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 1
서른아홉의 강정우가 가진 세계는 지나치게 건조하고 차가운 무채색이었다.
젊은 날의 치기 어린 열정은 진작에 마모되었고, 사업의 성공으로 손에 쥔 부(富)는 삶의 무료함을 채워주지 못했다.
돈으로 살 수 있는 자극은 금방 밑바닥을 드러냈으며, 적당한 조건과 타협 속에 만난 여자들과의 밤은 서류를 결재하듯 의무적이고 건조했다.
모든 감각이 무뎌진 껍데기만 남은 사내. 그것이 내 정체성이었다.
열아홉의 소희가 내 메마른 세계의 경계선을 사정없이 부수고 들어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아저씨는 세상이 재미없나 봐요? 눈빛이 꼭 죽은 사람 같아."
처음 만난 비 내리는 밤의 바(Bar)에서, 소희는 겁도 없이 내 곁으로 다가와 내 와인잔 테두리를 가느다란 손가락바닥으로 느릿하게 쓸어내렸다.
솜털이 채 가시지 않은 앳된 얼굴, 하지만 남자의 숨겨진 본능을 단번에 꿰뚫어 보는 듯한 그 깊고 묘한 눈망울.
17살이라는 나이 차이는 이성이 만들어낸 허울 좋은 변명이자 가식적인 방어벽일 뿐이었다.
소희가 풍기는 달콤하면서도 알싸한 체취를 마주한 순간, 내 아랫배 깊은 곳에서부터 짐승 같은 갈증이 거칠게 요동쳤다.
사내로서 죽어 있던 말초신경들이 단 한 순간에 발가벗겨진 채 깨어나는 전율이었다.
그날 이후, 우리는 세상의 모든 시선과 규범을 등진 채 서로에게 미친 듯이 매달렸다.
외부의 소음이 차단된 소희의 작은 자취방은 언제나 끈적한 열기와 서로의 거친 숨소리로 비좁게 채워졌다.
소희의 육체는 기묘할 정도로 내 사내로서의 지독한 본능을 날것 그대로 자극했다. 단순히 나이가 어리고 피부가 부드러워서가 아니었다.
처음 살과 살이 맞닿은 그 찰나의 순간부터,
마치 정밀하게 설계된 톱니바퀴가 완벽하게 맞물리듯 온몸의 신경 세포가 터질 것처럼 조여드는 속궁합은 설명할 길이 없는 치명적인 중독이었다.
방 안의 조명을 모두 꺼버린 어둠 속에서, 소희는 내 가슴팍 위로 고양이처럼 파고들며 숨을 골랐다.
침대 위에서 흔들리는 소희의 가느다랗고 매끄러운 굴곡을 양손으로 거칠게 틀어쥐고 밑바닥까지 깊숙이 파고들 때마다,
소희는 자지러지는 신음을 뱉으며 내 어깨를 날카로운 이빨로 깊숙이 짓씹었다.
아픔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 살점을 파고드는 감각이 서로의 결합을 더욱 단단하게 조여매는 기폭제가 될 뿐이었다.
"아저씨…… 하아, 읏…… 왜 이렇게 나랑 잘 맞아? 나 무서워…… 너무 좋아서 미칠 것 같아."
어스름한 새벽빛이 창문 틈으로 가늘게 흘러들 때까지 우리의 격정은 식을 줄 몰랐다.
이상할 정도로 거부감 없이 완벽하게 녹아드는 살결,
밤새도록 온몸을 쥐어짜 내며 방 안을 가득 채우는 비릿하고도 달콤한 살내음은 뇌수를 마비시키는 마약과 같았다.
남들은 상상조차 하지 못할 은밀하고도 파격적인 결합이었다.
이것은 단순한 육체적 유희가 아니라, 기괴할 정도로 서로를 끌어당기는 지독한 인력(引力)이었다.
"아저씨 냄새, 너무 좋아…… 내 몸속 깊은 곳까지 전부 아저씨 걸로 채워줘."
땀에 젖어 허벅지를 바르르 떠는 소희를 내 품으로 더 강하게 끌어안자, 소희는 내 목덜미에 입술을 부비며 매달렸다.
우리는 서로의 영혼에 결코 지워지지 않을 낙인을 찍으려는 것처럼 거칠고 난잡하게 얽혀들었다.
내 억센 손길을 따라 소희의 하얗고 가느다란 피부 위로 선명한 붉은 손자국이 멍처럼 피어 올랐지만,
소희는 아프기는커녕 더 깊은 나락으로 나를 끌어당기며 허리에 다리를 감아왔다.
이성과 도덕이 모두 마비된 채, 오직 서로를 향한 갈증으로 완전히 오염되어 버린 밤이었다.
이 지독하게 잘 맞는 육체의 결합 때문에 나는 매일 밤 소희의 안을 탐하고 또 탐했다.
소희라는 깊고 끈적한 늪 속으로 끝없이 추락하면서도, 나는 내 안의 모든 감각이 살아 숨 쉬는 해방감을 느꼈다.
세상의 어떤 도덕적 비난이나, 그 누구의 악독한 반대가 우리 사이에 끼어들지라도 이 질척한 유대감을 결코 끊어낼 수 없을 것이라 확신했다.
지옥의 서막은 이토록 달콤했고, 정우를 바라보는 소희의 흔들리는 눈동자는 어둠 속에서 잔인하게 빛나고 있었다.
자신이 파놓은 운명의 덫이 얼마나 기구한 것인지 두 사람은 아직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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