가 오히려 더 부끄러우면서도 이상하게 안심이 되었다.
나보다 훨씬 작은 체구 때문에 내 몸을 움직일 때 애를 썼고, 가끔 다른 간호사와 함께 씻겨줄 때도 있었다.
두 명이 침대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번갈아가며 그곳을 만지작거렸다.
자신들끼리 수다를 떨면서 “여기는 어떻고, 저기는 어떻고” 하며 마치 연구하듯 살펴보기도 했다.
때로는 이야기에 열중하다가 그것이 시들해지면 끝부분을 주무르며 마사지하거나, 손으로 감싸 쥐고 위아래로 펌프질하듯 움직여 세워보기도 했다.
창피함에 몸이 타들어가는 듯했지만, 동시에 그 짜릿하고 강렬한 쾌감이 싫지만은 않았다. 은근히 그 시간이 기다려지기까지 했다.
고통이 조금씩 가시는 가운데, 가끔은 그 쾌감이 너무 강렬해서 허리가 저절로 들썩일 정도였다.
본의 아니게 절정까지 치달으며 몸이 꿈틀꿈틀 뒤틀리며 경련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면 간호사가 다시 가랑이 주변을 씻어주고, 그것을 세게 몇 번 쥐고 길게 훑어낸 뒤, 살살 벗겨 닦아주었다. 하지마 너무 예민해진 끝부분이 아릴 정도로 강렬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간호사의 배려였을까?
그분이 그렇게 해 준 덕분에 방문객들이 찾아올 때마다 노출사고를 염려하며 불안해하던 일이 없어졌고,
신기하게도 그렇게 해주고 나면 흥분이 가라앉아 나른해지면서 통증을 잊고 깊은 잠도 잘 수 있게 되었다.
몇 달 후 퇴원해 집으로 돌아왔지만, 그 후로도 몇 달 동안은 침대에 누워 지내야 했다. 여전히 옷을 입지 못하고, 담요 한 장만을 덮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걷잡을 수 없는 충동이 밀려왔다.
눈을 지긋이 감고, 병원에서 간호사가 해주던 대로 그것을 세게 움켜쥐고 빠르게 흔들기 시작했다.
흥분이 고조되며 얼마 후 전신에 전류가 흐르는 듯한 강렬한 쾌감이 폭발하듯 치솟았고, 허리가 저절로 격렬히 들썩이며, 으---으하는 신음과 함께 절정이 터져나왔다.
숨이 가빠지고, 눈 앞이 하얘지면서 서서이 떠지는 순간—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집으로 병문안 왔던 그녀가 열린 방문 앞에 서 있었다. 순간 온몸의 피가 얼어붙는 듯했다.
할 말을 완전히 잃었고 숨조차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눈이 마주치자 그녀도 낌찍 놀란 듯 황급히 얼굴을 돌렸지만, 이미 우린 모든 것을 보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엉거주춤 손을 뻗어 담요를 찾아 끌어당겨 찾아 몸을 가렸다.
떨리는 손으로 휴지를 찾아 닦고 정리하는데 손끝이 부들부들 떨렸다.
죽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잠시 후 그녀가 조용히 돌아서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문이 열려 있어서… 미안해”
그녀의 가족도 잘 알고 있었고, 부모님, 언니, 오빠, 남동생 모두 정말 착하고 성실한 분들이었다.
때문에 들켰다는 두려움보다는 놀람과 수치심이 더 컸다.
병원에서 나의 무능력한 상태에서는 그녀가 내 몸에 손대는 것이 전혀 불편하지 않고 고맙기만 했는데, 이 상황은 너무 달랐다.
오히려 내가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을 보며 그녀는
“뭐 나쁜 짓 한 것도 아닌데 괜찮아” 하면서 나를 달래주었다.
그러고는 손가락으로 지퍼를 잠그듯 입을 가로질러 보였다. 비밀로 지켜주겠다는 뜻이었다.
잠시 후, 의자에 앉아서 진지한 얼굴로 나를 가만히 쳐다보면서 조용히
“다음부터는 기침 소리 내고 들어올게” 하면서 고개를 숙였다.
잠시 후 그녀의 어깨가 살짝 들썩거리고 있는게 보였다.
울고 있나? 창피하기도 하고 겁도 나고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며 망설이고 있는데,
그녀가 나를 깜짝 놀리키며 큰소리로
“내가 왜— 에이, 내 눈이 이렇게 호강하는데… 몰래 와서 또 봐야지!” 하면서 깔깔대며 웃었다.
내가 어색해하지 않도록 우스운 해프닝으로 가볍게 넘어가며 배려해준 그녀가 고마웠다.
그 후로도 그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계속 방문해서 변함없이 밝고 따뜻하게 말동무가 되어주고 책을 읽어주며 회복을 도와주었다.
다만 짖궃게 가끔 주위에 사람들이 많은데서 옆구리를 쿡 지르면서 나를 놀리느라 귓속말로 "오빠, 요즘은 문 잠그고 안들키게 잘하고 있지"하면서 혼자 깔깔대곤 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매일 빠짐없이 병문안을 와주었던 그 친구에게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뿐이다.
희생적으로 나를 돌봐 주었던 그 간호사에게도, 말로 다 할 수 없는 감사의 마음이 남아 있다.
수십 년이 흐른 지금, 나이가 들어 다쳤던 곳에 통증이 다시 느껴질 때마다 그때의 수치심과 쾌감,
당황함과 고마움이 뒤섞인 묘한 감정 속에 그 모든 순간들이 문득문득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A I 가 신기하게도 그 당시의 느낌을 유사해게 재현시켠주는 이미지를 만들어 첨부하지만 당시에 내가 미성년자 였기에 혹시나 해서 상상력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해서 마스크해서 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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